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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이야기들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30
윌리엄 트레버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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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트레버 콕스는 1928년 아일랜드 코크 카운티에서 태어나 2016년에 잉글랜드 데번 카운티에서 생을 마감했다. 물이 좋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일랜드 작가 중에 글 좋은 사람이 많다. 번쩍 떠오르는 사람이 당연히 제임스 조이스와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이 다음에 거론되는 작가가 윌리엄 트레버와 존 벤빌을 꼽는데, 약간은 책 판매를 위하여 트레버와 벤빌의 이름을 “후까시”한 것 같은 기분은 든다. 이 중에서 윌리엄 트레버는, 확실한 건 아니고 전에 어디서 들은 것 같다는 전제로 말해서,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루시 골트 이야기>에서 주인공 루시의 아버지 에버라드 골트 씨처럼 아일랜드로 이주한 잉글랜드인의 후손, 아닌가? 하여간 스물여섯 살에 아일랜드를 떠나 잉글랜드에 정착한 것으로 보아 크게 다른 것도 아닌 것 같은데, 혹시 그렇다면 아일랜드 사람들이 무척이나 경멸하는 잉글랜드 인을 자기네 대표적 작가로 추앙하고 있는 것도 같고 뭐 그렇다.
트레버의 호적을 가지고 이렇게 왈가왈부하는 것은, 전적으로 내가 트레버를 읽은 감상으로 말씀드리는 것으로, 작품의 무대가 아일랜드 또는 농촌 지역일 때와, 런던 등 대도시일 때, 거의 완전히 상반된 느낌을 받았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이다. 아일랜드와 (지역을 불문하고) 농촌을 무대로 한 작품은, 트레버 특유의 감상성, 부끄러움, 심상함, 창백, 감수성, 고딕적 반작용을 품은 소극적 태도 같은 것이 절묘한 긴장으로 빠지게 하는 반면, 대도시가 무대일 경우에는 좀 덜 어울리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문장이야 죽여주지만 그의 장기가 아스팔트 위에서 불꽃을 튀지는 않는 거 같다.
《마지막 이야기들》은 2016년에 숨을 거둔 후, 미발표 작품을 모아 바이킹 출판사에서 2018년에 출간한 책을 번역한 것이다. 윌리엄 트레버의 연표를 보면서 궁리해봤더니, 그의 창작은 2008년 또는 2009년 정도에 마감을 한 듯 보인다. 여든 살까지 픽션을 쓴 거니까 대단한 노익장이었다. 《마지막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것도 이 점이었다. 이 책이 “미발표” 작품을 모은 것이라 하더라도, 2009년 이후, 그의 만년에 쓴 작품을 모은 것인지, 아니면 평생 작가가 책으로 내놓지 않았던 것을 모은 것인지 정확하게 표현하지 않았다. 나는 후자가 아닐까 싶었다. 물론 증거는 없다. 그냥 작품(들)을 읽어보니까 그런 생각이 든다, 하는 것일 뿐.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이 책에 수록된 작품의 무대가 참 다양하기 때문이었다. 아일랜드도 있는 것 같았고, 런던도 있고, 농촌지역도 있다. 그래서 책 한 권, 열 편의 단편소설을 읽으며 위에서 말한 것처럼 그래, 내 스타일이야, 하면서 영탄한 작품도 있으며, 뭐 트레버치고는 별론데, 한 작품도 있었다. 즉, 내 취향에 따라 얘기해서, 공감의 정도가 들쭉날쭉했다는 거.
여기에 하나를 더 보태자면, 플롯(들)이 재미있었다. 첫번째 이야기 <피아노 선생님의 제자>를 읽으면서 깜짝 놀랐던 점. 피아노 선생님 미스 나이팅게일한테 천재 제자 한 명을 교습하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생긴다. 선생의 입장에서 얼마나 감격적이고, 흥분유발의 원천이 되며, 정성을 모아 집중하게 만들겠는가 한 번 생각해보시라. 피아노 선생님이 아니라 일반 과외 선생이라도 비슷할 듯하니까 독자들의 청춘시절 아르바이트 경험을 떠올려도 나쁘지 않을 터. 그러나 이 소년이 브람스를 치고, 쇼팽을 배우고 또는 연주하고 돌아간 다음에는, 미스 나이팅게일의 돌아가신 아버지가 쇼콜라티여서 수집한 아기자기한 각종 그릇 같은 것들, 예컨데 백조 도자기, 예쁜 냄비의 뚜껑(뚜껑만! 차라리 냄비 한 세트 몽땅이면 더 좋았을 것을), 고리가 말썽이어서 빼놓은 귀걸이 같은 것들이 하나씩 사라지는 거였다. 그럼 독자 입장에서 미스 나이팅게일 선생님하고 소년 사이에 모종의 갈등이 생겨서 진짜는 아니더라도 뭔가가 치고 박는 일이 벌어질 거라는 기대감, 이럴 때면 빠지지 않고 나타나는 현상인 긴장의 레벨이 팍팍 상승하게 만들어놓고는, 그냥 그렇게 끝나버리는 거다. 오, 놀라운 뒤처리 스킬.
이런 작품이 연달아 몇 개 나온다.
그러다가 뒤로 가면 <겨울의 목가> 나오는데, 스물두 살에 대학을 졸업하고 노느니 시골 목장에서 열두 살, 몇 달 뒤에 열세 살이 되는 소녀의 개인교사나 하자, 싶은 청년 앤서니가 등장한다. 앤서니는 조금 조숙한 열세 살짜리 메리 벨라와 좋은 추억을 만들고 얼마 안 되어 떠난다. 메리 벨라를 우리나라 소녀들과 평행 비교하면 중1. 조숙하지 않더라도 잘 생기고 말 잘하고 유머 있는 청년에게 얼마든지 빠질 수 있는 사춘기 초입이니 이 시기의 경험이 메리 벨라에게도 좋은 추억으로 남았던 것은 물론이다. 앤서니는 이후 니콜라라는 참한 아가씨와 결혼을 하고, 딸 둘 낳고 행복하며 편안한 가정을 꾸려 나갔다. 메리 벨라는 엄마가 60세가 되는 생일날 갑자기 숨을 거두고, 이에 낙심한 아버지 역시 얼마 있지 않아 말을 달리다가 낙상을 해 줄초상이 나는 바람에 농장을 상속받아 가업을 잇기 위하여 직접 경영을 하게 된다.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지도 제작자가 된 앤서니는 출장을 자주 다녔고, 하루는 자신이 예전에 아르바이트를 한 농장 부근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으며, 바로 그 농장을 찾아가 아직 홀로 사는 메리 벨라와 오랜만에 상봉한다. 둘은 세월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새록새록 연모의 정이 새로워지기 시작하면서 당연히 앤서니의 가정생활에도 파도가 치기 시작한다.
나는 이쯤에서 마치 미스 나이팅게일과 피아노 천재 소년처럼 서로 번히 알고 있는 감정의 요동을 뒤로 하고 슬쩍 작품을 매조지했으면 참 좋겠다, 하고 생각했고, 점점 희망하게 됐고, 제발 그래라, 그래라, 응원까지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윌리엄 트레버는 기어이 스토리를 화다닥 복잡하게 흩어버리고 만다. 물론 독자가 이걸 참견할 수는 없다. 나도 책의 앞쪽에서 몇 작품의 인상적인 마무리를 읽지 않았다면 조금도 결말에 대한 희망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라서 그랬을 뿐이다. 내 생각대로 마무리를 하지 않아도 트레버는 충분히 트레버답게, 단편의 왕좌에서 빛나는 만년필을 달리고 있기는 하지만 내가 아쉽다는데 뭐? 어떤 기분인지 아실 듯.
하여튼 이런 느낌의 단편 열 작품이 실렸다. 좋은 건 좋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아, 위에서 소개한 <겨울의 목가>도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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