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의 여름 캐드펠 수사 시리즈 18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작년,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역사 추리소설 <캐드펠 시리즈>.


중세의 혼란 속에서 인간 군상과 따뜻한 시선을 섬세하게 그려낸 이 작품은 한 마디로 마스터피스다. 그래서 후속권 발매 소식을 들었을 때 설렘을 감출 수 없었다. 기다림 끝에 2025년 6월, 11권~ 21권(완)이 한 번에 출간되었다. 감사하게도 나는 3기 서포터즈로 선정되었다. 덕분에 18권부터 20권까지 세 권을 미리 받아볼 수 있었고, 오랜만에 <캐드펠 시리즈>의 세계로 다시 들어설 수 있었다.


이 시리즈는 연속성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순서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읽을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그래서 고민 없이 18권 『반란의 여름』을 펼쳤다. 이번 작품에서는 익숙한 슈루즈베리를 벗어나 웨일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평화로운 귀향길인 줄 알았던 여정이 어떻게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이어질지 책장을 넘기는 내내 긴장과 설렘이 교차했다.



<웨일스로 떠난 캐드펠, 시리즈의 색깔이 바뀌다>

역사 추리소설 『반란의 여름』은 <캐드펠 시리즈> 18번째 작품으로 익숙했던 슈루즈베리를 벗어나 이번엔 캐드펠의 고향인 웨일스를 무대로 삼는다. 새로운 공간은 그 자체로 신선한 긴장감을 선사하고 웨일스 특유의 역사와 문화가 작품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 놓는다.


이번 권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추리 요소의 비중이 줄어들고, 역사적 배경과 시대의 갈등이 더 깊게 다루는 점이다. 웨일스 왕과 동생의 권력 다툼, 외세인 덴마크인들의 개입, 교회와 세속 권력의 충돌이 사건의 중심을 이루며 살인사건조차 이 거대한 시대 흐름의 일부로 녹아든다. 그만큼 캐드펠의 역할도 변한다. 날카로운 추리로 사건을 해결하던 그가 이번 작품에선 냉정한 관찰자이자, 시대를 통찰하는 시선으로 이야기에 깊이를 더한다.



<인간의 선택이 만든 갈등과 이야기>

이번 작품을 끌고 가는 가장 큰 힘은 '사람'이다. 특히 캐드펠의 시선은 이번에도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섬세하게 비춘다. 포로로 잡혀 있는 상황에서도 그는 당황하거나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차분히 관찰하며,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진심을 읽어낸다. 또 한 명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헬레드다. 원치 않는 결혼, 강요된 수녀 생활 대신 자신의 삶을 선택하기 위해 떠난 그녀의 여정은 중세 여성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단순한 반항을 넘어 스스로 원하는 길을 찾으려는 헬레드의 용기는 이번 이야기의 핵심 플롯이다.


웨일스 왕 오웨인과 동생 카드왈라드르의 갈등도 인상 깊다. 혈육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진 욕망, 권력 다툼, 그로 인해 무너지는 신뢰와 관계는 중세의 혼란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반란의 여름』은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람들의 선택이 어떻게 갈등을 만들고, 그 갈등이 다시 인간을 흔드는지를 치밀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



익숙했던 슈루즈베리를 떠나 웨일스로 무대를 옮긴 <반란의 여름>은 그 자체로 신선한 변화였다. 평소보다 역사적 배경과 정치적 갈등이 더 깊이 녹아들어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캐드펠 수사의 냉철한 시선과 인간적인 면모는 여전했고, 새로운 공간이 주는 낯섦이 긴장감을 조성했다.


이번 작품은 특히 인물들의 심리와 갈등이 돋보였다. 원치 않는 결혼을 거부하고 자신의 삶을 선택한 헬레드, 권력을 둘러싸고 대립하는 형제들, 그 속에서 사람들의 선택을 조용히 지켜보는 캐드펠까지. 모두가 각자의 사정과 욕망을 안고 살아가는 모습이 현실적이다.


자연스럽게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캐드펠은 또 어떤 사람들과 얽히고, 어떤 진실을 마주하게 될까. <캐드펠 시리즈>가 늘 그래왔듯, 다음 권도 또 다른 재미와 울림을 선사해 줄 거라는 믿음으로 19편으로 넘어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합리적인 미스터리를 쓰는 법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협찬도서


작가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책 한 권을 내는 데 아주 오래 걸리는 사람과 쉬지 않고 책을 내는 사람. 전자는 퓰리처상을 받은 도나 타트(10년에 1권씩 책을 내기로 유명)가 있다. 후자는 스티븐 킹, 히가시노 게이고, 나카야마 시치리가 있다. 이중 48세로 가장 늦은 나이에 등단한 게 나카야마 시치리이다.


적은 나이가 아님에도 저자는 등단하자마자 쉬지 않고 소설 쓰기를 이어왔는데, 2010년 『안녕, 드뷔시』를 시작으로 2025년 기준 77권이 넘는 책을 썼으니 엄청난 속도라 할 수 있다. 놀라운 점은 이렇게 다작을 하면서도 대부분의 작품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는 것이다. 그런 인기에 힘입어 국내에도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 시리즈>, <비웃는 숙녀 시리즈>, <이누카이 하야토 형사 시리즈> 등이 번역되었다.



<추리소설 쓰기의 어려움을 속 시원하게 긁어드립니다>

『합리적인 미스터리를 쓰는 법』는 한 마디로 프로페셔널의 끝판왕을 보여주는 일본 추리소설 작가 **나카야마 시치리의 '소설 쓰기 꿀팁 모음집'이다.** 기본적으로는 추리/미스터리 소설 작가를 꿈꾸는 분에게 큰 도움이 될 내용이 많은데, 자신의 작품에 미스터리 요소를 넣고 싶은 분이나 프로 작가의 마음가짐을 배우고 싶은 분에게도 유용하다.


목차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자세한 작법서라기 보다는 '원 포인트 레슨' 느낌의 소설 쓰기 책이다. 그 덕에 가독성이 상당히 좋은데, 마음먹고 읽으면 몇 시간 만에 다 읽을 수 있다. 한 번이라도 소설을 써본 사람이라면 고민했을 법한 부분을 속 시원하게 긁어주는 게 포인트인데, 작가 지망생이자 나카야마 시치리의 팬으로서 다방면에서 감탄하며 읽었다.


<프로 중의 프로>

다작으로 유명한 나카야마 시치리 작가는 하루에 몇 시간이나 글을 쓸까? 정답은 17시간 15분이다. 몇 년 전 일본의 모 유튜브에 나와 밝힌 자신의 하루 일과다. '설마 사람이 이렇게까지 글을 쓰겠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합리적인 미스터리를 쓰는 법』을 읽어보면 결코 저자의 말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원서 『超合理的!ミステリーの書き方』가 2024년 9월에 나왔으니 저자의 소설 쓰기 루틴은 현재 진행형으로 보인다.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가로서의 자긍심과 프로페셔널함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 책 곳곳에 있다.


작가가 쉬운 방법으로 편하게 가려 하면 독자는 지루하죠. 작가가 쓸 때 편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114쪽


하루에 반드시 원고지 25장을 씁니다.(중략) 물론 매일 반드시 25장을 쓴다는 건 아닙니다. 플러스마이너스 3장이죠. 140쪽


데뷔 전, 지금처럼 에너지 음료가 많지 않았던 13년 전에는 컴퍼스 바늘로 발바닥을 찔러 졸음을 쫓았습니다. 198쪽


이외에도 저자는 책 속에서 편집자와 잘 교류하는 방법,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 방법 등 작가로서 살아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음을 쉴 틈 없이 어필한다. 자칫 자기자랑처럼 보일 수도 있는 부분인데,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건 저자가 그만큼 '작가'라는 직업에 긍지를 느끼고 있고 작가로서 평생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정신론에 입각한 일부 조언, 조금 더 디테일한 요소를 알려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부분은 분명 단점이다. 그럼에도 일본 추리소설 작가 나카야마 시치리의 '소설 쓰기 꿀팁 모음집' 『합리적인 미스터리를 쓰는 법』는 현역 작가, 작가 지망생은 물론 저자의 팬에게도 선물 같은 책이다. 글쓰기 팁 외에도 저자가 자신의 소설을 집필하며 있었던 썰을 푸는 부분에서 팬심이 상승한다.


얼마 전 올렸던 나카야마 시치리의 『비웃는 숙녀』 서평에서도 밝혔듯이 나는 저자의 책을 다수 가지고 있다. 그런 만큼 이 책이 더 흥미롭고 유익했다. 원래 작가들의 글쓰기 조언 책, 집필서 등을 읽고 독자가 100% 만족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추리소설에 관심 있고,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분명 이 책이 아주 높은 확률로 마음에 들 것이다.


<참고 자료>

1. 위키피디아, 나카야마 시치리

2. BookLink, インタビュー『護られなかった者たちへ』『境界線』(NHK出版)/中山七里氏に聞く

3. 아마존 JP, 『超合理的!ミステリーの書き方』

4. bookmeter, 『超合理的!ミステリーの書き方』

5. 유튜브 有隣堂しか知らない世界, 【どんだけ稼いでるの?】職業作家の1日ルーティン ~有隣堂しか知らない世界06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이어리 레버리지 - 기록에 성공하는 8가지 전략
동감 지음 / 미다스북스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협찬 도서)


최근 몇 년 동안 내가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이어리 쓰기(계획표+일기)'다.


꾸준히 쓴 건 아니다. 대학생 때 잠깐 쓰다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내려놓았다. 새해가 되거나 중간중간 필요성을 느낄 때 다시 써보긴 했지만 금방 포기했다. 그러다 작년 말부터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다이어리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관련 책을 여러 권 읽으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고 이 방법 저 방법을 적용하며 시행착오를 거쳐 어느 정도 루틴이 되었다. 그런데 나보다 훨씬 일찍 이런 생각을 가지고 다이어리 쓰기를 체계화 한 분이 있었다.


블로거 동감이 님은 2022년부터 네이버 블로그에 꾸준히 다이어리 쓰기에 대해 글을 쓴 분이다. 소개 글만 봐도 얼마나 진심인지 알 수 있다. '일상의 흔적과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아날로그식 기록과 메모를 즐기고 있습니다. 기록을 함으로써 나를 알아가고 변화시키는 경험을 다른 분들도 누렸으면 하는 마음에, 기록과 저널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를 나누고 있습니다.'


『다이어리 레버리지』는 동감이 님의 노하우가 응축된 책이다. 오랜 기간 실천하고 생각하여 정리한 글을 책으로 엮었는데, 다이어리 · 일기 · 계획표 등을 쓰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분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왜 늘 실패할까? 기록의 함정>

일상이 스펙터클하지 않다는 이유, 바쁜 일과에 치여 기록 루틴이 깨졌다는 핑계로 우리의 계획은 늘 작심삼일이 되기 쉽다. 무엇보다 '왜 쓰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반복된 기록은 오래 가지 못한다. 『다이어리 레버리지』는 '현실적으로 기록에 실패하는 이유는 목적이 없는 기록을 하기 때문이다.(10쪽)'라는 말로 문제의 본질을 짚는다.


책은 다이어리 기록이 실패하는 이유를 세 가지로 정리한다. 루틴이 쉽게 깨지고, 단편적 일상만 반복되며, 기록을 이끌어줄 멘토가 없다는 점이다. 특히 '기록을 열심히 잘하다가도 바쁜 일상과 급한 업무로 인해 루틴이 깨지면, 다시 회복하기까지 몇 개월이 걸리곤 했다.'는 저자의 솔직한 문장은 내 경험과도 정확히 일치했다.


<변화를 설계하는 전략적 루틴>

『다이어리 레버리지』는 기록의 방향을 전환시키는 전략을 제시한다. 핵심은 기록 거리의 다양화다. '단편적 일상으로만 기록이 한정되면 반복되는 기록 내용으로 인해, 기록의 재미를 잃어버리게 되는 결과를 우려하는 것이다.'는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생각의 흐름 · 아이디어 · 방향성 같은 성장형 기록 거리를 통해 기록은 보다 입체적인 도구가 된다.


또한 이 책은 루틴 설계와 목표 관리에도 기획자의 관점을 적용한다. '기록 루틴은 내가 무엇을 기대하는지 명확히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83쪽)는 문장은 무조건적인 실천보다 목적 중심의 루틴을 강조한다. 『다이어리 레버리지』는 결국 다이어리를 단순한 일정 관리 도구가 아닌, 삶을 설계하고 성장시키는 전략적 툴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


책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는 내가 모호하게 생각하던 부분을 정리해 줄 때이다. 다이어리 · 기록 · 일기 등이 좋다는 건 알지만 지속하지 못했고 물음표를 가졌던 사람에게 『다이어리 레버리지』는 분명 도움이 된다.


저자가 오랜 기간 실천하고 생각하며 다듬은 글이기에 가독성도 좋고 신뢰감이 생긴다. 또한 책의 후반부 <성장형 기록 더하기 Q&A> 부분에서 '더 나아가 자신만의 기록 방식에 별칭을 붙여보는 것은 어떨까? 결론적으로 당신의 기록 방식이 정답니다.(189쪽)'라는 문장에서는 유연함까지 엿볼 수 있다.


저자의 말처럼 다이어리 작성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저마다의 취향이 있고 추구하는 바가 다를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고민을 한 선배들의 이야기는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들의 고민과 정답 중 우리에게 도움 될만한 지식과 지혜가 분명 있을 것이다. 우린 그걸 잘 버무려서 사용하면 된다. 자기계발도서 『다이어리 레버리지』도 그중 한 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용기론 -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
우치다 다쓰루 지음, 박동섭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용기란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용기론』은 '지금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이 무엇인?'라는 질문에서 시작됐다. 저자는 그 답으로 '용기'를 말했고, 이후 편집자와 9통의 서신을 주고받으며 심도 있는 대화를 이어간다. 고립 · 직감 · 정직 · 친절을 넘나드는 사유는 한 가지 질문을 향한다. '왜 지금, 다시 용기인가?'


우치다 다쓰루는 일본을 대표하는 사상가이자 무도인이다. 프랑스 철학자 레비나스를 평생의 스승으로 삼아 문학과 사상을 연구했으며, 합기도 도장을 운영하며 사유와 수련을 동시에 실천하는 독특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하류 지향』, 『무지의 즐거움』 등으로 알려진 그는 철학, 일상, 사유와 신념을 오가며 시대를 응시한다.『용기론』은 그런 저자가 지금 꼭 해야 한다고 믿은 이야기를 자신만의 언어로 담아낸 결과물이다.


<'용기' 고립을 감내하는 힘>

우치다 다쓰루는 '용기'를 아무도 지지해 주지 않을 때조차 스스로의 판단을 유지하는 태도로 본다. 『용기론』은 그런 고립의 순간에 필요한 사유와 자세를 다룬다. 용기를 감정의 문제로 접근하지 않고, 이성과 신념의 문제로 풀어낸다는 점에서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책은 "논리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도약을 위한 도움닫기."라는 비유를 통해, 사유가 어떻게 전개되고 완성되는지를 설명한다. 논리와 경험 사이의 간극을 넘기 위해선 도약이 필요하고 이 도약은 때로 사회적 고립을 동반한다. 저자는 바로 그 지점에서 용기의 역할이 시작된다고 본다. 『용기론』을 추천하는 이유는 이처럼 철학적 개념을 일상의 언어로 풀어내는 균형감에 있다.


우치다는 '감정적 자기 통제력과 논리적 사고력'을 동시에 갖춘 상태에서만 용기가 성립할 수 있다고 본다. 이는 충동적 행동이나 단편적 결단과는 거리가 있다. 공자의 말을 인용하며, 자신에게 이치가 없음을 깨달았을 때 '미안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태도 역시 용기의 한 형태로 설명하는 대목은 인상 깊다.


<질문하는 사람만이 성장한다>

『용기론』은 질문을 통해 지성이 작동한다고 주장한다. 독자의 삶에 당장 적용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무엇을 묻고 어떻게 고민할 것인지를 조용히 짚어주는 점에서 오히려 믿음직하다.


또한 저자는 "정직하려면 자신에게서 일단 떨어져야 한다,"라고 말하며, 자기 성찰과 거리 두기를 정직의 조건으로 제시한다. 말에 대한 위화감, 반복되는 상투적 언어를 의식하고 멈추는 것이야말로 정직의 시작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용기론』은 삶의 태도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독자에게 그 어떤 특정한 방향을 강요하지 않는다. 저자가 전하는 사유는 명확하고 간결하며, 읽는 이 스스로가 생각하게끔 만든다.


---


『용기론』을 읽고 내가 얻은 건 '고립 속에서 자기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용기'다. 시간이 지난 뒤에도 문득 떠오를 문장이 필요한 사람에게 이 책은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가제본을 제공 받았습니다>


오스터.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책을 읽은 적은 한 번도 없다. 가제본으로 책을 받은 것도 처음이다. 거기다 『바움가트너』는 내가 평소에 즐겨 읽는 장르의 책도 아니었다. 그런 이유에선지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문장은 단단했고 지문은 길었으며, 무엇보다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그런 종류의 책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책을 놓을 수 없었다. 그저 이야기를 끝까지 따라가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낯설던 주인공의 목소리가 어느새 내 안의 무언가와 닿는 느낌. 읽는 동안 많은 생각이 오갔고 읽고 나서는 오래 남았다. 신간도서 베스트셀러 『바움가트너』는 그런 식으로 아주 조용히 다가왔다.


<조금 평범한 하루>

달걀을 삶던 냄비가 타버리고 그것을 치우다 손을 데고 전기 검침원을 안내하다 계단에서 넘어지던 어느 봄날. 바움가트너는 평소처럼 글을 쓰던 아침, 아주 작은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나며 어느 순간 멈춰 선다. 그날은 아내 애나가 세상을 떠난 지 꼭 10년이 되는 날이었다. 무겁게 눌러두었던 기억의 뚜껑이 조금씩 열리고 그의 내면에는 오랜 시간 묻어둔 감정들이 다시 피어오른다.


이야기는 특정한 순서를 따르지 않는다. 바움가트너의 의식처럼 장면들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흘러간다. 그는 어린 시절의 부모를 떠올리고 젊은 시절의 자신을 지나 결국 애나와의 관계로 돌아간다. 그가 아내의 부재를 환지통에 비유하는 장면은 단순한 문학적 장치가 아니다. 그에게 애나는 신체처럼 삶의 일부였고 그 부재는 여전히 존재하는 고통이었다. 폴 오스터는 이를 통해 '애도란 시간과 함께 사라지는 감정이 아니라, 삶에 스며드는 감각'임을 말한다.


<상실과 애도>

『바움가트너』는 상실 이후에 바움가트너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그린다. 그는 아내가 남긴 시를 정리하며 여전히 그녀를 삶 안에 머물게 하고자 한다. 그가 써 내려가는 원고, 찾아오는 새로운 사람들, 심지어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전화 한 통도 그의 삶에 새로운 연결고리를 만든다.


작품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어떤 단어들은 단순한 철학적 비유를 넘어 삶의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하나의 태도로 읽힌다. 몸과 영혼, 현실과 기억,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서 오스터는 인간의 존재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그리고 그 물음은 독자인 나에게도 조용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상실을 어떻게 기억하고 어떻게 견디며 또 어떤 방식으로 그 기억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


『바움가트너』는 큰 소리를 내지 않는다. 잔잔한 파도 소리처럼 귓가를 맴돌 뿐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삶이 가진 사소한 균열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누군가와 이어져 있다는 감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아마도 이 책이 말하고자 한 건 그것일지도 모르겠다. 상실을 껴안는다는 것 그 자체가 또 다른 연결의 시작이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


『바움가트너』는 어떤 장면도 과장하지 않고, 어떤 감정도 억지로 끌어올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삶의 깊은 층위까지 착실히 닿는다. 처음 읽은 폴 오스터의 작품으로 팬이 된 이유다. 생의 말미에 도달한 한 인물이 삶을 정리해 나가는 과정을 따라가며, 나 역시 내 삶을 조심스럽게 돌아봤다. 그의 문장을 왜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삶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죽음 이후에도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 상실 속에서도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덮고 나면 마음 한편을 꽉 찬다. 오스터의 다른 작품들도 분명 이렇게 잔잔하게 그러나 분명히 무언가를 건넬 것 같아 기대하게 된다. 이제야 만난 게 조금 아쉽고 그래서 더 고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