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는 침묵했다 창비세계문학 69
하인리히 뵐 지음, 임홍배 옮김 / 창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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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하인리히 뵐 자신이 1917년 독일의 쾰른에서 태어났다. 1차 세계대전 중에 태어난 독일과 오스트리아 남자 아이들의 숙명은 2차 세계대전에 출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39년에 뵐의 나이 스물두 살. 그는 꼬박 6년 동안 독일 병사로 전쟁에 종군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 중 잠깐 얻은 휴가를 이용해 결혼도 하고 아들도 낳았으나 장남 크리스토프는 낳자마자 세상을 뜨고 만다. 전쟁이 끝나기 전인 1944년에 수차례 탈영을 감행한 전력이 있는 뵐은, <천사는 침묵했다>에서 하필이면 1945년 5월 8일, 독일이 항복한 날을 골라 탈영을 했다가 체포되어 5월 9일 새벽에 즉결처분, 즉 총살형을 선고받는 한스 슈니츨러라는 이름의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운다. 참고로, 실제의 뵐은 종전 당시 현역 군인으로 미국의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9월에 석방, 자유의 몸으로 풀려난다.
 작중에서 한스 슈니츨러가 이승에서의 마지막 밤을 지새우고 있을 당시 같은 부대의 군법무관 서기였던 빌리 곰페르츠라는 인물이 한스에게 접근해 서로 군복을 바꿔 입고 도망하라고 종용을 한다. 이런 이해하기 힘든 과정을 통해 탈영병 한스는 빌리 곰페르츠의 군복을 입고 자신의 고향이기도 하고 곰페르츠 부인이 살고 있는 쾰른에 도착해 부인에게 군복을 전해주게 된다. 이에 대한 대가는 빌리 곰페르츠의 죽음. 그리고 폐허가 된 쾰른, 굶주림과 추위 속에서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질긴 목숨을 이어가야 하는 생존법. 쾰른에 도착한 한스는 제일 먼저 곰페르츠 부인을 찾기 위해 그녀가 입원했다고 알고 있는 병원에 찾아가 식사를 담당하는 수녀에게 빵을 얻어야 했고, 부인이 퇴원했다는 얘기를 듣고 다시 그녀의 집을 방문해 곰페르츠의 당부대로 그의 옷을 전해준다. 부인은 한스가 보는 앞에서 옷의 아래 단을 뜯어내 단 속에 든 곰페르츠의 공증 받은 유언장을 발견한다. 자신의 모든 유산을 아내에게 유증한다는 내용. 이 장면에서는 내용을 그냥 넘어가겠지만, 조금이라도 자기 재산이 부친에게 주어지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유언이었던 거는 나중에, 아주 나중에 밝혀진다.
 그러나 이런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바로 장면들.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막강한 무기로 인해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폐허로 변한 쾰른. 어쩔 수 없는 굶주림과 추위. 남아 있는 산업, 상업의 기반이 완벽하게 없는 상태에서 독일인들이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은 물물교환 또는 도둑질 말고는 거의 없다. 환경이 생존을 위협할수록 생명 종에게 더 강한 충동으로 닥치는 것은 어김없이 후세를 남기기 위한 욕구, 즉 번식으로써의 사랑에 대한 갈증이다. 그래 비록 춥고 배고프기 한이 없지만 쾰른에서도 사랑이 싹터 모든 것을 잃어버린 한스와 레기나는 새롭게 가정을 이루기도 한다.
 어디서 읽어본 듯하지? 하인리히 뵐이 소위 폐허문학, 즉 2차 대전 직후 완전히 폐허가 된 독일의 참상을 그린 대표적인 작가로 이 작품을 쓰고 4년 후에 비슷한 내용으로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발표한다. <그리고 ……>는 발표 후 곧바로 출간을 했으나 <천사는 침묵했다>는 1949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독일 사람들이 전쟁 장면에 극도의 트라우마를 겪고 있어 결국 뵐이 죽은 다음인 1992년에 출간을 했다고 한다.
 작품의 내용도 좋고, 의미하는 바도 좋지만 내가 정작 이 책을 읽으면서 참 좋다고 생각이 든 것은, 뵐이 한스를 따라가며 행적을 묘사하는 문장들의 조합. 아름다우면서도 참으로 쓸쓸한 관찰이 마음을 텅 비게 만들었다. 어려운 시기에 사람들은 대개 만인에 대한 이리(狼wolf) 상태로 변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뵐의 이 책에서는 그나마 가진 것을 서로 나누려 하고, 그래서 사랑하게 되는 장면이 주를 이룬다.
 하인리히 뵐의 작품으로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어느 어릿광대의 견해>,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에 이어 네 번째 읽은 작품인데, 어느 것 하나 빼지 않고 다 마음에 든다. 믿음이 가는 작가. 다른 책은 또 없나, 검색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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