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제목만 보면 네 편의 단편소설을 엮은 선집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출판사 열린책들의 “창립 30주년 기념 대표작가 12인”이라는 세트 가운데 한 권으로 <갈레 씨, 홀로 죽다>, <누런 개>, <센 강의 춤집에서>, <리버티 바> 이렇게 네 편의 짧은 장편을 한 권에 담아 본문만 752쪽에 달한다. 출판사는 2016년에 한시적으로 이 세트를 판매했는데 목록 가운데 <장미의 이름>, <야만스런 탐정들>, <죄와 벌>, <소설>, <핑거 스미스>, <개미> 등은 기존에 분책되어 발간했던 걸 한 권으로 묶어 일괄 9천원에 판매했다. <갈레 씨, 홀로 죽다외 3편>은 심농이 1931년에 쓴 메그레 시리즈 가운데 네 편을 모아 역시 한 권, 9천원에 팔았었다. 네 권을 따로 구입하면 10% 할인가격으로 35,280원. 열린책들이 좋은 일 한 번 했다. 하지만 2016년 당시엔 왜 관심을 두지 않고 그냥 넘어갔을까. 대부분 이미 읽은 책들이었기 때문이었을 확률이 높다. 이젠 대표작가 12인 세트 가운데 아직 품절되지 않은 채 팔리고 있는 책이 별로 없어서, 나도 이 책을 포함해 세 권을, 새 책 같은 헌책으로 샀다. 한 권에 6,500원 주고. 완전히 길 가다가 만 원짜리 주운 기분이다. 그래 별점으로 만점을 때린 건 백퍼 편집 때문이다.
조르주 심농이란 작가는 내가 주목해온 사람이 아니다. 그저 추리소설 작가로 이름만 알고 있었을 뿐이고, 이번에 그의 책들을 읽은 것도 저렴한 가격의 두꺼운 책을 발견했다는 이유 하나였다. 그의 ‘메그레 시리즈’는 파리 경찰청의 메그레 반장이 펼치는 추리소설로 장편 75편, 단편 28편, 이렇게 모두 103편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이 시리즈의 완독은 꿈도 꾸지 마시라. 장편 한 권에 할인가 8,820원, 단편 네 개가 책 한 권으로 치면, 필요한 책값이 (75+28/4)*8820 = 696,780원이며, 79권을 읽으려면 최소한 한 넉 달 정도 필요하겠지? 그러니 포기하시라. 나처럼 맛만 보고 얼른 메그레 반장의 매력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현명할 듯.
메그레 반장을 한 번 보자. 나이는 45세. 유부남이고 아내는 20세기 유럽 여성스럽지 않게 남편밖에 모르고, 여름 휴가기간에는 한 한 달 기한으로 알자스 근처에 있는 알프스 주변으로 피서를 떠나 그곳의 처제네 집에 머문다. 부유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모자라지도 않는 전형적 중산층이며, 경찰청의 수사반장으로 능력을 인정받아 프랑스 각처에서 벌어지는 특별한 사건의 해결을 위해 자주 장기 출장을 떠나기도 한다. 1930년대 기준으로 거구라 할 수 있는 180cm가 넘는 키, 100kg을 초과하는 몸무게를 지녔음에도 그리 둔하지 않는 순발력을 지녔다. 사시사철 검정색 정장을 고집하고, 출장지에서 이동할 때는 주로 택시를 타는 것으로 미루어 택시비는 경찰 당국의 활동 경비로 올리는 것이 분명하다. 근데 줄창 마셔대는 맥주 값은 모르겠다.
추리소설을 많이 읽는 편이 아니다. 그래 내가 아는 한에서 이야기를 해보면, 대표적인 탐정인 셜록 홈즈는 얘기가 필요하지 않을 천재 형이다. 누군가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 하나 가지고 그의 외모와 성격, 나이를 다 추리할 수 있는 건 기본이고, 산만 한 식인개가 날뛰는 한밤의 벌판에서 홀로 밤을 새울 수 있는 담력, 슈거레이 레너드 뺨치는 복싱 테크닉과 펀치력 등등 요즘 시대에 태어났으면 크게 한 자리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또 브라운 신부. 이이는 직업인 신부답게 사람의 본성에 관한 깊은 이해심을 갖고 있는 이로 주로 사건의 원인을 추적함으로써 심리수사, 즉 최초의 프로파일러 쯤 될 것이다. 이에 반해 메그레 반장은 추리소설에 참 어울리지 않게 스스로 시간 날 때마다 자신은 추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실만 확인할 뿐이고. 후, 어느 수사관, 탐정이 그러지 않을까. 사실을 확인하고, 사실에서 다른 사실, 가능성들을 확산하다가 한 가닥으로 집중시키는 행위를 추리라고 하는 거 아닌가? 메그레 반장이 다른 주인공들과 변별될 수 있는 건 그의 말대로 사실을 확인하는 것 때문이 아니라, 각 사건이 처한 상황을 최선의 방향으로 왜곡시킨다는 데 있다. 나는 솔직히 첫 작품 <갈레 씨, 홀로 죽다>의 결말을 읽고 깜짝 놀랐다. 누구나 볼 수 있는 열린 독후감을 쓰면서 수사반장 시리즈의 결말을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만큼 지탄받을 일이 있을까. 그래 자세하게 이야기하지는 않겠지만, 이 메그레 씨가 수사반장으로 사건을 종결하는 방식은 정말 상식 밖이다. <갈레 씨……>에서도 특출한 수사력을 보유한 메그레 반장이 사건의 기승전결을 이미 다 꿰고 언제나처럼 살인사건의 진범이 누구인지 뻔하게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픽, 인간사에 대한 조롱인지, 이미 세상일에 달통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진실과 다르게 사건을 마감하는 건 조르주 심농의 의도와 관계없이 수사관 또는 경찰에 대한 모욕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비록 심농의 103편에 달하는 메그레 반장 시리즈에서 겨우 네 편의 장편을 읽었을 뿐이지만, 메그레 반장이 사건을 해결하고 결과를 왜곡, 말이 왜곡이지 어떤 의미에서는 직업적 거짓을 의미할 수도 있는 그런 수준의 왜곡이 가능한 건, 이 두꺼운 책에서 살인 피해자가 악당이거나 악당 비슷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싹수없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현대 범죄에서는 거의 어김없이 등장하는 돈이 개입한다. 그래 범죄는 거의 어김없이 이전구투의 와중에 벌어지는데, 원래부터 인간에 대한 조소가 충만한 메그레 반장은 독자들의 속내를 꿰뚫고 독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아니면 적어도 그 방향 비슷하게 끝을 맺어줌으로 해서, 무려 103편의 길고 긴 시리즈도 가능했고, 이 가운데 수 십 편이 영화화되어 돈 방석에 오르기도 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다 그런 거지 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기껏 범인을 잡아놓고 그걸…… 더 말을 말자, 말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