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불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3
피에르 드리외라로셸 지음, 이재룡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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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사람들의 견해는 잘 모르겠고, 나는 하여간 괜찮게 읽었다. 한 헤로인 중독자 이야기.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집단 치료를 받고 있지만 중독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마음도 없고, 그럴 필요도 사실 별로 없어 보이는데 가진 거라고는 잘 생긴 외모 한가지. 그것도 이제 나이들어 별 볼일 없지만 그래도 아직은 여자들이 끊이지 않아 그들한테 얻은 현금을 기꺼이 술과 마약과 호텔비를 충당하는 잡놈이자 기둥서방이자 양아치이자 쓰레기, 좋은 말로 해봤자 다다이스트. 세상에 뭐 한 가지 자기 인생의 전부를 바쳐 이루고자 하는 것도 없고, 이루기는커녕 파리의 대로변과 골목, 길이란 모든 길마다 심장의 바리케이트가 쳐져 가는 곳마다 덜거덕거리고, 진정한 숙녀들은 하나 빠짐없이 전부 목마를 타고 떠나가 황량하기 그지없는 1차대전 전후의 파리 젊은이들.

 참 아름다운 문장과 광경으로 도배를 했을지라도 전후 (전승국)프랑스 수도에 돈 좀 있는/있었던 집구석 자재분이 아무 걱정없이, 그러나 자신이 생각하기론 세상 모든 고민을 다 짊어진 것처럼 엄살을 떨어가며 술과 히로뽕에 절다가 그것도 모자라 마지막 발걸음을 떼는 이야기.

 소설은, 다시 말하지만 전후 퇴폐와 허무 같은 것이 진짜로 잘 묘사되어 읽는 도중 빨간 색연필로 밑줄 좍 긋고 싶은 곳이 수다했을 정도로 아 참 때로 가슴 시리게 잘 읽었다. 그러면서 기어이 이 작품을 폄훼하고자 하는 건, 작가 드리외라로셸의 진짜 생각은 이 책에서도 볼 수 있는 전후 불안과 허무를 극복하기 위해 유럽에 새로운 '질서'가 필요하다고 외곬로 치달았으며, 그리하여 파시즘에 동조를 했고, 심지어 나치한테 협력하기에 이르러 나치의 멸망을 앞두고 음독자살로 생을 마감해서다. 그래서 사실이건 아니건 간에 드리외라로셸이 이 책에서 말했던 건 역설적으로 파시즘 혹은 히틀러 나치에 동조하기 위한 전초로 기능하기 위해서, 라고, 아닐 수도 있고 아닐 확률이 90%를 넘겠지만 나로하여금 그렇게 오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작가가 진정으로 쓴 작품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

 근데, 나치에 협력했던 작가는 음독자살했는데, 일제에 부역했던 (구)조선의 작가들은 어찌해서 한 평생 잘 먹고 잘 살았지? 이게 진정한 자존심이 있는 나라와 없는 나라의 차이 아냐? 에이, 아님 말고. (나도 지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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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1-19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장이나 묘사가 아름다워서 밑줄 그은 부분이 많았습니다. 가슴 시리다는 표현이 적절하고요. 루이 말의 동명의 영화 <도깨비불>도 참 좋았습니다. 에릭 사티 음악하고 정말 잘 어울렸거든요.

Falstaff 2017-01-19 12:36   좋아요 0 | URL
아, 영화도 있었군요. 사티...라면 물론 피아노 곡이겠고요. ㅎㅎㅎ 검색 한 번 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