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별 - 어떤 유토피아 Rediscovery 아고라 재발견총서 4
알렉산드르 보그다노프 지음, 김수연 옮김 / 아고라 / 2016년 4월
평점 :
품절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과 혁명동지였다가 사상투쟁에 격렬히 부딪혀 당에서 제명까지 당했던 알렉산드르 보그다노프. 이이가 완전히 제명당한 것이 1909년. 1905년의 제 1차 러시아 혁명이 화르르 불타기만 했던 다음, 사회(공산)주의는 완전한 붉은 혁명을 위해 모든 것을 태웠던 시기이며, 무엇보다 아직 레닌이 확고한 정권을 잡지 못한 상태라서 목숨은 건졌을 것이다. 레닌하고 한 바탕 붙어서 당에서 제명까지 당했으나 레닌보다 4년을 더 살다가 1928년 모스크바 수혈 연구소장을 지내면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는데, 이이의 죽음을 두고 온갖 (더러운)헛소문이 만발하였으나, 후세의 사가들은 암살로 추측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혁명가의 삶으로 이 정도면 장땡은 아니더라도 칠땡은 된다. 책의 앞날개엔 보그다노프와 레닌이 정식으로(심판까지 두고) 체스를 벌이는 사진이 실려 있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정적이 되는 것이 정치 아닌가.
 책은, 읽은 독자도 그렇고 책의 각주에도 씌어있듯이, 총 3부작으로 구성한 것 같다. 1부가 <붉은 별>, 두 번째가 책에 실려 있는 <엔지니어 메니>, 마지막으로 그저 구상 목적으로 시 한 수만 써놓은 <지구에 좌초된 화성인>. 읽어보면, 물론 전적으로 과학도였다가 혁명에 참가해서 학교에서 잘린 다음 다시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가 쓴 ‘소설’작품을, 내가 문학에 대해 뭐 아는 건 없지만 하여간 백퍼 문학작품으로 간주해 읽자면, 1부 <붉은 별>은 어떻게 SF 소설이라 생각할 수 있겠으나, 2부 <엔지니어 메니>는, 실례하지만, 수준 이하로 평하겠다. 물론 지금 난 독후감을 쓰고 있지 결코 주제넘게 서평을 논하는 게 아니라서, ‘수준이하’ 역시 책을 읽고 난 다음의 ‘내’ 느낌, ‘내’가 동감한 수준을 말하는 거다.
 1부 <붉은 별>을 발표한 시기가 211쪽의 각주에 보면 1908년이라 한다. 제 1차 러시아 혁명이라고 일컫는 1905년의 사건. 거의 1년 내내 양대 수도(모스크바, 페테르부르크)와 지방도시, 심지어 전함 포템킨의 수병까지 합세해 벌인 파업과 내전 시도가 박살이 난 다음에, 모르긴 하지만 보그다노프 등의 인텔리겐치아들은 농민 노동자들의 교양사업, 의식화 교육을 모색해야 했을 것이고, 그 일환으로 가상의 세계, 이 책에선 ‘붉은 별’, 즉, 화성에서 화성인들이 건설한 모범적 사회주의 세상을 알기 쉽게 그려 보여주었지 않을까 싶다.


 

 * 1905년 혁명이 어땠을까 궁금하시지?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1번 사단조 작품의 표제가 <1905년>이다. 혁명의 막바지에 황제군과 일전을 벌이기 위한 경종Tocsin이 울리는 4악장의 마지막 장면이 압권이다. 한 번 들어보시라

 

 

다른 좋은 연주도 있으나 4악장만 가져올 수 있는 것, 4악장 가운데 마지막 부분의 경종을 잘 표현한 음원을 골랐다.



 정말로 화성인 과학자 메니(2부에 나오는 ‘엔지니어 메니’하고 다른 인물)이 지구를 방문해서 과학자이자 혁명가이며 화자話者인 ‘나’를 설득해 우주선 에테로네프를 타고 화성에 도착한다. 그곳이 바로 사회주의 유토피아이며, 지구보다 두 배 더 오래 존속해 (지구에 비하면) 지표면에 물이 별로 없고, 그래서 땅과 식물 등이 붉은 색을 띠는 별.
 지구는 화성에 비해 태양과 가깝기 때문에 더 다양하고 많은 생명체가 살고, 그래서 더욱 생존경쟁이 활발하며, 어쩔 수 없이 보다 더 전투적인 생명체인 인간이 살고 있다. 화성인들은 지구인과 비교해 투쟁적인 면이 덜해서 훨씬 가벼운 정도의 계급투쟁을 겪고 전 화성적인 사회주의 공동체를 이룬지 벌써 300년이 가깝다. 지구 세월로. 화성의 시간개념으로는 한 160년 정도. 화성이 아직 사회주의 건설에 다다르지 못했을 당시 또 한 명의 메니라는 공학자가 있어서 화성의 건조한 대륙을 관통하는 거대한 수로 또는 운하 또는 이명박 씨가 좋아했던 몇 대 강 공사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전 화성의 육지는 사람 살기 좋은 환경으로 바꾸어 놓았던 것인데, 이건 필연적으로 화성 인구의 폭발적 증가를 가져오고, 식량부족을 초래했고, 방사능을 이용해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해야 할 단계까지 도달했다. 첫째가 금성을 식민지로 만들어 금성에 무한정으로 쌓여있는 방사능 물질을 가져오는 일. 둘째가 방사능 무기를 이용해 지구의 인간을 깡그리 전멸시킨 다음 금성보다 훨씬 가까운 지구에서 방사능 물질을 채취하는 방법.
 1부 <붉은 별>은 여기까지만. 190x년대 러시아 혁명의 와중에서 무장 투쟁을 결의하려는 혁명가들이 생각했던 유토피아. 그건 어떤 모습일까. 당연히, 안 알려줌.
 2부 <엔지니어 메니>는 위에서 얘기했듯 전 화성의 대륙을 관통하는 운하를 뚫는 공사를 담당했던 과학영웅, 그러나 사회주의나 노동조합을 이해하기 전 세대의 천재 메니에 대한 전기라고 읽을 수 있다. 러시아 사람이 쓴 운하 이야기. 어딘가 벌써 읽어본 느낌. 그래,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예피판의 갑문>. 일찍이 2미터의 거한 표토르 대제의 명에 의하여 모스크바에서 흑해까지 닫는 운하를 파다가, 파다가 코피 나는 이야기가 <예피판의 갑문>이라서 혹시 러시아 작가들의 혈관 속에선 운하 파는 주제에 뭔가 혈전 같은 것이 맺힌 게 있는 거 아냐, 라는 질문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잠시 생각해봤다. 아주 잠깐. 화성 전체를 사통팔달한 운하를 뚫는 일을 총 지휘하는 메니. 일 잘하다가 부르주아와 욕심 많은 권력자들의 거미줄에 걸려 15년 형을 받고 수감 중, 메니를 감방에 보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노동자들의 각성에 의하여, 부르주아와 권력자들이 골로 가고 다시 메니가 복권해 공사를 거진 다 마친 다음에 보니, 메니 역시 구세대 틀딱에 불과하다는 엄정한 진보 역사의 판정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2부 <엔지니어 메니>를 수준 이하의 문학작품이라고 보는 건, 이 소설이 아무리 1913년에 나왔다고 하더라도, 문학 작품이라기보다는 의식화 교재를 읽는 듯한 느낌이 훨씬 더 강해서다. 열아홉, 스무 살의 청년이라면 아하, 혁명의 수행과 인류의 진보는 이런 식으로 전개되는구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겠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지금 조금 후회하는 건, 1부 <붉은 별>을 읽고 난 다음, 굳이 2부를 읽을 필요가 있을까, 책을 덮고 싶은 아주 센 유혹을 참고 나머지도 읽은 시간이 좀 아까운 생각이 든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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