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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박람회
외르케니 이슈트반 지음, 김보국 옮김 / 프시케의숲 / 2019년 6월
평점 :
1912년 4월에 부다페스트에서 부유한 유대인 가족의 아들로 태어난 외르케니 이슈트반 기외르기는 부다페스트 경제-공과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하다가 진로를 약간 바꿔 가업인 약학을 전공했다. 1941년, 29세 때 단편선 <바다의 춤>을 출간해 이름을 얻었지만 이듬해 2차 세계대전 중 돈 강 근처로 참전했다가 유대인이란 이유로 군인도 아닌 작업노예 수준으로 전락하고, 그것도 모자라 소련군에게 생포되어 모스크바 근방의 노동자수용소에서 죽을 고생을 하고는 1946년에 부다페스트로 돌아온다. 이후 1956년, 우리에겐 김춘수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이란 시로 알려진 헝가리 혁명에 적극적으로 가담해 작품을 출간할 수 없는 작가들 가운데 한 명으로 떨어진다. 그래도 아직 약사 자격증은 멀쩡한지라 그냥저냥 먹고 살면서 작품도 쓰며 남은 생을 보낸다. <장미 박람회>는 그가 죽기 2년 전인 1977년에 쓴 짧은 소설로, 주요작품 리스트에는 들지 못하는 거 같다.
제목이 장미 박람회이고 책의 표지가 붉은 장미색이라 화려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헝가리 TV 방송국에 코롬 아론이란 이름의 신출내기 방송 조연출이 자신의 이름을 달고 찍는 최초의 다큐멘터리 작품으로 죽음을 앞둔 세 명의 환자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순간을 넘어가는 장면을 찍는 아이디어를 낸다.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말기 암 환자가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다큐. 그러나 우리 것은, 기억하기로는 죽음을 마치 시처럼 애틋하게 표현해놓았었다. 죽음의 장면도 나오지 않았다. 갑자기 화면이 암전 비슷하게 바뀌다가, 몇 년 몇 월 며칠, 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런 멘트로 마감했지 아마. 코롬 아론은 다르다. 죽음에 이르러 마지막 숨을 쉴 때까지, 그 후 장례식에 이어 매장하는 장면까지 모두 필름에 담겠다는 제안.
* 어머나 세상에. 벌써 필름에 담는다, 라고 하니 좀 어색하다. 1977년 작품. 디지털 캠코더가 아니라 VHS 필름 돌아가는 아날로그 캠코더 시절이었던 것을.
코롬(성姓)의 괜찮은, 그리고 어찌 생각하면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결재를 받지 못한다. 그걸 사회주의 국가의 경직된 사고방식인 것으로 여겨 감히 문화부 장관한테까지 편지를 보내고 난리를 죽였으나 역시 관리들의 것도 거기서 거기라 코롬은 결코 답장을 받지 못하는데, 이게 웬일이니, 다큐멘터리 제작부의 울러릭 부장이, 열 받아서 오전부터 농약 같은 독주를 벌컥벌컥 마시고 있는 코롬에게 와 어깨를 몇 번 두드리더니, 어이 애송이, 그래 다큐멘터리 제목으로 “우리들은 죽는다.”가 뭐니, 라고 훈수를 두어 결국 “장미 박람회”라는 이름으로 개명해 방송하게 된다.
코롬이 타큐를 구상할 때부터 세 명의 죽음에 이르는 환자를 교섭해왔는데, 울러릭 부장이 승인을 통보하자마자 이 가운데 한 명인 더르버시(헝가리의 a는 ‘ㅏ’ 발음 대신 음성모음인 ‘ㅓ’로 발음하는 모양이다) 씨에게 연락을 하니, 안타깝게도 지난주에 숨을 거두어 화요일에 장사를 지냈다. 그래 이 출연진에선 과부가 됐고 당장 현금 출연료가 필요한 더르버시 부인의 인터뷰만 딴다.
두 번째 출연자는 말기 소화기 암으로 완쾌의 희망이 없는 화훼장식 노동자 미코 부인. 남편은 헝가리 혁명 당시 기관총을 들고 몇 번 집에 오더니 이후 20년이 훌쩍 넘는 동안 유럽을 거쳐 미국에 자리 잡았다는 소문만 들리고 소식 한 장 없는 여인. 이런 집은 대개 두 개의 우환이 있는 법이라 녹내장이 심화되어 빛만 겨우 알아보는 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데 이 엄마의 심통과 성질이 보통이 아니다.
마지막 세 번째 교섭자는 같은 방송국에서 방송 밥을 먹는 작가 J. 너지. 6년 전에 심근경색으로 저승이 어떻게 생겼는지 일차 왕림한 바 있으나 숨은 넘어가지 않고 오히려 전보다 더 잘 먹고 잘 살아온 인물. 숱한 여성편력과 경쾌한 농담으로 인생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세상에, 아무리 겉으로 그렇게 보이더라도 당신 주위에 진짜로 인생을 즐기면서 사는 인간, 세 명만 대보라. J. 너지 역시 어찌 그러하겠는가. 그가 요즘 심장에 또다시 예기치 못하지 않은, 즉 벌써 낌새를 챈 이상 증상을 느껴 코롬의 다큐를 자신의 마지막 무대로 삼고자 한다.
이렇게 한 명은 벌써 죽었고, 두 명은 곧 죽으려는데, 그 가운데 한 명은 전형적인 프롤레타리아 계급이고, 설마 죽음이 계급에 따라 차별이야 하겠느냐마는, 또 다른 한 명은 돈은 모르겠으되 생각하고 생활하는 방식에 먹물이 잔뜩 든 남자 인간이다. 프롤레타리아는 계급에 맞게 집에서 죽음을 맞고, 먹물 역시 자신한테 어울리게 4인용 병실을 2인용 병실로 변경한 곳에서 의연하고 계획에 맞춘 죽음을 공연하게 된다.
죽음은 필멸의 존재인 인간들한테 여태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멈추지 않는 궁금증을 유발하는 테제일 터. 그것을 외르케니는 출연자 가운데 특히 미코 부인과 J. 너지를 통해 어둡거나 무섭지 않은, 오히려 경쾌할 수도 있는 터치로 그려내는데 성공했다.
외르케니 자신이 저널리즘에 글을 발표하는 것으로 작가 생활을 시작했고, 이어서 라디오, TV 방송국을 거쳐 희곡과 시나리오 등을 썼으니 방송국 이야기가 친숙할 것이다. 아울러 작중 J. 너지와 비슷한 질환을 앓았고, 그와 비슷하게 결혼 역시 세 번을 해 J. 너지를 더욱 능란한 캐릭터로 소개할 수 있었을 듯하다. 또한 이이의 대표작으로 거론되는 책 《일분 이야기들》로 헝가리 문단에 극히 짧은 소설을 최초로 소개한 바 있다고 하니 작가의 기준으로는 <장미 박물관>이 짧지 않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짧다. 그래 굳이 말하자면 노벨라 정도. 이렇게 짧은 분량으로 위에 소개한 스토리를 다른 등장인물들과 에피소드를 가지고 만들어나가니 글 읽는 속도감이 대단하다.
제일 마음에 드는 건, 작가가 작품을 통해 죽음에 관해 무슨 거창한 정의를 내리려하지 않는다는 점. 죽음은 그냥 죽음이다. 미리 생각할 필요 없다. 죽을 때가 되면 다 알아서 죽게 되니까 그때 가서 걱정을 해도 조금도 늦지 않으니, 세상의 모든 사람들아, 미리 땡겨서 죽을 걱정 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