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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가토 - 2012년 제45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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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의 <레가토>는 생각지도 않게, 나를 쓸쓸하게 했다. 그리고 33년 동안 틈만 나면 도리질을 하게했던 그것을 고백해야 하지 않겠느냐, 라고 채근했다. 주인공 조준환의 말대로 그 "개 같고, 씨발 좆같아" 하나도 아름답지 아니했던 청춘의 골방을. 그렇구나. 그때 그들처럼 나도 청춘이었구나. 눈부시기는커녕 누군가가 세차게 오줌을 갈긴 개골창에 빠져 흠뻑 젖어있었던 불멸의 황금시대. 어느 때보다도 엿같았던 황금시대 말이다. 그러나 고백하지 않기로 했다.
이 책을 읽고나서 나는 망연자실했다. 어느 종교에 의해 파문당한 듯한 고립감. 그것보다 더 크게 심장을 저미는 무감각의 통증. 나보다 먼저 화장장의 화염으로 불태워버리고 만 33년 전의 수치스러움. 결코 추억이라고 말 할 수 없는. 오랜만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주인공 박인하가 눈에 밟혀서.
그들은 세월이 흘러 야당 국회의원이었다가 물을 갈아타 빛나는 여당의 중견 의원이 됐고, 피라미드 업체의 더블 다이아몬드가 됐으며 조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임원으로 휴일마다 라운딩을 했고, 대학에서 학과장 쯤의 타이틀을 후광처럼 둘렀는데, 삼십 여년 전의 원죄를 홀로 뒤집어 쓴 것 같은 나는 아직까지 그들을 즐거이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다. 모임에 좀 나오라는 권유를 들을 때마다 나는 여전히 콧방귀를 뿜어댄다. 다시 조준환의 말대로 "개같고 씨발 좆같은" 눈부셨던 때의 좌표를 조금씩 망각해 나가는 게 인생이 아니라는 고집은 나를 외롭게 한다. 볼셰비키는 무너졌고, 인민민주주의 공화국에선 인민들이 굻어죽어간다. 좌표는 바뀌는 것이지 버리는 게 아니다, 개새끼들아. <레가토>의 주둥이만 산 등장인물 새끼들아. 작가 권여선, 너를 포함해서.
다시 책으로 돌아와.... 시간을 보내고난 다음 숙고해본다.
이거? 속이 빤하게 보인다. 등장인물들이 자진해서 그들의 삶을 걸어간다기 보다, 작가의 구성에 따라 이미 정해진 길을 따르는 게 눈에 훤하다. 읽는 동안은 몰랐다. 내 시절 이야기는 터무니없이 날 몰두하게 해 그들이 또각또각 발자국을 찍어가는 포장도로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게 만들었다.
그러니 내 또래의 독자들은 재미나게 읽을 수 있으리라.
후배들은 이것들로 인해 천하에 못나고 기만적인 선배들의 모습을 안개 속에 넣고 환상을 품을 수도 있으리라.
난..... 더 이상 이런 글은 읽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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