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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 지음, 임말희 옮김 / NUN(임말희) / 2022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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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랍비의 아들로 태어난 전형적인 아슈케나지. 예루살렘에서 핍박받아 전 세계로 흩어진 유대인 가운데 한 시절엔 대다수라고 표현해도 될 만큼의 많은 인구가 홀리 로만 엠파이어, 신성로마제국으로 흘러 들어갔다. 유럽인 입장에서 유대인들은 엄연히 이방인, 외국인이었고, 유대인 스스로도 이를 충분히 자각하여, 여차하면 쫓겨날 것임을 기원 시절부터 이미 각오했다. 그들은 그리하여 토지를 구입하지 않았고, 이는 농경이나 목축 같은 일에 종사하지 않아 대부분 도시인이었다는 것과 연결이 된다. 세상 누구나 먹어야 사는 법. 이들은 대신 작은 규모의 제조업을 종사하다 워낙 장사에 소질이 있어서 그게 점점 커지면 또 원주민 귀족이나 유력자에게 시장을 약탈당해버린다. 그러나 세상에 시장이 멈추는 경우는 없어서. 이들은 다시 다른 업종에 종사해 해당 업종을 크게 융성시키기에 이르고, 그러면 또다시 약탈당하는 악순환을 연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유럽 전 지역에서 유대인으로 살기 위하여는 자신이 유대인임을 알리지 않거나 모르게 한 채 제조업을 하거나, 부동산을 소유하지 않는 사업인 고리대금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후에 19세기로 접어들면 부동산을 소유하지 않는 다른 직업인 악기 연주까지 폭이 넓어지지만. 그리하여 이 유대인들은 고리대금업과 제조업으로 큰 돈을 번 반면에, 인구의 대부분이 농업과 전쟁의 징병에 종사하는 바람에 일만 허벌나게 하고 평생 가난에 찌든 유럽 본토인이 보기에 심하게 배가 아팠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다. 청나라 말기에 조선으로 유입해 들어온 중국인들이 특유의 상술로 어중간한 부자가 되자 평소에 이를 아니꼽게 생각했던 조선인들이 1931년 7월에 길림성에서 만보산(완바오 산) 사건이 나고, 이를 조선일보가 과장해 보도하자 한 달 만에 조선반도 안에서 중국인 127명을 때려죽이고 근 4백명에게 부상을 입힌 일이 있다. 이 당시 폭행에 관해서 들었던 이야기가 하나 있다. 변발을 한 청나라 사람 뒤에 가서 변발을 잡아 확 잡아 채버리니까 머리카락 뭉치가 그대로 쑥 빠져버리고 털구멍마다 몽글몽글하게 핏방울이 배 나오더란 것. 훗날 진심으로 그리스도를 모시던 분한테 아주 오래 전에 들은 이야기다. 적어도 그분은 자신이 당시의 그들 가운데 하나였다고 반성은 하셨지만 반성 하나로 위안을 삼을 수는 없다. 모든 차별과 혐오는 없애거나 적어도 참아야 할 텐데, 쉽지 않은 거 같다.
이렇게 유럽 전역에서 미움을 받던 유대인. 미움이라는 건 전염성이 강하다. 그래서 함부로 사람을 미워하면 좋지 않다. 유럽인에게 미움을 받으니 유럽 근동에 있는 민족들도 유대인 알기를 우습게 알게 되고, 심지어 지금 지명으로 우크라이나 혹은 그 동쪽에 분포해서 살던 난폭한 유목민 카자크 사람들도 그랬다. 때는 1649년, 이 카자크의 최고 지도자인 헤르만의 자리에 있던 보흐단 흐멜니츠키가 51년까지 두 해 동안 폴란드를 침공해 나라를 거의 도륙을 냈는데, 유독 유대인들만 눈에 띄는 족족 갖은 잔인한 방법으로 학살을 했다. 야만인들이 유대인을 골라 죽였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맞다. 유대인이 현금이나 귀금속, 보석 같은 것을 보통의 지역민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고, 스스로를 이스마일의 후손이라 여겨 무장을 하지 않는 유대인을 치는 것이 더 쉬우면서도 경제적이었을 터이니까. 그런데 최근까지도 약탈혼을 풍습으로 했던 카자크 사람들이 워낙 독해 학살을 해도 너무 많이, 너무 잔인한 방법으로 죽였다. 적어도 이 책에서 싱어가 묘사한 것이 진실이라면. 이 당시 카자크인의 학살이 가장 극렬하게 벌어졌던 요세포프 시에 학당 선생으로 일하던 야곱이란 지식층 유대인이 있었는데, 흐멜니츠키의 침공으로 아내 젤다 레아와 세 아이들을 잃고 자신은 황망하게 홀로 도망했다. 그러나 불운의 별은 폴란드 강도에게 붙잡히게 만들었고, 강도들은 유대인은 노예로 삼을 수 없다는 폴란드 법이 전혀 통하지 않는 저 산골지역으로 끌어가 선량한 농부 얀 브직의 노예로 팔아버린다.
문제는 더부룩한 머리와 수염, 무릎 아래에서 찢어져버린 바지와 맨발에도 불구하고 훤칠하고 잘 생긴 외모의 노예를, 남자들은 기회만 생기면 죽이려 했고, 여자들은 틈만 나면 그의 아이를 낳고 싶어 했다는 점. 하지만 야곱이 누군가. 노예 생활하는 야곱? 비슷한 누가 유대인 역사책에 있다. 책의 야곱보다 3천 살 가량 더 먹은 옛 야곱은 7년씩 두 번 하인 노릇을 한 대가로 자매 둘, 라헬과 레아를 얻어 혼인한다. 17세기 야곱은? 5년 동안 노예생활을 하다가 설마 그냥 거기서 죽겠는가? 그러면 소설이 안 되니 여인을 하나 등장시키는데, 폴란드 산골 이름으로 완다요, 나중 이름은 사라이고, 과부다. 고지 독일어 쓰는 지역의 여성 이름으로 완다, 반다가 자주 등장한다. <노예>의 여주인공도 이들과 마찬가지로 예쁘게 생기지는 않았지만 잘 생기고 신체 건강하고, 웬만한 남자 하나는 돌려차기 한 방으로 날려버릴 만큼 튼튼하고, 남자 주인공 야곱을 사랑한다. 야곱도 완다에게 욕정을 느낀다. 그러나 야곱을 덮쳐버리는 주인집 딸 완다를, 본인도 신체의 한 구석이 터져버릴 것 같이 팽팽해서, 엎어져 있을 때 누가 머리통을 슬쩍 건드리기만 해도 그걸 중심으로 한 바퀴 뺑 돌아버릴 것 같은 걸 불구하고 완곡하게 밀어낼 만큼 경건하고 지독한 유대교 원리주의자다. 십계명을 어기는 일. 정말? 이웃의 아내도 아니잖아? 간음하지 말라고? 그거 말고, 이교도하고 몸을 섞지 말란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 가운데 하나다. 이교도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는 건 괜찮아도, 그리스도교인이 유대교로 바꾸면 사형이다. 유대인이 그리스도교도와 결혼하면 폴란드 법으로 유대인은 화형 그리스도교인은 교수형, 유대법으로는 결혼 자체가 무효이며 유대인 사형, 그리스도교인 추방. 그러니까 유대인은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과만 혼인할 수 있다.
그리고 주인공 이름이 야곱이면 하나 더 남았다. 천사하고 씨름해서 절름발이가 되어야 하는 일. 그것까지 따라 하느냐고? 안 알려줌. 또 하나 남았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돌아가기 전에 사랑하고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죽어 묻혀야 한다. 나중에는 재상까지 해먹지만 아들을 애굽의 노예로 보내야 하는데, 그것도? 안 알려줌.
이 책은 참 드러운 책이다.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 다시는 읽지 않으리라. 그의 전작으로 미루어 나는 이이의 "희생자의식 민족주의"가 나름대로 타당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건 수원 밑에 병점 찍고, 오산이었다. 골수 유대 원리주의자. 물론 폴란드 국민, 그것도 두메에 살고 있는 농노 계급에 국한해 말하고 있지만 작품 전체를 보면 그들 뿐만 아니라 유럽인 전체에 대고 하는 말이란 것이 거의 분명해 보인다. 여자는 열두어 살에 결혼을 해서 남편의 아이 하나와 사생아 두엇을 낳고, 열한 살에 친오빠에게 강간을 당한다. 친아빠하고는 서로 좋아 애인 관계가 되기도 하고. 귀족이라고 다르지 않아서 남편이 여편에게 여편의 애인을 조달해주고 아내로부터 그들이 관계를 어떻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쾌감을 느끼는 변태. 촌놈들은 결국 천국으로 갈 선량한 농부 얀 브직 한 명을 빼고 나머지는 몽땅 술주정뱅이에 가정폭력을 취미생활처럼 한다. 반면에 유대인은 비록 이들 사이에도 사기꾼도 있고, 협잡꾼도 있고 뭐 그렇지만 폭력은 절대 쓰지 않으며, 진심으로 주님을 모시고, 삼강오륜 알기를 신주단지처럼 귀하게 품고 다니는 인종들이다. 그야말로 유럽 강아지들과 씨앗 자체가 다르니, 유대는 이스마일의 후손이요, 이교도라고 불리는 유럽 강아지들은 아즈라일의 후손이다. 그리하여 유대인 대장장이가 만든 칼로 얻어 맞고 베이고 잘릴지언정 그들은 칼을 쥐지 않는단다.
특히 산악에 사는 목동들의 야만스러운 행위를 소개하면서 상상하기도 어려운 패륜과 패역 등을 나열한 후, “이 야만인들은 수천 년 전 우상숭배의 뿌리가 남아 있다.”면서 “주님이 모세에게 죄 없는 어린 애굽 아이들까지 멸절시키라고 한 의문”이 풀린다고, 주님과 같은 마음으로 산골 목동들을 향해 이렇게 주장한다.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 이 유대 나치, 더럽게 늙은 자는.
“이것들은 불로 사르는 수밖에 없다.”
자신의 종족이 가스를 마시고 태워져 연기로 굴뚝을 타고 천국에 들어갔다고, 그게 불과 20년도 되지 않았는데, 게다가 자기 입이 뚫렸다고, 사람이 되어 이렇게 말할 수 있나? 이건 미친놈 아닌가 말이지. 싱어, 이 인간이 거대 권력을 쥐었다면 독일 아리안 족들을 몰살 해버렸을지 어떻게 아는가? 히틀러하고 사고방식이 비슷한 도라이 아냐 이거? 여태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를 좋아한 내 자신이 싫다. 이런 작자에게 문학상을 준 스웨덴 한림원도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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