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을유세계문학전집 124
에두아르트 폰 카이절링 지음, 홍진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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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 하인리히 에두아르트 나콜라우스 그라프 폰 카이절링, 우리말로 적절하게 번역하자면 카이절링의 백작 요한 하인리히 에두아르트 니콜라우스, 이 정도 될까 싶다. 북부 저지 독일 사람으로 지금 지명을 굳이 따지자면 발틱 지역인 라트비아의 남 쿠를란트 행정구역(municipality)에 있는 파데른 성castle에서 독일계 귀족 가문의 문제아로 1855년에 태어났다. 왜 이 양반에게 “문제아”라는 딱지를 붙이느냐고? 말씀드리지. ① 귀족 가문의 자재로써 19세에 에스토니아의 타르투 대학에서 법학과 미술사, 철학을 공부한 것까지는 합당하다 쳐도, 3학년 때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퇴학을 당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있지? 없다. 당신이나 나나 그냥 평범한 가정의 평범한 자식이라면 그럴 수 있지만, 당당한 귀족의 자재가 불미스러운 일로 퇴학을 당했는데 얼마나 불미스러운지 카이절링 가문에서 퇴학 사유도 비밀에 부치게 만들어야 했을 만큼 중한 것이었으며, 하물며 이 일 때문에 지역 귀족들 사이에 따돌림을 당해 급기야 시골로 내려가 어머니의 영지를 관리해야 했다니 이게 문제아 사유 1번. 이 책에 세번째로 실린 단편 <무더운 날들>의 화자인 ‘나’, 빌은 대학입학자격시험에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낙방의 고배를 마셔서 어머니와 누이들과 여름을 보내지 못하고 엄한 아버지하고 지내야 하는 것으로 설정했는데 이 때 경험을 오늘에 되살렸는지도 모른다. ②. 카이절링이 오스트리아에서 머무르면서 명성을 떨치지는 못했지만 작품활동을 하다가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서른일곱 살 먹은 1892년에 다시 고향 쿠를란트로 돌아가 지내기 시작했는데 고향집에 머물고 일년 만에 심각한 척수병에 걸려버려 몰골이 영 말이 아니게 되어 버린다. 그래서, 암만봐도 이이의 대표작이라고 하는 조금 짧은 장편소설이자 이 책의 표제작이기도 한 <파도>에서 중요한 조연으로 등장하는 추밀고문관 크노스펠리우스가 척추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소위 “꼽추”인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짐작한다. 척수에 문제가 생긴 건 서른여덟 살, <파도>를 쓴 게 쉰여섯 살이니 그럴 수 있겠다. 19세기 말의 귀족 계급이라 스스로 일 하지 않고도 여유있는 생활을 보장받을 정도의 영지가 있던 카이절링은 유력한 문화계 인물들과도 교류하고 여행도 다니면서 건강만 빼고 즐거운 생을 살았을 거 같지? 아무리 귀족이라도 인생은 결코 즐거운 게 아니라서, 젊은 시절 잠깐 혹은 ‘잠깐’들이 워낙 잔뜩 모여 있어 ‘늘’ 방탕한 생활의 결과로 쉰 살이 넘어 매독증세로 인한 것이 거의 확실하게 그만 시력을 잃게 된다. 그러니 쉰세 살 이후에 발표한 작품은 구술로 지었다고 봐야 하는데 이 목록들 가운데 하나가 대표작 <파도>다. 아무리 눈이 보이지 않아도 살 수 있으면 살아야 하는 게 인생. 이이는 이후에 십 년을 더 살고 9월, 가을이 쳐들어온 1918년, 예순세 살의 나이로 뮌헨에 묻힌다. 더 이상 푄 바람이 불지 않을 때였다.


​  《파도》는 첫번째와 세번째에 긴 단편, 혹은 중편 또는 노벨라 정도의 분량으로 쓴 <하모니>와 <무더운 날들>을 배치하고 이들 가운데 짧은 장편 혹은 노벨라 정도 분량의 표제작 <파도>를 실었다. 그래서 본문만 360쪽. 불과 세 편의 작품만 가지고 이 높으신 카 백작의 작품세계가 이렇다 저렇다 말씀드릴 건 없고, 아마추어 주제에 소설책 한 권 읽고 작품세계 운운할 주제도 되지 않을 뿐더러, 하여간 그리 길지 않은 것들이라 스토리가 아닌 순수 읽은 감상으로 독후감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러다 책 뒤에 실린 역자, 서울대 독어독문과 교수 홍진호의 해설 첫 문장을 읽고 눈이 팍, 떠지는 것이 어떻게 이리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멋있는 문장 하나로 딱 매조지 했는지, 굳이 더 첨언을 해야 하나, 난감하게 됐다. 한 번 보자.


  “세기말 몰락의 정서를 묘사한 독일 데카당 문학의 대표 작가 에두아르트 폰 카이절링은 철저하게 통제된 유미주의적 삶을 살아가는 귀족들이 내적으로 붕괴해 가는 과정을 통하여 노쇠한 문명의 몰락을 묘사했다.” (p.365)


​  흠. 역시 나하고는 가방끈 길이에서 차이가 난다. 나는 죽어도 이렇게 쓰지 못할 거 같다. 이 비슷하게라도 쓸 수 있기 위해서라면 얼마나 더 책을 읽어야 할까? 아이고, 안 그러고 만다. 역자 홍선생은 공부로 책을 읽은 양반이고 난 즐겁자고 읽는 인간이니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부럽지도 않다.

  저 한 문장이 포함한 단어 가운데 내가 쓰고 싶었던 것이 “세기말 몰락의 정서”, “데카당” 그리고 “유미주의”이며, 아마 부정적 의미로 “귀족”이란 말도 꼭 하고 넘어갔으리라. “내적 붕괴”나 “노쇠한 문명의 몰락” 같은 건 꿈도 꾸지 못한 구절이다. 근데 그것도 읽는 순간 단번에 접수가 되니, 우짜냐, 사람은 이래서 배워야 하는 거다.

  세기말과 데카당, 그리고 유미주의라고 했으니 카이절링의 작품은 작가와 독자가 서로 궁합이 맞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독일 문학이라 세기말 데카당과 유미주의적 충격이 프랑스 데카당의 선구자 조리스-카를 위스망스의 작품들에 비하면 접수하기가 한결 편하지만 그래도 세기말 데카당은 합이 맞지 않으면 읽기가 매우 불편한 건 사실이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이 장르를 열광하지는 않으나 거부하지도 않아 카이절링을 흥미롭게 읽었으며, 재미없는(농담이다, 농담!) 독일문학이란 특징이 오히려 프랑스의 데카당 적 엽기만발을 순화시켜 읽기가 훨씬 부드럽고 편했다. 앞으로 세기말 데카당 문학이라 하면 위스망스 대신 카이절링을 이야기할 거 같을 정도로. (그런데 유명한 인상주의 화가 로비스 코린트가 그린 카이절링의 초상화를 본 순간, 익숙한 얼굴이라 이이의 다른 작품도 읽어본 거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아마 희곡이었을 듯, 그게 뭔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만일 별 다섯 개 만점으로 점수를 준다면, 위 문단에서 얘기했듯이 부정적 의미로 “귀족”이 하도 많이 나와, 작가가 이 동네 출신이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그게 지긋지긋해서 반 개 정도 디스카운트, 네개 반을 주고 싶은데, 에이, 좋은 게 좋다고 별 다섯 개를 줄 생각이다.


​  명색이 독후감이니 스토리도 어느 정도 써야할 거 같은 강박이 좀 생긴다. 이거 참. 세 작품 다 흥미롭게 감상했고, 세 작품 모두 세기말 데카당 문학이라 우울하고, 단절되고, 퇴폐적이고, 이것들을 다 합쳐서, 이렇게 얘기하면 안 되는 줄 알고도 이야기하면, 세기말적이다. 그래서 모두 작품 가운데 중요한 사람 하나, 더도 아니고 딱 한 명씩 죽어야 끝난다. 남자 둘, 여자 하나가 죽는다. 누군지 일러드려? 아이고 그렇게는 못하지. 또 있다. 세 편 다 극도의 귀족 부르주아들만 주인공이다. 두번째로 실린 <파도>가 제목이 파도라서 저 영국의 버지니아 울프가 쓴 대단한 <파도>를 생각하지 마시라. 울프도 부잣집 아가씨, 도련님이 등장하는 <파도>를 썼으나, 카이절링의 <파도>의 주요 배역들과 비교하면 미주알이 찢어지는 집안의 아이들이다. 아, 급이 다르잖아, 급이. “그라프 폰” 가문인데. 성castle에서 산다니까. 내 큰 아이 전세 사는 롯데 ‘캐슬’ 말고 진짜 ‘성城’. 몇 년 동안 신나게 놀고, 바람피고, 술마시고노래하고춤추고, 지내다가 질리고 질려서 집(성)에 돌아오면 곧바로 영지를 둘러보며 소작인들을 어떻게 쥐어짤까, 궁리할 수 있는 인간들의 세기말적 고뇌. 안나 카레니나 비슷하게 서른 살 많은 백작 내팽개쳐 이 충격으로 늙은 남편한테 심부전이 오거나 말거나 자기 초상화 그리러 온 화가와 눈이 맞아 발트 해안의 초라한 어부의 집을 빌어 작업실을 꾸린 커플, 시골 촌구석에 박혀 사랑에 눈을 뜨는 바칼로레아 낙방생 부르주아 자재 등등. 이거 하나가 아쉬웠다. 대중의 삶이 안 보이는 거.

  그래도 좋은 건 좋은 거다. 만날 대중의 삶만 쓸 수 없듯이 만날 대중의 삶만 읽을 수도 없잖여? 그잖여? 카이절링의 다른 작품이 나오면 또 읽어버리고 말리라. 오늘 독후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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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3-03-21 06: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세기말 데카당 문학은 <파도>! 기억해 두겠습니다. 데카당 문학이지만 독일이라 그래도 좀 점잖다니 저도 맘에 드네요. ㅎㅎ

Falstaff 2023-03-21 11:57   좋아요 0 | URL
세기말 소설들은 개인적인 호오에 상당히 영향을 받습니다. 아무쪼록 심사숙고하셔서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

수이 2023-03-21 07: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침부터 배꼽 잡고 웃었잖아요, 골드문트님한테 또 낚였다 🤪

Falstaff 2023-03-21 11:57   좋아요 0 | URL
흠. 제가 또 낚시를 했군요. ㅋㅋㅋㅋ
재미나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건수하 2023-03-21 1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일 소설.. 농담 아닌 거 같지 말입니다.. ㅎㅎ

Falstaff 2023-03-21 12:01   좋아요 1 | URL
트라우마....가 있어서요. 오래 전에 러시아어로 노래하면 재미없다, 했는데 그걸 러시아어를 전공한 양반이 보고는 을매나 뭐라 하든지요. 행간을 읽어보면 그때도 농담으로 한 건데, 하여튼 이후로 이런 표현은 자제하고 있거든요.
그리하여 재미없는 독일문학이라고 쓰긴 썼지만 여전히 캥긴단 말입니다. ㅋㅋㅋ

stella.K 2023-03-21 18: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름이 너무 깁니다. 오래 살았나 모르겠어요.
물론 울나라엔 수완무 삼천갑자 동방삭이란
전설같은 이름도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ㅋㅋ

Falstaff 2023-03-21 21:33   좋아요 1 | URL
ㅎㅎㅎ 그 전설, 정말 배꼽을 잡았었는데요. 당시 구봉서와 배삼룡이 이 작품하고 또 돈 주고 양반 산 인간들이 혼사를 맺고 서로 수인사하는 장면, 별 밑에 인사법! 하는 것도요. ㅋㅋㅋㅋ 귀족들은 모계 성도 이름에 포함시키고는 했더라고요. 부계와 모계가 얼마나 뻑적지근한지 자랑할 겸 해서 그랬던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