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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복이 어울리는 엘렉트라
유진 오닐 지음, 이형식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19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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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이름 하나만 딱 보고 고르는 책 가운데 유진 오닐이 있다. 오닐의 책은 하여간 눈에 보이는 족족 읽어 치운다. 물론 그렇다고 오닐을 일부러 검색해서 안 읽어본 오닐 어디 숨었나, 뒤지는 수준은 아니고 온라인이나 도서관이나, 현금 주고 사지는 않는 동네 책방에서나 눈에 띄기만 하면 읽는다. 이 책도 우연히 눈에 띄었고, 곧바로 도서신청을 해서 빌려 읽었다.
《상복이 어울리는 엘렉트라Mourning Becomes Electra》라니 당연히 아이스퀼로스의 《오레스테이아 삼부작》을 현대식으로 리메이크 한 것이겠거니 생각했다. 짐작이 맞았다. 아이스퀼로스의 삼부작에는 오레스테스를 주축으로 해 아가멤논의 도착해 그날로 목욕하다가 아내에게 살해당하는 <아가멤논>, 오레스테스가 친모 클뤼타임네스트라와 친모의 정부 아이기스토스를 쪼개 죽이는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그리고 오레스테스가 운명의 여신들에게 쫓기다가 아테나의 설득으로 복수의 여신이 복수를 포기하는 <자비로운 여신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아가멤논 가문(아트레우스 가문)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인류를 넘어서 신화 시대까지 아울러 가장 심한 콩가루 집안으로 세상의 온갖 명예와 부귀와 엉망진창의 가족관계와 죽음과 복수 같은 구토유발 요인을 소중하게 간직한 대단한 집안이다. 그리하여 예로부터 숱하게 많은 작가, 화가, 극작가, 시인 나부랭이들이 아가멤논 가문의 이야기를 차용하여 작품을 만들거나 작품 속에 인용해왔다. 어떤 것들이 있나, 한 번 정리해보려 했으나 다른 건 모르겠는데 내가 미술 쪽에 많이 약해서 양심상 그러면 안 되지 싶다.
오레스테스 중심의 아이스퀼로스 삼부작과 달리 유진 오닐의 삼부작 《상복이 어울리는 엘렉트라》는 무대를 트로이 전쟁에서 확 끌어올려 1865년 미국의 남부 분리독립 전쟁이 막 끝난 시점이며, 장소는 그랜트 장군의 직속부대에서 활약한 육군 준장 에즈마 매넌 장군의 저택이다. 아가멤논 당대와 아들 오레스테스네 집구석의 엽기만발한 칼부림도 막장이지만 아가멤논 윗대의 야단법석이 훨씬 더 막강하다. 그러나 유진 오닐은 현명하게도, 마치 아이스퀼로스처럼, 아가멤논의 윗대에 관해서는 극과 관련이 있는 한 사람에게만 초점을 맞춘다. 신화상에선 아이기스토스, 드라마에선 애덤 브랜트.
전직 판사이자 시장, 현직 육군 준장 에즈마 매넌의 아버지 에이브 매넌 씨는 캐나다 출신의 간호사 마리 브란톰에게 홀딱 빠져 있었다. 그런데 정작 마리와의 연애에 성공한 건 에이브의 동생 데이비드 매넌이었고,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애덤 브랜트. 당시 전세계에서 가장 교조적으로 엄숙한 기독교가 판치던 곳이 미국 동부였던 바, 장자 에이브와 매넌 가문은 (당시엔 하녀 급이었던)한갓 간호사 따위와 연애를 해 아이까지 퍼질러 낳은 데이비드를 파문해버렸고, 그의 상속분은 거의 헐값으로 몰수해버렸다. 세월이 흘러 이제 애덤 브랜트는 세상 멋진 사내가 되었으며, 에이브의 아들, 그러니까 데이비드의 조카이자 애덤의 사촌형이 운영하는 선박회사 소속 플라잉 트레이즈 호의 선장으로 근무하면서 사촌형수인 크리스틴을 유혹하는 데 성공해 틈틈이 뉴욕의 호텔에서 한 시절 당할 여인이 없을 정도로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크리스틴과 뼈와 살이 타는 밤을 만들고는 했다. 아이스퀼로스의 극작품에서 클뤼타임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처럼.
애덤 브랜트는 다분히 캐나다 간호사 출신 천한 계급의 어머니를 욕보인 매넌 가문에 복수하기 위해 사촌 형수를 특정해 유혹한 것으로 진정으로 원하던 복수의 끝은 형수를 매개로 사촌형과 결투 끝에 그의 숨을 끊어 놓는 것이었다. 그러나 벌써 세상은 19세기의 미국. 결투라니, 어림도 없다. 대신 이들의 딸인 라비니아한테도 껄떡거리기 시작하는데, 라비니아야말로 저 신화시대의 엘렉트라가 환생한 인물로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똘똘 뭉쳐 있어 애덤의 유혹은 말 그대로 이도 들어가지 않는다. 뭐 이런 스토리다. 크리스틴은 결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진심으로 남편(이 될) 에즈마 메넌을 사랑했지만, 결혼과 동시에 지긋지긋한 시댁식구들과 시댁 가문의 엄격한 격식, 냉정한 몸가짐 등등에 넌덜이가 나, 시媤 자가 들어가는 모든 것, 시금치 뿐만이 아니라, 시모노세키, 시오노 나나미, 시오도어 루즈벨트도 싫어했는데, 어쨌거나 그러면서도 딸 라비니아와 아들 오린을 생산했다. 그러나 그때 뿐, 이젠 남편 에즈마의 살갗이 닿는 것도 징글징글하다. 대신 빈자리를 애덤 브랜트로 메우고 있는 건데, 아이고, 그냥 이혼을 해버리지, 그냥 참고 살다보니 신화적인 비극이 19세기 미국땅에서도 벌어지고 마는 걸 크리스틴은 몰랐었지.
작품은 전쟁이 끝나고 메넌 장군이 집으로 돌아오는 날 시작한다. 라비니아는 엄마가 브랜트와 뉴욕에서 만나 키스하고 방으로 들어가고, 그곳에서 새나오는 신음소리까지 이미 들어버린 상태. 엄마도 현장을 들켜버렸으니 라비니아한테 이실직고해야 했고, 아빠에 대한 라비니아의 비정상적인 애정을 알고 있는 크리스틴은 저것이 아빠한테 다 일러바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그리스 신화에서는 욕탕에서 따듯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 아가멤논의 얼굴 위에 어두운 천을 씌운 다음 클뤼타임네스트라가 직접 도끼로 머리통을 쪼개 죽이는 반면, 이미 과학의 시대에 접어든 미국에서는 정부 애덤 브랜트가 준비해준 화학의 힘을 이용해 심장병 약이라고 구라를 치고는 독약을 장군의 목구멍으로 넘겨버린다. 신음을 하는 장군, 문 밖에서 엿듣던 라비니아가 문을 왈칵 열어젖히고 방으로 들어오자 아빠는 두번째 손가락으로 엄마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한다.
“저년이 한 짓이야! 약 때문이 아니야!”
어떠셔? 정말 《오레스테이아 삼부작》하고 비슷하다.
그럼 신화에서 오레스테스 역을 맡은 이 콩가루 집안의 아들 오린은? 가문도 좀 문제다. 전쟁이 터져 시장major를 하던 아버지는 장군 계급장을 달고 전장으로 떠났는데 아들 오린은 정말로 참전하기 싫었다. 그러나 엄격한 누나 라비니아는 엄마 크리스틴이 아들 오린을 자기보다 천배는 더 사랑하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가문의 명예와 영광의 지속을 위하여 입대할 것을 강권해 소위 계급장을 달고 참전을 하기는 한다. 전쟁터에서 누구보다 겁이 났지만 여차하면 자신이 지금 겁내고 있다는 것이 뽀록 날까봐, 그래서 가문의 명예에 스크래치가 갈까봐 오히려 더욱 위험한 작전이 벌어지면 선봉에 서겠다고 자원하고는 했다. 그러다가 도가 심해지자 거의 미치는 수준에 임박해 아무도 돌진하려 하지 않는 상황에서 벌떡 일어나 악을 쓰며 돌격 앞으로, 약진을 전개하고, 그걸 바라보던 동료 비슷한 미친 놈들도 함께 으아아악, 하는 비명과 함께 용맹하게 돌격을 감행해 큰 전과를 올리기도 했건만, 행운이 언제나 있는 건 아니라서 머리통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전쟁이 끝났지만 아직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가, 아버지가 지병인 심장병으로 죽었다는 전갈을 받은 후에 머리에 흰 붕대를 칭칭 감은 상태로 집에 돌아온다. 그러나 정작 오레스테스로 읽고 오린으로 발음하는 이 아들은 머리의 부상으로 인한 후유증이 아니라 전쟁 중에 숱하게 겪은 비참한 상황의 기억에 의한 고통, 즉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끔찍하게 시달리고 있다. 그것이 간혹 공격성향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비정상적 사고로 나타나기도 해 오린만 등장하면 얘가 무슨 짓을 할지 독자로 하여금 불안하게 만든다.
유진 오닐의 극작품을 보면 가족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참 할 말이 많다. 이 작품에서도 아버지와 라비니아, 어머니와 오린, 나중엔 라비니아와 오린 사이의 애정이 예사 가족들 사이에서 따사로운 눈길로 기쁘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랑이 아니라 딸이 어머니를, 아들이 아버지를, 동생이 누나의 애인을, 누나가 동생의 애인을 질투할 정도의 사랑이 흔하게 모습을 드러내 당혹스럽다. 뭐 이 작품만 그런 게 아니긴 하다. <느릅나무 아래의 욕망>에서도 그렇고 <밤으로의 긴 여로>에서도 조금 그런 기미가 보인다. 내 생각엔 오닐의 정체성에 문제가 있지 않고, 오닐이 젊은 시절, 청소년 시절부터 그리스 신화와 그리스 극에 깊은 관심을 두어 기본적으로 어딘가에 그리스의 (특히) 비극 요소를 심어두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고전을 읽어두면 이런 것이 편하다. 후에 고전을 인용하거나 변용하거나 리메이크한 작품을 읽을 때 전혀 무리없이 즐겁게 읽을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유진 오닐이니까 이런 대작을 뉴잉글랜드 지역으로 바꾸어 공연시간이 무려 다섯 시간이 넘는 작품으로 새롭게 만드는 것이지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닐 듯하다.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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