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뒤의 삶 창비세계문학 83
소니 라부 탄시 지음, 심재중 옮김 / 창비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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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상 최악의 식민지였던 벨기에 령 콩고의 수도 레오폴드빌에서 1947년에 ‘마르셀 응초니’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작가 소니 라부 탄시의 1979년, 32세 때 쓴 작품.
  역자 심재중은 작품해설에서 아프리카 문학의 ‘열대적 리얼리즘’이란 단어를 소개한다. ‘열대적’이란 말이 작 중에도 많이 등장해 작품해설을 읽을 때쯤이면 익숙하게 받아들일 정도가 되지만 옮긴이의 각주를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이 소설에서 ‘열대적’ ‘열대성’이라는 어휘는 야만성, 동물성, 육체성, 폭력성, 상스러움 등을 포괄적으로 의미하는 용어이다.”  (10쪽)


  콩고의 현대사에 두 번째 대통령으로 기록되는 마셈바-데바는 군부 쿠데타로 실각을 했으나 청렴한 원칙주의자로 명성이 높았다고 한다. 마셈바-데바의 후임으로 표범가죽 옷을 즐겨 입었던 마리앵 응구아비가 독재 체제로 변질하려는 때 대통령 관저에서 기관총 세례를 받고 사망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때 마셈바-데바가 암살 사건의 주모자로 몰려 사형에 처해졌는데 시체가 행방불명되었다고 한다. 소니 라부 탄시의 <죽음 뒤의 삶>에서 ‘마르샬’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이 마르샬이 마셈바-데바를 변주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구원의 영도자’라고 불리는 독재자에 저항하는 인물을 대표하는 것일 수도 있다.
  ‘구원의 영도자’와 이후 대를 잇는 숱한 영도자들의 공통점이 육식만 한다는 것과 권력의 연장을 위해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무수한 사람을 살상한다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공통점으로, 이들의 뒤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거의 무한정으로 밀어주는 서양 열강들의 지지를 받는다는 점이다.
  하긴 콩고가 독립한 1960년부터 아프리카는 물론이고 라틴 아메리카에 소비에트 연방의 미사일을 배치시키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 소비에트가 문을 닫을 때까지 그러지 않았던 날들이 며칠이나 됐을까. 그 부작용으로 제 3세계에는 독재자들이 창궐할 수 있었으며,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많고 많은 제3 세계에서도 아프리카의 신생국에선 유독 끔찍한 독재와 쿠데타가 많았는데 대표적인 열대적 독재자가 우간다 통령 이디 아민이었을 듯. 그는 정적의 고기를 먹기까지 했으니. 당시 우리나라 소설가 송기숙은 집에 기르던 개 이름을 아민이라고 짓고 여차하면 옆구리를 발로 걷어차곤 했다는 소설을 썼는데, 송 선생의 진짜 속마음은 아민이 아니라 박정희였을 수도 있다. 읽어보시면 아는데, 단편의 제목을 잊어 아쉽게 됐다.
  책을 옮긴이가 내놓고 열대적, 열대성 등등을 거론했다는 거 하나만 봐도, 이 책 속에 좀 끔찍스러운 장면이 등장하리라, 라고 생각할 수 있고, 사실이 그렇다. 얼마나 열대적이냐 하면, 읽기가 수월하지 않을 정도로. 나도 이 얇은 책을 읽다가 집어 던질까, 하고 몇 번을 망설였는지 모른다. 좋다, 인용해보자.


  “영도자는 부관이 ‘그자를 데려왔습니다.’라고 외치며 자기 앞으로 떠밀어놓은 아홉 명의 인간 넝마들에게 다가가면서 아주 꾸밈없는 미소를 지었고, 수도에서 가장 큰 백화점이자 정부 전용 백화점인 사계절에서 파는 큼직한 고깃덩어리를 자르는데 쓰는 식사용 나이프를 찔러 넣었다. 칼날이 자신의 목 언저리 속으로 천천히 사라지는 동안 아버지-넝마는 눈살을 찌푸렸다. 영도자가 나이프를 빼내더니 먹고 있던 사계절의 고기 쪽으로 돌아서서 바로 그 피 묻은 칼로 고기를 잘라 먹었다.” (12쪽)


  “아버지-넝마는 대꾸하지 않았고, 영도자가 지퍼 달린 셔츠를 열 듯 신경얼기에서부터 샅굴 부위까지 아버지-넝마의 배를 갈랐고, 늘어뜨려진 내장에서 마지막 한 방울까지 피가 흘렀고, 아버지-넝마의 생명 전체가 두 눈 속으로 숨어들어서 넘쳐나는 생명의 전류처럼 그의 얼굴을 둘러쌌고, 두 눈꺼풀은 소리 없는 작열에 내맡긴 것 같았고, 아버지-넝마는 방금 정사를 끝낸 사람처럼 숨을 내쉬었고, 영도자가 식사용 나이프를 차례차례 그의 두 눈에 찔러 넣었고, 두 눈에서 나온 거무스레한 젤리가 볼 위로 흘러내렸고, 두 줄기 눈물이 목 언저리의 상처 속으로 흘러들었고, 아버지-넝마는 여전히 성행위를 막 끝낸 사람처럼 숨을 내쉬었다.” (13쪽)


  “그는 홀딱 벗은 알몸으로 영도자 앞에 끌려왔고 영도자는 아무렇지 않게 그의 ‘무슈’를 절단하여 이 나라 사람들이 즐겨 쓰는 표현대로 하자면, 그를 피고인 복장으로 만들어버렸다. 그의 발가락 여러 개가 고문실에 그대로 남아 있었고, 입술이 있던 자리에는 아무렇게나 너덜너덜해진 살점들이 붙어 있었고, 두 귀가 있던 자리에는 피가 두 개의 커다란 괄호 모양으로 엉겨 있었고, 퉁퉁 부어오른 얼굴에서 두 눈은 사라졌지만 시커먼 구멍 두 개 속에 검은 빛 두줄기가 남아 있었다. 사람의 형체조차 지워져버린 잔해물 속에 어떻게 생명이 그토록 고집스럽게 남아 있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그러나 뭇사람들의 생명은 모질다. 그들의 생명은 고집스럽다.”  (37쪽)


  이런 묘사를 견딜 수 있으면 책을 읽으시라. 난 억지로 읽었다. 정말 억지로. 사실은 돈이 아까워서. 게다가 비록 콩고 민주공화국 만큼은 아니지만 대한민국의 현대사에 있었던 독재가 어떤 형태로 진행되었는지 알고 있는 바라서 대를 이어 계속되는 폭력과 성 착취와 부정부패가 새삼스럽지도 않았으니 인상 깊게 읽을 수도 없었다. 차라리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쓴 <염소의 축제>를 권하겠다.
  이런 저작을 “첨예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형상화 했다”고 하니 참 그렇다. 아무리 그래도, 좀 적당히 하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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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1-21 09: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호, 고맙습니다. 이 책은 넘기겠습니다. ㅎㅎㅎㅎ

Falstaff 2021-01-21 09:34   좋아요 0 | URL
옙. 열대성만 과하지 않았어도....말입니다. ㅋㅋㅋ

syo 2021-01-21 0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입을 떠어억 벌리고 봤어요. 저도 스킵- 이라고 쓰고보니 이 글 안 읽었어도 몰라서 안 봤을 것 같습니다ㅋㅋㅋㅋㅋ부끄럽다

Falstaff 2021-01-21 10:11   좋아요 2 | URL
아이고, 사이오 님이 부끄럽다면 세상 사람들은 어찌 숨을 쉬라고요! ㅋㅋㅋㅋ

coolcat329 2021-01-21 13: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열대적 리얼리즘...오 무섭네요. 이거 번역하신 분도 대단한거 같아요. 독재는 다 끔찍하지만 유독 아프리카는 그 잔인함이 상상을 초월하는거 같아요. 아휴...고생하셨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먼저 읽으시고 여러 사람 구하셨으니 보람을 느끼셔도 좋으실듯 합니다.

Falstaff 2021-01-21 13:54   좋아요 2 | URL
ㅋㅋㅋ 이리 말씀을 해주시니 고맙긴 하지만, 제발 창비 담당자가 읽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작품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냥 단순히 호오의 문제이니 말씀이죠.
사실 이런 독후감 쓰는 게,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목적이 아니면 쉽지 않긴 합니다. ㅋㅋㅋㅋㅋ

imspeaking 2021-03-18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읽다가 속이 뒤틀려서..문학이고 나발이고 적당해야지 원..이러던 참이었어요.

Falstaff 2021-03-18 09:15   좋아요 0 | URL
그죠. 너무 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