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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 도서관
앨런 홀링허스트 지음, 전승희 옮김 / 창비 / 2021년 5월
평점 :
<아름다움의 선>이 인상 깊어 읽는 도중에 이 책 <수영장 도서관>을 구입했다. 앨런 홀링허스트의 데뷔작. 1983년에 완성했으나 출판해주겠다는 출판사를 찾지 못해 5년 후인 1988년에야 출간을 했는데 예상외로 좋은 평판을 받아 89년에 서머싯 몸 상을 수상했다. 서머싯 몸 상은 해당연도에 출판된 작품이 있는 서른 살 미만의 작가에게 외국에서의 경험을 통해 작품 세계를 풍부하게 해 준다는 취지로 1947년에 서머싯 몸이 제정한 상으로, 1989년에는 이미 35세가 된 앨런 홀링허스트가 루퍼드 그리스찬슨, 디어드르 매든과 함께 세 명이 공동으로 수상했다. 홀링허스트의 대략적인 바이오그래피는 <아름다움의 선> 독후감에서 훑어봤으니 생략한다. <수영장 도서관>이 <아름다움의 선>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은 작품이 1983년, 포클랜드 전쟁에서 어린아이 팔 비틀 듯이 아르헨티나의 콧잔등을 후려갈기고 치룬 선거에서 압승을 차지해 본격적인 대처 시대로 접어든 것과 동시에 시작한다는 점이다. 즉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과 절세의 하모니를 이루어 향후 전 지구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초석을 다지기 시작한 런던을 무대로 하고 있다. 그리하여 <아름다움의 선>이 그랬듯이 <수영장 도서관>도 필연적으로 일종의 정치소설로도 볼 수 있다.
주인공이자 화자 ‘나’, 윌리엄 벡위스. 쇠똥을 머리통에 뒤집어 쓴 채 그래도 살겠다고 엄마 배 속에서 삐질삐질 기어 나올 때, 윌을 받은 산과 의사가 기겁을 해 뒤로 자빠진 이야기가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니, 아직 빽빽거리고 울지도 못하는 핏덩이가 글쎄 큼지막한 은수저를 입에 물고 있더란 것. 그러나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 아버지로부터는 한 푼도 유산을 물려받지 못한 처지의 백수다. 한심할 거 같지? 천만의 말씀.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막강한 힘을 과시하다가 영국식으로 숙청을 당해 자작의 작위를 수여받고 현직에서 물러나 상원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할아버지 데니스 벡위스가 숨넘어가기 전에 미리 유증한 재산이 하도 어마어마해 구차한 노동을 할 필요가 없다는 유혹에 굴복한 것. 두 해 동안 큐빗의 <건축사전> 프로젝트의 스태프로 참여한 직장에 더 이상 다닐 필요를 느끼지 못해 그냥 때려치운 것뿐이다. 게다가 조각 같은 외모. 옥스퍼드를 나온 학벌. 어떤 스타일인지 아시겠지? 진짜 재수 없다. 지금은 아파트에 서인도제도 출신의 열일곱 살 먹은 예쁘게 생긴 유색인 아이 아서를 키우고 있으니 그저 세월 가는 게 아까운 청춘이다.
이 백수로 말할 거 같으면, 외아들의 외아들이니까 나중에 할아버지의 자작 작위가 저절로 자기 머리 위로 떨어질 태생부터 귀족이지만 참 좋은 식성을 가지고 있어서 도무지 골라 드실 줄 모른다. 그저 바지 입고 다니는 남자면 된다는 말씀. 책이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그렇다. 지금 사육하고 있는 서인도제도 출신의 소년 아서도 자기 기준으로 볼 때 형편없는 지역인 스트랫퍼드 이스트에 거주하고 있으며 한 집에 부모와 직업이 마약 소매인 형 등과 전화도 없이 살고 있다. 1980년대 중반에 말이지. ‘나’ 윌리엄과 애인이라고 하긴 좀 그렇고 애완이라고도 하긴 너무 모멸적인 아서의 계급 차이는 비록 ‘나’가 속내는 쥐뿔도 아는 것이 없음에도 리버럴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옥스퍼드 출신이지만 비천한 출신 아서에게 감상적이고 살짝 잔인하며 배려 없는 성적 탐닉에 몰두하고 있음은 부정하지 않는다. 어디서 본 거 같지? 그렇다. ‘나’ 윌이 아서를 대하는 건 <아름다움의 선>에서 옥스퍼드 동창인 백만장자 미남자이자 HIV 감염환자인 와니가 애인이자 주인공인 닉을 대하는 것과 상당히 유사하다. 주인공이 을에서 갑으로 바뀌었을 뿐.
윌의 식성은 장소도 가리지 않는다. 시내의 좀 큰 집을 게이 포르노 전용 상연 장소로 만든 지하의 브루터스 극장 안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불결한 객석 의자는 물론이고 역시 <아름다움의 선>에서 몇 번 소개한 바 있는 켄징턴가든스의 공중화장실에서도 가능하다. 문제의 그날에도 윌은 켄징턴파크에서 아랍 청년을 발견하고 모종의 사인을 보낸 후 욕정과 만족감을 기대하며 공중화장실로 들어섰다가 하필이면 때와 장소를 맞춰 여든세 살의 노인이 오줌을 누다 미끄러져 자빠져 숨을 멈춰버리고 만다. 옥스퍼드 시절부터 거의 유일한 친구 제임스에게 평소에 심폐소생술을 배운 ‘나’는 다들 서서 내려다보고 있는 원 안으로 들어가 심장을 마사지하고, 지금은 우리나라 119에서도 권하지 않는 마우스 투 마우스 방법으로 숨을 불어넣어 기어이 노인을 소생시키고, 아직 밖으로 삐져나와 있는 노인의 비뇨기를 추슬러준 다음에 사라져 버린다. 이 노인이 누구냐 하면, 작품 후반에 상당히 중요한 준주인공 격인 동성애자 찰스 낸트위치 경.
‘나’는 수영을 잘 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그랬다. ‘나’가 다닌 고등학교는 특이하게도 학생 간부들에게 ‘사서’라는 직책을 주었다. 기율 사서, 축구 사서, 교지 사서 등등. 그래 ‘나’는 엉겁결에 ‘수영장 사서’가 되었는데 이를 알게 된 부모는 수영장에도 도서관이 있는 것으로 알았단다. 그래 ‘나’는 수영장을 이용하는 모든 남자들이 벌거벗어야 하는 샤워장을, 모든 형태의 생식기를 볼 수 있는 도서관이라고 칭하기 시작했다. ‘나’와 낸트위치 경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코린시언 클럽에서 수영을 즐긴다는 것. 약칭 코리. 코리의 도서관에서는 남자들의 별의 별, 진짜 이색적인 것들을 다 볼 수 있단다. 그 많은 것들 가운데 ‘나’의 눈에는 같은 것이 하나도 없다나.
주인공 말고, 지금 독후감을 쓰고 있는 나도 한 이십 년 전에 목욕탕 샤워 부스에서 신기한 작자 한 번 봤다. 아무 생각 없이 샤워를 하고 있는데 옆에 좀 마른 남자가 서서 샤워를 시작했고, 우연히 남자의 생식기를 보았더니, 이거 영 미친놈 아냐, 거기에 “우다”라고 문신을 해놓았던 거다. 저게 뭘까? 생각해보시라. 거기에 ‘우다’라고 한글로 문신을? 그렇다고 뚫어지게 내려다볼 수만은 없어 그냥 하던 샤워만 열라 하고 있었는데, 이 작자가 비누로 거길 벅벅 문질러 거품을 한없이 내니까, 글쎄, 아 글쎄, 아오, 그게 커지기 시작하는 거였다. 그러더니 마침내 “우다”의 실체가 드러나는데, 아오, 띄어쓰기까지 해가며, 키만 크고 비쩍 마른 남자의 생식기가 얼마나 커졌는지 말이지, 그 위에 아오, 먹물로 딱 한 줄의 문신한 문장이 완전히 보였는바 :
(뿌리)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대가리)
하여튼 ‘나’ 윌리엄 벡위스와 찰스 낸트위치는 이렇게 다시 만나 관계를 이어나가고 낸트위치 경이 자신의 자서전을 대필해달라는 의뢰를 받아들일지 아닐지 결심을 하기 위해 낸트위치 경의 몇 십 년에 걸친 일기를 읽어나가게 되며 사건은 천천히, 너무 천천히, 그리고 장황한 여러 에피소드를 곁들여 결말을 향해 전진한다. 길고 긴 전개과정에 비해 어이없다시피 한 초라한 결말을 향해.
나는 저 위에서 이 작품을 정치소설로도 볼 수 있다고 했다. 책엔 정치에 관해서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이를테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대처시대에 관한 관심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한 팔자 좋은 게이가 자기의 강점인 돈과 학력, 가문, 외모를 이용해 남성편력을 펼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해도 사실 큰 문제는 없지만, 낸트위치 경이 몇 십 년 전에 당했던 게이에 대한 함정수사가 20세기 말에 거의 유사하게 선량한 ‘나’의 의사 친구 제임스에게도 적용이 된다는 사실을 통해, 영국사회에서 여전한 동성애 차별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자들이여, 이 책을, 특히 한여름에 읽기 위해서는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 하리라. 먼저 읽은 자의 충고를 가비얍게 여기지 말기 바란다. 여차하면 서술의 장황함과 서사의 중심에서 벗어난 수다한 묘사에 나가떨어질 우려고 있고, 동성 섹스를 지독하게 세밀하게 묘사하는 바람에 역겨울 수도 있으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