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 시티 민음사 모던 클래식 17
레나 안데르손 지음, 홍재웅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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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 시티. 표지에서 보듯 오리들이 사는 도시다. 굳이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의 이름을 거론하자면 도널드 D. 그냥 쉽게 연상되듯 도널드 덕. 스웨덴 사람이 쓴 풍자적 우화소설. ‘덕 시티’는 미국을 모델로 한 것이라 짐작할 수도 있고, 실제 역자 해설에서도 “그로테스크한 미국을 상징한다.”고 콕 집어서 이야기했다. 도널드에게 (패스트푸드를 하도 많이 먹어 뚱뚱한)조카가 세 명 있는데, 날씬한 청년들이 다 전쟁터에가 몰살을 당하니까 일찌감치 지원했음에도 부적격자로 입대하지 못하고 대기하고 있던 조카 셋이 전부 세상의 어느 곳에 있는 사막에서 전쟁을 치루고 있다. <덕 시티>가 2006년 작품이며, 스웨덴은 애초에 이 전쟁과 상관이 없으니 당연히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이야기하는 것이겠다.
 방금 다 읽고 독후감을 쓰기 시작했다. 21세기 들어 스칸디나비아 출신 작가들이 (이탈리아 작가들과 더불어) 한국 문학계에 블루칩으로 떠오르기 시작해, 조금, 아니, 많이 관심을 갖고 읽기 시작했다. 독후감의 처음부터 솔직하게 얘기하긴 조금 그렇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작품을 설계하는 단계에서 작가가 왜 사막에서의 전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스토리 중간 중간에 참전한 조카들 이야기를 삽입하고, 마지막에 세 조카 가운데 한 명이 생존해 돌아오는 것으로 했는지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처음부터 에이햅, 아 참, ‘에이햅’이라니까 나중에야 눈치 챌 수 있었잖은가, 흔히 쓰듯이 ‘에이해브’라고 해야 <모비딕>의 광기어린 포경선 선장을 떠올릴 텐데, 하여간 에이햅 군대에 의하여, 뉴욕에서 벌였던 원조 ‘범죄와의 전쟁’ 비슷한 ‘흰 향유고래와의 전쟁’을 수행하는 권력자들, 작전과 완전히 반대되는 방향으로 패스트푸드를 열라 만들어 파는 회사 JvA 사장이자 ‘덕 시티’ 대통령의 친구, 흰 고래들, 흰 고래는 아니지만 그들의 인권을 위해 함께 투쟁하는 인간들만 작품의 대상으로 했으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싶었으나, 글 읽고 이리 생각하는 것이 독자의 권리이듯이, 하고 싶은 얘기 쓰는 건 작가의 권리이니, 뭐 그러거나 말거나. 여기서 흰 고래라는 게 뭐냐 하면, 초고도비만자들. 그들이 공통적으로 몸에 달고 다니는 지방 덩어리를 일컫는다.
 국민들이 점점 고도비만의 지경으로 처하는 걸 보다 못한 대통령이 하루는 에이햅 작전을 벌여 뚱보(흰 고래)들을 대상으로 지방 퇴치 작전을 벌이는 이야기. 날이 갈수록 비만을 악덕시하는 바람에 덕 시티에선 체지방률이 높은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비인간 비슷하게 취급을 받기 시작하고, 시간이 좀 더 지나가니까 정상인들도 체지방률 0(zero)를 위해 단식과 과격한 운동으로 죽어 자빠지는 현상이 벌어진다. 다분히 문명 비판적이고, 현대 육체에 대한 미학을 비꼬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 문제는, 솔직히, 별로 재미가 없다는 거. 지금은 품절. 민음사 모던클래식 시리즈에 좋은 작품이 많아 기대하고 골랐다가 김이 좀 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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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투스의 승부수 - 막스 갈로의 로마 인물 소설 3 막스 갈로의 로마 인물 소설 3
막스 갈로 지음, 이재형 옮김 / 예담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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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네로 황제 말기 시절부터 티투스의 죽음까지를 그리고 있다. ‘막스 갈로의 로마 인물 소설’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으로 1부 <스파르타쿠스의 죽음>에서 기록자로 나온 가이우스 푸스쿠스 살리나토르의 후손인 세레누스가 화자話者 ‘나’로 등장하는 건 2부 <네로의 비밀>과 같다. <네로의 비밀>에서 보면 아그리피나가 네로를 낳을 때 옆에서 시립해 있어, 대가리에 쇠똥도 벗겨지지 않은 네로를 제일 처음으로 본 신하로 등장한다. 3부 <티투스의 승부수>에선 티투스가 죽고 벌써 2년이 흘러 이제 자신도 죽음의 신이 가까이 있음을 알고 쓰기 시작한 <내 삶의 연대기>가 거의 끝난 시점에서 시작하고 있다. 그러니 화자 세레누스를 대강 기원 10년 경에 출생했다면, 이이가 거친 황제만 (위키피아를 참고로 해서) 읊어 봐도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네로, 갈바, 오토, 비텔리우스, 베스파시아누스, 티투스, 도미티아누스, 이렇게 총 11명의 황제 시대를 걸쳐 살았다.
 막스 갈로의 기준으로 보면 로마 최초의 황제 그룹인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황조에선 유일하게 현명한 황제가 초대 아우구스투스였을 것이고 (로버트 그레이브스의 책에서는 클라우디우스가 참 어진 황제로 나오는데 갈로는 어질기는 하지만 형편없는 황제라고 슬쩍 넘어가고 만다) 네로 이후 혼돈기와 베스파시아누스 황조에선 역시 유일하게 티투스만 좋은 황제였다. 네로를 다룬 2부에서 네로는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 정도로 질탕하고, 폭력적이고, 우스꽝스럽고, 잔인하고, 변태적인 인물로 일관하다 중도에 뚝 끊어버린다. 려, 뭐 이딴 게 있나 싶을 정도의 중동무이. 그러다 3부 <티투스의 승부수>에서 네로는 친위대의 배신으로 주위의 아첨꾼들이 모두 떠나자 유모의 도움을 받아 자살을 하는 것으로 너무 간단하게 취급해 읽기가 허탈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후에 로마 역사는 사실 정신없이 팽팽 돌아가게 되는데, 실제로, 이후 황제를 해먹는 갈바는 7개월, 네로의 아내 포퐈이아의 전남편 오토는 3개월, 게르마니아 지역 사령관이었던 비텔리우스는 8개월 동안 황위에 올랐을 뿐, 이후 베스파시아누스 일가가 세 번에 걸쳐 황제를 할 때까지 너무 속도를 내서 휙휙 지나가, 사실 중요한 사건은 없고 그냥 힘 센 놈이 덜 센 놈 잡아 죽이는 쌍권총시대였을 뿐이기는 하지만, 달리는 말 잔등 위에서 먼 산 바라보는 느낌을 숨길 수 없다.
 어쨌든, 화자 세레누스로 말할 거 같으면, 네로 시절을 다룬 2부에서 원형경기장에서 맹수들의 밥이 됐던 기독교인들의 영향을 받아, 유대교가 아닌 기독교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되는 바, 이번 3부에선 티투스가 제위에 오르기 전에 황자의 자격으로 떠난 예루살렘 원정이 주요 장면인 관계로, 한없이 벌어지는 살육과 고문 등을 보며 자연스레 부활과 기독교를 믿게 되는, 가능하기는 하지만 조금은 어처구니없는 현상이 벌어진다. 암만해도 네로 이후의 황제들을 보는 작가 갈로의 시각은 기독교를 어떤 시각으로 보는가 하는 것에 달려 있겠다 싶기도 하다. 친 기독이면 우리 편, 반 기독이면 너네 편, 이런 식.
 다수의 유대교와 극소수의 기독교인들이 똘똘 뭉쳐 대 로마 항쟁에 나선 갈릴리와 예루살렘 지역의 유대인들. 그러나 당시 로마는 세상의 어떤 민족과 싸워도 쉽게 이길 수 있는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상태. 이스라엘과 갈릴리의 아그리파 왕과 여동생 베레니케 여왕, 이집트 군단을 지휘하는 유대인 출신 로마 시민인 티베리우스 알렉산드로스 같은 이들은 역불급이니 유대민족의 군사력이 로마를 능가할 때까지는 좀 굴욕스럽지만 생명을 이어가면서 인구를 늘리는 것이 상책이라 주장하는 반면(출애굽기 때부터 유구한 전통이다), 젊은 투사들의 집단인 ‘열심당’과 ‘단검자객단’을 중심으로 하는 집단은 세계에서 가장 우월한 유대인이 로마인들의 지배하에 있다는 걸 참지 못해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나섰는데, 어떤 것이 옳은 건지, 화자 세레누스는 헷갈린다.
 책은 그리하여 티투스가 이끄는 로마 연합군과 유대인들의 전투장면을 상세하게 묘사할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어린애 팔 비틀기 정도의 무력이 충돌하니 당연히 로마가 이기겠지만, 과거 유대인의 깡다구 역시 만만하지 않다. 근데, 잘 나가다가, 1인칭 시점을 사용하는 책에선 화자의 눈에 보이는 것이 제일 중요한 법이라서, 점점 그리스도라는 신을 믿는 집단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데, 독자는 환장하겠더라. 전쟁에서 당하는 피지배민족 유대인의 참화를 너무 강조하는 것. 비단 티투스의 정벌뿐이랴. 세상에 정당한 전쟁이 언제 한 번이라도 있었더냐. 이래서 2/3쯤 지나면 김이 팍 새버리고 만다. 내 조부께서 이런 경우에 말씀하셨지. 스팀 아웃?
 ‘막스 갈로의 로마 인물 소설’ 시리즈가 모두 다섯 권으로 이어졌는데, 세 권을 읽었고, 네 번째가 로마 오현제五賢帝 가운데 마지막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 관해서다. 5현제가 언제 적 이야기냐 하면, 티투스가 즉위 2년 만에 숟가락 놓고(동생에 의한 독살설도 있단다) 친동생 도미티아누스가 황제를 먹었다가, 이왕 황위에 올랐으니 해보고 싶은 거 다 해보겠다는 일념 하에 온갖 난장판을 다 저지른 결과, 암살을 당하신 다음에 추대된 이가 네르바 황제. 이이가 초대 5현제다. 이후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이때부터 호칭이 복잡해지는데) 안토니우스 피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이 다섯 명을 일컫는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아드님이 누군가 하면,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아주 얍삽하게 생기고 누이를 사랑하며, 감히 러셀 클로한테 맞짱 뜨자고 하던 (물론 영화에서만 그랬다) 바로 그 콤모도스 되겠다. 왜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쓴 <명상록>은 나도 읽어봤을 정도로 아직도 명작으로 치지만(근데 읽어보면 정말 재미없다), 책 소개를 보면, 이 황제님이 기독교를 탄압했다는 거 때문에 막스 갈로 선생의 미움을 좀 받는 거 같아서다. 물론 읽어봐야 알겠지만 이런 정도의 정보만 보고도 책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싹 가신다. 5현제 시절이야말로 아직 기독교가 세상에 퍼지기 전에 일부 혼돈스럽고, 일부 야만적이지만, (서쪽에서만)거의 자연적인 상태의 인류였던 시절이라, 앞으로 이천 년을 지배하게 될 이데올로기를 굳이 벌써부터 가까이 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싶어서.
 에이, 됐다. 로마 인물소설 시리즈는 여기서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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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밝혀졌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엮음 / 민음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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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에서 2차 세계대전 중의 드레스덴 폭격과 뉴욕 세계무역센터빌딩 폭파 사건에 연루된 가족의 비극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고래 싸움에 날벼락을 맞은 보통의 인간 모습을 잘 그린 바 있는 조너선 사프란 포어. 그의 데뷔작이 이번에 읽은 <모든 것이 밝혀졌다>이다.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국경을 흐르던 브로드 강변의 슈테틀(2차 대전 이전까지 중부, 동부 유럽에 산재해 있던 유대인들의 작은 마을을 칭함) 트라킴브로드에서 있었던 학살을 찾아가는 여정. 단 두 명의 생존자 가운데 한 명을 할아버지로 둔 미국인 조너선 사프란 포어. 이 이름을 단 등장인물의 직업이 소설가이라, 작가 자신의 이야기인지 상당히 아리송하지만, 독자들이여 기억하시라, 이 작품은 소설이란 사실을. 더구나 작가 자신이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떠리. 우리는 그냥 읽기만 하면 된다.
 이야기는 모차르트가 죽은 해인 1791년까지 올라간다. 그해 3월 트라킴 B가 전속력으로 몰던 이중굴대 마차가 브로드 강에 처박히는 일이 벌어졌고, 이때 W 쌍둥이가 강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잔해들을 목격했는데 품목은 다음과 같았다. 뱀처럼 꾸불꾸불 엉킨 흰색 끈, 쫙 뻗은 손가락이 붙은 구겨진 벨벳 장갑 한 짝, 실이 거의 감기지 않은 실패들, 구지레한 코안경, 나무딸기와 보이젠베리, 배설물, 주름 장식, 산산조각 난 분무기 파편, 피처럼 붉은 잉크로 결의 ‘난 할 거다…, 하고 말 거다….’를 적은 필적 등등. 쌍둥이 한나와 차나가 물에 떠오른 잔해들을 밀어내며 마차에 가까이 다가가니, 불명예스러운 대금업자 늙은 양켈 D가 쌍둥이의 시야를 막아선다. 순식간에 슈테틀에서 사람들이 모여 아수라장이 됐는데, 쌍둥이 중 눈썰미가 좋은 어린 한나가 유대인 아버지가 기도할 때 입는 숄의 깃 아래로 거품이 이는 강물을 가리킨다.
 “끄나풀과 깃털들 속에, 양초와 푹 젖은 성냥, 참새우 떼, 저당물, 해파리처럼 하늘거리는 비단 장식술에 둘러싸여서, 아직 점액질에 덮여 있어 번들거리는, 자두 속살 같은 분홍색의 여자 아기가 거기에 있었다.”
 마차와 함께 브로드 강에 빠져죽은 여인이 죽어가면서 물속에서 낳은 아기. 랍비는 이 아이를 불명예스러운 대금업자 양켈이 키우도록 의탁하고 강 이름을 따서 ‘브로드’라고 호적에 올린다. 이 브로드란 여자 아이가 열세 살이 된 1804년. 매년 그랬듯이 당시 사고를 기념하던 것이 축제로 승화되어 축제의 꽃인 인어로 분장해 거리행진을 마친 브로드가, 집에 돌아오던 길에 겁탈을 당하고, 몸을 씻기 위해 옷을 모두 벗은 상태에서 자기보다 네 배나 더 나이가 들은 의붓아버지 양켈이 하필이면 그날 갑자기 죽었음을 확인한 순간, 창밖에서 자기를 바라보는 눈이 있었으니, 앞으로 그녀의 남편이 될 콜키인. 브로드와 콜키인. 이들이 작중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7대 조부모가 된다.
 콜키인은 사랑하는 브로디와 결혼생활을 위해 남성의 의무인 돈을 벌려고 조금 위험한 직업인 물방앗간에 취직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원반형 톱이 회전하다가 핀이 부러지면서 튕겨나가는 일이 발생하고, 철근으로 만든 지지대에 튕겨 콜키인의 머리통에 세로로 박혀버린다. 기적 같은 생존. 양쪽 뇌 사이에 정확하게 박힌 톱날을 제거하면 과다출혈로 그 자리에서 죽는다는 의사들의 견해. 그냥 해골에 톱날이 박힌 대로 둔라면 비록 오래 살지는 못하겠지만 어쨌든 살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게 뇌의 화학작용에 부작용을 일으켜 이를 계기로 콜키인의 행동에 문제가 생긴다. 어여쁜 아내 브로디를 학대하기 시작하는 것. 이미 아들 둘을 둔 이들은 이 와중에도 셋째 아들을 하나 더 만들고 결국 콜키인은 숟가락 놓고 만다. 예술품 제작과 감상과 감식안엔 세계적으로 안목이 있는 유대인들, 콜키인의 사체에 청동을 입혀 동상 비슷하게 세우고 어떤 용도로 사용하느냐 하면, 머리에 박힌 원반형 톱을 이용해, 해시계로 쓰는 것과 동시에 소원을 비는 토템으로도 만들어버린다. 동상을 만지면서 소원을 빌면 틀림없이 이루어진다나.
 150년을 별 탈 없이 살던 브로디, 콜키인의 후손들. 그러다 1941년을 맞이한다. 독일이 우크라이나를 점령해버리는 해. 나치에 의하여 인종청소라는 명분으로 유대인을 학살했던 시기. 이미 그 전에도 우크라이나에선 유대인들을 학살한 적이 있고, 이후에도 유대인을 부당하게 대우하는 관습이 있어, 처음에는 나치에 귀순하자는 유대인도 있었으나, 슈테틀에 들어선 나치들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유대인을 골라 회당 안에 몰아넣고 불을 싸질러 화형에 처하는 일. 회당 앞에 모든 유대인들을 집합시키고 아무에게나 먼저 걸리는 사람한테 묻는다. “누가 유대인인가. 한 명만 지명하라.” 그의 앞에 불려나온 아내 입 속에 쑤셔 박힌 총구. “말하지 않으면 쏘겠다.” 슈테틀에 단 두 명만 살아남는데 한 명이 조너선의 할아버지이고, 다른 한 명은?
 1997년. 미국인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바랜 사진 한 장을 들고 우크라이나를 방문한다. 사진엔 자신의 할아버지가 서 있고, 옆에는 할아버지의 목숨을 구할 수 있게 숨겨준 고마운 은인 오거스틴. 비록 젊고 건강한 여인이지만 지금은 틀림없이 형편없이 늙었을 테고 아니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 포어는 우크라이나에서 유대인이 아닌 척하면서 아직도 살고 있는 유대인 가족 가운데 할아버지와 손자에게 이젠 이미 지도에서 사라진 트라킴브로드를 찾아 나선다. 할아버지는 알렉산드르, 손자도 알렉산드르. 그래 손자는 애칭인 사샤로 부른다. 알렉산드르 할아버지는 여태 자신의 고향이 바닷가 도시 오데사라고 주장했지만, 오거스틴인줄 알고 찾아낸 다 쓰러져가는 집에 사는 할머니와의 대화 도중에, 할아버지의 고향이 오데사가 아니라 콜키임이 밝혀진다. 콜키 역시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을 피할 수 없었던 곳. 할아버지도 극적인 생존자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리하여 조너선이나 사샤나, 유대인의 불행했던 과거사 안에 자기도 포함될 수밖에 없는데…….
 재미있다. 곳곳에 젊은 미국인이라면 피해갈 수 없는 미국식 유머가 깔려있기도 하고, 각 인물 간에 얽히고설킨 드라마의 칡뿌리. 작품은 미국인 조너선 사프란 포어가 자신의 우크라이나 방문을 소재로 쓰는 소설을 사샤에게 먼저 보내고, 사샤 역시 오거스틴 탐색작전에 있었던 것을 기억하며 사실에 입각한 내용을 조너선에게 보내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하나 더는 사샤가 조너선에게 보내는 편지. 다시 한 번 보자. 조너선이 쓰는 건, 공감할 수 있는 허구로의 소설. 사샤의 글은 조너선이 우크라이나에서 겪은 일을 사실에 입각해 영어로 쓴 것. 그래서 사샤의 글 속에선 매우 어색한 단어가 출몰하고 표현도 부자연스러울 때가 많다. 또 사샤가 조너선에게 쓴 편지는 자연스레 사실과 허구의 간극이 불행한 과거를 가진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뒷부분에 가면) 보여준다. 아주 재미있는 구성.
 엇! 근데 이제 보니 품절이다. 왜 그랬을까. 민음사가 예전 같으면 이런 책 품절되면 조금 있다가 “민음사 모던 클래식” 시리즈로 다시 찍고는 했건만, 이제 눈치를 보니 모던 클래식 시리즈는 잘 팔리는 가즈오 이시구로 말고 다른 책은 3년이 넘도록 한 권도 내지 않아 과연 절판을 시키고 말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전적으로 그 사람들 마음대로이긴 하다.
 참고로 한 마디만 더 하면, 재미있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여기다 하나도 써놓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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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 명작 희곡선집 - 연인희곡총서 5
김성희 지음 / 연극과인간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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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인 스스로 극작가이며 한양여대 문학창작과 교수로 재임 중인 김성희가 직접 고른 열 편의 한국 현대 희곡. 한국극예술학회가 엮은 두 권의 희곡집은 191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의 작품을 선정했고, 이 책은 1974년부터 1994년까지의 작품에서 골랐다. 이제 시대는 1972년 10월 유신을 시작으로 1987년 6.29 선언까지 본격적인 한국적 민주주의이자 한국적 파시즘의 시대가 펼쳐지고 이후 자동차, 철강, 화학, 건설, 조선 등의 중공업, 반도체의 발전에 힘입어 1997년 외환위기로 인해 세계통화기금의 지원을 받기 전, 사회 전 분야에 걸쳐 급속한 민주화, 세계화가 이루어져 각 계층의 목소리가 광장에 쏟아진 백화제방의 시대까지의 희곡들 가운데 제목대로 ‘명작’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작품을 수록했다. 말 그대로 격랑의 시기였다. 한국전쟁이 숱한 사람들의 피를 뿌린 거대지진이었다면, 74년부터 94년까지는 독재와 민주투쟁, 급속한 경제발전에 따라 필연적으로 뿌리내렸던 천민자본주의의 시대였다.
 1970년의 전태일 분신사건으로 지식인들이 벼락같이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각성을 겪어 노동 운동과 민주주의 운동이 본격적으로 연합하기 시작했으며, 유신시대의 종말 이후 광주에서는 남북전쟁 이후 한국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이 탄생한다. 정의사회구현사제단과 자유실천문인협의회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으며, 역시 본격적으로 탄압을 받기 시작한다. 엄혹한 파시즘 정권 아래에서 극작가들 역시 도전적으로, 마치 1920~30년대 카프 문학과 비견할 수 있을 정도로 정권과 부르주아에 의하여 핍박받는 국민들의 삶을 직접, 간접적으로 표현했으며, 파시즘 정권은 공연 불가 판정과 작가 일신상의 불이익으로 이에 대응했다.
 이 책에서도 첫 작품, 윤대성의 <출세기>는 사북 탄광에서 일어난 매몰사고와 갱내에서 16일을 버텨 당시 세계기록을 세운 김창호를 내세워 비정한 자본주의와 황색 저널리즘에 대해 일침을 가했는데, 이는 1967년 충남 청양의 한 탄광에서 매몰 후 16일 만에 구조된 양창선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 몇 년이 지나고 아이러니컬하게 박정희 암살 후 정권을 잡은 전두환 초기시절에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라는 무신정권의 도방이 만들어지기 전, 사북 탄광에서 대규모 파업이 일어나기도 한다. 당시엔 내용 상 어쨌건 간에 체제비판이라기보다 천민자본주의와 저널리즘을 풍자의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공연이 가능했을 거라고 본다.
 그러나 두 번째 작품 박조열의 <오장군의 발톱>은 남북전쟁이 아니라 가상의 집단체제인 동서전쟁 중 순박한 청년의 희생을 다루면서 사실상 군인출신의 현 정권에 대한 비판 역시 포함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정부가 취한 행동은 1975년 작품으로 공연을 위해 거의 모든 준비가 완료된 상태에서 공연예술윤리위원회로 하여금 ‘공연불가’ 결정을 극단劇團에 ‘하달’하는 것이었다. 1975년이면 통기타, 미니스커트, 외국어 이름 등의 사용을 금지시키고 수많은 가수, 희극배우 등에 대하여 방송출연 금지를 단행했던 야만의 시절이었으니 누구를 탓하랴.
 이 책에 작품을 수록시킨 극작가를 보면, 윤대성, 박조열, 이근삼, 최인훈, 오태석, 이강백, 윤조병, 정복근, 조원석, 이만희, 이리 열 명이며 드디어 극작가 가운데서도 여류 작가 정복근이 처음으로 소개되기에 이른다.
 이 시기는 또한 백낙청의 유명한 평론집 <민족문학과 세계문학>에서 ‘민족문학’ 담론을 처음으로 꺼낸 시기였으며, 문단은 ‘창작과비평’을 맹주로 한 리얼리즘 문학과, ‘문학과지성’을 지주로 해 명맥을 확실하게 이어간 순수문학의 시기였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당시엔 창비 또는 리얼리즘 계열이 우세했다고 판정할 수 있는데 그건 놀라운 수준의 경찰주의 또는 선군주의 적的 압제에 대한 반작용에서 비롯했을 것이다. 이런 시대가 이 희곡선집의 전반부에 그대로 반영이 되어 윤대성, 박조열, 이근삼(아벨만의 재판)은 현재 시점에서 또는 과거 시점을 이용하여 현 체제비판으로 읽힐 수 있는 풍자적 작품을 썼으며, 최인훈(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은 순문학적 토대 위에서 민족문학 계열에서 볼 수 있는 민중 메시아(어린 장수)의 탄생을 소재로 했다.
 오태석(자전거)과 이강백(봄날)은 한국의 토속적 소재로 각기 특색 있는 우화적 드라마를 이 책에 담았다, 윤조병은 결혼하는 날 결혼식장에서 도망해버린 신혼부부를 주인공으로 갖가지 은유와 상징을 사용해 복잡한 연극을 만들기도 한다. 오태석, 이강백, 윤조병의 작업은 1980년대 초반, 1984년까지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시각에 따라 국민생활 전반에 걸쳐 박정희 독재보다 훨씬 가혹한 통치를 한 깡패 전두환 정권을 지내면서 나름대로 생명유지 장치를 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탄압을 가장 효과적으로 피해가는 방법은 우화寓話, 우의寓意, 상징象徵인 것이 분명하니까.
 이후엔 창작을 하는데 특별한 제약이 없는 시대로 접어든다. 그래 정복근, 조원석, 이만희 같은 이들은 자신들이 쓰고자 하는 대로, 표현하고 싶은 만큼 자유롭게 지난 시절의 파시즘 치하에서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희생을 그렸으며(정복근 <실비명>, 조원석 <박사를 찾아서>), 단군 이래 가장 부유했던 1993년 김영삼 정권 시절에 이르러서는 촌스럽게 리얼리즘이니 순수문학이니, 더구나 민족문학 같은 구분은 전혀 따지지 않고 마음 놓고 늙은 도굴꾼 세 명을 등장시켜 인생과 삶에 대하여 논한다.(이만희 <피고지고 피고지고>)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작품들이라 각 희곡의 무대, 당시의 생각, 사조, 사건들이 아주 친숙해서 읽기에 전혀 부담이 없었고, 시기적으로도 가까워 앞에 읽은 1910년대부터의 대표 희곡 스물세 편보다 훨씬 호소력이 있었다. 또, 내가 뭘 알까마는, 각 작품의 질도 (당연히) 매우 세련되고, 수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진다. 최인훈을 빼고 나머지 거의 대부분 극작가는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해 평생 연극과 영화계에 종사하거나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것도 극작가로서 이들의 전문성을 더 확실하게 하지 않았을까. 앞 세대 선배들은 극작가로 시작했다가 TV 드라마 작가, 라디오 연속극 작가, 영화 시나리오 작가, 소설가로 진출한 반면, 1970년대 후반부터는 TV에도 전문 연속극 작가가 등장하기 시작했으니 대표적인 사람이 누구? 맞습니다. 김수현. 김수현의 등장 이후 극작가가 TV 드라마를 맡는 경우가 대폭 줄지 않았을까 싶다. 이건 극작가 본인의 생계에는 타격을 주었을 수도 있겠으나, 우리나라 연극계엔 뜻하지도 않게 긍정적인 측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래, 세상에 다 좋기만 한 것도 없고, 다 나쁘기만 한 것도 없으니, 그러면 됐지.
 이 책, 정말 한 번 읽어보시라. 우리나라 희곡 수준도 이 정도면 꽤 괜찮다. 문제는 책이 품절이란 거. 나도 헌책방에서 샀는데, 책에 밑줄 그어져 있고 뭐 그렇다. 그냥 시간 나면 동네 도서관 이용하시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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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 민음사 모던 클래식 5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굳이 제목을 ‘키친’이라 한 건 원제 <キツチン>을 영어로 보냈다가 다시 한글로 쓴 거다. 일어 ‘キツチン’을 음가 그대로 한국말로 쓰면 ‘키쯔찡’ 정도. 학창시절에 잠깐 일어 독학할 때 제일 애먹었던 것이 카타카나 문자를 해독하는 일이었다. 그땐 요새 젊은이한텐 그냥 줘도 안 읽는 <공산당 선언> 같은 거 읽어보려면 죽으나 사나 일본어 공부를 해야 했던 시절이었으니 일어 독학이 드문 일은 아니었다. 제목을 그냥 ‘부엌’ 또는 우리말 쓰는 걸 그리 천하게 생각하면 ‘주방’ 정도로 해도 좋았을 텐데 아쉬워서 쓸데없는 말 덧붙였다. 요시모토 바나나. 1987년에 바로 이 책 <키친>을 히트시킴으로 해서 등장과 더불어 잘 팔리는 작가로 이름을 굳건히 한다. 그때 하도 찬란하게 한국의 매스컴에서도 난리굿을 벌이는지라, 괜히 가자미눈을 뜨고 이이를 꼬나보고 있다가, 정작 작품은 하나도 읽어보지 않았다. 한국에선 1999년에 초판이 민음사에서 나오고, 10년 후인 2009년에 민음사 모던 클래식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이란 형식으로 중판이 나온다. 초판의 책 광고에 이렇게 써놓았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가볍고 경쾌하게 글을 쓴다. 가볍고 경쾌하다는 건 그의 글이 경망스럽다는 말이 아니다. 그녀의 글에는 심하게 고통받거나 괴로워하는 사람도 없고 스스로의 심연에 빠져 허덕이는 이도 없다. 그들 또한 상처를 받고 상실에 슬퍼하지만 서로를 다독이는 따뜻한 분위기 속에 생을 꾸린다.”


 요시모토의 다른 작품들은 그럴지도 모르겠다. 가볍고 경쾌한 글을 쓰는지 아닌지 굳이 찾아 읽어볼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키친>에 들어 있는 세 편의 단편소설은 전혀 가볍지도 않고 경쾌하지 않다. 경쾌하기는커녕 화자 ‘나’를 포함한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은 심하게 상처받고 괴로워하며 스스로의 심연에 빠져 허덕인다. 그러다 상처와 상실 때문에 스스로 파멸의 길로 접어들면 진짜 삼류소설이 될까봐 어떻게 해서든지, 예를 들어 친구와 애인 사이의 남자가 자살을 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자 돈까스 덮밥을 싸들고 한밤중에 택시를 타고 달려가 조그마한 구원의 손길을 내밀거나, 안개 낀 한 겨울의 새벽 5시 5분 전에 다리 위에서 이미 죽은 애인의 유령을 만나는 식으로 삶과 화해하는 거다.
 등장인물로는,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 완전히 외톨이가 된 인물, ① 사랑하는 아내가 죽자 성전환을 해 여자의 몸으로 갓난 아들을 키우는 아버지 겸 엄마, ② 그 아버지 겸 엄마가 불의의 폭행사고로 살해당한 이제는 다 큰 아들. ③ 4년의 애인관계 끝에 교통사고로 어느 날 갑자기 애인이 죽어버린 여자와 애인의 동생. ④ 형과 함께 교통사고로 죽은 자기 애인을 잊지 못해 애인의 교복인 (치마를 포함한)세일러 복을 입고 다니는 남자애, 등등. 주인공들이 어떤 상태인지 알면 이 책은 일본의 1980년대 젊은이들의 우울과 고독과 상처와 내밀한 위안을 묘사하고 있으며, 가장 주된 병증은 억지로 외면하고자 하는 우울증이란 걸 금방 알아낼 수 있다. 완전 개인의 취향이지만, 이 책 역시 일본의 사소설들과 유사하게 다 읽은 다음에 뭔가 좀 찜찜하게 남아있는 개운하지 못한 정서를 가득 느끼게 된다.
 세 편의 단편 가운데 앞의 두 편, <키친>과 <만월>은 연작 형태이며, 마지막 <달빛 그림자>는 추천을 받아 요시모토가 등단할 수 있었던 것처럼 작가후기에 쓰여 있는 독립된 작품이다. 일조시간이 짧아져 비타민 디 흡수량 부족으로 가뜩이나 우울증이 도지는 시절에 굳이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을 읽어 불행한 일을 초래할까 겁난다. 이왕 읽으시려면 해 길어지는 내년 봄에나 읽어보시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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