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닫힌 문 창비시선 429
박소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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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소란. 소란笑蘭. 1981년생이다. 이름을 누가 지었을까. 웃는 난초. 그냥 읽으면 소란. 소란騷亂. 어지럽게 떠드는 장면이 떠오른다. 한자 이름의 뜻으로 해도, 그냥 우리말로 읽어도 이이의 이름을 발음하면 일단 경쾌하다. 서울에서 낳고 경남 마산에서 자라, 요즘 우리나라 문학 창작 분야에서 핫한 동국대 문창과를 졸업했다. 신동엽문학상, 내일의한국작가상을 받은 적 있고, 이 시집 《한 사람의 닫힌 문》으로 시인 홍사용을 기리는 노작문학상까지 거머쥐었다. 2009년에 등단해 11년 만이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잘 나가는 시인이라는 뜻이다. 이 정도면 이이의 이력과 출판사 창비의 이름값으로 선택한 것도 이해가 가시겠지 뭐.
  그런데 시집을 선택한 이면에는 시인의 이름, 소란의 발음 속에 이미 깔려있는 경쾌한 즐거움의 공명도 포함되어 있었음을 숨기지 않겠다. 그동안 통곡의 벽과, 피를 토하는 격정과, 미노타우로스가 숨은 미궁과, 스핑크스의 난수표 등에 하도 질려서 적어도 덜 심각한 시를 읽어보고 싶어, 박소란, 소란한 시집을 기대했을 수도 있다.
  결과는?
  이 시집이 이이의 두 번째 시집이라고 하는데, 첫 번째 시집 《심장에 가까운》은 시인이 마음먹고 울고 싶어서 썼다고 한다. 그걸 읽어보지 못해서 두 번째인 《한 사람의 닫힌 문》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전혀 모르지만, 이번엔 울음보다는 외로움 또는 외로움을 능가해 홀로 틀어박힌 상태를 자주 볼 수 있다. 세상과 스스로든 타자에 의해서든 하여튼 차단된 지경에서 어떻게 내가 바랐던 ‘덜 심각함’의 끄트머리나마 볼 수 있었겠나. 차단도 급수가 있어서 심지어 차단 속에서 이런 놀이도 하는 와중이니.

 


  끈

 


  잡을 수도 놓을 수도 있다

 

  짐짓 골똘한 표정으로
  헐거운 매듭을 만지작대며 답을 미룰 수도 있다

 

  나는 지금
  교외로 향하고 있다 버스는 이상하리만큼 굼뜨고
  창밖 도로변에는 꽃들이 빽빽이 심어져 있다 이상하리만큼
  눈이 부셔

 

  슬며시 훔쳐다 감거나 묶을 수도 있다
  괴성을 지르며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사랑할 수도 있다

 

  사랑은 아닐 수도 있다
  엉클어진 시간을 풀 수도 그냥 내버려둘 수도 있다

 

  적당한 크기와 모양으로 조각을 내어
  아무 바닥에나 던져버릴 수도 있다
  오래 벼린 칼이 있고 마침 칼은 가방 속에 있고

 

  나는 지금
  교외로 향하고 있다 끈과 칼은
  이상하리만큼 닮았고

 

  끊을 수도
  더 잘 끊을 수도 있다

 

  울 수도 웃을 수도 있다 (전문)

 


  시인이 오랜만에 방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교외로 나간다. 그의 핸드백 속엔 끈과 칼이 들어 있다. 끊을 수도 있고, 더 잘 끊을 수도 있는 도구란다. 뭘 끊는다고? 칼로 끈을 끊을 수도 있지만, 헐거운 매듭에 머리통을 집어넣고 (목을)감거나 묶을 수도 있다. 창밖 도로변에 빽빽이 심어놓은 꽃들만 ‘훔쳐다 감거나 묶을 수도 있’는 게 아니다. 이상하리만큼 굼뜬 버스를 타고 교외로 향하면서 목을 맨 채 (축 늘어진 이미 죽어버린 내 몸이, 또는 훔쳐다 묶은 꽃들이)말라비틀어질 때까지 사랑할 수도 있단다. 물론 이런 식으로 시를 읽은 건 틀림없이 오버다. 나도 안다. 그래도 끈과 칼이 내포하고 있는 건 확실하게 죽음, 말라버림의 이미지다. 내가 시집을 선택할 때 기대했던 경쾌한 즐거움하고는 너무 거리가 있다. 망했다. 그랬겠지?
  시들을 읽어보면 박소란이 하여튼 출퇴근을 하는 임금생활자였던 모양이다. 혼자 사는 살림이 다 그렇듯이 밤에 집에 들어가 밥 지어 먹기도 뭐하고, 제대로 음식 할 줄 아는 것도 별로 없고, 해서 그렇게 드물지 않은 빈도로 하여튼 뭔가를 사서 귀가했을 것이다. 뭔가를 검정 비닐봉지에 담아서.

 


  비닐봉지

 


  알 수 없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또 그리워하는지

 

  퇴근길에 김밥 한줄을 사서
  묵묵한 걸음을 걷는

 

  묵묵한 표정을 짓는
  입가에 묻은 참기름 깨소금을 가만히 혀로 쓸 때마다
  알 수 없는,
  참 알 수 없는 맛이다

 

  밥을 먹을 때면 늘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고
  어째서
  그것은 죽은 사람의 얼굴인가

 

  쉽게 구멍이 나는

 

  버리면 된다, 이런 밤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다, 검게 읊조리는

 

  자정이 지난 골목을 혼자 서성이는
  까닭도 없이
  달리는
  내처 나는, 날아보는, 제 더러운 날개를 찢어버리려는 새처럼
  어디로든

 

  언제든
  도무지 썩지 않는 (전문)

 


  시를 읽어보면 전도 현상이 발생했다. 김밥 한 줄을 사서 묵묵하게 길을 걷는 건 시인인데, 입가에 묻은 참기름이며 깨소금을 가만히 혀로 쓸고 있는 건 검정 비닐봉지다. 다음 연은 시인과 비닐봉지의 합체가 일어나 “밥을 먹을 때면 늘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는데 그게 하필이면 죽은 사람의 얼굴이란다. 이제부터 검정 비닐봉투는 흔하디흔하고 쉽게 구멍이 나 그냥 버릴 수 있어서 골목에 바람이라도 불면 내처 바람에 쓸려 허공을 나는, 도무지 썩어주지도 않는 무가치성 쓰레기인데, 조금쯤은 시인의 자의식까지 담고 있다. 이러니 시가 건강하기 바라는 건 아무래도 무리인 듯.
  처음에 이 시집의 특징으로 차단을 거론했다. 그러면 차단, 혹은 고립을 다룬 시도 한 번 읽어봐야겠지. 사실 <비닐봉지>도 검은 차단막으로 감싸인 공간으로 볼 수 있기는 하다. 그러나 예컨대 이런 시.

 


  쓰러진 의자

 


  고아처럼 웅크려 잠이 들었네

 

  얘야,
  무슨 꿈을 꾸었니?

 

  이상한 꿈을 꾸었어요 꿈에서 저는 의자가 되었어요

 

  의자로 살다 의자로 죽었어요

 

  저런, 악몽이로구나

 

  무서워요
  사람들이, 모르는 사람들이 다가와요 자꾸만 죽은 몸을 일으켜 세워요 자꾸만

 

  무슨 꿈을 꾸었니? 물어요

 

  저는 거짓말해요
  아무 꿈도 꾸지 않았어요 (전문)

 


  애초에 시인이 고아처럼 웅크려 잠을 자고난 후, 아무도 얘야, 무슨 꿈을 꾸었느냐고 묻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나는 단정한다. 질문자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다가와서 자꾸만 이미 죽은(잠든) 시인의 몸을 일으켜 세운다. 화자는 사실 아무 꿈도 꾸지 않았지만 자기가 웅크릴 수 있는 의자로 살다가 의자로 죽는다고 거짓말을 해버린다는데, 누구한테? 원고지 또는 노트북 화면한테. 의자 대신 책상, 마룻바닥 등 딱딱한 재질로 된 약간의 공간이 있기만 하면 아무 것이나 상관없을 것이다. 시인에게는 벽마저도,

 

  슬퍼 모로 누웠을 때
  가만가만 등을 쓸어주는 손길이 있었다
  벽,
  하나의 벽이 있었다 (<벽> 부분. 이하 같음.)

 

  니까. 시인에게 “벽은 온화하고 벽은 진중하니까 벽은 꼭 벽이니까” (같은 시) 외부와 완전히 차단시키는 기재로, 시인이 “벽 쪽으로 누워 / 잠을 청했다 불길한 꿈이 찾아들었다 / 벽이 무너져 엉엉 우는 꿈”을 꾸고 “눌라 눈을 떴을 때 / 아침이 왔다 벽은 / 색색의 이지러진 얼굴을 감추며 어디론가 황급히 달아나버리고 // 누가, 그 누가 // 부른 적 없는 사랑이 쳐들어”온단다.
  이래서 그나마 다행이다. 박소란의 시가 비록 소란스럽지는 않더라도 차단과 고독과 죽음의 골짜기에서 저 뒤로 가면 벽이 황급히 달아나, 부르지도 않았는데 사랑이 쳐들어온다니.
  비의와 암호, 파편화 경향이 별로 드러나지 않는 요즘 시인의 작품들이지만 그렇다고 편하게 읽히지는 않았다. 이게 시의 발전과정이리라 믿는다. 시 스스로 쉽게 읽히고 싶지 않아 하는 경향. 이런 진화 또는 변증의 단계를 통해서 시와 시인과 독자가 발전하는 것이리라 믿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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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09-13 10: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의자는 조금...ㅠ
파편화되어 있는 요즘 시들, 따라가기 힘드네요 ㅎㅎ

Falstaff 2021-09-13 12:41   좋아요 2 | URL
아이고, 동감입니다.
시집 연달아 읽다가 두 손 들고 백기투항 했답니다. 그래 알라디너께서 시 감상 하는 거 따라가다가 괜찮을 듯 싶은 것들로만 골라 조금씩 읽고 있어요. ㅜㅜ

hnine 2021-09-13 13: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침 팟캐스트에서 박소란 시인의 예전 인터뷰를 듣고 있던 중에 Falstaff님의 이 리뷰를 보게 되었네요. 신기해요 ^^
17년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그 이전과 이후의 삶이 완전히 달라질 정도로 영향이 컸다고 해요. 그리고 지금도 어려운 일이 있거나 힘들때 꿈에서 어머니를 본다고요. 시집의 키워드를 ‘애도‘라고 붙이고 싶다고 하네요. 감정에 파묻혀 써서 시도 그렇게 읽힐까 늘 주의를 한다고 해요.

Falstaff 2021-09-13 14:01   좋아요 1 | URL
ㅎㅎㅎ 팟캐스트 보셨으면 제 감상이 얼마나 아마추어적인지 아시겠습니다.
박소란에게 그런 가정사가 있군요. 아이고, ‘애도‘라니 거 참. 하여튼 시인들은 뭔가 특별한 걸 타고 나는 거 같아요.

초란공 2021-09-13 17: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Falstaff님의 시 읽기(즐기기)를 항상 부러운 마음으로 읽습니다^^

Falstaff 2021-09-13 19:34   좋아요 1 | URL
어머나! 저 시 잘 몰라요. ㅎㅎㅎㅎ
근데도 이렇게 생각해주시니 참 고맙습니다. ^^

초딩 2021-09-14 07: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를 잘 못 읽는데 여기서 읽으니 좋네요 ㅎㅎㅎ
전도 현상 단락 좋네요 :-)

Falstaff 2021-09-14 11:37   좋아요 1 | URL
ㅎㅎㅎ 고맙습니다.
근데요, 전도현상이란 것도 제가 읽기에 그렇다는 것이지, 그게 딱 전도현상이라 말하기는 좀 그렇습니다. ㅋㅋㅋ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저도 시는 정말 모르겠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