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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베랜드
세르히오 블랑코 지음, 김선욱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4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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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작가 세르히오 블랑코는 1971년에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서 태어나 청소년기까지 보내고 하여간 어딘가 있는 대학에서 고전문학을 배운 후에 프랑스 코메디아 프랑세즈에서 연출을 공부했다. 이후 계속 연출과 스페인어(라틴 아메리카 어)로 극작을 하고 있다. <테베랜드>에 등장하는 극작가이자 연출가 ‘S’가 자신의 도플갱어라 할 수 있는데 S가 하는 말로 미루어 부계가 프랑스라서 그곳에 정착할 수 있었을 듯하다. 하긴 우루과이보다는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것이 이름을 날리는 데 훨씬 유리하겠지. 실제로 이이는 2017년에 <테베랜드>, 20년에 <나르키소스의 분노>를 극작, 연출, 공연해 런던에서 “어워드오브웨스트엔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해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는다고 해설에 쓰여 있다. <테베랜드>는 우리나라에서도 공연했고, 이때 처음으로 서울을 방문하기도 했다는데, 요새 외국 작가가 한국에 오는 일이 뭐 특별하거나 대단한 일이 아니라서 뭐.
세르히오 블랑코가 “국제적 유명세”를 얻은 작품이 <테베랜드>와 <나르키소스의 분노>인데 둘 다 그리스 비극과 신화에서 주제를 따왔다. 고전 문학을 공부했다더니 기어이 본전을 뽑네 그려. “테베랜드”는 말 그대로 그리스 “테베 땅”, 테베에서 일어난 일을 뜻한다. 테베 이야기라면 당연히 오이디푸스가 대표적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숱하게 많이 변주하여 이젠 별로 색다를 것도 없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존속살인과 스핑크스, 근친상간, 스스로 눈을 찌르는 자해, 그리고 두 아들의 다툼, 일곱 성문에서의 전투, 테베 함락, 안티고네 이야기 등은 계속해서 변주되고 있다.
<테베랜드>의 무대는 펜스가 쳐진 교도소 안의 반코트 농구장이다. 등장인물은 앞에서 이야기한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S와 재소자 마르틴, 마르틴의 이야기를 무대에서 공연할 페데리코, 이렇게 세 명이다. 마르틴과 페데리코는 1인 2역이니 실제 등장하는 배우는 두 명이다.
종신형을 복역중인 마르틴의 죄명이 “존속살인.” 테베 땅에서 일어난 존속살인과는 결이 많이 다르다. 오이디푸스는 마차 위에서 버벅거리고 있는 라이오스 왕이 자기 친아버지인 줄 모르고 몽둥이로 때려 죽였지만, 마르틴은 자기 친아버지인 줄 뻔히 알면서 부엌 싱크대 앞에서 밥 먹는 포크로 처음엔 목, 이어서 가슴과 복부를 스물한 번 찔러 죽였다. 라이오스는 오이디푸스가 세상에 나오자마자 발등을 뚫고 산에 내다 버렸고, 마르틴의 아버지는 마르틴이 어렸을 때부터 바보 같은 놈, 세상에 필요 없는 놈 뭐 이런 식으로 부르며 두드려 패는 데 조금의 게으름이 없었다가, 마르틴의 대가리가 커져 힘도 세지면서 매 타작만 멈춘다. 그러나 입은 더 거칠어져 갖은 욕설을 퍼부었고, 이젠 지긋지긋해진 아버지한테 기어이 식탁 포크가 얼마나 무서운 무기에서 비롯했는지 확실하게 가르쳐주기에 이르렀다.
등장인물 S가 스스로 말하듯이 테베에서의 부친살해가 정말 부친살해인가, 아버지인 줄 모르고 당시 윤리 기준으로 보아 죽일 만해서 죽였는데 그것도 그리 큰 죄인가? 선왕의 왕비 이오카스테가 자기를 낳은 엄마인 줄 모른 상태에서 결혼해 아들 둘, 딸 둘을 낳은 것도? 그래서 스스로 브로치 바늘로 두 눈을 콕콕 찔러 세상의 빛을 외면하게 만든 채 추방을 당하는 게 옳은 일이었는지도 묻고 있다.
어쨌거나 아버지를 때려 죽인 일, 부친살해를 언급하면 이젠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그런데 어쩌면 세상의 모든 아들이 한 번쯤 아버지 살해를 꿈꾼다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출신 유대인 의사가 주장하지 않았나? 프로이트 자신이 반쯤 변태이긴 했지만 온 세상이 그의 주장을 신주단지처럼 믿어온 세월이 몇 년인가 말이지. 아냐, 반이 뭐야, 반이. 틀림없이 프로이트는 변태였을 것이다. 프로이트, 섹스, 생식기 오리엔티드 사고방식.
나는 아이들한테 내가 제일 듣기 싫은 이야기가 사내새끼들이 “제일 존경하는 분이 부모님(또는 아버지)”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줄창 이야기해왔다. 부모 또는 아들의 경우 (나도 프로이트 영향을 받은 거야?) 아버지라는 존재는 존경의 대상이 아닌 극복과 타도의 대상이어야 한다고, 그래야 세상은 진화, 진보하는 거다. 그잖여?
근데 마르틴의 아버지한테는 사실 큰 결함이 있긴 했다. 이런 자는 아버지가 되지 말아야 하는데 그게 쉽나 어디. 이렇게 훌륭한 아버지를 둔 마르틴은 어려서부터 하도 핍박이랄까 구박, 하여간 자신감이나 자존감 없이 자라는 바람에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적응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마르틴하고 비슷한 인물이 하나 있지? 도스토옙스키의 걸작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 나오는 아들 가운데 막내 스메르자코프. 이 이야기도 S와 배우 페데리코 사이에서 나온다.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는 페데리코한테 S가 자기 책을 선물하기도 한다.
S는 마르틴과 대화한 내용은 극작품으로 쓰고, 이것을 공연하고, 적어도 리허설 때에는 마르틴이 외출을 해서 어떤 공연인지 직접 보게 해주려 했지만 결국 그렇지 못한다. 대신 영상물을 보여준 후 S는 우루과이를 떠나 파리로 가는 것으로 끝난다. 주로 프랑스에서 무대에 올렸던 극단적 부조리극과 비교하면 무척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그렇다고 2만원이 넘는 비싼 책을 사서 읽어보시라 권하기는 힘들 터. 하여간 지만지드라마에서 나오는 책이 비싸다. 할인도 안 해주고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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