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킴 투이 지음, 윤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11월
평점 :
킴 투이는 1968년 북베트남 인민군과 남베트남의 민족해방전선, 즉 파르티잔들이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을 포함한 전 지역에서 일시에 대공세를 펼쳤던 1월 30일, 구정대공세의 화염 속에서 태어난다. 이때부터 18년 전, 한국전쟁 당시 우리나라에서 저질러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해당지역을 잠시 점령한 민족해방전선 측은 곳곳에서 민간인 수천 명을 처형/살육하지만 곧바로 전세를 회복한 남베트남군과 미군(그리고 한국 용병)에 의하여 잔인하게 진압되기에 이른다. 이렇게 대규모 기습작전이 비록 전쟁역사상 북베트남의 패전으로 규정된다고 하더라도 완전한 실패로 돌아갔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것은 미국대사관이 점령당하여 당연히 북베트남이 패전할 것이라는 세계 여론이 흔들렸고, 무엇보다 미국 내에서 대중들이 베트남 전쟁을 회의적으로 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반전운동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시작했다. 노먼 메일러의 <밤의 군대들>과 필립 로스의 <아메리카의 비극>를 통해 당시 반전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작전으로 보아 북베트남의 패배였을지언정 정치적, 전략적으로는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다는 걸 당시엔 몰랐을 것이다.
이때부터 7년 후인 1975년 4월 30일, 북베트남군은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을 함락하여 일단 남북 베트남 정부의 두 체제 형태로 하다가 1년 후인 1976년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을 건국한다. 공산주의 정권이 권력을 독점한 후, 당연한 절차로 미국에 부역한 집단과 부르주아들에 대한 숙청작업이 이루어졌다. 이에 75년부터 작은 배에 수백 명을 빽빽하게 태우고 베트남을 탈출하기 시작한다. 반공을 제1의 국시로 삼은 박정희 정권은 유신독재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보트 피플의 “월남탈출” 장면과 사이공 함락 영상을 흑백 TV에 연일 방송함으로써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지도 모른다. 이 와중에 의사당 안에서 야당 의원의 조금 삐딱한 발언을 마음에 들지 않아하던 민주공화당 소속 아무개 국회의원이 크게 “공산 월남으로 가버려!”라고 소리친 것이 TV와 신문매체를 통해 대서특필된 적도 있었다. 여기까지가 내가 기억하는 사이공 함락, 보트 피플,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건국의 순간들이다.
1978년, 2백 명의 보트 피플을 태운 조각배 한 척이 석양의 아름다운 말레이시아 해변, 바다거북이 보호구역이기도 한 프랑스의 휴양 바캉스 전문회사 클럽 메드 근방에 도착했고, 모두 하선하자마자 때마침 내리기 시작한 비와 더불어 큰 파도가 덮치는 바람에 한 순간에 타고 온 나무배가 박살이 나버린다. 이후 정원의 열 배를 수용한 거주지에서 옴과 기생충과 불결하기 짝이 없는 생활을 한다.
실제로 작가 킴 투이는 1978년에 목선을 타고 말레이시아에 도착해 수용소에서 4개월을 보내고, 난민 신분으로 프랑스 퀘벡의 동쪽 주거지역인 그랜비에 정착한다.
애초에 이 책은 작가 킴 투이의 경험이 과하게 많이 침투한 것처럼 보여 문학과지성사와 캐나다 문단이 주장하는 대로 ‘프랑스 언어로 쓴 소설’로 보기보다는 자기 경험을 메모 식으로 나열한 에세이를 읽는 기분이다. 어쨌거나 킴 투이는 아시아 출신 부르주아의 자제답게 어려운 와중에도 몬트리올 대학에서 언어학과 번역으로 1990년에 B.A를 따고, 93년에는 법학 학위도 받는다. 1968년생이니 학업을 중단한 일이 없었다는 얘긴데, 친척의 학업을 지원해주는 이야기는 아시아 작가들 아니면 쉽게 구경하지 못할 일이다.
주인공 ‘나’ 응우엔 안 띤은 8분의 1이 중국인인 부르주아 집안의 딸이다. 위로 오빠, 아래로 남동생. 75년에 사이공이 함락되었다 해도, ‘나’의 부모는 흰 운동복을 멋있게 차려입고 테니스를 치고 돌아와, 북베트남군이 집의 절반을 쓰겠다는 통보를 받았을 정도다. 이어서 얼마 후 나머지 반도 다 써야겠으니 집에서 나가라는 말을 듣고는 집안 여기저기에 숨겨놓은 순금과 다이아몬드를 창문 밖으로 던지고, 나중에 그것을 찾아 도피자금으로 사용했다. 그러니 대단한 부르주아였을 것이다. 산업이 발달한 나라도 아니고, 전쟁 중에 현금대신 황금과 다이아몬드를 마련해놓았을 정도이니. 유대인의 피가 아니라 엄마 혈액의 사분의 일 중국인이다. 이 대목에서 궁금한 것이, 중국인들과 유대인들을 한 행정구역, 예를 들어 황해북도에 몰아넣고 살라고 하면 어떤 민족이 더 잘 살까? <루>를 읽어보면 다른 건 몰라도 번식력은 중국인이 월등한 것 같다만.
이미 퀘벡과 몬트리올을 거쳐 캐나다를 고향으로 생각하고 있는 보트 피플 출신의 ‘나’ 응우엔 안 띤, 프랑스 식 이름을 갖고 있는 서너 명의 남자와 연애 끝에 기욤과 결혼(혹은 동거)하여 파스칼과 앙리, 두 아들을 낳아 키우는데, 앙리는 틀림없이 자기 집안, 그러니까 베트남 혈통에서 온 유전자 문제로 자폐아인데 다행히 형 파스칼이 잘 보살피고 있다. ‘나’는 업무 또는 기타 목적으로 베트남 호치민 시에 갈 일이 잦은 커리어 우먼으로 적어도 두 주일 이상 베트남에 머물고 있으면서, 동시에 베트남과 캐나다에서 있었던 자신의 개인사를 액자 식, 또는 메모 분량의 기억을 나열하고 있다.
황금 몇 킬로그램과 많은 다이아몬드를 챙겨 도망할 정도의 화려한 과거와, 패전 후 공산주의 권력, 말레이시아의 야만적 수용소, 캐나다에서 해야만 했던 밑바닥 생활, 그리고 현재의 베트남을 깔끔한 문장으로 써내려 가는데, 아놔, 나하고는 맞지 않는다. 문장 말고 스토리가.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으니 이건 맞지 않는 책을 고른 내 탓이지 작가의 삶과는 관련이 없다. 응우엔의 반대 진영, ‘나’의 집에 들어와 가택수색을 하면서도 할머니의 여섯 딸이 사용하는 많고 많은 비단 브래지어를 본 적이 없어, 브래지어 자체가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 것인지 몰라, 그게 커피 필터로 여기면서, 왜 필터가 쌍으로 달려 있는지를 궁금해 할 수 있는 소년병들의 삶에 더 깊은 관심이 있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