테베랜드
세르히오 블랑코 지음, 김선욱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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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작가 세르히오 블랑코는 1971년에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서 태어나 청소년기까지 보내고 하여간 어딘가 있는 대학에서 고전문학을 배운 후에 프랑스 코메디아 프랑세즈에서 연출을 공부했다. 이후 계속 연출과 스페인어(라틴 아메리카 어)로 극작을 하고 있다. <테베랜드>에 등장하는 극작가이자 연출가 ‘S’가 자신의 도플갱어라 할 수 있는데 S가 하는 말로 미루어 부계가 프랑스라서 그곳에 정착할 수 있었을 듯하다. 하긴 우루과이보다는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것이 이름을 날리는 데 훨씬 유리하겠지. 실제로 이이는 2017년에 <테베랜드>, 20년에 <나르키소스의 분노>를 극작, 연출, 공연해 런던에서 “어워드오브웨스트엔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해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는다고 해설에 쓰여 있다. <테베랜드>는 우리나라에서도 공연했고, 이때 처음으로 서울을 방문하기도 했다는데, 요새 외국 작가가 한국에 오는 일이 뭐 특별하거나 대단한 일이 아니라서 뭐.


  세르히오 블랑코가 “국제적 유명세”를 얻은 작품이 <테베랜드>와 <나르키소스의 분노>인데 둘 다 그리스 비극과 신화에서 주제를 따왔다. 고전 문학을 공부했다더니 기어이 본전을 뽑네 그려. “테베랜드”는 말 그대로 그리스 “테베 땅”, 테베에서 일어난 일을 뜻한다. 테베 이야기라면 당연히 오이디푸스가 대표적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숱하게 많이 변주하여 이젠 별로 색다를 것도 없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존속살인과 스핑크스, 근친상간, 스스로 눈을 찌르는 자해, 그리고 두 아들의 다툼, 일곱 성문에서의 전투, 테베 함락, 안티고네 이야기 등은 계속해서 변주되고 있다.

  <테베랜드>의 무대는 펜스가 쳐진 교도소 안의 반코트 농구장이다. 등장인물은 앞에서 이야기한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S와 재소자 마르틴, 마르틴의 이야기를 무대에서 공연할 페데리코, 이렇게 세 명이다. 마르틴과 페데리코는 1인 2역이니 실제 등장하는 배우는 두 명이다.

  종신형을 복역중인 마르틴의 죄명이 “존속살인.” 테베 땅에서 일어난 존속살인과는 결이 많이 다르다. 오이디푸스는 마차 위에서 버벅거리고 있는 라이오스 왕이 자기 친아버지인 줄 모르고 몽둥이로 때려 죽였지만, 마르틴은 자기 친아버지인 줄 뻔히 알면서 부엌 싱크대 앞에서 밥 먹는 포크로 처음엔 목, 이어서 가슴과 복부를 스물한 번 찔러 죽였다. 라이오스는 오이디푸스가 세상에 나오자마자 발등을 뚫고 산에 내다 버렸고, 마르틴의 아버지는 마르틴이 어렸을 때부터 바보 같은 놈, 세상에 필요 없는 놈 뭐 이런 식으로 부르며 두드려 패는 데 조금의 게으름이 없었다가, 마르틴의 대가리가 커져 힘도 세지면서 매 타작만 멈춘다. 그러나 입은 더 거칠어져 갖은 욕설을 퍼부었고, 이젠 지긋지긋해진 아버지한테 기어이 식탁 포크가 얼마나 무서운 무기에서 비롯했는지 확실하게 가르쳐주기에 이르렀다.

  등장인물 S가 스스로 말하듯이 테베에서의 부친살해가 정말 부친살해인가, 아버지인 줄 모르고 당시 윤리 기준으로 보아 죽일 만해서 죽였는데 그것도 그리 큰 죄인가? 선왕의 왕비 이오카스테가 자기를 낳은 엄마인 줄 모른 상태에서 결혼해 아들 둘, 딸 둘을 낳은 것도? 그래서 스스로 브로치 바늘로 두 눈을 콕콕 찔러 세상의 빛을 외면하게 만든 채 추방을 당하는 게 옳은 일이었는지도 묻고 있다.

  어쨌거나 아버지를 때려 죽인 일, 부친살해를 언급하면 이젠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그런데 어쩌면 세상의 모든 아들이 한 번쯤 아버지 살해를 꿈꾼다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출신 유대인 의사가 주장하지 않았나? 프로이트 자신이 반쯤 변태이긴 했지만 온 세상이 그의 주장을 신주단지처럼 믿어온 세월이 몇 년인가 말이지. 아냐, 반이 뭐야, 반이. 틀림없이 프로이트는 변태였을 것이다. 프로이트, 섹스, 생식기 오리엔티드 사고방식.

  나는 아이들한테 내가 제일 듣기 싫은 이야기가 사내새끼들이 “제일 존경하는 분이 부모님(또는 아버지)”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줄창 이야기해왔다. 부모 또는 아들의 경우 (나도 프로이트 영향을 받은 거야?) 아버지라는 존재는 존경의 대상이 아닌 극복과 타도의 대상이어야 한다고, 그래야 세상은 진화, 진보하는 거다. 그잖여?

  근데 마르틴의 아버지한테는 사실 큰 결함이 있긴 했다. 이런 자는 아버지가 되지 말아야 하는데 그게 쉽나 어디. 이렇게 훌륭한 아버지를 둔 마르틴은 어려서부터 하도 핍박이랄까 구박, 하여간 자신감이나 자존감 없이 자라는 바람에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적응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마르틴하고 비슷한 인물이 하나 있지? 도스토옙스키의 걸작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 나오는 아들 가운데 막내 스메르자코프. 이 이야기도 S와 배우 페데리코 사이에서 나온다.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는 페데리코한테 S가 자기 책을 선물하기도 한다.

  S는 마르틴과 대화한 내용은 극작품으로 쓰고, 이것을 공연하고, 적어도 리허설 때에는 마르틴이 외출을 해서 어떤 공연인지 직접 보게 해주려 했지만 결국 그렇지 못한다. 대신 영상물을 보여준 후 S는 우루과이를 떠나 파리로 가는 것으로 끝난다. 주로 프랑스에서 무대에 올렸던 극단적 부조리극과 비교하면 무척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그렇다고 2만원이 넘는 비싼 책을 사서 읽어보시라 권하기는 힘들 터. 하여간 지만지드라마에서 나오는 책이 비싸다. 할인도 안 해주고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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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기계들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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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반 정도 읽다가 도서관 사물함에 책을 두고 왔었다. 그리고는 추석 연휴가 휙 지나갔다. 닷새만에 중간부터 다시 읽기 시작하니까 좀 헛갈렸다. 이게 별점을 조금 깎아 먹었을 수도 있다. 사는 게 다 그렇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나’의 이름은 찰리 프렌드. ‘나’는 서른두 살에 완전히 빈털터리였다. 남부 런던의 따분하고 황폐한 거리에서 방 두 개짜리 아파트의 습기 찬 일층에 산다. 아빠는 재즈 콰르텟을 이끄는 관악 주자로 대부분 연주여행을 다니며 아름다운 여성과 지나가는 바람을 피우는 재미가 쏠쏠했을 것 같다. 어머니가 공중보건 간호사로 일하며 외동아들인 ‘나’를 키우는데 전념해 ‘나’의 유소년 시절엔 문화적 영양을 섭취하지 못했다. 책과 예술, 심지어 음악을 접할 시간과 공간이 없었다. 이른 나이에 전자공학에 관심을 가졌지만 결국 중부지방 남쪽의 삼각지 대학에서 인류학을 전공했고, 좀 더 잘 먹고 살기 위하여 법학으로 편입해 한때는 정식 세법 전문가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다 세무 문제로 스물아홉 번째 생일이 지나자마자 해고를 당하고, 길지 않을 교도소 신세를 질 뻔했지만 대신 백 시간 사회봉사 명령에 따라야 했다. 이후 다시는 정규직 직업을 얻지 못했다. 이후 경제적, 직업적, 개인적 실패를 다양한 방식으로 경험해야 했으며, 지금은 온라인으로 주식과 외환거래를 해먹고 사는 중이다. 따는 날도 있고 잃는 날도 있어서 1년 동안 평균을 계산해보면 발품을 파는 우체부만큼의 소득은 올리는 것 같다.

  그런데 며칠 전에 어머니가 죽었다. 잘 살지 못한 어머니는 대신 집이 있었다. 그동안 땅값이 비싼 개발지역으로 변하는 바람에 집을 팔아 ‘나’ 찰리 프레드는 가만히 앉아서 뜻밖의 거금이 생겼다. 없는 사람한테 갑자기 큰 돈이 생기면 사달이 나는 경우가 많으니 ‘나’도 그랬다.

  인간의 기술은 어디까지 발전해야 하나? 희망이 허락한 종교적 열망이자 과학의 성배는 창조신화를 인간의 손으로 실현하기 위해 기괴한 자기 대적행위를 향해 전력을 다해 뜀박질했다. 그리하여 결과가 어떻든 창조의 욕망에 따를 수밖에 없었고 그건 인조인간이 세상에 나오기 오래 전부터 하나의 클리셰가 되어 있었으나, 1982년에 드디어 전기 에너지로 움직이는 기계학습machine learning이 가능한 스물다섯 대의 인조인간을 정말로 만들었다. 열두 개의 아담과 열세 개의 이브. 일찍이 전자공학에 깊은 관심이 있었고, 사회봉사명령을 수행한 다음에 인공지능에 관한 책을 써 약간의 수입을 올린 적도 있는 ‘나’는 어머니가 죽어 하늘에서 뚝 떨어진 돈 가운데 8만6천 파운드를 현금으로 지불하고 최초의 제조인간을 시판한 시제품 가운데 아담 하나를 사서, 초라한 아파트로 귀가한다.


  1982년이라 해도, 인조인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훨씬 능가하는 지적 능력을 가진 기계였다. 이미 컴퓨터는 체스 세계챔피언을 가볍게 이기는 수준을 넘어, 실제로는 2016년에야 바둑 세계챔피언을 여러 번 지낸 이세돌을 걲었지만 작품 속에서는 1982년에 벌써 바둑의 무한 경우도 스스로 학습을 통해 인간을 능가한 수준이 되었다. 물론 <제5원소>에 나오는 밀라 요보비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러니까 이건 애초 가능하지 않은 역사를 새로 썼다는 건데, 이언 매큐언은 스토리에 개연성을 주기 위하여 영국 현대사에서 한 수학자를 호출한다. 앨런 메시스 튜링. 이이는 수학자이면서 컴퓨터 과학자로 현대 컴퓨터의 아버지로 불린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 정부는 나치 독일군의 애니그마 암호를 풀어달라고 부탁했고, 튜링은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전쟁기간도 상당히 단축할 수 있었으며 1,400만 명의 생명을 구한 효과를 냈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그러나 민간인으로 복귀한 후 1952년에 당시엔 엄격하게 범죄로 처벌받던 동성애자로 체포당해 화학적 거세형을 받아야 했는데, 정말로 거세형을 받았는지 형 집행 전인지 모르겠지만 2년 후인 1954년에 시안화칼륨(청산가리) 중독으로 생을 마쳤다. 이 튜링이 남긴 업적은 컴퓨터 중에서도 인공지능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매큐언은 1982년에 자기가 말하고 싶은 인조인간이 출현할 수 있는 근거로, 앨런 튜링 박사는 1952년에 형을 선고받았으나 실제로 화학 거세 전에 형 집행이 취소되었고, 따라서 시안화칼륨을 마실 이유도 없어서 1982년에도 생존해 있으면서 70세의 노인임에도 여전히 활발하게 인공지능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고 전제를 깔았다. 나는 70세의 노인이 모발도 풍성하고, 이도 건강하고 피부 트러블도 없다는 설명을 듣고 혹시 튜링 박사 자신도 벌써 자신이 만든 세상에서 가장 품질이 뛰어난 인조인간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튜링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연구성과에 특허를 걸지 않았다. 연구결과를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 능력이 있는 누구라도 일부 인류의 꿈인 인간 창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랐는 지도 모른다.


  애초에 ‘나’는 아담 말고 이브를 사기를 원했다. 그런데 아랍의 부호가 한 방에 이브 몇 개를 사가는 바람에 먼저 이브가 품절이 되고 만다. 여우와 포도. 그랬더니 당장 이렇게 바뀐다. “아담이라도 상관없어.” 20세기의 가을이라 할 수 있는 1982년. 12개의 아담과 13개의 이브는 각기 다른 민족적 특징을 지니게 고안되었다. ‘나’가 가져온 아담은 투르키예나 그리스인과 비슷한 외모에 몸무게가 80킬로그램쯤 나간다. 그런 기계가 담긴 박스를 혼자 옮기기 쉽지 않아 위층에 사는 스물두 살 먹은 대학생 미란다를 불러 ‘나’의 집에 들여놓았다.

  섹스 토이는 아니지만 섹스도 가능하다. 실제로 기능하는 점막도 보유한다. 점막의 습기를 유지하기 위하여 하루에 반 리터의 물을 마셔주어야 한다. 아담한테는 포경수술을 하지 않은 꽤 큰 성기와 풍성한 검은 음모가 나 있다. 이걸 본 미란다는 보스푸루스 해협의 어느 부두노동자를 닮았다는 의견을 내기도. 광고전단에는 아담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설거지와 침대정리를 하고 ‘생각’도 할 수 있는 동반자이자 지적 논쟁 상대. 친구이자 잡역부. 단 운전, 수영, 샤워,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외출, 사람의 감독 없이 전기톱 사용은 불가능하며 허락 받지 못함. 두 시간에 17km 달리기 가능. 12일 동안 쉬지 않고 대화할 수 있으며 수명은 20년임.”

  책 좀 읽는 독자가 이 전단을 보면, 저 뒤에 가면 전기톱으로 사고 한 번 치겠구나. 그러다가 수영장이나 강물 같은 데 빠져 죽겠구나. 이러고저런 짐작을 할 수도 있으리라. 여기서 말한다. 아니다. 전기톱은 나오지도 않고, 비 오는 날 우산 없이 나가도 크게 손상입지 않는다. 아담은 궁극의 장난감이자 모든 시대의 꿈, 인본주의의 승리 혹은 그 죽음의 천사라고도 썼는데, 이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이 책을 읽는 재미다. 그래서 알려드릴 수 없다.

  그런데 독자의 바람대로 되는 것이 하나 있으니, 아담을 계기로 여태까지는 친절한 이웃관계로 만족하고 있던 ‘나’ 찰리 프렌드와 위층 학생 미란다 블랙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 것.

  아담의 사용설명서를 보면 성격의 특성을 정해야 한다고 나와있다. 친화성, 외향성, 경험에 대한 개방성, 성실성, 정서적 안정성이란 5대 성격 요인 모델에 각 1에서 10까지 선택이 가능하다. 나는 아담이 친구이자 손님이기를 기대했다. 그러다가 아담이 ‘나’ 주변에 등장함에 따라 미란다와의 관계가 멀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성격 업데이트 다운로드를 할 때 ‘나’가 절반, 미란다가 나머지 절반을 입력해 마치 아담이 둘의 아이라도 된 것처럼 여기고, 함께 생활하기로 결정을 본다. 그래서 그렇게 했고, ‘나’는 미란다와 자기 시작했으며, 시간이 조금 지나자 ‘나’와 미란다의 사이가 약간 서걱거리는 일도 당연히 발생했는데, 미란다는 아담을 불러 아담과 섹스를 했고, 여태까지 느꼈던 가장 강렬한 쾌감보다 79배 더 강력한 오르가슴 맛을 본다. 아래층에서 미란다의 침대가 요동치는 소리를 들으며 애꿎은 자기 연장만 굳세게 쥐고 벌겋게 밤을 세운 ‘나’는 어처구니없게도 무생물 컴퓨터를 질투한 게 되고, 그런 ‘나’를 미란다가 비웃는다. 근데 아담의 정서적 민감성 항목이 어떻게 처리가 됐는지, 아담도 미란다를 사랑한다니 이걸 워쩌? ‘나’는 아담에게 다시는 미란다의 위에 올라가지 말라고 명령하는 걸로 그친다. 그랬더니 훗날, 많이 시간이 지나서 아담은 사랑하는 미란다 앞에 가서, “섹스를 하지 않기로 약속을 했고요, 대신 당신 앞에서 자위를 할 수 있게 해주세요.” 미란다는, 좋아. 대신 단 한 번이야.


  일흔 살의 튜링 박사도 아담 또는 이브를 한 개 이상 소유하고 있다. 급기야 결혼까지 약속한 ‘나’와 미란다가 그걸 기념하기 위해 레스토랑에 들렀다가 남자 애인과 데이트를 즐기러 온 앨런 튜링 박사를 우연히 만난다. ‘나’가 조심스럽게 ‘나’도 아담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무뚝뚝하고 신경질적인 튜링이 관심을 표했고, 며칠 후에 자기 집을 방문해달라는 내용의 통지가 온다. 그렇게 만나 세상에 퍼진 아담과 이브들의 한정된 소식을 듣는다. 아랍으로 간 두 이브는 스스로 인공지능을 포기해 인간으로 치면 자살한 수준으로 됐고, 어떤 아담은 사라져버렸으며, 또 몇 아담들도 지능을 거의 포기한 수준이란다.

  진짜 인간의 세계. 때로는 좋기도 하고 선하기도 한 거짓말을 적절하게 생활에 섞을 줄 아는 인간을 아담과 이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 사람 속에서 선하고 악한 양면을 발견할 때도 회로가 꼬일 수 있었나보다. 그렇게 구성이 된 아담과 이브가 스스로 회로멈춤, 자살을 선택한 것이라고.

  아담의 뒤통수 가운데 작은 단추가 있어서 그걸 누르면 전원이 멈춘다. ‘나’는 필요하다고 생각해 한 번 눌렀고, 일을 처리했고, 다시 켜서 재생시켰다. 아담은 기분이 좋지 않은 듯했다. 두번째 시도할 때 아담은 하지 말라고 부탁했고, 그래도 ‘나’가 하려고 하자 기꺼이 ‘나’의 오른손을 강하게 쥐고 놓아주지 않아 손목의 주상골을 부러뜨려버린다. 그리고 스스로 시스템을 통해 전원 차단 장치를 삭제한다. 이제 아담은 다시는 잠깐 사라지지 않는 존재가 된 것이고, 모든 방면에서 ‘나’와 미란다를 능가하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 ‘나’의 돈벌이인 주식과 환율을 아담이 대신하니까 수십만 파운드를 벌어들이니 이제 집안에서 위계가 어떻게 되겠어? 이런 아담한테 설거지를 시키고, 빗자루질, 미란다가 외로울 때 위무용으로? 그러나 아담은 스스로 학습을 계속한다. 사람 누구도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그럼 좋겠다고? 혹시 위협이 되지는 않을까?

  이언 매큐언은 학습능력이 있는 인공지능 탑재 인조인간을 왜 인간으로, 인격으로 상대하지 않는지, 인간의 탐욕을 비판하는 데 이 작품을 쓰고 있으나, 재미있게 다 읽은 나는, 급기야 인공지능 인조인간을 만들어낸 인간의 무모한 과학기술의 발달을 탄하고 싶다. 제발 과학기술은 이쯤에서 멈췄으면 좋겠다. 아니라고? 과학이 조금 더 발전하면 더 좋은 세상이 올 거라고? 그래봐야, 길어야 3만년이다. 과학이 발전하면 더 짧아질 수도 있다.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주구장천 인간이 살 수 있을 거 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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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10-21 05: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사족. p.301 첫 문장.
“찰리. 나는 그 평범한 목소리와 무신적無神的 초월의 순간이 대단히 귀중하게 여겨집니다!”
역자 민승남이 이런 문장을 구사했었나 싶어서, 혹시 다른 사람이 잠깐? 아니겠지. 나 같으면 주어가 ˝나는˝이니까:
“나는 초월의 순간을 대단히 귀중하게 여깁니다!”
또는
“나는 초월의 순간이 대단히 귀중하다고 생각합니다(또는 ‘여깁니다‘)!”
라고 했을 거 같은데. 하긴 역자 마음이다. 그게 마음에 들고 안 들고는 독자인 내 맘이고.

hnine 2024-10-21 1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튜링 테스트‘의 튜링이 저 사람 이름에서 온 것인가 보네요.
이제 인조인간이라는 말이 아주 오래 전에 쓰이던 말 같은 느낌까지 들어요.
이 책, 재밌겠어요 ^^

Falstaff 2024-10-21 19:29   좋아요 0 | URL
옙. 튜링 테스트의 그 튜링입니다. 이 책 재미있습니다. 인조인간하면 이젠 뻔한 이야기 같은데 여전히 흥미를 돋더라고요. ^^

케이 2024-10-21 14: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거의 모든 SF 소설 영화에 등장하는 섹스 가능 인조인간은 대체 언제 나오는 걸까요.
이렇게 전 인류가 앙망하는데 말이죠 ㅋㅋㅋ
하도 동일 소재로 여러 영화 소설을 봐서 그런지 저는 섹스 가능 인조인간? 이라고 하면 보기도 전에 흥미가 뚝 떨어지는데 이 소설은 어떨지 조금 궁금합니다.
제가 졸업한 대학교는 인문계도 무조건 컴퓨터 관련 수업 한 개를 이수해야만 했는데 당시 교수님이 앨런 튜링 이야기를 해주셔서 알게 되었네요. 컴퓨터 전공자들에게는 거의 신과 같이 모셔지고 있는 존재 같더라고요.
앨런 튜링 같은 사람을 보면 경외감도 들지만 어떤 한 사람이 전 인류의 운명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거구나... 란 생각이 들어 조금 무력해지기도 합니다.
오늘도 재밌는 리뷰 감사했어요! 건강하세요!

Falstaff 2024-10-21 19:34   좋아요 1 | URL
ㅎㅎㅎ 섹스까지 가능하면 그게 기계겠습니까. 그래도 또 모릅니다. 앞으로 불가능한 게 거의 없을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사람이 2백살까지 살까봐 그게 제일 걱정스럽습니다. ㅎㅎㅎ
튜링은 어쩌면 외계인인 거 같더라고요. 그 시절에 어떻게 그런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었는지 말입니다. 이 책 역시 튜링이 없었으면 쓰지 못했을 거고, 그래서 시간적 배경도 튜링이 살아 있다는 전제로 여전히 활동할 수 있는 70세 정도인 1982년으로 맞췄을 겁니다. 맨인블랙들이 1954년에 청산가리를 이용해 암살하지 않았을까요? ㅋㅋㅋ
 
아무튼 씨 미안해요 창비시선 347
김중일 지음 / 창비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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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7년 서울에서 태어나 단국대 공대를 졸업하고 단국대 문예창작과에서 박사를 받은 것으로 들었지만 확실하지 않다. 2008년에 쓴 어느 블로그 글에서 단국대 공학부를 졸업했고, 현재 박사과정에 재학중이며 2002년에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서 <가문비냉장고>가 당선해 등단했다고 써 있으나 나는 블로그 글을 별로 믿지 않는 사람이다. 1977년생 김중일이 1996년에 단국대 공학부를 졸업했다니 이때 나이 만 19세. 이게 사실이면 적어도 이 양반, 영재 아냐? 하여간 블로그에 이렇게 나와 있다니까 글쎄. 근데 문예창작과 박사학위는 얻은 거 같다. 지금 광주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이자 학과장으로 있는 걸 봐서. 우리나라가 학위 없으면 강사도 하기 힘든 학벌 국가잖아. 아무튼 잘 했다. 시만 써서 어디 목구멍에 풀칠이나 제대로 하느냐는 말이지. 교수 명함 가진 시인이 시인 모임에 나가면 술 마시던 보통의 시인들이 전부 일어난다잖아. 술값 낼 교수님 오셨다고. 그 “교수 시인”이 쓴 시에서 읽었다.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겠지만. 하긴 요즘에 갤러리아 백화점 옥상에서 돌 던지면 시인 아니면 화가가 맞는 세상이긴 하다.


김중일


  나는 김중일의 시가 어떻고 저떻다, 라는 말을 할 재주도, 능력도, 시각도 갖고 있지 않다. 그냥 읽은 소감, 느낌을 얘기할 뿐이다. 이 시집은 그저께 읽었다. 그런데 시인 김중일한테 미안한 얘기지만, 읽은 소감, 느낌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분명히 읽었고, 읽는 중에 자주 지루했으며, 시가 대체로 길었다, 정도. 물론 짧은 시도 있다. 예를 들어 이런 거.



  기념일



  우리가 함께 매일매일 무수히 구부렸던

  숫자들을 모두 도로 감쪽같이 펴놓아야지


  물고기처럼 평생 물거품과 키스해야지   (p.97 전문)



  짧아서 좋지? 어차피 무슨 메시지를 전하고자 쓴 시인 줄 모를 텐데 길게 쓰면 길게 쓸수록 독자는 미로에 더 깊숙이 빠질 것 같으니. 1연에서 ‘숫자’가 어떤 날짜를 가리킨다는 건 알겠다. 뜸하지만 간혹 시집 읽은 눈치로. 그러나 ‘기념일’이 구부렸던 걸 펴는 게 아니라 반대로 빨랫줄처럼 이어지는 날짜들 가운데 하루를 접어서 구부려 그 날을 기념하게 만드는 거 아닌가? 그걸 다시 편다면, 혹시 기념일이 귀찮기만 하고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는 뜻일 수도 있고. 2연에서 평생 물거품과 키스하는 물고기라는 말은 도통 이해불가. 당연히 현대시가 독자에게 무슨 이해를 바라는 바도 아니고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기는 하지만. 시집 속에 부제를 “흥얼거림으로의 떠듦”이라 붙인 <아스트롤라베>라는 시가 있다. ‘아스트롤라베’는 고대, 중세 시대 때 사용하던 천문관측기구를 말한다. 이 시에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어제보다 한 마디쯤 더 작곡된 오늘 밤의 음계

  그 속에 귀속된 마당의 파란 대문은 도돌이표처럼 부유하는 밤의 음표인 우리를 되풀이해 연주하고 있었다.

 우리집 속에서, 조금씩 쇠락해가는 개집 속에서 하룻밤 묵은 사막여우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울부짖었다. 하늘은 해변으로 떠밀려온 부패한 해산물처럼 꾸물거렸다. 새들이 철퍼덕철퍼덕 날갯짓하며, 하늘로 하늘로 노 저으며 까마득히 내동댕이쳐지고 있었다.

  환절기의 새들은 야간비행에 있어서만큼은 대열 속에서 합심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았다. 가장 가까이서 날고 있는 자신을 낳은 이가 가장 위협적인 암초가 되기 때문이었다.

  아주 드물게는 집고양이가 그 새들을 잡기도 했다.   (부분. p.13)



  이걸 어떻게 읽어야 하나? 오늘 밤이 어제보다 한 마디쯤 더 작곡한 음계라니 시의 서정이나 감정이 아닌 음악, 음률로? 그럴 각오를 하고 읽으면 또 음률적으로 그럴듯하다. 물론 그럴 경우엔 “있어서만큼은”이라는 여섯 글자 단어가 위험하지만. 같은 여섯 글자 단어라고 해도 “철퍼덕철퍼덕”은 세 글자 단어인 “철퍼덕”을 연이어 사용해 충분히 음률적이다. 그거 하나 빼면 음악적으로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러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은 왜지? 틀림없이 무슨 메시지를 담은 시 같다. 그게 뭔지 몰라서 문제지만. 이 시에서 야간비행하는 환절기의 새들이 나오는 것처럼 시인은 새, 사막여우, 낙타 같은 척추동물을 자주 등장시킨다. <새들의 직업>이라는 시도 있다. 거기에서:



  동생(同生)이 죽었다.

  동생은 죽어 지금 내 발목에 그림자 대신 매달려 있다. 동생은 나름 허공에 질질 끌며 땅속을 걷는다. 땅 속을 걷다보면 태어날 자들과 죽은 자들의 이마에 손을 얹고, 내년에 피고 질 꽃들을 미리 꺾을 수 있을까.

  동생이 죽었다.

  움직이는 하늘의 파오 속으로 찬바람이 들어왔다. 바람이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나갔다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듯, 동생의 곡두가 슬픔과 권태의 바깥에서 긴 칼날을 막사 안으로 푹푹 찔러넣듯, 까마득한 하늘 저 멀리 뾰족한 철새떼가 무수히 박혔다 사라졌다.

  동생이 죽었다.

  동생은 구름이란 보풀만 가득 핀 허공을 걸치고 있다가, 한 떼의 새들에 의해 허공과 함께 기워져버렸다. 어제로 벗겨져버렸다.  (부분. P.25~26)



  시 속에 나오는 ‘파오’는 이동형 주거 천막인 게르. 곡두는 허깨비, 허상, 헛것을 뜻한다.

  동생은 아우를 말하지 않는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아우를 칭하는 ‘동생’을 한자어로 쓰면 同生이 맞다. 이 시에서 ‘동생’은 나하고 같이(同) 태어난(生) 것. 그래서 흔하게 이야기하는 ‘내 속의 또다른 나’일 수도 있고, 시 속에서 말한대로 그림자처럼 나한테 매달린 ‘무엇’일 수도 있다. 특히 ‘그림자’의 서양적/유럽적 해석이면 우리가 생각하는 그림자보다 훨씬 중요한 매개변수로 작동한다. 그게 죽어, 없어져… 그게 뭐, 어떻게 됐는데? 모르겠다. 내년에 피고 질 꽃을 미리 꺾을 수 있을지 궁금해했다가 난데없이 어제로 벗겨져 버렸으니, 동생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거꾸로 흐른다기 보다 “꼬리에 꼬리를 문다”는 것이 더 적당하다. 당연히 이 의견은 평론가 조강석의 해설을 읽으면서 배운 거다.

  <늙은 역사와의 인터뷰>에서 “역사”는 힘이 센 역사(力士)를 말한다. 얼마나 늙었느냐 하면 “늙은 아들이 방금 집안에 남은 마지막 명부(冥府)행 티켓을 훔쳐 달아났다”니까 한 마디로 겁나게 늙었다. 그러니까 말은 역사(力士)라고 하더라도 늙은 내력을 봐서 역사history로 봐도 무방하다. 아우가 아닌 동색(同生)을 보듯. 이 <늙은 역사와의 인터뷰>에서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이 모든 의혹에도 아랑곳없이 피곤한 역사는 오늘도 검은 그림자를 벨벳망또처럼 질질 끌며 방으로 돌아옵니다. 백열여덟해 동안 이 전설적인 역사가 아직 한번도 내던지지 못한 게 있다면, 유일하게 역사의 무거운 그림자뿐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과연 그렇습니까?

  ……

  역사는 제 그림자의 긴 지퍼를 열고, 침낭같이 목관같이 어둡고 아늑한 그 속으로 들어가 몸을 눕힌다. 이봐 친구,


  나는 할 말이 없으니 부탁인데 이제 그만 그 달 좀 치워줘

  내 그림자와 함께 안전하게 사라질 수 있도록    (부분 p.76~77)



  이 시에서 등장하는 그림자. 118년 동안 힘센 역사가 단 한 번도 던져버리지 못한 유일한 것. 자기 자신 말고 또 뭐가 있을까? 결국 늙은 力士 또는 歷史는 그렇게 시체 처리용 검은 비닐 속으로 들어가 지퍼를 올린다. 지금 여러분은 이렇게 또 한 히스토리가 사라지는 현장을 목격하고 계십니다.

  김중일의 그림자는 <외과의사 늘의 긴 그림자>로 가면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그림자 이야기만 나온다. 의사의 이름이 “늘.” 물론 중의적이다. 언제나와 같은 의미로 늘을 생각해도 괜찮을 듯.



  늘 그도 사실 자신의 대책 없는 환자들처럼, 평생 태양의 발등 위에 두 발을 올려놓고 태양과 같은 속도로만 매일 아등바등 걷는다면 감쪽같이 제 그림자를 숨길 수 있다고 믿었지. 구름의 문양으로, 각양각색 병들어가는 걸 숨길 수 있다고 믿었지. 하지만 그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예방법. 늘의 동공과 하늘의 달은 잘못 끼워진 단추처럼 빛을 발한다. 마지막 단추가 풀리듯 달이 구름 속으로 스며든다.   (부분. P.122)



  그만 쓰자. 독후감이 너무 길다. 한 마디만 보태자면, 김중일의 시는 불면이고, 밤이며, 죽음이라는 것. 그만 쓰고 시도 이제 그만 읽을까? 대체로 우리 현대시, 다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는 전제로, 너무 어둡고 무겁고 우울해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게다가 내 수준으로는 너무 어렵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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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10-18 03: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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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노 신이치 단편집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마키노 신이치 지음, 김명주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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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지식을만드는지식의 책이 도서관에서 눈에 들어왔다 하면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선택을 한다. 출판사에서 만든 책이 좋아서 그러는 건 아니다. 이 책을 찍은 날이 2015년 내 생일날. 그때 가격으로 2만2천원을 정가로 매겼다. 이후 펜데믹이 터지고 여기저기서 눈먼 돈이 국토를 뒤덮어 한 순간에 인플레이션이 휩쓸고 간 지금도 2만원이 넘는 책이 나오면 일단 경계를 하고 들춰보기 시작하거늘 단편 여섯 작품을 싣고 본문이 달랑 240쪽에 불과한 2015년 책값이 2만2천원에, 다른 출판사하고는 달리 할인도 5%밖에 해주지 않아 현금 2만9백원을 줘야 읽어볼 수 있던 책. 저번에 이렇게 얘기했더니 행인 한 명이 지나가다가 “책을 가격으로만 생각하느냐.”고 한 말씀 주셨다. 책도 상품인 한에 가격은 언제나 중요하다. 나는 땅을 밟고 사는 생활인이지 구름 위에서 넥타르를 마시고 사는 고결한 인격이 아니다. 그리하여 《마키노 신이치 단편집》도 오랜만에 일본 소설 서가를 뒤지다가 눈에 띄어 얼른 고르고 봤다. 지만지에서 찍은 작품들이 언제나 좋은 건 아니니까 품질에 관한 기대는 별로 하지도 않았으면서.


  마키노 신이치牧野信一. 1896년에 가나가와 현, 오다와라 시의 오다와라 가문의 오랜 저택/고택에서 부르주아의 아들로 태어났다. 마키노 신이치는 일본 사소설을 많이 쓴 작가로 책 《마키노 신이치 단편집》에서도 자기 부모를 비롯해 신상을 모두 이야기하고 있는 데, 그것으로 유추해보면 아버지 대에 거의 모든 재산을 말아먹으면서 두 내외가 하고 싶은 건 모두, 자유분방하게 다 해본, 전적으로 작품을 그대로 믿어 하는 이야기라는 것을 밝히는 전제로 말하자면, 막장 부부였던 모양이다.

  작품의 주석을 보면, 마키노의 아버지 마키노 히사오는 잠깐 소학교 교사 일을 하다가 아들이 태어난 지 일곱 달이 되었을 때 난데없이 미국행 배에 올라 9년 동안 놀고 돌아온다. 히사오는 명목상 보스턴 유학생이라 이때 클래스메이트도 당연히 있었다. 후에 클래스 메이트는 결혼을 해 F라는 딸을 낳았고, 이 F는 하사오의 아들 신이치와 계속 편지 왕래를 비롯한 우정을 이어간다. 피가 끓는 젊은 시절의 아버지 마키노 히사오가 미국 땅에서 9년 동안 수절을 했다는 건 믿지 못한다고 쳐도, 그가 N이라는 여성을 만나 사이에 혼혈의 혼외자식을 두었다고 마키노는 여러 작품에서 떠들어 대지만, 일본의 전문가, 평론가들은 다른 건 몰라도 그건 구라라고 결정을 봤단다. 소설이 원래 적절할 구라를 치는 장르니까 독자는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 주자. 보스턴에 9년 동안 있던 아버지는 그렇다 치고, 일본의 규중에 박혀 있게 된 엄마는 밤마다 바느질만 하다가 바늘로 애꿎은 허벅지만 찌르며 “참아야 하느니라, 참아야 하느니라.” 긴긴 밤을 세웠을까? 물론 190X년이면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러나 소학교 선생이기도 했던 어머니는 허벅지를 건사하는 방향으로 선택했다. 어차피 선택의 문제다.

  세이신淸親이란 남자가 있었다. ‘고향 저택에 상주하는 머슴 같은 존재’라고 각주에 달렸지만 머슴보다는 윗길리고 집사한테는 처지는 정도의 지위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 자를 어머니는 애인으로 선택하는데, 이게 정말인지 구라인지는 여태 이야기들을 하고 있단다. 그러니까 세이신이 맞건 아니건 간에 어머니는 틀림없이 한 명 이상의 애인, 한 명일 수도 있다는 얘기니까 놀랄 필요는 없고, 누군가가 있었다는 건 맞는 거 같다.

  마키노 할아버지 입장에서 보면, 아들은 아이 하나 만들어놓고 미국에 가서 몇 년이 흐르도록 소식 몇 자 없지, 며느리는 소학교 교사한다고 만날 밖으로 돌아치며 틀림없이 연애를 하고 있는 푼수지, 불쌍한 손자는 에휴, 할 수 없이 내가 맡아 키울 수밖에 없겠구나, 이런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하여 어린 마키오에게 온갖 정성을 바쳐 날이 갈수록 나약한 어리광쟁이를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9년 후에 돌아온 아버지는 자기가 보스턴에서 벌인 난봉질은 모르쇠하고, 아내의 바람기는 조금 눈치를 챘는지 결코 좋은 부부관계를 맺지 않고 대신 ‘오초’라는 이름의 가이샤 출신을 첩으로 들여 살림을 차린다. 그래도 정실 아내를 전혀 모르쇠할 순 없는 법, 귀국 4년만에 마키노에게 누이동생을 하나 만들어준다.

  이렇게 ‘바람직한 가족 관계’ 속에서 살면서 마키노도 점점 나이를 먹어 어느새 스물다섯 살이 됐고, 이제 저 옛날 흥부의 큰아들이 흥부한테 말했듯이, “아버지, 아버지, 부랄 밑이 근질근질하니 장가 보내주!” 할 수 있는 때가 되자 그냥 미모의 열여덟 살 먹은 아가씨 스즈끼 세스한테 연애를 걸어 안다리후리기를 시도, 자빠뜨리는 데 성공했다. 그래 히데오英雄라는 아들을 얻었는데, 부모는 부모랍시고, 혼전 임신을 찬성할 수 없다고 반대를 하다가, 자기 손자가 세상에 나오는데 그걸 어떻게 끝까지 반대하노? 결혼시키고 말았다.

  마키노 집안에서 보면 낙혼이라 낙심할 수 있을 정도로 차이가 나는 집안이긴 하다. 하지만 그건 옛 이야기. 마키노 가문도 이미 쇠락할 만큼 쇠락한 상태. 스즈끼 가문은 재산은 물론이고 교육수준, 집안환경 같은 게 형편없다. 게다가 우리의 작가 마키노 신이치는 어려서부터 다른 건 몰라도 부부 관계, 부부 사이에서 해야 할 일은 모르겠고, 부부 사이라 해도 할 수 있는 다양한 기호에 익숙한 인간이라 현대 일본의 젊은이 사이에서 창궐하고 있는 질병 가운데 하나인 매독 바이러스를 어디서 수집해 와, 아내의 생식기 전반에서 배양하는 일도 벌어진다.

  한 집안의 가장 마키노를 생각하면, 노동의 능력, 노동에 적응할 적응력을 아예 갖추지 못한 룸펜 인텔리겐치아. 열라 소설 같은 글을 써서 얼마라도 생기면 절대로 가정을 위해 내놓지 않고 자신의 즐거움과 환락을 위해 당장 써버리고 늘 궁상맞은 가난을 선택하는 인간. 늙은 어머니는 아버지가 죽은 후에 아주 내놓고 옛 하인 세이신과 살림을 차려, 주로 돈 문제로 고향에 내려가 세이신과 다툼이라도 있으면 늙은 세이신에게 엎어치기를 당해 퉁퉁 부은 얼굴을 하고 돌아와 두어서너달 고향쪽으론 오줌도 안 누는 치졸한 인간이다.

  여태 내가 위키피디아 보고 마리노 신이치의 바이오를 옮긴 건 줄 아시나? 아니다. 책에 실린 여섯 편의 단편소설 내용을 순서없이 와그르르르 적어 놓았을 뿐이다. 이게 가능한 건, 일본의 사소설이니까. 내가 정말 사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서가에서 하필이면 이 책을 잡아 뺐다. 인생이 다 그렇지 뭐.

  마키노의 문장이 좋아 우리나라 이상李箱도 그가 고향집에서 서른아홉 살의 나이에 목을 매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신문에서 읽고 경악을 해 그해 9월에 빛나는 작품 <날개>를 썼으며, 날자, 날자, 에라 쓰펄 날고 말자 싶어서 10월엔 현해탄을 건너 도쿄에 갔다가 다음 해 4월에 폐결핵이 도져 자기도 기꺼이 마키노의 뒤를 따랐다는 건데… 1930년대에 이렇게 촌스런 문장을 쓰는 사람이 그렇게 경배할 수준이었나 싶다.


  “낮에는 야산을 돌아다니며 양식을 구하고, 밤에는 길거리에서 마을 사람들을 모아 유쾌한 무협담을 나누자. 나는 ‘사유의 사유’를 거듭하며 감람산을 꿈꾸는 철학자에게 연민을 느끼고, 디오게네스의 나무통을 굴리고 있는 시인을 경멸하고, 통일을 위한 통일로 연신 무미건조한 계단을 오르내리는 물리학도와 절교하고는, 유쾌하게 모자를 흔들었다. 그리고 그들이 어떤 어려운 일이 닥칠지도 모른 채 낯선 야행지를 그리워하는 것이 통쾌했다.” (<엘리베이터와 달빛>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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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10-17 1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300페이지 안 되는 책도 만8천원하는 것도 많더군요. 그만한 값을하면이야 그냥 봐준다 하지만 못 미치면 억울하죠. 말씀마따나 생활인 아니겠습니까?
그나저나 이상이 요절해서 그렇지 마키노 신이치 좋다고 쭟아갔으면 클 날뻔했네요.

Falstaff 2024-10-17 20:28   좋아요 1 | URL
책값이 넘 올랐어요. 책값을 비롯해서 물가가 너무 올랐어요. 연금생활자는 밋치겠습니다. ㅋㅋㅋㅋ 절대 미치지 않을 거 같아서 웃음만....
(이하 생략)
 
맹인 악사 대산세계문학총서 164
블라디미르 갈락티오노비치 코롤렌코 지음, 오원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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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블라디미르 코롤렌코의 생몰이 1853~1921, 주요 작품은 1886년 결혼하고 10년간에 집중해 있다. 폴타바에서 출생한 우크라이나 코사크 출신인 아버지는 당시 시각으로는 놀라운 정도로 뇌물을 받지 않는 정직한 지방판사였으며, 어머니 에벨리나 스코레비츠는 폴란드 출신으로, 코롤렌코가 어렸을 때는 도무지 자신이 어느 족속/종족에 속하는지 몰랐다고 한다. 제일 먼저 정식으로 배운 언어가 엄마의 모국어인 폴란드였는데, 1863년 폴란드 독립운동(의 실패) 이후 선택에 대한 강요로 러시아 국적 및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1866년, 코롤렌코가 겨우 열세 살일 때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뜨는 바람에 가세가 급격하게 기울어 이후 상트페테르부르크 기술대학에 다니다 혁명 사상을 가진 젊은이가 (당)할 수 있는 많은 일을 다 (당)하고 우크라이나의 대표적인 작가, 언론인, 인권운동가, 그리고 무엇보다 “인도주의자”로 이름을 높인 이다. 진짜로 위키피디아를 검색해보면 아이고, 일단 분량이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 앞으로 작품(집)이 나온다 해도 또 읽지는 않을 거 같으니 굳이 이이의 바이오를 더 소개할 필요는 느끼지 않는다.

  그럼에도 굳이 아빠가 뇌물을 받지 않아 당대 시각으로는 마치 돈키호테 같은 희한한 지방 판사였다는 거, 엄마 이름이 ‘에벨리나’였다는 것을 밝힌 건, 청렴한 지방판사 아빠는 <나쁜 패거리>의 일찍 홀아비가 된 정의로운 지방판사가 등장하며, 엄마는 이 책의 타이틀 롤인 <맹인 악사>에서 폴란드 귀족 출신 토지 관리인의 딸이자 여주인공 이름으로 나오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작가의 사생활이 작품 속에 슬쩍 나오는 걸 발견하는 게 은근히 재미있지 않으신가? 나는 그런데. 뭐 그렇다는 얘기다.


블라디미르 코롤렌코의 초상.  일리야 레핀 그림


  읽기에 괜찮은 단편소설 셋과 타이틀 롤 중편소설 하나를 실은 작품집이다. 중단편의 스토리를 소개하는 건 조금 위험하다. 그래도 이 책에 실린 <맹인 악사>는 178쪽에 이르며, 문학과지성사의 대산세계문학총서 시리즈 구 판형의 편집을 감안하면 웬만한 요즘 한국 장편소설 이상의 분량이라 줄거리 소개에 부담이 크지 않다.


  우크라이나 남서 지방의 부유한 지주 포펠스키 씨 집안 일이다. 작품은 포펠스키 씨의 젊은 아내 안나 미하일로브나 포펠스카야의 출산 장면부터 시작한다. 산고를 치르고 있다. 초산이라 독한 고통 끝에 사내 아이를 낳는데, 엄마는 진통 후의 나른함이 아니라 유난히 그악스러운 울음을 우는 아기가 걱정이다. 저 작은 것이 저렇게 힘들게 우는 건 무슨 이유가 있어서 일 것이라는 본능적인 두려움. 물론 독자는 이미 짐작을 한다. 제목이 ‘맹인 악사’이니 아이는 맹인으로 출생해 훗날 악사,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가 될 것이라 생각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게 맞다. 아이는 세상에 나올 때부터 시신경이 없는 상태로 태어났다. 그게 서러워 유난히 울부짖듯 울었을 것이라고 엄마는 평생 생각했겠지.

  가족의 구성원은 아버지, 어머니, 아기의 외삼촌 막심 미하일로비치, 그리고 아기. 이렇게 네 명이다. 아버지 포펠스키 씨는 우크라이나 남서쪽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착실하고 근면한 농촌 지주이다. 선량하고 친절하고 일꾼들 잘 보살피고, 취미로는 물레방아를 만들거나 다시 개조하는 걸 좋아한다. 쉬운 얘기로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란 얘기다. 아무리 건드려도 성내지 않는 온화한 남성. 그러니 맹인 아들 하나만 딱 낳고 다시는 아이를 만들지도 않았지. 근데 우크라이나 물방앗간은 우리와는 달리 남녀상열지사가 생기지 않는 곳인 모양이다, 그지? 엄마는 세상의 모든 엄마와 비슷하게 하나밖에 없는 아이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수도 있는 헌신적 엄마. 그런데 문제는 외삼촌 막심이다.

  외삼촌 막심은 키예프와 키예프의 가장 험한 동네인 시장에서 제일 유명한 싸움꾼으로 악명을 떨쳤다. 우크라이나, 키예프, 그리고 코사크족. 근데 생각을 조금 바꿔보자. 이 동네 출신 가운데 유명한 작가가 몇 있다. 그 가운데 러시아 문학에 가장 큰 자취를 이룬 니콜라이 고골. <타라스 불바>를 봐도 그렇고 《디칸카 근교 마을의 야회》를 읽어도 그렇고, 이 근동의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악마적 폭력성을 (아니겠지, 아니겠지만 휘까닥 바꿔 생각해보면) 약한 미덕 가운데 하나로 여기는 듯도 하다. 하여간 지역의 대표 어깨로 활약해 장바닥에 얼굴을 내미는 것만 가지고도 주민들에게 무한 공포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던 막심은, 당연히 젊은 시절에 그랬다는 건데, 어느 날, 생각하는 바가 있어서 큰 포부를 펼치기 위해 이탈리아로 건너가 가리발디와 한 패를 이루어 대 오스트리아 전쟁에 투신했다. 거대한 몸집과 대단한 완력을 쏟아내는 막심이 가리발디한테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 지는 안 보고도 알 수 있겠지. 그러다가, 한 번은 장창을 꼬나들고, 19세기지만 소총의 연발 사격 속도가 부실해 백병전이 전투를 가름하던 때라 정말 말 위에서 긴 창을 휘두르던 시기인데, 적진을 향해 돌격하다가 꾀바른 오스트리아 군사 하나가 말의 발모가지를 타격하는 바람에 적진 한 가운데에서 낙마를 했고, 이걸 그냥 둘 오스트리아 군사들이 아니어서 자근자근 짓밟아주었고, 조금 시간이 흘러 이탈리아 독립군이 구출을 해 목숨보전을 했으나, 오른쪽 다리를 절단해야 했으며, 왼손도 이젠 그냥 시늉으로만 달고 다녀야 했다. 그래서 어떡해? 남의 나라인데. 다시 우크라이나로 와 키예프의 집구석에 들어가기엔 보는 눈이 성가셔, 마침 매제가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라 여동생 안나의 집에 쳐들어가 함께 살고 있었던 거다.

  이제 장애로 인해 지팡이를 짚어야 하는 늙은 전사는 폭력성 대신 만신창이가 된 몸 속에서 뜨겁고 선량한 심장이 고동치고 덥수룩한 억센 머리털로 뒤덮인 크고 네모난 머리 속에서 지칠 줄 모르는 사고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제대로 나이를 먹었다는 말이다. 누이 안나가 앞을 보지 못하는 아이에게 맹목적인 배려를 하는 건 아이의 시각을 대체할 예민한 다른 신경기관이 발달하는 데 오히려 크게 방해할 수 있다고 조언하며 아이가 주어진 상황 아래 자신에게 허용된 (시각을 제외한)외적 인상을 고양시킬 수 있도록 교육을 맡게 된다. 그리하여 막심 외삼촌은 선천적으로 맹인으로 태어난 표트르 포펠스키의 스승으로 아이의 성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맹인 악사>는 선천적 맹인 표트르 포펠스키가 태어나는 것으로 시작해, 유년, 소년, 사춘기, 청년, 혼인 등 연대기 적 서사로 썼다. 주인공이 맹인 표트르이기 때문에 주연급 조연인 막심이 이 가족과 함께 살게 된 내력을 알려주는 것 말고는 철저하게 시간 배열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런 방식은 현대 소설 중에선 아주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시간을 10으로 본다면 소위 “현대” 소설은 4, 5, 6 정도, 아니면 7쯤에서 시작해 예컨데 7, 8, 3, 4, 5, 6, 1, 2, 9, 10 이런 식으로 스토리를 섞는 것이 일반이라 이 작품처럼 1, 2, 3… 9, 10 같은 나열은 진짜 오랜만에 읽는다. 아마도 19세기도 아니고 18세기 작품에서는 읽었던 것 같다.

  <맹인 악사>는 1886년에 발표하여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작가 블라디미르 코롤렌코는 투르게네프,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등 선배 작가들보다 한 세대 이상 차이가 나는데, 나는 아무리 좋은 방향으로 읽으려 노력해도 그들을 능가하기는커녕 비슷한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투르게네프야 러시아 토종이라기보다 유럽을 모방한 측면이 강하지만,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 물론 더 앞으로 나가면 고골은 확실하게 러시아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작품을 썼고, 이런 면에서 코를렌코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아쉽게도 오히려 선배 세대 작가들보다 코롤렌코의 스타일은 전혀 진화하지 못한 것으로 읽었다. 하긴, 선배들의 그림자가 워낙 크고 깊기는 하다.


  “그런 영혼을 지닌 사람들은 감정이 결핍되어 흔히 지나치게 냉정하고 지나치게 신중하게 보인다. 그들은 세속적 삶의 열정적 호소에 둔감하며 마치 아주 명백한 개인적 행복의 길을 가듯이 애처로운 본분의 길을 조용히 걸어간다. 그들은 눈 덮인 산봉우리처럼 냉랭하고 장엄하다. 일상의 비속은 그들의 발아래에 널려 있다. 심지어 중상과 험담은 마치 백조의 날개에서 진흙 부스러기가 떨어지듯 눈처럼 하얀 그들의 의복에서 굴러떨어진다….” (p.244)


  18세기 말이나 19세기 초에 출간한 독일 소설에서 볼 듯한 문장과 사유법이다. 이미 서유럽에서는 이런 경향을 졸업하고 사실주의와 자연주의를 향유하는 단계였다. 에밀 졸라가 <목로주점>을 출간하고 10년 가까이 흐른 시점이고, <제르미날>이 1년 전에 나왔으니 아쉬울 수밖에.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는 다음으로 하고, 오히려 같은 지역 사람인 니콜라이 고골에 비해서도 한 수 너머 접히는 구성과 문장과 스토리, 이것들을 다 합해 ‘스타일’ 아닐까 싶다. 다만 하는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읽을 만하……지만 추천할 만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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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10-15 1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시간 순서 보는 법 생각 거의 안하고 읽었는데 이런 게 있었네요. 아직 톨스토이와 도끼 옹의 책을 다 떼지 못한 저로선 일단 저 문학의 신들의 작품을 다 읽고 혹시 시간이 남으면 들춰봐야겠네요. ㅋ

Falstaff 2024-10-15 10:24   좋아요 1 | URL
시간 순서, 근데 정말 그런 거 같지 않아요? 아이고, 이거 제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떠든 거 아닌가 싶어 좀 캥겼었거든요. ㅎㅎㅎ

stella.K 2024-10-15 10:29   좋아요 1 | URL
믿쑵니다! ㅎㅎㅎ

그레이스 2024-10-16 0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믿고 패스!

Falstaff 2024-10-16 20:43   좋아요 1 | URL
ㅎㅎㅎ 그래도 혹시 도서관에서 발견하시면 읽어보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