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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브 뉴 휴먼 ㅣ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17
정지돈 지음 / 은행나무 / 2024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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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독후감은 2024년 6월 2일에 썼다. 6월 말에 터진 정지돈과 그의 전 연인 간 스캔들과 관계없다. 스캔들 때문에 독후감을 수정할 이유도 없고, 다시 쓰지도 않았다.)
처음 읽은 정지돈이 <모든 것은 영원했다>. 참 흥미롭게 읽었다. 심지어 독후감에 (로베르토 볼라뇨보다) “더 미학적이다”라고 쓰기도 했다. 후에 도서관 신간 코너에 정지돈의 <현대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죽음들>도 눈에 띄자마자 읽었다. 대략 난감. 이어서 신간이 나왔다는 걸 아는 즉시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해 받아 읽은 책이 <브레이브 뉴 휴먼>. 완전 난감. 이젠 정지돈이 책을 내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는지 본 후에 고를까 말까 생각 좀 해봐야겠다.
체외인이라고 있다. 체외인體外人. 몸 밖에서 나온 사람. 더 정확하게 말하면 체외수정인? 204x년. 대한민국은 계속되는 출산율 감소로 인한 인구 저하로 인공자궁에서 태어난 인간을 인정하는 체외인법을 세계최초로 통과시키고, 정부차원에서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간다. 신체건강한 성인 남녀로부터 정자와 난자를 기증받아 대리모가 아닌 공장식 인공자궁 센터에서 배양해, 이들을 인력이 부족한 산업에 투입하는 용도로 배치하기 시작했다. 개인의 생식세포, 즉 난자와 정자를 기증하는 것은 국가의 법으로 규정한 국민의 의무가 되었으며, 시행 초기부터 다양한 비판과 우려가 있었지만 아무도 인구감소의 보완이라는 측면과 이들의 필요성에 대하여는 부인하지 못했다. 당연히 시간이 지난 후에 체외인은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로 인정받았고, 이 방식에 의한 생명 창조는 인류를 생식의 압제에서 해방시키는 획기적 전환점으로 인식했다.
그러나 뉴턴의 제3법칙,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에 의하여, 체외인이 등장한 이후부터 인간들은 자연분만을 거의 신성시하기에 이르렀고 이런 경향은 상류층일수록 높아져 가정, 가족 개념을 중시하는 경향을 띄기 시작했다. 이들에게 체외인은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었으나, 어디까지나 속마음이 그렇다는 것이고 겉으로는 인자한 무시 같은 것으로 표현되었다. 인간의 가정/가족 중시 개념은, 체외인이 생식세포를 추적해 생물학적 부모를 찾는 일을 엄격하게 금지하게 만들었다. 멀쩡한 가정/가족을 이루어 사는 인간에게 느닷없이 젊은 시절에 난자/정자를 기증해 자기도 모르는 자식이 딸입네, 아들입네 하면서 들이닥치기라도 하면 얼마나 기겁을 하겠느냐는 말이지. 말은 맞다. 체외인은 태어날 때부터, 아니 최초 생명으로 수정될 때부터 부모도, 가족도, 뿌리도, 역사도 없는 인간으로 규정되었으니까. 애초부터 의무나 책임감, 그리고 정체성이 없는 일회용품과 다를 바 없게 태어난 건데, 이들도 마흔여섯 개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생물학적으로 인간과 전혀 다를 바 없는데도 그랬다. 이건 지난 세기, 지지난 세기라면 혹시 모를까, 개나 고양이한테도 엄마, 아빠라고 불리고 싶은 21세기 현대인이 접수하기는 조금, 일본말로 하면, 조또 무리 아닌가?
갈수록 난감한 것은, 체외인법 2장 4조에 의거하여, 모든 체외인의 거주와 이전은 정부가 정한 규정을 따르게 만들었고, 이들의 효과적인 관리를 위하여 오른쪽 손목에 식별 가능한 생체 바코드를 새겼다. 체외인의 어떠한 바코드 조작도 금지한 건 당연하다. 이를 어기면 체외인의 존재를 말소한다고. ‘사형’이 아니라 ‘존재 말소’다.
인간과 똑 같은 DNA를 가지고 있으면 그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수정 후에 어떤 환경에서 배양, 즉 꾸준하게 세포분열을 하고 세상에 나왔는 지를 막론해서. 비록 어린 시절에 긴 복도를 따라 수많은 방이 있는 거대한 노출 콘크리트 건물에 2백명이 넘는 가족과 함께 산 어린시절을 가졌으며, 자라면서 체외인이 해야 마땅한 직업을 비롯한 삶(인간에게는 체외인이 살면서 해야 할 직업이 가장 중요했으리라)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세뇌 비슷하게 교육을 받은 결과, 다수의 체외인이 맡은 자리에서 맡은 일을 하는 데 만족하는 반면, 다른 다수는 일반인과 동일한 욕구를 느껴 인간으로 승격하기 위해 노력하는 무리도 있다. 이렇게 조건을 극복하고 삶을 개척해 인간과 같은 레벨로 상승하려는 족속을 일인, 현재에 만족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체외인을 이인으로 부르기도 했다. 이 책은 당연히 일인에 관한 이야기이다.
체외인은 대개 외국어 식 이름으로 불린다. 주인공 아미. 이름이 없는 어린 시절에는 유전자 시퀀스를 암호화한 고유식별번호 CLR-70-797851로 불리기도 했다. 아미의 친구가 유일하게 우리한테 친숙하게 권정현지라는 이름을 갖고 있으며 아미의 2백명에 달하는 가족 가운데 한 명이다. 체외인은 인간과의 섹스가 금지되어 있으며, 기껏 인간이 출산과 육아에서 해방시킨 만큼, 어떠한 경우라도 임신은 허가받지 못할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신을 하면 존재 삭제를 각오해야 한다. 권정현지는 이것을 뻔히 알면서도 임신을 하고, 출산을 위해 마약중독자가 운영하는 야매 산파 컨테이너를 찾아 충청남도 결성으로 떠난다. 아미는 대단히 공부 잘하는 여성 체외인으로, 체외인 출신 인간 리젠쿠이가 회장으로 있는, 체외인 2차 버전인 합성인 생성 연구소에 다닌다.
스토리를 더 이야기하고 싶지만 사실 축을 이루는 스토리가 그동안 많은 소설과 영화에서 봐서 익숙하다. 그나마 조금 진화해 체내에 칩을 삽입하지 않고 바코드를 찍지만 그것도 이미 많이 써먹었다. 인간 출산 공장을 굳이 어디서 봤다고 이야기해야 하나? 그럴 필요 없지? 정지돈은 작가 후기에서 <멋진 신세계>와 스필버그의 영화 <AI>를 거론하며, 특히 <멋진 신세계>는 자기 작품의 좋은 참조점이 되긴 했지만 방향성은 반대라고 주장한다. 근데 작품 속에서 인간 아날로그맨은 아미와 또다른 일인 체외인인 애드가 호텔의 방으로 올라갈 때 로비에서 예브게니 자먀찐의 환상적인 SF 작품 <우리들>을 읽고 있기도 하다. 이것 말고도 나는 피터 애크로이드의 디스토피아 미래소설 <플라톤의 반란>과 마르코 브람빌라 감독의 B급 영화 <데몰리션맨> 같은 것도 떠올랐다.
우리가 처한 출산율 감소와 인구 절벽은 알겠는데, 굳이 체외인으로 이 문제를 짚어야 하는지 그건 모르겠다. 나는 읽는 내내 체외인들과 지금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노동 외국인을 치환해보았다. 개발도상국에서 입국해 우리가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벌어 돌아가거나 이 땅에 정착하는 사람들. 토종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그리 토종도 아닌 우리나라 사람한테 차별과 조롱과 심지어 가끔 멸시도 당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하는 일을 체외인이 떠맡는다?
<모든 것은 영원했다>의 정지돈은 어디 있을까? 나는 그 정지돈을 좋아하는 것이지 <브레이브 뉴 휴먼>의 작가 정지돈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서, 이미 숱하게 읽어본 듯한 이 책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좀 따져가면서 정지돈을 읽어야겠다. 이건 아까 한 말이다. 그래도 한 번 더 한다. 또 그의 이름이 보이면 흔들릴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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