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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집 1 ㅣ 펭귄클래식 25
이디스 워튼 지음, 최인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11월
평점 :
작가의 말년 작 <순수의 시대>를 읽고 20세기 초반 미국 부르주아 계급의 속물성에 완전히 학을 떼서, 다신 읽나봐라, 했다가, 단 한 권의 책만으로 문학적 성가가 워낙 높다고 평가받는 이이의 작품을 다시 찾지 않겠다고 결심하기엔 조금 부족한 면이 있어서, 그러면 한 작품만 더 읽어보겠다, 마음 바꿔 먹고 읽은 책이다. 1862년생인 워튼이 <순수의 시대>를 쓴 것이 1920년, 우리 나이 59세. <기쁨의 집>은 15년 전 1905년에 발표한 작품. 44세, 일반적으로 봐, 전성기 때다.
이디스 워튼 자신이 뉴욕의 유서 깊은 명가의 따님으로 태어나 4세부터 10세까지 유럽 각지에서 살며 완전히 개인교사로부터 교육을 받은, 뼈 속부터 진짜 부르주아. 그러니 44세 때도, 59세 때도 작품 속의 무대는 뉴욕 부르주아 집단, 정확하게 말해 최고급 사교계에 진입했거나 떨려난 사람들, 특히 여성을 주요 등장인물로 한 소설작품을 쓴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하겠다. 그간 독후감을 통해 여러 번 얘기했듯이, 미국의 부르주아로 말하자면 성격이 자신들의 출신지인 유럽에 비하여 오히려 더 반동, 수구, 보수적 집단이었으며, 유럽의 비슷한 계급인 귀족들에게 굳이 뭐라 칭할 필요 없는 열등감 또는 어딘가 좀 꿀리는 기분을 감출 수 없었고, 반면에 같은 미국인이라도 서부 출신 부르주아에게 동부 자본가들의 우월감 같은 걸 숨기지 않는 모습, 한 마디로 눈꼴시어서 봐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었다. 이런 걸 좀 유식하게 쓰자면, 목불인견이라고 하는데, 딱 두 편의 이디스 워튼의 작품을 통해 들여다 본 미국 동부 부르주아 집단으로 말씀드리자면, 비록 내 통장의 잔고가 20만 원밖에 없더라도, 남들 보는데서 없는 척할 수 없어, 송아지 스테이크를 해치운 다음 후식으로 '쿠프 자크'를 먹을 것인가, '페셰 아 라 멜바'로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속물 또는 잡것들이다. 쿠프 자크는 모르겠고, 나도 '페슈 멜바'는 안다. 이거 아이스크림 베이스에 복숭아(페셰)를 올린 디저트로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명가수 넬리 멜바의 이름을 딴 거다. 거 있잖아 왜, 화폐에 자기 초상 올린 성악가.
페슈 알라 멜바, 한 번 보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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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 크레인이란 자그마한 아가씨가 있었다. 영화수입사에서 타이프라이터로 일을 하다 같은 회사의 멀쩡하게 잘 생긴데다가 상류사회에 근접한 남자와 서로 연애를 한 거까지는 좋았다. 남자가 정성을 바쳐 심지어 어머니의 결혼반지까지 선물하면서 결혼하자고 꼬드겨 속 고쟁이 끈을 풀어줬는데, 남자가 날라버렸다. 아가씨의 연애 건은 졸지에 추문으로 번져 회사까지 그만 두어야 했으며 설상가상으로 실직 후 가난한 시절에 결핵에까지 걸려 심각한 상황에 처해지기 바로 전에 미국판 혜민국에 보내진다. 여기서 하느님이 도와 릴리 바트 양이란 천사 같은 은인이 나타나 요양원에 가서 병을 완치하고 고향에 돌아가 자신의 모든 과거를 알고 있는 동네 친구이자 현직 화물차 운전수인 조지 스트루더와 결혼해 딸 하나를 두고 잘 살게 되었다는 얘기.
이렇게 써 놓으니까, 아하 이 책이 네티 아가씨의 파란 많은 젊은 시절을 그린 건가보다, 라고 생각하면 진짜 오해다. 다시 말하지만 작가 이디스 워튼 자신이 입에 은수저를 물고 나와 죽을 때까지 한 번도 은수저를 입술 밖에 빼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서 불행한 네티 아가씨가 겪은 몇 년의 고난을 책으로 쓸 역량을 갖지는 못했을 것으로 본다. 근데 왜 이렇게 썼느냐고? 네티 크레인이었다가 네티 스트루더 아줌마가 된 젊은 엄마를 도와 결핵을 완치하게끔 요양원으로 보낸 릴리 바트 양이 이 책의 주인공이라서. 설마 그거 한 가지 이유 때문이겠어? 그건 아니고, 중요한 변곡점이 되기도 해서 미리 콕 집어주는 건데, 이런 경우, 지금 내가 베푸는 친절을 우리는 흔히 ‘선의’라고 일컫기도 한다. 즉, 선의의 힌트를 드리고 있다는 말씀.
자, 그럼 우리의 주인공 릴리 바트 양에 관해서 잠깐 소개를 할 필요가 있다. 릴리의 행각을 모두 얘기하자면 차라리 책 두 권 600쪽을 그대로 베껴 쓰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니, 앞머리에 작가가 릴리의 성장환경을 묘사한 것을 배경으로 극히 짧게 요약하자면, ① 겁나게 예쁜 아가씨, ② 놀라운 체형과 반듯한 자세에 관한 적당한 한 마디는 ‘거만해 보인다’는 것으로 언제나 숙녀다운, 당황하지 않은 척하면서 즉흥적으로 위기를 넘기는 화술과 ③ 도대체 돈이 궁하다거나 경제적 위기 상황이라는 것에 대한 이해가 분명하지 않으며, 내일 어떻게 되더라도 당장 주머니에 현금이 있다면 자신도 모르게 펑펑 써버리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고, ④ 돈을 벌거나 생활을 꾸려나가는 아무런 재주도 없어서, ⑤ 자신의 미래와 복지를 위해 돈 많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기 위해 참으로 (헛되이) 애쓰는 캐릭터.
물론 부르주아로 릴리 아가씨의 미덕이 없는 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상류 사교계의 총아로 어울릴만한 모든 자질과 품위가 넘쳐흐른다. 사람을 사랑할 줄 알며, 베풀 줄도 알고, 개인의 잘못 때문에 비록 자신이 불이익을 받을지언정 타인의 비행을 발설해 위기를 넘기려 하지도 않는다. 경제적 어려운 상태로 떨어져도 남에게 없어 보이거나 동정을 받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다 미덕. 그러나 참으로 덜 떨어지고 철없고, 한 번도 부르주아였던 적이 없던 내 눈엔 심지어 한심해보이기도 한다. 정말 정 떨어지고 마음에 들지 않는 주인공. 겉으로 보기에, 즉 불멸의 사교계 일원의 눈에는 환상적인 미덕을 갖춘 매력 넘치는 아가씨일지 모르지만, 생활력 젬병이고, 남의 시선엔 전혀(적어도 과하게) 무신경하고, 주제도 모르는 철딱서니 없는 아가씨. 일반 노동자가 한 푼도 쓰지 않고 30년을 벌어야 만질 수 있는 돈(9천 달러)을 불과 몇 개월 만에 펑펑 써놓고 미스터 트래너가 왜 나한테 많은 돈을 주었는지, 돈을 준 대가가 무엇이 될지 전혀 고민해보지 않는 인물.
이 책을 읽기 바로 전에 읽은 책이 조지 엘리엇의 <다니엘 데론다>였다. 두 작가의 차이점이, 특히 유대인을 묘사하는 관점이 극적으로 달라서 매우 비교가 됐는데, 워튼의 시각으로, 이 책에 나오는 유일한 유대인이자 월가 5번지의 총아이며, 키 작고 인내심 강하며 무엇이든 원하는 건 취하고야 마는 계산적인 로즈데일 씨를 보면서 왜 난데없이 <해리포터> 시리즈의 도깨비들이 생각났을까? 지하 마법사 전용 은행을 총 관리하는 도깨비들. 작은 키에 뾰족한 코에다가 돈과 금에 관한 한 그것을 제공하는 누구한테나 관용스럽고, 가져가려는 누구한테도 잔인한 유사 고리대금업자. <기쁨의 집>의 경우만으로 워튼을 판정한다면 반유대주의자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이 책이 나온 시점도 20세기 초. 유럽 전 지역에서 반유대주의가 고개를 번쩍 들기 시작했을 무렵이기도 해서 누명을 쓴 것인지 모르지만 하여간 그렇게 보였다. 어쨌든 여러 가지로 나하고는 맞지 않는 작가. 그러나 스토리를 엮어가는 솜씨는 정말 감탄스럽기는 하다.
내 서재에 더 이상의 이디스 워튼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