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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루시 바턴 ㅣ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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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순 무렵. 다섯 살, 여섯 살, 연년생 두 딸의 엄마 루시 바턴은 맹장수술 후 염증 증세가 심각해져 무려 아홉 주 가량 병원에 입원했던 적이 있다. 조부모와 세 분의 친척 아주머니가 수용소에서 학살당한 유대인 담당의사로부터 자상한 치료를 받고 있었지만, 열네 살 때 독일군 병사 출신인 아버지가 병원에서 숨을 거두는 바람에 병원에 오기를 매우 꺼려하는 남편 윌리엄은 일리노이주의 벽촌 앰개시 마을에서 남편 그리고 중년에 접어든 아들과 함께 살고 있던 루시의 어머니에게 뉴욕까지의 항공료, 공항에서 병원에 가는 택시요금을 보내주고, 오셔서 자기 대신 딸 좀 보살펴주시라, 장모를 호출한다. 이렇게 모녀는 정말 오랜만에 만남의 닷새를 보내는데, 심지어 루시-윌리엄 부부의 결혼식 때 마저 루시의 가족은 아무도 참석을 하지 않았던 터였다.
왜 그랬을까? 어떤 의미에서 <내 이름은 루시 바턴>, 이 책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 PTSD에 관한 소설이다. 17세기 초, 최초로 대서양을 건너 매사추세츠주의 플리머스에 정착했던 청교도였다가 세월이 흘러 이 가운데 용맹한 사람들이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서쪽으로 영역을 넓힌 소수의 대열이 있었고, 이들은 한 편으로 원주민을 학살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그들을 기만하고,사기를 치고, 뒤통수를 때렸으며, 위스키로 현혹해가며 광활한 농장을 개척하였지만 모든 이가 다 그랬던 것은 아니라서 이 가운데 극히 일부는 같은 청교도 후예들의 하부 구조를 담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 가운데 바턴 씨도 있었다. 바턴 씨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돌아와 일리노이주 앰개시 마을에 정착해 지독하게 가난하게 살았으며 혼인 후에도 삼촌의 집에 딸린 차고를 조금 보수해 그곳에서 살았다. 그는 농기구를 수리하는 기술자로 종종 농기구수리점에서 해고를 당했지만 며칠 후 다시 고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아 좋거나 훌륭한 수리 기술을 보유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의 아내는 바느질을 해 마을사람들의 옷을 지어주고 삯을 받아, 안팎으로 벌이를 해도 아들, 딸, 딸로 구성된 세 남매는 종종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다고 기억한다. 이들은 작은 시골마을에서도 지평선까지 다른 집이 거의 없는 옥수수 밭 가장자리에 살았으며, 삶의 고단함은 부모로 하여금 때때로 아이들에게 충동적으로 매질을 하게 만들었다. 주로 엄마가. 이런 집안의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환영받지 못해 학교 친구들은 남매들을 보면 코를 쥐는 시늉을 하면서 “너희 식구들한테서는 냄새가 나!”라고 놀려댔으니, 또래에 의한 가혹한 말의 회초리는 남매들에게 평생 짊어지고 다닐 수밖에 없는 상처를 남겼을 수밖에. 비록 지금은 아니라고, 그렇게 크게 아프지 않았다고 기억한다 하지만.
말이 없고, 제스처도 없고, 터치도 없는 아버지 바턴 씨는 전쟁 당시 독일에서 갑자기 독일 청년 두 명을 마주친 적이 있는데, 화들짝 놀란 바턴 씨는 도망가는 그들의 등을 향해 총을 발사했으며 이들은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바턴 씨가 다가가 시신을 똑바로 돌려놓자 그들이 생각보다 훨씬 젊은 청소년들이었고, 군인은 물론 아니고, 청년도 아직 채 되지 못한 이들을 죽였다는 죄책감은 그를 더욱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이끌었으나, 당시엔 참전 후유증에 관한 연구도 없었고, 사례도 (많이는) 보고되지 않았으며, 그리하여 당연히 인정받지도 못했다. 바턴 씨는 전쟁이란 폭력 속에서 자신이 직접 가한 폭력과, 전투 중 수도 없이 목격했을 피폭력과 위험상황을 경험하는 물리적/직접적 외상을 겪었으며, 이 후유증으로 발생한 사회부적응은 이이가 가정을 이룬 다음에 차례로 아내와 아이들로 하여금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정서적 내상을 입게 만들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가운데 막내 루시. 처음에는 추운 것을 싫어해 학교가 파한 후, 집에 가봤자 보온을 하지 않은 추운 집에서 덜덜 떠는 것보다, 중앙난방이 되는 교실에서 숙제를 다 하고, 교실의 학급도서를 어두워 글자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아 이게 습관이 되었는데, 즉각 숙제를 하고, 책을 읽는 일을 몇 년 하는 바람에, 비록 가족 가운데는 좋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지만, 학교를 마칠 때는 전액, 전 학년 장학생으로 시카고 소재 대학 입학 자격을 따버리게 됐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에 진학하고, 공부를 하고, 두 번째 사랑을 해 스무 살에 윌리엄과 결혼해서 딸 둘을 낳고 키우다가, 맹장염 후유증으로 입원을 하고 나서야 정말 오랜만에 모녀는 상봉한다. 남편 윌리엄의 아버지 역시 2차 세계대전에 참전은 했지만 독일군으로 미군에게 잡혀 동부 해안에서 감자를 재배하는 노역을 하다가 한 유부녀와 사랑을 했던 사람. 종전이 되자 독일로 돌아갔다가 연인을 잊지 못해 다시 미국으로 와, 유부녀와 야반도주를 감행해 매사추세츠에 정착한 이였다. 이 사실을 알고 바턴 씨는 독일인과 만나는 일을 피하기 위해 막내딸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던 거였다.
루시를 제외한 바턴 가족은 여전히 일리노이 주 앰개시 마을 또는 이 근방에 살면서 아직도 아버지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에서 비롯한 집단 PTSD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예가 오빠. 1980년대 중반에 나이 서른여섯의 미혼이며 직장이 없고, 저 지평선 가까이에 있는 피더슨 씨네 헛간에서 내일 도살장에 끌려갈 돼지들 옆에서 밤을 지새우면서 농촌마을을 배경으로 마음씨 좋은 가정의 꼬마 아가씨가 주인공인 동화적 소설을 주로 읽으며 지낸다. 책 뒤편에 오빠가 루시를 만나는 장면을 보면 그리 이상한 성격은 아닌 듯하지만 이이 역시 사회부적응 기질이 있는 건 분명하고, 더구나 시골 마을에서 어머니의 속내의와 하이힐을 신고 읍내를 활보하여 자신이 게이라는 걸 만방에 고한 바 있어 더욱 외톨이가 되었을 수 있다. 그나마 나중엔 아버지와 같은 직업인 농기구 수리 기술자로 일하며, 아버지와 달리 수시로 해고당하는 일은 없다고 하니 아주 느린 개선 또는 회복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의 개선 또는 회복.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방법으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꼽은 건 사랑이다. 그리하여 소설은 필연적으로 사랑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내용의 소설은 주변에 많이 있지만, 별로 특별하지 않은, 어쩌면 상투적인 스트라우트에게 많은 독자들이 감탄하는 것은, 이이의 독특한 감수성을 잘 담아낸 그릇, 문장이 아닐까 싶다. 한 방향으로 가면서 에피소드들조차 방향에 어긋나지 않으며 극한의 가난과 고통과 외로움과 다툼 같은 것을 부정하지 않는 솔직함. 이런 누추함의 적절한 배치가 독자를 아리게 만들었음이 틀림없다. 스트라우트는 루시 바턴의 딸들에게도, 이런 상처까지 상속된다는 것을 구태여 밝히고 있다. 어차피 사는 일이 상처를 치유하고 또다른 상처를 입히는 것임을 잊지 말라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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