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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린 길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126
벤 오크리 지음, 장재영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에누리 없이 제 사이즈의 반양장본 740쪽에 달하는 장편소설. 문학과지성, 이럴 때 특히 마음에 든다. 이거 다른 출판사가 찍었으면 얄짤없이 두 권 제본이다. 보흐밀 흐라발이 쓴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 요새 장안의 종잇값을 올린다는 얘길 듣고 아무 생각없이 인터넷 주문해서 샀더니 문학동네 이 썅노무간나들, 책 뒷편 해설까지 다 합해서 144쪽, 손바닥에 탁 들어오는 작은 판형, 듬성듬성하게 편집해 글자가 있는 공간보다 없는 곳이 더 많아 종이가 아깝기까지 한 것을 정가 12,000원 때려놨다. 이게 책값이냐? 21세기엔 비단 위에다 글씨 새겨서 파냐? 요새 출판계 어렵다고? 그래서 책값 마구 올리면 되겠어? 난 니들보더 더 어려워! 잡것들아 정신차려. 팍 책 안 사고 줄창 도서관만 다닐까보다 썅. 아침부터 욕 못하는 사람더러 욕하게 만들어!
하이고 또 이야기가 경상남도 삼천포시로 빠졌는데, 문학과지성에서 찍은 이 책도 뭐 그리 싼 편은 아니라서 해설까지 750쪽에 정가 22,000원, 구입가 19,800원. 한 번 사면 좋건 싫건 하여간 다 읽어야하는 통권이니 잘 생각해보시고 결정하는 것이 우리네 주머니 가비야운 것들의 지혜일지라. 왜 이렇게 열을 내냐 하면, 올해 들어 읽을 책들을 지금 와장창 사고 있는 중이라 그런데, 1월 둘째 주부터, 그러니까 지난 주에 사들인 책이 100권을 넘어서서 그야말로 책 한 권 값이 아쉬워서 그런다. 내 작은 마누라 이름이 최순실이 아니잖여. 참혹한 가정경제에 돈 만원이 어딘디! 돈 얘기하니까 아침부터 사람 구질구질해지기밖에 더하는가. 이걸로 뚝 그치고 다음 문단부턴 본론으로 들어가서....
벤 오크리는 축구 잘하는 아프리카 나라 나이지리아 출신의 똑똑한 인물로 일찌기 공부잘해 국비 장학생 자격으로 런던에 유학까지 다녀온 재원이다. 이 사람이 일찌기 19세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해 나이지리아의 문호 치누아 아체베의 뒤를 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그의 조국 나이지리아에선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잘 모르겠으나, 아버지 뻘인 치누아 아체베(가 쓴 그의 작품들 <모든 것이 산산히 부서지다> <신의 화살> <더 이상 평안은 없다>)와 굳이 비교를 한다면, 물론 그의 조국 안에서 보는 것과는 당연히 다르겠지만, 식민/탈식민주의는 잔재밖에 남지 않았고, (서평과는 다르게 책의 내용에서)백인에 의한 수탈도 지극히 미미한 상태인 대신에 아체베도 물론 아프리카 토속의 환상, 민속, 샤머니즘 등을 사용했지만 아체베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하게 토속신앙과 주술적 입장을 차용했으며, (지극히 당연하게) 탈식민 이후 극심하고 불안한 정권다툼 속에서 날이 가면 갈수록 찌그러지기만 하는 인민들의 삶과 권력에 기생해가는 인간벌레의 모습을 중요하게 그려놓고 있다. 그중에서도 소설을 이어가는 가장 중요한 것이 아프리카 토속신앙의 하나인 혼령아이. 삶과 죽음을 자유롭게 왔다리 갔다리하는 능력이 있는 대신 가랑이 사이에 털 나기 전에 죽어야 하는 운명의 아이들을 일컫는데, 그 혼령 아이의 시각으로 무려 본문만 740에 달하는 장편소설을 엮어나가는데, 솔직히 처음엔 좀 솔깃했다가 하도 자주 귀신과 도깨비와 중음신과 이것들의 잡탕밥이 출현해 나중엔 도무지 독자를 설득해낼 힘까지 잃어버릴 지경으로 길게 이어지는 느낌이다. 물론 그건 읽는 사람이 도저히 나이지리아 정서를 갖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이지만 그게 어디 독자 잘못이야?
벤 오크리는 본문은 아니고 책 어딘가에서 이제 더 이상 리얼리즘만 가지고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에 혹은 쓰기 힘들기 때문에 토속신앙적, 말이 좋아 토속신앙적이지 쉽게 얘기해서 미신적, 그리고 환상적, 몽환적, 다른 얘기로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첨가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 언급에 대하여, 그가 사는 곳에서 한 1만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아시아 변방의 한 독자로서 하고잪은 말이 있다면, 충분히 그의 말에 동의하고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지만 그럴 거면 나이지리아 안에서만 책 팔아먹지 그랬어? 그래도 이 책이 내가 신뢰하는 몇 안되는 문학상인 맨부커 상을 1991년에 받아먹었는 바 잉글랜드 사람들이 아프리카 토속신앙에 매료되는 걸 보니 혹시 축구 잘하는 인간들 사이에 뭔가 통하는 게 있는 거 아닌가싶기도 했다. 물론 잠시만 그렇게 생각했다는 뜻. 여기서 넘겨짚는 것이 특기인 내 생각을 굳이 밝혀보라고 말씀하셔서 하는 얘긴데, 혹시 영국사람들이 자기들이 수십년간 식민지배했던 나이지리아한테 자꾸 뭔가 캥기는 게 있어서 괜히 더 친한 척 하느라, 아 다 이해해, 너네들 하는 거 충분하게 이해하는데 다만 요구사항은 들어줄 수 없어, 이런 척하느라고 그런 거 아냐? 식민 모국 애들은 식민지 사람들의 애로사항은 절대 알 수 없는 거거든.
여태 내가 줄줄이 헛소리만 늘어놓은 거 같지만 사실 할 얘기는 다 했다. 이 책이 한 혼령 아이의 시선으로 써 있다는 거. 혼령 아이가 어떤 애를 얘기한다는 거.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아이의 시선으로 식민지가 아니라 식민 후 극도의 혼란기에 인민들이 이리 치고 저리 치는 모습, 와중에 빌붙어 삶을 누리는 기생충들에 관해 쓴 소설이라고. 아, 이만하면 얘기 다 해준 거 아냐? 으떠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