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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들판을 걷다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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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과 11월, 두 중편소설 <맡겨진 소녀>와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큰 선풍을 일으킨 작가 클레어 키건. <맡겨진 소녀>는 동네 도서관의 관심도서 목록에 올렸는데, 작년부터 이날 이때까지 대출중이며 늘 예약자가 있는 상태이다. 무수히 쏟아지는 찬사. 그러다가 난데없이 개가실 신착도서 선반에 떡, 꽂힌 클레어 키건의 신간 《푸른 들판을 걷다》가 보이는 거다. 주저하지 않고 집어 그날 당장 읽었고, 250쪽 분량이 반 나절 조금 넘는 시간에 훌훌 읽어버릴 수 있는 넉넉한 편집이어서 앉은 자리에서 몽땅 읽었는데, 어, 이것 봐라, 많은 독자들이 클레어 키건에게 홀딱 빠지는 이유가 있기는 있구나, 하고 공감을 할 수밖에 없었다. 키건하고 비슷한 문체로 글을 쓰는 사람, 물 좋은 아일랜드라서 이렇게 쓸쓸한 이야기를 쓸쓸한 문장으로 직조할 수 있는 나이 많은 할아버지, 윌리엄 트레버 유형의 문체로, 가부장적 아버지에 의한 딸에 대한 성폭력을 포함한 깊은 상처, 의도했건 아니건 남자의 이기적 행위에 의하여 다친 심신의 흉, 그리고 마지막 작품 <퀴큰 나무 숲의 밤>에서의 이에 대한 극복을 다루고 있으니.
클레어 키건. 1968년 아일랜드 위클로의 농장에서 대가족의 일원으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후 미국의 루이지애나, 다시 웨일스와 더블린에서 공부하고 작품을 썼다. 이후 출간하는 단편집 《남극》, 《푸른 들판을 걷다》와 두 단행본 <맡겨진 소녀>,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각종 상을 휩쓰는 기염을 토하고 영화로 만들어져 세계적인 명성과 돈을 한꺼번에 얻은 작가이다.
단편집 속의 일곱 이야기를 읽으며 주목한 것은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역시 문체와 문장이었다. 하루 전에 읽은 마리아 페르난다 암푸에로의 유려하고 상세하고 길게 묘사하는 문체 그리고 문장과 완전히 반대쪽에 있는 황량하고 간결한 키건. 두 작가 모두 독특한 매력이 넘치며, 각자가 자기 문장, 문체, 스타일에 최적화한 서로 다른 폭력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도 책을 읽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다. 짜장면이면 짜장면이고 짬뽕이면 짬뽕이지, 좋은 소설 속에 짬짜면은 없다. 뭐 내가 읽어본 경우에 그렇다는 거다. 있을 수 있겠지, 많고 많은 작품 속에 그런 것도 있어야 정상이겠지.
그런데 지금 독후감을 쓰면서 당장 맞닥뜨린 문제는, 책을 읽고 한 마흔 시간 흘렀을 뿐인데, 아버지에 의하여 저질러진 성폭력(또는 성적 학대)와 가톨릭 신부 사이에서 있었던 섹스 후의 이별이란 상처와 흔적을 지니고 나머지 삶을 살아야 하는 여성(들)의 모습 말고는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는 점. 그런데 사실 친부의 성적 학대와 가톨릭 신부의 성접촉은 말을 하기 쉬워서 그렇지 사회적, 종교적으로 대단한 불경의 경우이다. 키건은 이런 불경을 넘어선 패륜과 파문의 지경에 이른 심각한 부도덕, 지독한 폭력을 앞에서 말한 쓸쓸한 문체로 쓸쓸한 분위기에서 슬쩍 이야기하고 만다. 이런 걸 읽는 독자는 자연스럽게 피해자의 심정에 몰입하게 되고, 피해자와 함께 마음이 찢어진다. 이래서, 이리 극단적으로 자극적이라서, 그리고 이렇게 쓸쓸해서 전세계 독자들이 열광을 하는 것이고, 숱한 영화제작자가 영화로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이겠지. 아직 읽어보지 않아 전적으로 짐작이지만 단행본 <맡겨진 아이>와 <이처럼 사소한 것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하여간, 문학적 영토의 의미로 말해, 아일랜드는 참 물이 좋은 동네인 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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