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담 비드 1 ㅣ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10
조지 엘리엇 지음, 유종인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07년 9월
평점 :
.
무려 5년에 걸쳐서 조지 엘리엇의 <아담 비드>를 국내 최초로 완역한 전 한양대 영문과 교수 유종인은 책의 제일 앞에 「소개의 글」을 첨부했다. 많은 독자들이 서문 격의 글에 별 관심을 두지 않고 곧바로 본문을 읽기 시작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기 위해서라면 웬만하면 「소개의 글」을 먼저 읽어 두는 편이 좋겠다. 특히 나처럼 기독교에 관심이 없는 독자라면 더욱 그러하다. 작품의 무대가 1799년 6월부터 1807년 6월까지 약 8년에 걸친 시기의 영국 중북부 농촌지역이었는데, 갓 태동한 감리교단에 의한 개혁적 사고방식과 특히 여자 설교자의 강연 등의 활동, 그리고 국교회와 감리교를 대하는 도농都農 간의 시각 차이를 염두에 두고 책을 읽는 것이 훨씬 이해하기 좋을 것이라 판단하기 때문이다. 물론 「소개의 글」 속에 스토리의 일부를 미리 짐작할 수 있기도 하지만 역자 유종인은 절묘한 트릭을 숨겨놓은 채 서문 격인 「소개의 글」을 썼다는 것만 귀띔한다.
스토리의 80 퍼센트 이상이 펼쳐지는 농촌 헤이슬롭 마을은 사실상 대지주이자 귀족인 도니손 가문에 속한 소작농장과, 소작농장주에 고용된 인부, 마을의 각종 소상공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1799년 6월의 어느 날, 큰 규모의 소작농장을 운영하는 포이저 씨 댁 스무다섯 살 처조카이자 감리교 여자 설교사이기도 한 다이나 모리스 양이, 마을의 그린 광장에서 농촌에는 별로 많지 않은 감리교도들을 모아 놓고, 당시가 그랬듯 즐길 일이 별로 없는 시골마을 답게 많은 국교도들도 마치 무심한 척 구경하고 있는 가운데 거리낌 없이 당당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나누어 주는 듯한 눈빛을 한 채, 순백의 꽃잎에 뽀얀 색조가 살짝 가미된 하얀 꽃을 연상시키는 얼굴로 설교를 했다. 조지 엘리엇에게는 엘리자베스 에번스라는 이름의 독실한 감리교도 여자 설교사인 친척 아주머니가 있었다. 메리 보스라는 어린 미혼모가 자기가 낳은 아이를 죽여 영아살해죄로 사형 선고를 받자 엘리자베스 아주머니는 감옥으로 메리를 찾아가 죄인과 함께 밤새 기도로 지새우고 형장에까지 동행했다고 한다. 작품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다이나 모리스 양의 모델이 바로 엘리자베스 에번스다.
또다른 주인공이자 작품의 타이틀 롤인 건장한 체격과 완력을 지닌 미남 목수 아담 비드는, 자신이 여태 모은 돈을 전부 써서 나폴레옹 전쟁에 징집당하는 것을 막아준 동생 세스가 감리교로 개종했음에도 여자 설교사에 대해 마땅하지 못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도 비록 인파에 섞이지는 않았지만 마을의 대표 목수 버즈의 목공소에서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던 길에 먼 발치에서 다이나의 연설을 듣고 있었다. 이때 우연히 말을 타고 현장을 지나던 나이든 신사는, 국교도임에도 먼저 설교사 다이나의 훌륭한 연설에 깊게 공감을 하고, 많은 인파 가운데 단연 눈에 띈 건장하고 선량해 보이는 아담 비드의 모습에 경탄한다. 이 나이든 신사의 정체는 책의 가장 끝 부분에 가야 밝혀지는 바, 치안판사 코노렐 타운리였다. 당연히 타운리 판사, 다이나 모리스, 아담 비드는 판사의 정체가 밝혀지는 책의 뒷부분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조지 엘리엇은 자신의 아버지인 로버트 에번스를 모델로 삼아 아담 비드를 디자인했다고 한다. 어렸을 적 이름이 메리 앤 에번스였던 조지 엘리엇 역시 작은 농가 출신으로 완전한 독학으로 공부를 해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의 반열에 오른 인물. 이이는 거의 완벽한 남자 주인공으로 아담 비드를 만들었다. 기골이 장대하고 근육질에다가 꼿꼿한 척추를 지닌 색슨 계 6피트 키의 남자. 겨우 180cm? 18세기 말에 180이면 지금 키로 얼마나 될지 상상해보시라. 여기에 깊숙한 바리톤 목소리, 멋진 육체, 잿빛처럼 까만 머리카락, 선이 분명하고 날카로운 눈엔 북부 켈트 혈통도 좀 섞여 있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고 지성인다운 정직한 표정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정말로 하는 행실 하나, 하나, 똑 부러지지 않는 것이 없다. 다 늦게 야학을 다녔는데 야학의 교장 바틀 메이시 선생이 가르친 모든 학생들보다 빨리 글을 배우고 썼으며, 계산 및 응용능력을 익힌 바 있다.
그러니까, 두 명의 여자 주인공, 두 명의 남자 주인공 가운데 딱 절반, 그것도 절대 선을 행하는 주인공들은 전부 조지 엘리엇의 집안 사람을 모델로 한 인물들이다. 감리교 여자 선교사를 지낸 엘리자베스 에번스의 아바타인 다이나 모리스와, 친아버지 로버트 에번스를 모델로 한 아담 비드. 다이나 모리스는 작품에 나오는 최고의 아름다운 외모를 자랑하지는 않지만, 매력의 정도로 치자면 단연 일등이고, 아름다움 또는 예쁨의 측면으로 말하자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일등은 헤티 소렐에게 양보하더라도 하여튼 그 다음 순번으로 거론할 수준이다. 조지 엘리엇이 <아담 비드>를 발표한 것이 1859년. 이 시절에 나온 많은 소설작품의 주인공이 대부분 선남선녀에 훌륭한 외모를 가졌지만, 엘리엇의 경우엔 조금 다르다. 1799년 6월에 열일곱 살이었던 다른 한 명의 여자 주인공 헤티 소렐한테 엘리엇의 최고로 아름다운 외모를 주었다.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다. 무리 속에 섞여 있어도 이 한 명 때문에 주위가 다 환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아름다움을 가진 사람. 헤티가 바로 이런 사람이었다.
<아담 비드>에 악당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철부지일 뿐. 헤티, 헤스터 소렐이 대표적이다.
헤티야말로 <아담 비드>, 이 19세기 신파극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 더구나 헤티의 순진한 방종과 사치지향, 허튼 믿음은 신파를 흥미진진하게 몰아가기까지 한다. 정말이다. 이건 직접 읽어봐야 하는데, 이 재미있는 19세기 작품에 섣부른 스포일러가 될지도 몰라 함부로 이야기하기 쉽지 않다. 엘리엇의 대표작인 <미들마치>에서도 비슷한 여성 로저먼드가 있으나, 적어도 로저먼드는 소 부르주아 집안 출신이기나 하지, 헤티는 적수공권 고아인데도 그렇다는 게 문제다.
형 아담에게 충직한 아우 세스 비드, 본인은 설교사 다이나를 사랑해 청혼까지 했다가 미역국을 먹지만, 근동에서 비할 바 없는 최고의 신랑감인 형이 제일 아름다운 소녀인 헤티와 결혼하게 될까봐 걱정을 할 정도. 다행스럽게도 헤티는 아담에게 관심이 없다. 아니, 있지만 남편으로서는 아니다. 그냥 자기를 사랑해주는 남자, 버리자니 아깝고 가지고 있기는 싫은 남자. 자신의 반도 따라올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예쁜 축에 드는 메리 버즈 아가씨한테 아담이 에티켓 수준의 호의를 표시하는 것조차 기분이 나쁘더라도 자신을 향한 사랑은 눈곱만큼도 인정하지 않는다. 조지 엘리엇은 헤스터, 즉 헤티 소렐의 아름다운 외모에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이 고운 건 아니다. 어떤 아름다움인지 인용해본다.
“자, 그럼 이제 다시 그 길고 짙은 속눈썹을 바라보라. 무엇이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을까? 나는 그런 눈들이 기만, 횡령, 그리고 어리석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경험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고 짙은 속눈썹으로 덮인 커다란 푸른 눈동자에 깊이 있는 영혼이 존재할 거라는 착각에 빠지고 만 것이다. 그러나 나는 흐리멍덩한 눈을 보면 역겹게 느껴지기에, 두 눈은 모두 결론적으로 역겹다는 반응을 보이게 된다는 점에서 두 눈이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다.” (1권, p.269)
천애고아로 외삼촌 댁에 얹혀 지내는 헤티는 비록 소프트 치즈를 만드는데 최고의 솜씨를 가지고 있더라도 시간만 나면 거울 들여다보며 머리 손질하느라 바쁘고, 용돈을 모아 싸구려 장식품을 사느라 다 써버리고 만다. 아담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지만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아 청혼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헤티 앞에 등장하는 인물이 있으니, 스무 살의 아서 도나손, 지주 가문의 유산 상속인 손자이며 현역 대위. 한 달 여 뒤, 돌아오는 7월 30일에 스물한 번째 생일을 맞아 성대한 성인식을 할 예정이며, 소작농장의 모든 사람을 초청하느라 어윈 교구 목사와 동행해 포이저 씨의 홀 팜 농장을 들러, 눈에 확 들어오게 어여쁜 헤티를 보고 자신과 두 번 춤을 추어달라고 예약을 한다. 역시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스무 살 아서 도나손은 넘치는 리비도를 여태 잘 돌보며 건전하게 살아온 올바른 청년이었으나, 책 표지의 카피처럼 “봄날 같이 예쁜” 헤티를 보고도 참아야 한다고, 만나지 않는 것이 옳다고 몇 번을 다짐했지만, 세상에 다른 건 몰라도 소설에서 그게 가능하면, 그게 소설이니?
헤티는 진심으로 아서를 사랑하게 되고, 아서 역시 진심을 다해 자신을 사랑하는 줄 오해하여, 그에게, 지주댁 손자 나리에게, 꾸미기 좋아하는 천성을 감추지 못해, 귀금속 귀고리와 비싼 목걸이 로켓을 사달라고 요구한다. 그렇게 철부지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나. 그러나 아뿔싸, 이를 계기로 헤티는 자신이 아담을 습관이나 장난처럼 사로잡고 있을 뿐, 결혼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며, 만일 결혼하면 가난한 집에서 홀어머니를 부양해야 하는 책임까지 떠맡을 수밖에 없는데 자신은 사치스러운 희망, 비단 드레스와 비싼 향수를 향유하는 꿈을 이루고 싶어, 실제로는 그럴 수 없음을 알아챌 수 있었음에도, 젊은 지주의 연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에만 빠져 있게 된다.
이렇게 비극은 시작한다.
아직 <사일런스 마너>는 읽어보지 않아 정확한 말은 아니지만 조지 엘리엇은 작품마다 어떤 방식으로든 당시 사회의 문제를 제기한다. 그게 큰 문제이건 아니건 간에. 그러면서 역시 큰 목소리로든, 작은 목소리로든, 뭔가를 주장한다. 반유대주의를 반대하거나, 기초적이긴 하지만 페미니즘을 주장하거나, 혼인제도의 불합리성을 부각시키려 하거나, 계급의 차별에 항변하거나, 하여간 뭔가를 한다. 이게 빅토리아 시대의 다른 작가와의 차이점 같다. 이 작품도 지금 관점으로 보자면 내용이 지극히 신파적이기는 하지만 당시 계급과 대중들의 교파 주의 같은 문제점을 거론하고 있다. 물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남성인 아담의 입을 통해 범죄와 처벌에 관한 진정한 책임 소재를 논의함으로써 여성주의적 시각을 발제하는 것일 터이다.
빅토리아 시대 소설이나 조지 엘리엇의 팬이라면 딴 군말 없이 읽어야 할 작품.
* 책 표지는 작자 미상의 <나탈리아 곤차로바 푸시킨>의 초상화다. 책 속지에는 "표지: 이미지 코리아"라고만 되어 있다. 왜 나탈리아의 초상을 표지로 했을까? 얼굴이 예뻐서? 그녀의 부박함 때문에? 예쁜 얼굴의 그림을 고르다보니 그렇게 됐을 듯. 나탈리아는 천부의 외모와 바람기로 당대 러시아를 주름잡았고 언니의 남편, 프랑스군 장교 조르주 단테스와도 깊은 사이라, 이를 알게 된 작가 푸시킨이 장교 단테스와 결투를 벌여 겨우 서른일곱 살 팔 개월 만에 세상을 접게 만든 여인이다. 죽은 사람이 왜 하필이면 푸시킨인가 말이지. 그가 일흔까지 살았다면 러시아 문학, 그리고 세계의 문학이 얼마나 풍요로워졌겠는가. 예쁜 얼굴이 작품의 주인공 헤티를 연상시킬 수 있어서 나탈리아를 표지 모델로 했겠지만, 헤티는 허영기가 있기는 했어도 절대 헤픈 여성은 아니었다. 이 책이 인기 작가 조지 엘리엇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잘 팔리지 않는 건, 표지 디자인의 촌스러움이 크게 한몫 했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