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느 여인의 초상 ㅣ 20세기 프랑스 희곡선 13
미셸 비나베르 지음, 서명수 옮김 / 연극과인간 / 2006년 11월
평점 :
극작가 미셸 비나베르는 1927년에 파리에서 고미술상을 하는 유대 혈통의 아버지와 변호사 어머니 사이에서 미셸 그린베르크로 태어났으니,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당시에 겨우 열두 살, 파리가 나치 치하로 떨어졌을 때 열세 살. 이때 아빠가 잡혀갔을까, 아니면 도망쳤을까. 성장기 때 아빠의 존재가 중요한 거 아닌가 싶어 궁금했다.
이이의 할아버지 막심 비나베르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내로라하는 법학자이자 변호사였는데,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와중에 가솔을 몰고 크림반도를 거쳐 파리로 망명했다. 유독 파리에 몰려 있던 러시아 귀족, 부르주아들의 중심에서 이들의 연대를 이루고, 정체성을 확보하는 일에 헌신하다가 손자 미셸이 태어나기 몇 개월 전에 숟가락 놓고 만다. 할아버지 정보는 찾을 수 있건만, 정작 아빠가 나치 치하에서 생존했는지는 도무지 검색이 안 된다.
미셸의 딸 아노크 그린베르는 프랑스에서 여배우로 활약하고 있고, 46회 베를린 영화제에서 최우수 여자 연기상인 은곰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렇다고 이이의 가족이 딴따라 집안이라고 생각하지 마시라. 미셸 비나베르는 극작을 하다가 마음먹은 바가 있어서 세계적인 면도기 회사인 질레트에 임원으로 십여 년 근무한 적이 있는 매우 실용적인 사람이었으며, 역시 돈이 있어야 뭐든 할 테니까 말이지, 그 후에 본격적으로 극작에 뛰어들어 2006년엔 아카데미 프랑세즈에서 대상을 받기에 이르렀다. 많이 배웠지, 좋은 집안 출신이지, 질레트에서 임원도 해봤지, 그래서 돈도 많지, 키 크고 잘 생겼지, 유명한 딸 두었지, 다른 상도 아니고 프랑스 최고 상인 아카데미 프랑세스에서 대상도 받았지, 참 지독하게 재수 없는 인간이다. 안 그런가?
초장에 왜 이렇게 작가 미셸 비나베르의 아버지 타령을 했는가 하면, 이 책 <어느 여인의 초상>의 주인공 ‘소피 오자노’가 초장에 자기가 별로 사랑하지 않았던 옛 연인, 지금은 다른 여자와 약혼 중인 사비에 베르제레의 집에 찾아가 밥도 먹고, 한 번 하고 난 다음에, 권총을 뽑아 옛 연인의 이마에다 한 방 쏘고, 이어서 가슴에 또 한 방, 마지막으로 자빠진 사비에의 관자놀이에 대고 다시 한 방을 쏴 죽여버린 엽기 사건을 재판하는 과정에 변호사 (서양 애들은 이름도 참) 깡세 씨가 이게 다 아버지의 냉정한 교육 탓이라 강변하는 장면 때문이다.
주인공 소피 오자노는 작가 미셸 비나베르와 27년생 동갑내기로, 열세 살 때인 1940년에 큰오빠가 자신이 지휘하는 잠수함에서, 작은 오빠가 비행훈련 중에 죽고 만다. 이게 다 독일군하고 싸우거나 싸울 훈련을 하던 중인데 아직 열다섯 살도 되지 않은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은 독일 장교는 물론이고 독일 사병들과 팔짱을 낀 채 산책하다, 이를 고깝게 본 학교 당국의 처사로 퇴학을 당한 적이 있다(고 재판정의 검사는 주장한다). 열일곱 살 때인 1944년에는 됭케르트의 베르마슈트 야전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면서 쉰다섯 살 먹은 군의관 슐레징어 대령과 깊은 관계를 맺는다. 독일에 아내가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전쟁이 끝나고 의과대학에 진학해 만난 남자가 바로 사비에 베르제레. 둘이 할 건 다 하면서 소피는 자기가 진짜 사비에를 사랑하는지는 별로 관심이 없다. 사비에는 공부도 잘 해서 모든 시험을 통과하는 반면, 소피는 나이 많은 조교수 꼴로나 씨에게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몸을 제공하고, 그걸 학생들이 다 알게 되는 무리수를 두지만 그럼에도 시험에 통과하지 못한다. 학생들은 꼴로나 씨가 시험을 위한 비정상적 조언을 해주었을 것이라고, 부도덕한 관계를 비난하지만 사비에는 오히려 소피를 두둔한다. 서로의 사이에 사랑이 깊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이별을 한 상태에서, 소피는 비엔나에서 르구이라는 기술자를 만나 또 몸과 마음이 친밀한 관계가 된다.
이런 상태에서 소피는 사비에가 프랑신느라는 여성과 약혼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평소 소피의 정신상태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던 주변 사람들에게 떼를 쓰다시피 하여 주소를 알아낸 다음, 총포상에 가서 권총을 사, 범행을 저지른 것. 글쎄, 과문한 쇤네가 보기엔 정확하게 소시오패스인 거 같은데, 이 당시엔 그런 단어가 있지도 않았을 것이니 쉽게 ‘미친년’이라고 했을 것 같다. 그래서 재판정에 오드브르 박사라고 정신 감정사까지 등장하지 않았겠나.
책을 읽으면 하여튼 뭔가 배우게 된다. 이 책은 본문보다도 오히려 역자 해설을 통해 궁금한 점이 풀렸다. 내 의문은 유구한 드라마의 전통을 지닌 프랑스 희곡이 20세기, 특히 1970년대에 들어와 별로 재미가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아호, 그런데 이것도 소위 ‘정-반-합’이라는 변증법적 논리로 풀 수 있었다. 물론 역자 서명수가 이렇게 얘기한 건 아니다. 그가 쓴 해설을 읽어보니 그게 이 말이다, 싶다.
역자는 제2차 세계대전 전에 발표한 것으로 우리나라 출판사 “연극과 인간”의 ‘20세기 프랑스 희곡선’ 시리즈에서 소개한 재미없는 작품들에 관해서는 별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후 프랑스 연극계, 50년대의 부조리극과 60년대 정치극, 그리고 50년대부터 소개되기 시작한 브레히트의 서사연극이 1968년 5월 혁명을 맞으며 정점에 달했고, 68혁명의 결과로 만들어진 일종의 유토피아는 70년대에 들어 열기가 급속하게 식어, 미래에 대한 원대한 꿈으로부터 눈을 돌려 다시 자신들의 일상적인 삶을 바라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나타난 것이 지극히 평범하지만, 개별적으로 보면 치열하기 그지없는 진짜 삶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미시적인 문제들, 한마디로 일상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썼다.
아하, 그래서 1970년대, 넓게 잡아 20세기 후반의 프랑스 희곡을 퉁쳐서 ‘일상극日常劇’이라고 하는구나. 부조리극과 정치극, 서사연극이 꽃을 피우고 이에 대한 반작용을 등장한 것이 바로 일상극인데, 이래서, 물론 전혀 문외한인 내 눈으로 보기에, 그렇게 재미있지 않다는 거였다. 어쨌든 프랑스 일상극의 기수가 질레트에서 임원 생활을 마감하고 1969년부터 연극판에 뛰어든 미셸 비나베르라고 한다.
일상적인 삶이라고 하지만 <어느 여인의 초상>이 그리 쉽지는 않다. 물론 어렵다고도 할 수 없지만. 왜 이렇게 말하는가 하면, 무대는 재판정과 사건에 관계된 사람들이 등장해 장면을 만들 수 있는 빈 공간으로 되어 있는데, 배우는 두 공간의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도 가능해서 이것을 따로 분리해 이해해야 하는 건 독자의 몫으로 남기 때문이다. 연극을 직접 본다면 훨씬 더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공연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는 법이니, 형법을 다룬 <어느 여인의 초상>이란 희곡을 읽을 수밖에 없어서 기어코 뇌를 써가며 대사가 누구를 향한 것인지를 알아내야 한다.
이런 작업을 반가워하시라. 이런 걸 독자의 머릿속에서 따지며 나름대로 무대를 만드는 “나 홀로 연출”이야말로 희곡을 읽는 재미 가운데서도 으뜸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