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파란 눈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49
토니 모리슨 지음, 정소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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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에 출간한 토니 모리슨의 데뷔작. 토니 모리슨은 첫 작품부터 이랬구나, 놀라웠구나, 훗날 거장이라는 칭호를 받을 작가는 처음부터 발자취가 남다르구나.


  내가 가장 인상깊게 읽은 대목은 1993년판에 처음 실렸다는 서문에 나오는 구절이었다.

  “남들의 멸시에 대한 저항이나 그것을 피하는 방법이 아니라 배척을 정당하고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였을 때 초래되는 훨씬 더 비극적이고 파괴적인 결과에 관심이 있었다. 나는 지독한 자기비하의 피해자가 결국 위험하고 난폭한 성향이 되어, 자신을 거듭거듭 욕보이게 될 적敵을 재생산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아를 가지기 이전의) 아이들에게 자존감의 종말은 금방, 쉽게 일어날 수 있다. 무관심한 부모와 무시하는 어른, 자체의 언어와 법과 이미지로 절망을 강화하는 세상에 어린 나이라는 취약성이 더해지면 파멸로 이르는 길은 확정적이다.” (p.8)


  따라서 이 책은 위험하고 난폭한 성향으로 이미 빠져든 성인과 자존감이 말라버린 어린 아이에 관한 비극적 서술이 될 수밖에 없다.

  1941년 가을에는 금잔화가 피지 않았다는 것으로 시작한다. 당시 우리, ‘나’와 언니 클로디아는 “금잔화가 자라지 않은 까닭이 페콜라가 자기 아버지의 애를 가져서라고 생각했다.” 책은 금잔화가 피지 않은 1941년으로 시작하고, 왜 금잔화가 피지 않았는지, 그게 어떤 은유의 호박amber 속 단어인지 밝히는 것으로 마감한다. 그리고 나는 작품을 시작하면서 위에서 말한 “난폭한 성향으로 이미 빠져든 성인”이 페콜라의 아버지인 촐리 브리드러브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자존감이 말라버린 어린 아이”가 페콜라임은 작가 서문에서 일찌감치 읽었지만.


  오하이오주 로레인. 브로드웨이와 서티피프스 스트리트 교차로 남동쪽 모퉁이에 버려진 가게가 있다. 한때는 피자가게, 전에는 헝가리 제빵사가 운영하는 빵집, 이전엔 부동산 사무실, 그 이전엔 집시들의 작전기지였으며, 더 이전에는 브리드러브 가족이 얼기설기 벽을 만들어 침실에 침대 세 개를 놓고 살았다. 14세 아들 새미와 11세 딸 페콜라가 작은 침대를 하나씩 차지했고, 브리드러브 부부가 더블침대에서 자녀들이 잠든 것으로 알았으나 혹시라도 깨울까 싶어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악착같이 신음을 참으며 부부생활을 했다. 가난한 흑인이라서 그곳에서 살았고 스스로 추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눌러 앉았다.

  대대로 가난했고 가난해서 둔해졌다. 가난이 딱히 별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추함은 별났다. 꼼꼼히 뜯어보면 딱히 추한 구석이 없는데 신기하게도 가족 모두 추하게 보였다. 그들 스스로도 마찬가지로 그러리라, 추하리라, 추하게 보이리라 하는 확신에서 추함은 시작했으므로. 그들에게 남은 것은 절망과 방탕이었으며, 하찮은 것들이나 약한 것을 향한 폭력뿐이었다.

  이미 짐승 무리에 합류한 것으로 여기고 본인도 그렇게 믿는 아버지 촐리 브리드러브에게 아내란 그가 끔찍이 혐오하면서 동시에 손을 대 상처 입힐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것 가운데 하나였다. 그건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수시로 폭력을 가하며 싸웠고 작품 속에서도 장면이 나오지만 굳이 옮기지는 않겠다. 부부에게 남은 건 오직 하나, 유별나게 들어맞는 속궁합.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 살 수 없는 법. 촐리의 알코올 의존은 갈수록 심해갔고, 자기가 봐도 더 이상 어떻게 개선이 될 기미가 보이지도 않고, 그럴 의지도 생기지 않는 인생이 갸륵하여, 어느 날 역시 술에 잔뜩 취한 늙은 개 촐리 브리드러브는 자기 집에 불을 싸지르고 아내의 머리를 후려쳤다. 이렇게 브리드러브 가족은 나앉게 됐다. 내쫓기면 어딘가 갈 곳이 있으나 나앉는다는 건 무엇의 끝, 종말을 뜻한다. 가사도우미를 하는 엄마는 고용인의 집에 머물고, 새미는 다른 가족과 지내게 됐고, 페콜라는 흑인 연대(라고 내가 생각하는) ‘나’의 집에서 지내게 했으며, 늙은 개 촐리는 당연히 교도소로 주민등록을 옮긴다.

  이런 집이고, 이런 아버지이고, 이런 엄마에 페콜라. 자존이란 단어는 다른 행성에서나 발견할 수 있을까 말까 하는 단어. 늙은 개라고 같은 아프리카계 사람들한테도 멸칭을 당하는 아버지 촐리 브리드러브 씨, 그는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았기에 이런 자존의 나락 속에서 약한 것들을 향한 폭력성을 키웠을까? 당신이 생각하는 과정, 그것이 맞다.


  촐리 브리드러브의 딸 페콜라. 이 아이도 일찌감치 거의 모든 사람들한테 경멸의 눈치를 받으며 성장해,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예 한 명도 없는 것으로 알고 지내며 십 몇 년을 살았는데, 자기가 그런 눈치를 받는 이유는 예쁘게 생기지 못했다, 추하게 생겼다는 것 때문인 것으로 이해했다. 한 장면을 인용한다.


  “채소와 고기와 잡화를 파는 야코보프스키 가게 앞에 선다. (중략) 계산대 앞에 서서 진열된 사탕을 바라본다. 전부 메리 제인으로 사겠다고 결심한다. (중략) 그녀는 신발을 벗고 동전 세 개를 꺼낸다. 백발이 섞인 (백인) 야코보프스키 씨의 머리가 계산대 위로 쑥 올라온다. (중략) 파란 눈. 흐릿하게 내리깐 눈. (중략) 그의 시선이 서서히 그녀를 향한다.” (p.67)

  사이, 백인 야코보프스키의 흑인 차별에 관한 의식을 묘사하고 계속 이어진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사탕 브랜드) 메리 제인을 가리킨다. 자그마한 검은 손가락 끝으로 진열창을 꾹 누른다. 백인 어른과의 소통을, 가만히 거슬리지 않게 시도해보는 흑인 아이. (중략) 그는 메리 제인 세 묶음을 그녀 쪽으로 획 밀친다. 한 묶음에 노란 직사각형 사탕이 세 개씩 들었다. 그녀가 손을 내민다. 그는 손이 닿는 것이 꺼림칙해 주저한다. 그녀는 진열장 앞의 오른손 손가락을 어떻게 움직여 왼손의 동전을 집어줘야 할지 알지 못한다. 결국 그가 손을 뻗어 그녀 손바닥에 놓인 동전을 집는다.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축축한 손바닥을 긁는다. 밖으로 나오자 설명할 수 없는 수치감이 페콜라에게 밀려든다.” (p.68~69)


  1930년대 후반, 1940년대 초반의 미국. 흑인 꼬마 여자 아이가 건장한 백인 어른 남자의 가게에서 3페니를 내고 메리 제인이라는 사탕을 사는 장면이다. 백인 남자는 못생긴(것처럼 보이는) 흑인 여자 아이의 손바닥에 놓인 동전에 자기 피부를 대기가 싫다. 하지만 가게 주인이니까 당연히 사탕을 팔아야 하니 억지로, 손끝으로라도 동전을 받아 들어야 했겠지. 이게 상당히 중요한 스킨십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민 가 동네 구멍가게를 하던 사람들이 흑인한테 살해당한 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가 거스름 돈을 그들의 손바닥에 흔쾌하게 척, 놓지 않고 약간의 거리를 두고 톡톡 떨어뜨린 이유였다는 건 유명하다. 우리나라 이민자의 경우엔 문화 차이인데 그걸 흑인들이 이해하지 못한 측면이 강했던 반면(백인한테도, 다른 유색인한테도 똑같이 톡톡 떨어트렸으니), 야코보프스키 씨의 경우엔 더러움 혹은 경멸해 마땅한 피부와 접촉하기 싫었던 것이 이유였으니까. 이것도 토니 모리슨이 강조하고 싶었던 이야기 가운데 하나였으리라. 토니 모리슨의 아버지 조지 워포드 씨가 조지아주 카터스빌(조지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고향?)에 살았을 때 KKK단에 의한 흑인 린치를 직접 목격해 백인 증오를 늘 이야기했을 것이다.

  이 때 사탕 메리 제인의 포장지에는 통통하고 뽀얀 얼굴색을 한 백인 여자 아이가 그려져 있었는데 누구보다 파란 눈동자를 가졌었다. 그리하여 흑백의 피부색을 막론하고 거의 모든 이로부터 경멸의 눈초리를 받고, 따돌림을 당했으며, 불친절이 당연하다고 생각한 페콜라는 자기가 당하고 있는 모든 문제의 원인이, 결코 그러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못 생겼기 때문이라고 여겼으며, 만약에 자기가 메리 제인의 눈동자보다 더 파란, 완벽하게 파란 눈을 가지게 되면 지금의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하는 구름 위의 공상, 애초 가능하지 않은 상상을 하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하여간 토니 모리슨, 대단하다. 어제 읽은 저메이카 킨케이드와 완벽하게 반대쪽에 자리한 문장, 또박또박 정확한 단어로 정확한 문장을 군더더기 없이 사용하면서도 저 아프리카 혹은 라틴 아메리카의 주술적, 환상문학적인 분위기로 은유의 호박amber상태를 깨고, 경멸을 당하는 것을 감내하면서 스스로 짐승의 위치로 전락하고 마는 인간상을 고스란히 보여줄 수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게 데뷔작이라니. 연 이틀 동안 거장이라 불려도 전혀 손색이 없을 “여성”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 올해, 위대하긴 했지만 동시에 끔찍했던 불 같은 여름의 마지막 바지를 흥미롭게 마감할 수 있었다. 이들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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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4-09-25 07: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진짜 잘 써요. 그래서 더 무섭고 슬픈 소설이에요. 마지막 챕터랑 표지 (눈동자 속 아이)랑 연결되는 느낌도 들었고요. 그런데 남자 어른들 사연 풀이엔 거부감도 일었어요. 잘 써서 더 그랬을지도요.

Falstaff 2024-09-25 07:36   좋아요 2 | URL
맞습니다. 독자들이 주의할 점은, 나쁜 행동을 하는 어른들의 불행했던 과거 때문에 잘못 자체를 변호하면 안 된다는 것이겠습니다. 토니 모리슨, 금잔화.... 거 참.

그레이스 2024-09-25 10: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서 사시죠?
여기만 들어오면 읽어야할 책들이...!
토니 모리슨도 읽어야 하는데!
ㅋㅋ

Falstaff 2024-09-26 03:50   좋아요 1 | URL
ㅎㅎㅎ 옙. 거의 매일 도서관에 갑니다. 일곱 시간 이상 그곳에 처박혀 있으니.... 에휴.

coolcat329 2024-09-25 14: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토니 모리슨 읽어야 하는데요. 주요 작품 세 권 사놓기만 하고 방치 상태입니다. 첫 작품부터 대단하다니 이 책도 사야겠습니다. 킨케이드와 정반대의 문장이라니 또 킨케이드도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

Falstaff 2024-09-26 03:52   좋아요 1 | URL
이크... 읽으신 후의 감상은 제가 책임지지 않습니다. ^^;;;
킨케이드의 경우엔 작가와 독자가 서로 맞아야 즐길 수 있을 거 같아서 괜히 좀 캥기긴 하네요. ㅎㅎㅎ

coolcat329 2024-09-26 22:54   좋아요 1 | URL
폴스타프님께 땡투하고 저도 구입했습니다!

바람돌이 2024-09-25 21: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에 토니 모리슨 책은 러브 1권 읽고, 솔로몬의 노래는 사놓고 아직 안 읽었고... 그런데 책은 자꾸 나오고, 폴스타프님은 자꾸 좋은 책 리뷰를 쓰시고.... 저 언제 퇴직할 수 있을까요? ㅎㅎ

Falstaff 2024-09-26 03:55   좋아요 2 | URL
솔로몬 노래도 좋은데요.
퇴직하면 편하고, 조금 더 행복해지고 뭐 그렇기는 합니다. ㅎㅎㅎ 바람돌이 님은 그래도 많이 읽으시잖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