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투스의 승부수 - 막스 갈로의 로마 인물 소설 3 막스 갈로의 로마 인물 소설 3
막스 갈로 지음, 이재형 옮김 / 예담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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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로 황제 말기 시절부터 티투스의 죽음까지를 그리고 있다. ‘막스 갈로의 로마 인물 소설’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으로 1부 <스파르타쿠스의 죽음>에서 기록자로 나온 가이우스 푸스쿠스 살리나토르의 후손인 세레누스가 화자話者 ‘나’로 등장하는 건 2부 <네로의 비밀>과 같다. <네로의 비밀>에서 보면 아그리피나가 네로를 낳을 때 옆에서 시립해 있어, 대가리에 쇠똥도 벗겨지지 않은 네로를 제일 처음으로 본 신하로 등장한다. 3부 <티투스의 승부수>에선 티투스가 죽고 벌써 2년이 흘러 이제 자신도 죽음의 신이 가까이 있음을 알고 쓰기 시작한 <내 삶의 연대기>가 거의 끝난 시점에서 시작하고 있다. 그러니 화자 세레누스를 대강 기원 10년 경에 출생했다면, 이이가 거친 황제만 (위키피아를 참고로 해서) 읊어 봐도 아우구스투스, 티베리우스,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네로, 갈바, 오토, 비텔리우스, 베스파시아누스, 티투스, 도미티아누스, 이렇게 총 11명의 황제 시대를 걸쳐 살았다.
 막스 갈로의 기준으로 보면 로마 최초의 황제 그룹인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황조에선 유일하게 현명한 황제가 초대 아우구스투스였을 것이고 (로버트 그레이브스의 책에서는 클라우디우스가 참 어진 황제로 나오는데 갈로는 어질기는 하지만 형편없는 황제라고 슬쩍 넘어가고 만다) 네로 이후 혼돈기와 베스파시아누스 황조에선 역시 유일하게 티투스만 좋은 황제였다. 네로를 다룬 2부에서 네로는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 정도로 질탕하고, 폭력적이고, 우스꽝스럽고, 잔인하고, 변태적인 인물로 일관하다 중도에 뚝 끊어버린다. 려, 뭐 이딴 게 있나 싶을 정도의 중동무이. 그러다 3부 <티투스의 승부수>에서 네로는 친위대의 배신으로 주위의 아첨꾼들이 모두 떠나자 유모의 도움을 받아 자살을 하는 것으로 너무 간단하게 취급해 읽기가 허탈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후에 로마 역사는 사실 정신없이 팽팽 돌아가게 되는데, 실제로, 이후 황제를 해먹는 갈바는 7개월, 네로의 아내 포퐈이아의 전남편 오토는 3개월, 게르마니아 지역 사령관이었던 비텔리우스는 8개월 동안 황위에 올랐을 뿐, 이후 베스파시아누스 일가가 세 번에 걸쳐 황제를 할 때까지 너무 속도를 내서 휙휙 지나가, 사실 중요한 사건은 없고 그냥 힘 센 놈이 덜 센 놈 잡아 죽이는 쌍권총시대였을 뿐이기는 하지만, 달리는 말 잔등 위에서 먼 산 바라보는 느낌을 숨길 수 없다.
 어쨌든, 화자 세레누스로 말할 거 같으면, 네로 시절을 다룬 2부에서 원형경기장에서 맹수들의 밥이 됐던 기독교인들의 영향을 받아, 유대교가 아닌 기독교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되는 바, 이번 3부에선 티투스가 제위에 오르기 전에 황자의 자격으로 떠난 예루살렘 원정이 주요 장면인 관계로, 한없이 벌어지는 살육과 고문 등을 보며 자연스레 부활과 기독교를 믿게 되는, 가능하기는 하지만 조금은 어처구니없는 현상이 벌어진다. 암만해도 네로 이후의 황제들을 보는 작가 갈로의 시각은 기독교를 어떤 시각으로 보는가 하는 것에 달려 있겠다 싶기도 하다. 친 기독이면 우리 편, 반 기독이면 너네 편, 이런 식.
 다수의 유대교와 극소수의 기독교인들이 똘똘 뭉쳐 대 로마 항쟁에 나선 갈릴리와 예루살렘 지역의 유대인들. 그러나 당시 로마는 세상의 어떤 민족과 싸워도 쉽게 이길 수 있는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상태. 이스라엘과 갈릴리의 아그리파 왕과 여동생 베레니케 여왕, 이집트 군단을 지휘하는 유대인 출신 로마 시민인 티베리우스 알렉산드로스 같은 이들은 역불급이니 유대민족의 군사력이 로마를 능가할 때까지는 좀 굴욕스럽지만 생명을 이어가면서 인구를 늘리는 것이 상책이라 주장하는 반면(출애굽기 때부터 유구한 전통이다), 젊은 투사들의 집단인 ‘열심당’과 ‘단검자객단’을 중심으로 하는 집단은 세계에서 가장 우월한 유대인이 로마인들의 지배하에 있다는 걸 참지 못해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나섰는데, 어떤 것이 옳은 건지, 화자 세레누스는 헷갈린다.
 책은 그리하여 티투스가 이끄는 로마 연합군과 유대인들의 전투장면을 상세하게 묘사할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어린애 팔 비틀기 정도의 무력이 충돌하니 당연히 로마가 이기겠지만, 과거 유대인의 깡다구 역시 만만하지 않다. 근데, 잘 나가다가, 1인칭 시점을 사용하는 책에선 화자의 눈에 보이는 것이 제일 중요한 법이라서, 점점 그리스도라는 신을 믿는 집단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데, 독자는 환장하겠더라. 전쟁에서 당하는 피지배민족 유대인의 참화를 너무 강조하는 것. 비단 티투스의 정벌뿐이랴. 세상에 정당한 전쟁이 언제 한 번이라도 있었더냐. 이래서 2/3쯤 지나면 김이 팍 새버리고 만다. 내 조부께서 이런 경우에 말씀하셨지. 스팀 아웃?
 ‘막스 갈로의 로마 인물 소설’ 시리즈가 모두 다섯 권으로 이어졌는데, 세 권을 읽었고, 네 번째가 로마 오현제五賢帝 가운데 마지막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 관해서다. 5현제가 언제 적 이야기냐 하면, 티투스가 즉위 2년 만에 숟가락 놓고(동생에 의한 독살설도 있단다) 친동생 도미티아누스가 황제를 먹었다가, 이왕 황위에 올랐으니 해보고 싶은 거 다 해보겠다는 일념 하에 온갖 난장판을 다 저지른 결과, 암살을 당하신 다음에 추대된 이가 네르바 황제. 이이가 초대 5현제다. 이후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이때부터 호칭이 복잡해지는데) 안토니우스 피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이 다섯 명을 일컫는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아드님이 누군가 하면,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아주 얍삽하게 생기고 누이를 사랑하며, 감히 러셀 클로한테 맞짱 뜨자고 하던 (물론 영화에서만 그랬다) 바로 그 콤모도스 되겠다. 왜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쓴 <명상록>은 나도 읽어봤을 정도로 아직도 명작으로 치지만(근데 읽어보면 정말 재미없다), 책 소개를 보면, 이 황제님이 기독교를 탄압했다는 거 때문에 막스 갈로 선생의 미움을 좀 받는 거 같아서다. 물론 읽어봐야 알겠지만 이런 정도의 정보만 보고도 책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싹 가신다. 5현제 시절이야말로 아직 기독교가 세상에 퍼지기 전에 일부 혼돈스럽고, 일부 야만적이지만, (서쪽에서만)거의 자연적인 상태의 인류였던 시절이라, 앞으로 이천 년을 지배하게 될 이데올로기를 굳이 벌써부터 가까이 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싶어서.
 에이, 됐다. 로마 인물소설 시리즈는 여기서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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