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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코퍼필드 ㅣ 동서문화사 월드북 138
찰스 디킨스 지음, 신상웅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1년 1월
평점 :
디킨스는 더 이상 안 읽으려 했다. 그러다가 다른 책 속에 하도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자주 인용해 말릴 수 없는 호기심을 발동시켰다. 검색해보니 동서문화사하고 동천사, 딱 두 출판사에서만 나오는데, 동천사는 총 네 권으로 만든데다 절판.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두 종은 공히 신상욱 번역. 그러니까 같은 책이란 뜻이고, 좀 오래 묵은 책은 본문만 1,010쪽, 해설까지 합해서 1,118쪽, 무게 1,008 그램, 10% 할인가격이 14,400원의 양장본. 요새 새로 팔기 시작한 책은 두 권으로 1권이 560쪽, 2권이 568쪽, 10% 할인한 두 권의 가격을 합하면 18,000원의 반양장본. 두 종류 공히 가로 158mm, 세로 230mm의 큰 판형에 절대 크지 않은 활자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당연히 조금 묵은 책을 사서,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손에 들고 읽었다가 손모가지 결딴나는 줄 알았다. 읽는데만 꼬박 5.5일. 당연히 오후 7시 넘어서까지 읽을 수 없었다. 밤에 책 읽을 시간이 어딨어, 술 마셔야지. 이 책 읽으실 분은 백퍼 경제적 이유로 내가 읽은 1,118쪽의 책을 고르시길 권한다.
찰스 디킨스가 37세이던 1849년에 분책으로 간행하기 시작한 <데이비드 코퍼필드>. 이디스 워튼이 쓴 <순수의 시대>에 나오는 뉴욕의 부르주아 여성이 뭐라고 지껄이는가 하면, “찰스 디킨스 씨하고 마크 트웨인 씨의 소설 속에는 신사들이 등장하지 않아서 좋아할 수 없어요.”라고 똥을 싼다. 글쎄, 신사 계급이 어떤 인간인지는 내가 한 번도 신사였던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데이비드....>의 주인공 데이비드는 비록 대고모의 전폭적인 후원과 사랑이 없었다면 도시빈민 신분에서 도무지 헤어나오지 못했을 것이었지만, 하여간 돈 많은 대고모 미스 트롯우드를 만날 팔자를 타고 나서 신사 계급을 유지한다. 아울러 데이비드 주위에 몰려 있는 인간들은 따뜻한 심성을 가진 평민도 있고, 변호사와 그들의 딸 같은 신사 숙녀 계급도 있다. 분명히 두 계급이 다 우리의 주인공 데이비드를 몹시 사랑하는 것으로 설정이 되어 있으나, 아, 그렇구나, 당시 잉글랜드에도 엄연히 존재했던 귀족 계급은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물론 일찍이 산업혁명을 겪어 이제 거의 완벽한 자본주의 세계로 편입된 1840년대 영국에선 부르주아들이 귀족계급을 여러모로 능가했거나, 좀 우습게 알던 때이었겠지만, 천만에, 부르주아들이 귀족계급 앞에서 은근히 꿇리는 듯한 야릇한 열등감까지 없었을 거 같아? 그러니 이건 디킨스가 영국의 귀족계급하고는 거리가 좀 있었던 것이 중요한 이유이겠고, 그래서 난, 이젠 뭐 더 이상 디킨스를 읽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우라질 빅토리아 시대 작가 가운데 다중을 차지했던 빈민들을 그나마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던 이이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책, 전형적인 19세기 중반 이야기책. 제인 오스틴이 죽을 무렵 태어난 영국 작가들, 브론테 자매와 디킨스, 조지 엘리엇, 엘리자베스 개스켈. 아주 전형적인 작품이다. 다분히 교양 계몽적인 소설. 어려서 죽을 고생을 하다가 은인을 만나 제대로 교육받고, 유전으로 물려받은 총명하고 착한 마음씨 덕분에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신사 숙녀로 살아간다는 거. 독자들이 기억하게 되는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은 권선징악의 확고한 규범에 맞게 책의 끝부분에서 자신들의 팔자대로 나머지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까지. 새로운 방식을 발견하리라는 기대는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하며, 당시엔 놀라웠겠지만 이젠 척, 하면 지금 작가가 이야기하고 있는 복선이 나중에 어떤 내용일지 번히 보이는 그딴 거. 물론 이런 것 때문에 후진 책이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오스틴이나 디킨스, 그리고 여류작가들의 소설책들이 아직도 꾸준히 읽히며 고전의 반열에 오르는 것은 책이 나온 지 근 200년, 150년 가까이 됐음에도 독자로 하여금 공감을 갖게 만드는 놀라운 힘이 있기 때문이며, 그건 말 그대로 탁월한 ‘이야기 책’이라서 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하자면, 나는 이 재미있는 이야기 책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아무에게도 권하지 않겠다. 서양 소설책을 읽다가 인용되는 부분의 각주에 ‘데이비드 코퍼필드’가 자주 있음을 발견하고 도대체 이게 어떤 책인가 호기심을 느끼는 인류가 또 있으면 읽어보시라.
아울러 내가 권하지 않는 것뿐이지, 절대로, 절대로 이 책이 후지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점을 유념하시어, 굳이 내 의견으로 인해 재미난 책을 진짜로 안 읽는 분이 있어서, 이 분이 오랜 시간이 지나 읽어본 다음, 왜 아직까지 이 책을 읽지 않았었나를 따져보며, 나중에 나를 원망하는 건 듣고 싶지는 않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서 선택과 책임은 당신 몫이다. 근데 하여간 난 권하지 않겠다는 뜻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