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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반니의 방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90
제임스 볼드윈 지음, 김지현(아밀)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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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을 쓰려는데 제임스 볼드윈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잠깐 검색해보자 싶어 위키피디아를 열었더니, 아오, 이게 보통이 아니다. 분량만 가지고 과장을 좀 하자면 톨스토이 급이다. 내가 알고 있던 제임스 볼드윈은 1970년대에 튀르키예의 정치가 불안해지자(쿠데타였겠지 뭐) 파리로 건너간 쥴퓌 리바넬리가 그곳에서 인연을 맺어 수집한 문화계 명사들의 명함 가운데 한 장이 볼드윈의 것이었다는 거, 딱 하나였다. 아마 리바넬리의 책을 읽다가 (틀림없이 이이와 동명이인인) 제임스 볼드윈이 입에 익어 책을 검색했고, <조반니의 방>이란 제목의 책이 도서관에 있어서 관심도서로 보관했다가 읽은 것이리라. 전화기에 깔린 앱에 이 책을 읽은 즉시 매긴 별점은 세 개 반이었다. 지금은? 뭐 고칠 필요 있을까?
1943년과 44년 사이, 컬럼비아 대학의 학부생 루시엔 카가 나이 많은 동성애자 데이비드 캐머러를 칼로 찔러 죽이는 사건이 벌어졌다. 허드슨 강을 걷다가 캐머러가 카에게 성적으로 접근했고, 이에 격분한 카가 캐머러를 찌른 다음 몸을 강에 버린 일이다. 죽인 후 시신을 버렸는지, 찔렀지만 아직 죽기 전에 버렸는지는 정확하게 쓰여 있지 않다.
자신이 동성애자이며 이 사실을 주변 소수의 사람에게만 커밍아웃 한 채 상당한 기간동안 이성애자처럼 살아온 제임스 볼드윈은, 내 재주로는 1940년대의 살인사건 당시 살인자 루시엔 카도 동성애자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성애자 사이에서 살인으로 달음박질하는 치정사건을 구상했던 건지 모른다.
제임스 볼드윈의 어머니 에마 존스의 가족은 노예 해방 이후 남부의 인종분리와 차별을 피해 흑인들이 북쪽으로 이동한 “대이주” 시절 뉴욕으로 터전을 옮긴 무리의 일환이었다. 1922년, 열아홉 살에 뉴욕 할렘에 도착한 에마는 1924년 8월에 할렘 병원에서 제임스 아서 존스라는 이름의 사생아를 낳는다. 엄마가 아기한테 생물학적 아버지가 누구였는지 알려주었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하여간 제임스는 죽을 때까지 염색체의 반을 물려준 남성에 관해서는 침묵했다. 혼자 벌어 세 살까지 제임스를 키운 엄마는 1927년에 노동자이자 침례교 목사인 데이비드 볼드윈과 재혼해 제임스에게 볼드윈이라는 성을 사용하게 했다. 여전히 젊디젊은 엄마는 가을만 되면 무 뽑듯이 쑥쑥 아이들을 생산해 무려 아홉 명의 자녀를 더 만들어 기어이 두 자리, 열을 채운다.
이 집의 가장 큰 문제는 아빠였다. 위키피디아에서도 볼드윈 목사의 나이를 정확하게 표기하지 못하고 그냥 “1863년 노예해방 이전에 태어났을 것이다.”라고만 추측한다. 그러면 아내 에마하고 최하 마흔 살 차이. 아무리 젊어도 예순 넷에 장가를 들어 아이 아홉을 더 낳았다고? 안 부럽다, 안 부러워.
아빠 볼드윈 목사는 또 아내 에마와 같은 나이의 딸, 감옥에서 죽은 아들, 제임스보다 여덟 살이 많은 또다른 아들이 있었다. 하여간 생식력 하나는 끝내주는 목사는 자식 가운데 유일하게 자신의 씨를 받지 않은 제임스와 좋지 않은 관계를 만들었는데, 대가리 커진 제임스와 맞짱 비슷한 광경 바로 앞까지 여러 차례 가기도 했단다. 목사는 제임스가 책을 읽는 것도 싫었고, 공부를 잘해도 싫었고, 백인 아이들과 친구를 먹어도 싫었으며, 영화를 좋아하는 것도 싫었다. 오직 하나, 검둥이답게 열심히 노동하고, 백인을 혐오해야 하며, 백인을 차별시켜야 한다는, 역으로 분리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였다. 같은 사막종교이기는 하지만 그나마 기독교라서 좀 괜찮았지, 무슬림 원리주의 쪽이었으면 더 심각할 수도 있었지 않을까? 아니겠지?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차별이다.
그리하여? 이 드런 집구석에서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이 들었겠느냐고. 글을 쓰고 싶은데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1950년대에 아프리칸 아메리칸이 쓴 소설이 몇 부나 팔리겠냐고.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답이 나오지 않아 제임스 볼드윈이 선택한 것은 구대륙으로 귀환하는 것. 인종차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어도 숱하게 다양한 유색인을 식민지배 해 봐서 미국과 비교하면 상당히 온순한 정도라고 생각했고, 사실이었다. 집에서 뛰쳐나가는 것이 합법이 될 나이가 되어, 스물네 살의 제임스 볼드윈은 1948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을 하며 모은 돈으로 드디어 프랑스행 여객선 삼등실에 몸을 누이게 된다.
작품은 이렇게 시작한다.
“내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아침을 앞둔 밤. 나는 어둠이 깔린 이곳 남프랑스의 대저택 창가에 서있다.”
화자 ‘나’의 이름은 데이비드. 피부색은 드러나지 않는다. 흑인일 수 있지만 백인일 수도 있다. 작품 속에서 피부색은 한 번도 거론되지 않는 걸 보면 그냥 '사람'으로 여기는 편이 좋다. 아는 사람만 ‘나’가 동성애자라는 걸 안다. 다른 사람은 이성애자로 알고. 실제로 미국 여성 헬라와 오래 연애를 했다. 연애가 무르익어 청혼을 했고, 결혼은 연애와 아예 다른 이야기니, 스페인에 가서 좀 더 깊이 생각해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헬라가 가버렸다. 이별이란 뜻은 아니다. 말 그대로 시간을 갖고 결심을 하겠다는 것뿐. 그래서 ‘나’ 데이비드는 프랑스에서 돈 몇 푼 없는 백수 미국 청년 신세가 된다.
‘나’는 작가 제임스 볼드윈과 마찬가지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질구레한 일을 열심히 한 덕에 적지 않은 돈을 모았다. 그러나 아버지 계좌에 입금되어 있으며, 아버지는 당연히 미국으로 돌아올 아들을 위해 황금과 반지를 품은 용 파프너처럼 아들의 돈을 지키고 있다. 유럽에 있는 돈의 주인 아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젊은 혈기가 넘쳐 자기 돈을 유럽의 환락을 위해 써버릴 지 누가 아느냐는 말이지.
프랑스에 오고 두 해가 지났다. 이 사이에 헬라와 연애를 했고, 청혼을 했으며, 헬라는 결혼을 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기 위하여 몇 달째 스페인에서 편지만 보낼 뿐 돌아오지 않는다. ‘나’도 처음엔 열심히 답장을 썼으나 이젠 점점 짧아지고, 터울도 점점 길어진다. 주머니가 거의 비어 드디어 여관방에서 쫓겨났을 정도로. ‘나’는 다행히 벨기에 태생이지만 미국인인 남자 자크를 알고 지낸다. 가끔 미국 청년들에게 돈을 빌려주기도 하고, 가끔은 냉정하게 거절하기도 하는 동성애자. 그러나 ‘나’에게 자크가 돈을 빌려주지 않을 확률은 별로 없다. 아직 자크의 방에 가본 적이 없어서. 나이든 게이 자크는 동성애자 사이에서 인기가 없다. 게이도 될 수 있으면 젊은 게이를 탐하는 모양이라 그들을 유혹하기 위하여 간혹 큰 돈을 쓰고, 몇 번 관계를 한 다음엔, 버린다. 이런 저런 늙은이한테 버림을 받은 젊은 가난뱅이 게이들은 자기들끼리 더러운 식당에 모여 남창 그룹을 이루기도 하는데 이건 전 세계적으로 공통 같다. 책을 보면 그렇다.
이렇게 자크한테 1만 프랑을 빌리고 곧바로 자크의 단골 바 겸 식당으로 향한다. 그냥 ‘기욤의 바’라고 하는. 바의 주인 기욤 역시 늙은 게이. 수사가 화려하고 다분히 연극적 단어와 문장을 자유롭게 구사한다. 그의 바에 새로 이탈리아 출신의 게이가 바텐더로 와 있다. 이이의 이름이 조반니. ‘나’가 한 눈에 봐도 매력적이다. 여태 딱 한 번 동성간 성 경험이 있었다. 중학생 시절의 조이. 부모가 여행중일 때 우연히 함께 목욕을 하고,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다가 서툴게 벌이게 된 사건. 그 행위로 남성성을 잃어버릴 것 같은 고통 때문에 수치스러웠다. 침대에 묻은 흔적 자체가 추악한 행위의 증거가 됐던 일. 그럼에도 조반니한테는 한 눈에 빠지지 않을 수 없는 매력이 넘쳤으니.
그러나 누군가 지나가면서 ‘나’에게 충고한다.
“있잖아요, 그는 위험해요. 특히나 당신 같은 청년에게는 굉장히 위험하죠. 괴로워질 거예요. 당신은 무척 불행해질 거예요. 기억하세요. 나는 분명히 말했어요.”
누굴까? 그와 연애를 경험한 중년? 천사? 아니면 악마?
기욤과 자크, ‘나’와 조반니는 영업시간이 끝난, 해가 아직 뜨지 않은 새벽에 바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예전에 조반니가 일했던 레알 시장 너머, 마담 클로틸트가 운영하는 값싸고 지저분한 식당에 가 화이트와인과 굴과 레드와인과 코냑을 먹는다. 자크가 ‘나’에게 말한다.
“그를 사랑해줘.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으란 말이야. 세상에 그 외에 중요한 일이 뭐가 있겠나? 그리고 그게 길어야 얼마나 가겠어? 자네 둘 다 남자고 어디로든 마음대로 갈 수 있는데. 길어야 5분일 거야. 장담해. 겨우 5분.”
정수리까지 술이 오른 이들을 남기고 ‘나’와 조반니는 파리 변두리 나시옹 근처 끔찍한 동네의 꼭대기 하녀가 살던 방, 이제는 조반니가 사는, 조반니의 방으로 든다.
“그리고 조반니는 오늘 밤과 내일 아침 사이의 어느 시점에 기요틴 위에서 절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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