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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이문구 지음 / 아로파 / 2024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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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여덟 편을 실었다. 2000년에 동인문학상을 받은 초판본은 문학동네에서 나왔고, 2006년엔 랜덤하우스에서 이문구 전집의 20번으로 출간했으며, 이제 2024년에 다시 출판사 아로마를 통해 3판이 나와 읽었다.
이문구에 대해서는 많고 많은 이야기가 있어 굳이 내가 더 보탤 말은 없다. 1941년 보령생.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 출신. 김동리 추천으로 등단.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초대 간사. 이후 협의회에서 김동리 비판하자 문학적 아버지에 대한 비판에 동참할 수 없다는 이유로 탈퇴. 2003년 졸. 이런 개인사는 내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나는 이문구가 좋다. 그런데 이 책은 여태 들어본 적도 없다. 인터넷 동무님(이런 표현을 너그럽게 받아준다면 말이지만) 열반인 님의 리뷰를 읽고 즉시 도서관 희망도서 신청해 읽었다. 그러고보니 2000년 출간이면 모르고 넘어간 것도 이상하지 않다. 전혀 책을 읽지 않았던 시절이었으니까. 내가 얼마나 이이를 좋아하느냐 하면, 이이와 박상융/박상륭(시기별로 자기가 자기 이름 쓰는 데도 약간의 차이가 있다)을 내가 아주 좋아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둘이 서로 막역한 친구라서 이문구 발인할 때 박상융은 캐나다에서 비행기타고 왔다고 하지 아마, 선생들의 작풍도, 문장을 쓰는 방법도 심각하게 차이가 나지만, 나 소시적에 이이들 글 쓰는 게 하도 기가 막혀서 따라 했다가, 덩달아 내 문장도 길어진 거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감히 이이들과 한 번이라도 비비적거려 보겠다고는 당연히 꿈도 꾸어 보지 않았으니 혹 오해하지 마시라.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내가 “요즘 소설”이란 말을 자주 하는 걸 마땅하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흠. 시작이 너무 도발적인 걸? 달리 말해보자.
요즘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보면 “읽는 재미”를 확 느낄 수 있는 것이 드물다. 이렇게 이야기해도 내 말에 동의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이를 증명하기 위하여 “읽는 재미”가 있는 시인 이정록의 시집 《정말》의 발문을 읽어보자. “읽는 재미”가 있는, 내가 아는 마지막 소설가 한창훈이 썼다. 한창훈은 이문구 발인할 때 만장을 든 사람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시인 직업도 국가자격증이 있고 자격증 취득 시험을 면접으로 본다 치자.
아니, 면접 오면서 소주병 들고 들어오는 사람이 어딨어요? 술병은 입구 우산꽂이 같은 곳에 두고 들어오세요. 아무리 해장이라도 그렇지, 국가행정 알기를 원…… 저기요, 초상났어요? 그만 좀 우세요. 화장실 거기 있으니 콧물 좀 닦으시고요. 으이그, 다른 곳으로 얼른 전근해야지, 이게 무슨 짓이야 그래. 그리고요 제발 면접관 앞에서 피 좀 토하지 마세요. 화장실 옆에 따로 각혈실이 마련되어 있으니 거기를 이용해주시구요. 피 토하면 곧바로 자격증 준다는 말은 브로커들이 하는 소립니다. 속지 마세요.“
물론 위 인용은 상당한 과장이다. 그래도 꼭 저렇지 않지만 시인 면접을 소설가 면접으로 바꾸고 소주병, 울음, 각혈 같은 단어를 조금만 변형하기만 하면 내가 “요즘 소설”을 읽으며 느끼는 감정과 많이 다르지 않다. 주정酒酊, 비통, 각혈을 어떤 단어로 바꾸면 비슷하냐고? 안 알려드린다. 나도 몸조심해야 하니.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무슨 단어를 올리고 싶어하는 지는 다들 아실 듯. 혹자는 내게 충고한다. 함부로 떠들지 말고 자기한테 맞는 것을 찾아 읽으라고. 옳은 말이다. 겸허하게 말 듣고 있다.
도대체 이문구의 입담은 당할 방법이 없다. 제일 앞에 실린 <장평리 찔레나무>의 초입을 읽어보자.
“동네에서도 벌써 언젠가부터 이금돈(李金敦)이의 안식구라거나 월미엄니보다 진퍼리(長坪里:장평리) 부녀회 김 회장이나, 기본바로세우기운동 장평분회 김 회장이라고 해야 얼른 알아듣는 김학자 회장은, 오늘도 식전부터 전화를 받자마자 얼굴이 뺑덕어멈 화상이 됐다가 장쇠어멈 화상이 됐다가 해쌓더니 전화통이 상대방의 상판이라도 되는 것처럼 냅다 내던지며 그러고 앙분하였다.”
김회장 김학자 여사는 이금돈이한테 시집와서 살림 잘 하고, 시동생 건사하며 잘 살다가 하나밖에 없는 시동생이 장가를 든다 하니 없는 살림에 남 부끄럽지는 않게 해 보냈건만, 시내에 당구장이 하나 나와 그걸 하고 싶다고 얼마나 눌어붙어 들볶아대는지 그것 마저 해주고 말았는데, 반년만에 남의 손에 넘겨버리고 서울로 떠서는 사업(이래봤자 별 거지 같은 점방이겠지만 하여간 사업은 사업)으로 앞가림을 하더니 아들만 셋을 줄줄이 낳은 후부터 딸만 둘 낳은 형네 알기를 개 항문에 붙은 보리쌀 정도로 치부하고 있던 차였다. 그래도 그냥 그런가 보다 했더니 저번에 김회장의 공부 별로 못하는 장녀 월미가 수능 점수를 받아오자마자 전화를 넣고는 이렇게 씨부린 것이 결정적으로 김회장하고 의가 나게 된 사달이었다.
“형수, 대관절 걔 점수가 얼마나 나왔간디 그러셔? 하여간 두 자릿수는 넘었을 거 아뇨? 아 걔 형편에 그만했으면 됐지 뭘 더 바래셨다. 그 점수면 전문대두 아무 전문대는 아니 되더래두, 그래두 그 근방 워디서 새루 문 열은 디는 아마 그냥저냥 들어갈 걸. 그깨잇늠의 꽈야 아무 꽈면 워떻간디. 어채피 슨볼 적이나 써 먹을 간판. 그러구 저러구 간에 몇 점이나 받었냐니께요? 형수, 나 좀 봐요, 아 월미 수능이 몇 점이냐구요?” 형수, 내가, 이 인간 이은된(李銀敦)이가 암만 반갑잖은 사람이라구 해두 그렇지, 하여간 우리가 냄은 아니잖요, 안 그료?”
이런 전화를 받았으니 월미 엄마 김회장의 복창이 어떻겠는가 말이지. 그리하여 진짜 말 쏴 주지는 못하고 속으로만 목이 메는데, 이런 건 아예 외워놨다가 나중에 써먹어도 좋겠다.
“냄이사 아니지, 냄은 아녀. 그럼 넴인감, 넴이는 네미니까 넴두 아녀. 그러믄 뭐여. 냄만도 못헌 늠이지. 냄두 아니메 냄만두 못한 늠이 뭐간. 뭐는 뭐여, 웬수지. 그게 바루 웬순겨. 뭣이 워쩌구 저쪄? 뭐? 반갑잖은 사람? 니가 시방 내 헌티 반갑잖은 사람 정돈 중 아냐? 이 개 잡어먹은 자리에 가서 곡을 허구 재배할 늠아.”
나, 이 책을 도서관에서도 제일, 무척, 아주 무척 조용한 열람실에서 읽다가 미치는 줄 알았다. 웃음이 터지는데, 아예 마구 쏟아져서 웃지도 못하고, 웃기는 웃어야 할 찰나에 그러지 못하니까 몸을 비틀고 눈엔 눈물이 비질비질 흘러나오니 이런 낭패가 어디 있어. 세상에 이런. 개 잡아먹은 데 가서 곡을 하고 절 두번, 재배할 놈이라니. 핫하, 잡아먹힌 개의 자손이란 뜻이다. 곡하고 재배하면 제사잖여.
그러나 이문구를 재미로만 읽나? 천만의 말씀, 만만의 땅콩이다. 재미에 빠져 얼른얼른 읽느라 후루룩 빈 속에 국수 마시듯 퍼 넣으면 진짜 이문구의 맛을 놓치는 거다. 이문구를 읽을 때는 휴대폰을 켜놓고, 국어사전 앱을 열어놓고, 따박따박 읽으며 세월 탓, 현대화 탓, 도시화 탓, 개인주의 탓으로 잃어버렸거나 적어도 자주 쓰지 않아 도무지 알지 못하는 우리말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찾아보며 읽어야 제 맛이다. 정말 다양한 우리말, 우리 단어가 속출한다. 그냥 짐작으로 앞뒤 문맥 더듬어 이런 뜻이겠거니, 하지 마시란 이야기다. 그래서 분량은 많지 않지만 이문구를 읽을 때 생각 외로 많은 시간이 든다. 물론 읽는 사람 마음이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훌훌 읽어 치우실 분은 그렇게 하시라.
씨의 전작으로 비유를 하자면, 연작소설 《우리동네》만 있는 게 아니다. 역시 연작인 《관촌수필》도 있다. 위에 예로 든 <장평리 찔레나무>가 《우리동네》과라면 《관촌수필》과도 이 책 안에 두어 작품 들어 있다. 완전히 내 생각으로 말하자면 젊은 시절에 쓴 《관촌수필》에 비하면 생각과 표현의 농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섬세하고 서정적인 작품도 들어 있다. 이이의 마지막 작품집으로도 의의가 있는 책이니 한 번 읽어 보시라 권하는 것도 괜찮은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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