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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심장 가까이 ㅣ 암실문고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음, 민승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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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독후감은 써 놓고 저장하는 걸 깜박 잊어버려 싹 지워졌다. 그래서 책 읽고 9일이 지나 다시 썼다. 기억이 가물거린다. 하여간 달려보자. 다른 이들의 소감과 차이가 있더라도 양해해주시기 바란다. 짧게 쓰겠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는 처음 읽는다. 브라질 작가를 많이 읽은 것도 아니지만 19세기에도 물라토 출신 소설가 마사두 지 아시스가 엽기적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포스트 모던하기도 한 <브라스 꾸바스 사후 회고록> 같은 것도 발표했을 정도로 그럴싸한 근대 문학의 전통을 이어갔으리라고 추측했었다. 브라질 작가 작품들이 활발하게 번역되어 나오지 않아 읽어볼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생각을 늘 하고 있던 건 아니다.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이러다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에 관한 이야기들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1920년에 우크라이나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리스펙토르는 태어나자마자 브라질로 이민을 가서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로스쿨을 다녔으며, 스물두 살 때인 1942년에 첫 번째 장편소설 <야생의 심장 가까이>를 써 다음 해에 발표해 브라질 문단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이후 외교관과 결혼해서 1959년까지 유럽과 미국에서 생활하다가 이혼해 다시 리우로 돌아와 작품을 쓰면서 여생을 보내다 난소암으로 생을 마친 작가다. (위키피디아 참조했음)
리스펙토르의 일생을 검색하기 전에 책을 읽었다. 마지막 페이지 마지막 줄에 쓰인 "리우에서 1942년 11월"을 보자마자 기겁을 했다. 나는 이이가 인생을 이젠 제법 살아서, (연보에 의하면 이혼하고 다시 브라질로 돌아온 1959년 이후) 세상을 좀 알게 되어 지난 날을 회상하면서 쓴 것인 줄 알았다. 근데 스물두 살짜리가 이런 작품을 썼다니. 아오. 책 광고 글 특유 극도의 찬사가 리스펙토르, 또는 이 작품 <야생의 심장 가까이>에 관해서는 절대 과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작품은 스토리로 읽는 책이 아니다. 나는 첫 문단부터 리스펙토르의 화법에 확 끌렸다. 한 번 보시라.
"아버지의 타자기 소리가 탁-탁... 탁-탁-탁... 이어졌다. 시계가 먼지 없는 뎅-그랑 소리로 깨어났다. 정적이 잠잠잠잠잠잠 이어졌다. 옷장이 뭐라고 말했지? 옷-옷-옷. 아니, 아니야. 시계와 타자기와 정적 사이에는 귀가 하나 있다. 듣는, 커다란, 분홍빛, 죽은 귀. 세 가지 소리는 햇빛과 반짝이는 작은 나뭇잎들의 바스락거림으로 이어져 갔다."
이것이 어린 주아나의 기억 속에 잊히지 않고 남아 있는 한 장면이다. 아버지는 타자기로 시를 쓰고, 딸도 아버지를 흉내 내어 시를 써 보여주지만 아버지는 그리 다정하지 않다. 주아나는 인형 아를레치를 가지고 놀이를 한다.
"아를레치는 파란 차에 치어 죽었다. 요정이 나타나 그녀를 도로 살려냈다. 딸과 요정과 파란 차는 주아나 자신이었고, 그렇지 않으면 그 놀이는 따분했을 것이다."
주아나의 기억 속에서 아버지와 사는 장면은 아주 짧다. 아버지는 가끔 자신을 떠난 여자를 생각한다. 아버지에게 이제는 사소하고 아프지 않은 고통으로, 소리 없는 감탄사 '아!' 순간의 모호한 상념으로 남은 엘자. 딸 주아나를 낳고 자신을 떠나버린 아내.
삼촌 집에서 살다가 기숙학교에 들어간 주아나. 아무리 엄격한 학교라도 선량한 교사는 있는 법이라, 교사가 말한다.
"어쩌면 너는 행복해질 수도 있어." 주아나에게 드는 의문, 의문들.
"행복해지면 얻는 게 뭔가요?" "행복해지면 어떻게 되나요?" "다음엔 뭐가 오나요?" " 행복해지는 건 무엇을 위한 거예요?"
선생은 주아나에게 종이에 이 질문들을 적어 간직하고 있으라고, 훗날 성인이 된 다음에 다시 읽어 보라고 권하지만, 주아나는 대답한다. "싫어요."
이 모든 스토리에서 주아나의 내적 감정이 작품의 9할 이상을 차지한다. 이 감정이랄까, 의식이 함의하고 있는 상태를 표현한 글. 이걸 읽는 일이 그렇게 즐겁지는 않다. 폭풍처럼 쏟아지는 은유가 범위의 제한도 없이 지평선과 수평선을 너머까지 펼쳐지는데, 절반 분량을 읽을 때 까지는 도대체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지 깊은 안개 속에서 더듬는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2부에 접어들 즈음, 이제 눈에 익어서 그랬는지, 익은 게 아니라면 눈이 저절로 떠져서 그랬는지,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름대로 '추리'할 수 있었고, 초장과 비교하면 훨씬 수월하게 읽을 수 있었으며, 그리하여 점점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에 경탄할 수 있었다. 다시 이야기하면, 대책없이 쏟아지는 은유의 폭격, 이것들의 의미를 나는 '추리'할 수 있었을 뿐, 이해했다고는 주장할 수 없다.
쉽지 않았다. 그러나 책 한 권을 읽으면서도 모험을 해보고 싶은 분들은 충분히 한 번 도전해볼 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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