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뇌의 역사 - 파블로프에서 한국전쟁 그리고 소셜 미디어까지
조엘 딤스데일 지음, 임종기 옮김 / 에이도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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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종교인 등은 대중을 현혹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구사한다. 그중 하나가 날조 · 선동과 같은 '가짜 뉴스'다. 그래도 이전에는 많은 인적 자본이 필요해서 한계가 뚜렷했는데, 최근에는 AI 기술의 발전으로 사진과 영상 제작이 더 쉬워져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넓은 의미에서 이런 행위는 '세뇌'로 볼 수 있다. 일부 사람들은 이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한다. 하지만 좁게 볼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반의 문제로 접근해야 사건 · 사고를 막을 수 있다.  

『세뇌의 역사』는 1976년부터 1985년까지 하버드 의과대학 교수를 지냈으며, 미국 대통령 정신건강위원회 자문 위원을 역임한 저명한 정신의학자 조엘 딤스데일의 저서다. 현재 그는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캠퍼스 정신의학과 석좌교수 재직하며, 스트레스, 잠, 삶의 질 등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대표 저서로는 『악의 해부』 『생존자들, 희생자들 그리고 가해자들: 나치 홀로코스트에 관한 에세이』 등이 있으며, 이번 책은 나치 전범들의 심리를 분석한 『악의 해부』에 이은 두 번째 번역서다.



<세뇌는 정말 가능할까?>

작년 읽은 일본 추리소설 『명탐정의 제물』의 소재는 미국의 사이비 교주 짐 존스에 의해 일어난 집단 자살 사건이었다. 책을 읽을 당시에는 '정말 이 정도로 쉽게 사람들이 세뇌를 당한다고?'라는 의문을 가졌다. 평범한 사람이 봤을 때 세뇌 당한 사람들의 행동은 이해하기 어렵다. 비상식적인 언행에서 불쾌감마저 느낀다. 그런데 조엘 딤스데일 저자의 『세뇌의 역사』를 읽고 나면 나 또한 언제라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심이 든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은 1부에서 전쟁과 관련해 벌여졌던 참혹한 세뇌의 역사를 다루고, 2부에서 범죄자와 종교집단이 어떻게 세뇌를 다뤘는지 상세하게 설명한다. 3부에서는 21세기에 벌어지고 있는 세뇌를 언급하는데 1~3부 모두 유익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 인문학 책임에도 높은 몰임감을 느낄 수 있다.



<한국전쟁, 스톡홀름 증후군, 사이비 종교의 집단 자살, 쇼셜미디어와 가짜 뉴스>

『세뇌의 역사』를 읽으며 가장 놀랐던 부분은 '세뇌(brainwashing)'라는 용어가 한국전쟁 이후 만들어졌다는 부분이다. 책에서 한 챕터를 차지할 만큼 상세히 다루는데, 우리 역사에 있어 너무나 아픈 기억이 세계 심리학 역사에 있어 중요한 한 페이지였다는 게 씁쓸하다. 

이외에도 인질이 범인에게 동조하고 감화되는 비이성적인 심리 현상을 뜻하는 '스톡홀름 증후군'과 세뇌의 대표적 사례 각종 사이비 종교 단체의 집단 자살 사건. 그리고 현대의 가장 큰 화두 쇼셜미디어와 가짜 뉴스에 대해서 저자만의 분석을 엿볼 수 있다. '본인의 자유와 의지에 무관한 다른 생각을 갖게 하는 게 가능할까?'라는 의문에서 펼친 책은 궁금증 해소를 넘어 생각의 확장을 불러온 수준 높은 인문학 책이다.



책을 꾸준히 읽다 보면 1년에 몇 권씩 지식과 지혜가 확장되는 경험을 한다. 이 느낌을 잊을 수 없어서 포기하지 않고 책을 읽는데, 『세뇌의 역사』는 2024년 하반기 인문학 서적  베스트 목록에 당당히 올릴 수 있는 책이다. 자칫 편향된 주장을 펼칠 수 있음에도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며 균형 있게 '세뇌'의 역사를 되짚는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인류의 잔혹한 역사와 전쟁 · 종교의 양면성을 깨닫는다. 흥미진진한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가짜 뉴스'에 대한 저자의 걱정이었다. '취약한 인간의 정신을 조작하기 위해 현대의 인지과학, 신경과학, 행동과학이 갈수록 정교해지고 있다.'라는 문장이 무겁게 다가온 이유다.



(에이도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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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사의 두건 캐드펠 수사 시리즈 3
엘리스 피터스 지음, 현준만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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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O며 들다’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다. 개그맨 김해준의 부캐 ‘최준에게 스며들다’를 줄여 ‘준며들다’라는 말을 사용하며 알려졌다고 한다. ‘스며들다’라는 동사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실린 표준어인데, <속으로 배어들다>와 <마음 깊이 느껴지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최근 내가 스며든 인물은 ‘캐드펠 수사’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땅딸막한 키와 평범한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번뜩이는 지혜를 뽐내며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받는 모습에서 내가 본 받고 싶은 어른의 모습을 엿봤기 때문이다.

『수도사의 두건』은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3권으로 영국 추리작가협회로부터 ‘실버 대거 상’을 받은 엘리스 피터스의 작품이다. 2편 『시체 한 구가 더 있다』가 1138년을 8월 여름 이야기였다면, 이번 작품은 같은 해 12월 겨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캐드펠 수사의 마음이 요동치다>

추천 역사 추리소설 『수도사의 두건』은 주인공 캐드펠 수사가 생애 가장 사랑했던 여인 '리힐디스 본'이 등장한다. 둘은 10대 시절, 결혼을 약속했지만 그가 십자군 전쟁을 떠나 오랜 기간 돌아오지 않으며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런 그녀가 자신을 도와달라고 하니 그 또한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수도사의 두건』은 시리즈 중에서도 주요 사건이 빨리 발생하는 축에 속한다. 그 덕에 인물 간의 갈등이 초반부터 휘몰아치는데 살인사건 외에도 캐드펠이 머물고 있는 수도원에 큰 변화가 찾아오기에 이를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닮고 싶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 3권째를 읽으며 느낀 건 ‘캐드펠 수사'는 개성 강한 탐정은 아니라는 점이다. 세계적인 탐정 캐릭터 셜록 홈즈나 에르큘 포와로에 비하면 눈에 띄는 외형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괴팍한 성격 때문에 한 번 보면 잊지 못할 그런 인물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가 보여주는 행동 하나하나에서 진심이 느껴지고 상대방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에서 ‘참된 어른’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떠올리게 된다. 물론 그가 단순히 정의감 때문에 사건에 개입하는 건 아니다. 호기심과 약간의 오지랖도 품고 있다. 그럼에도 사건 관계자들이 그를 경계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건 진심이 전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세랑 · 움베르토 에코 · 요네자와 호노부가 극찬한 역사 추리소설이라 기대가 컸는데 아주 흡족한 독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남은 두 권을 다 읽고 나면 6~10권이 나올 때까지 조금 기다려야 할 텐데 벌써부터 아쉬운 마음이 든다.​



<『수도사의 두건』 내가 뽑은 문장>

1. 세상의 절반을 모르고 평생을 살아온 나이 많고 순진한 몇몇 수사들 사이에서도 경악의 수군거림이 잠시 일었다. 14쪽

2. 모든 이의 죽음에는 그 죽음으로 이득을 얻는 사람이 있는 법입니다. 82쪽

3. 독살자에게는 어딘지 음험하고 비밀스러우며 어두운 구석이 있는 법이다. 101쪽

4. 불완전한 세상에서 과신은 금물인 법이었다. 111쪽

5. 재판에는 반드시 죄인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130쪽

6. 무턱대고 의심하기보다는 증거를 찾아내는 것이 우선이요. 누군가를 미리 찍어놓고 벌이는 표적 수사가 아니라, 정황에 들어맞는 사람은 누구든 조사하는 수사를 벌여야 한단 말이지. 148쪽

7. 힘이 든다고 진실에 눈을 감은 채 편안한 것에만 안주해서는 안 되지 않겠소? 238쪽

8. 우리 인간은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따라 희생자가 될 수도 상속자가 될 수도 있다. 274쪽

9. 우리 안에 있는 악을 전혀 인정하지 않으면 결코 성인이 될 수 없어. 322쪽




(북하우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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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사의 두건 캐드펠 수사 시리즈 3
엘리스 피터스 지음, 현준만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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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가면을 벗기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그중에서 전쟁만큼 폭력적인 것도 없다. 죽고 죽이는 상황에서 본성이 나온다. 누군가는 잊고 있던 사랑을 찾고 누군가는 재물을 탐낸다. 많은 소설이 이를 소재로 인간군상을 표현하는데, 캐드펠 수사 시리즈 2편 또한 탁월한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시체 한 구가 더 있다』 줄거리> 

1135년 헨리 1세가 사망하고 3년 뒤인 1138년. 영국은 내전으로 불안한 정세가 지속되고 있었다. 캐드펠 수사가 머물던 슈루즈베리와 수도원도 안전할 수 없었는데, 스티븐 왕의 군대가 이곳을 습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비군 포로 아흔 네 명이 처형 당한다. 이에 수도원장은 캐드펠에게 시신 수습을 부탁하는데, 이 과정에서 신분을 알 수 없는 의문의 시체 한 구가 발견되고 사태는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매력 포인트> 

식상한 표현이지만 역사 추리소설 『시체 한 구가 더 있다』의 장점을 이야기할 때 ‘생생한 묘사’를 빼놓을 수 없다. 1100년대, 중세 영국이란 낯선 배경에서 일어나는 사건 · 사고를 다루는데 관련 지식이 없는 사람이 보아도 금방 몰입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주인공 캐드펠 수사를 비롯하여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넘치는데, 그 덕에 2편 『시체 한 구가 더 있다』는  1편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 보다 더 많은 사람이 등장함에도 구분이 쉽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캐드펠 수사가 범인을 찾는 과정은 여느 추리소설과 비슷하지만 그 과정이 작위적이지 않고 실제로 그 당시 있었을 법한 일이라 현실감이 넘친다. 최고의 역사 추리소설 시리즈로 손꼽히는 이유 중 하나다.




<가짜 페미니스트가 읽어야 할 소설>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1편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과 마찬가지로 2편 『시체 한 구가 더 있다』에도 매력적인 여성 등장인물 고디스 애더니와 얼라인 시워드가 등장한다. 고디스는 어떤 이유로 남장을 한 채 캐드펠 수사 밑에서 잡무를 도우며 성을 빠져나갈 기회를 엿보고 있고, 얼라인은 작고한 아버지를 대신하여 가문을 이끌고 있는 인물이다.


기사도 정신이 일반적이었던 중세 유럽이 배경이란 점에서 수동적이고 단편적인 여성을 그리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앨리스 피터스 작가는 둘에게 저마다의 서사를 부여해 직접 생각하고 행동하는 입체적인 인물을 만들었다. 자신이 뭐든 할 수 있다는 망상에 사로 잡히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남성)과 힘을 합쳐 역경을 해쳐 나가는 장면이 이 소설의 숨은 추천 포인트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 2편. 『시체 한 구가 더 있다』는 1편과 전혀 다른 플롯과 전개를 보여준다. 1편에서 캐드펠이 어떤 사람인지 집중적으로 보여줬다면, 2편에선 당시 혼란스럽던 영국을 배경으로 실제 있었을 법한 이야기를 그렸다. 이 과정에서 보여 주는 인간군상이 탁월한데, 1편보다 더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이 다수 등장하여 읽는 재미를 더한다. 



‘범인이 누구인가’ 보다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기에 극적인 장면이 많다. 1994년 방영된 드라마 시즌 1의 1화의 원작으로 선택 받은 이유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장점 중 하나는 전편을 읽지 않아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해당 시리즈가 궁금한 분이라면 2편부터 읽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북하우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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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제텔카스텐 - 스쳐 지나가는 아이디어를 붙잡는 가장 확실한 방법
데이비드 카다비 지음, 김수진 옮김 / 데이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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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수많은 메모법이 있다.



나 또한 여러 가지를 테스트해보았다. 하지만 제대로 정착한 건 없다. 꾸준히 하지 못한 내 자신이 가장 큰 문제겠지만, 한편으론 효용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최근 관심을 가진 건 ‘제텔카스텐’이다.



독일어로 ‘메모 상자’를 뜻하는 제텔카스텐은 실제로 여러 학자와 작가들이 사용하는 메모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이 접한 정보나 떠오른 아이디어를 키워드로 분류 정리하는 방식인데, 메모가 쌓일수록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시너지가 나는 방식이라고 한다.




자기개발서 『디지털 제텔카스텐』은 베스트셀러 《시간 관리 대신 마음 관리: 창의력이 중요한 경우의 생산성 Mind Management, Not Time Management: Productivity When Creativity Matters》와《출발을 위한 마음가짐: 미루는 것을 멈추고 창작을 시작하라The Heart to Start: Stop Procrastinating & Start Creating》의 작가 데이비드 카다비의 저서다. 국내에선 『해커를 위한 디자인 레슨』 이후 두 번째 번역서다.



<디지털 제텔카스텐 실전 활용법>

자기개발서 『디지털 제텔카스텐』 시중에 출간된 제텔카스텐 관련 책 중 가장 얇다. 전체 분량은 130쪽인데 핵심만 추리면 60쪽까지 정리할 수 있다. 이렇게만 보면 배울점이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불필요한 내용은 제외하고 저자의 실제 노하우를 담았다는 큰 장점이 있다.



총 1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1~6장에서 제텔카스텐이 무엇인지,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단점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7~16장에서 어떤 매체를 활용하여 제텔카스텐을 구현할지, 그리고 저자가 어떤 방식을 활용하고 있는지 설명한다. 



<실천은 나의 몫>

전체 목차 중 핵심이 되는 건 9장 ‘제텔카스텐의 해부학’과 10장 ‘독서법’이다. 제텔카스텐 대표적 개론서인 숀케 아렌스의 『제텔카스텐』의 경구 구체적인 방안이 많지 않아 아쉬운 독자들에게 특히 도움이 될 내용이다. 데이비드 카다비 저자가 어떻게 임시메모 · 문헌메모 · 영구메모를 분류하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책을 읽고 그걸 다시 글감으로 정리하는지 순서대로 설명한다. 



물론 저자와 똑같이 실천할 필요는 없다. 제텔카스텐은 자유도가 높은 메모 방식이기에 여러 사람의 방법을 참고해 나만의 방식을 만드는 게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직접 실천하며 내게 맞는 걸 장착하자.




이 책은 ‘제텔카스텐’ 관련 책 중 2024년 7월 기준, 최신간 도서다. 국내에선 아직까지 생소한 개념이기에 관련 책이 많지 않아 여러모로 반가운 책이다. 제텔카스텐에 대한 공부를 시작한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입문자이지만 기존의 메모법보다 훨씬 글쓰기에 특화된 방식이란 걸 느끼고 있다. 이걸 어떻게 활용할지는 결국 사용자의 노력과 역량에 달려있다. 생산적인 메모법에 관심 있는 모든 분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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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 캐드펠 수사 시리즈 1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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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자꾸만 더 자극적인 맛, 짜릿한 무엇을 찾아 나선다. 추리소설 또한 마찬가지다. 극적인 상황이 연출된 작품과 화려한 트릭을 탐닉한다. 그런데 ‘자극’에만 몰두하면 한계에 도달한다. 황당한 설정, 허무맹랑한 트릭 등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반면 <캐트펠 수사 시리즈>는 기본에 충실한 작품이다. 심심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질리지 않고 그 덕에 꾸준히 찾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시리즈는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권할 수 있다.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 등장인물>

1. 캐트펠 수사(57세) : 젊은 시절 십자군 전쟁에 참전했으며, 이후에도 이곳저곳을 떠돌며 방랑 생활을 했다. 말년에 들어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에 안착했다. 약초, 허브 등을 좋아한다. 인자함과 유쾌함을 지니고 있으며 중요한 순간 뛰어난 통찰력을 발휘한다.

2. 존 수사 : 혈기왕성한 20대의 1년차 수사다. 캐트펠 수사를 잘 따른다.

3. 콜롬바누스 수사(25세) : 예민한 성격의 1년차 수사다. 성녀의 유골을 발견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4. 로버트 부수도원장(50세) : 180센티에 날카로운 인생을 지니고 있다. 성녀의 유골을 수도원으로 가져오기 위해 가장 노력하는 권력욕 많은 인물이다.

5. 제롬 수사 : 로버트 부수도원장의 나팔수다. 

6. 리샤르트 : 귀더린의 영주다. 50대의 나이에도 탄탄한 몸과 왕성한 기력을 자랑한다.

7. 쇼네드 : 리샤르트의 딸로 뛰어난 미모와 넘치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8. 엥겔라드 : 객지에서 온 리샤르트 집안의 일꾼이다. 가축 다루는 솜씨가 일품이다.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 줄거리, 스포 없음>

1137년, 전직 십자군 출신의 수사 캐드펠은 잉글랜드의 슈류즈베리 수도원에서 평화로운 노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로버트 부수도원장이 수도원의 명성과 자신의 지위를 위해 심복들을 데리고 웨일스의 한 마을로 성녀의 유골을 찾아 나서고 그 또한 통역 담당으로 합류하며 소란에 휩싸인다. 마을 사람들은 당연히 그들을 반가워하지 않는데, 특히 소지주이자 마을 대표 리샤르트의 반대가 극심했다. 그런 그가 누군가에게 살해 당한다. 부수도원장은 리샤르트가 하늘의 뜻을 거역하여 벌을 받은 것이라며 성녀의 유골을 가지고 돌아가겠다고 말하는데, 과연 그는 누구에게 살해당한 것일까? 정말 천벌을 받은 것일까?




<관전 포인트가 다르다>

역사 추리소설 캐트펠 수사 시리즈의 1편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은 현대 추리소설과 많은 차이가 있다. 어디서 볼 법한 등장인물, 조용한 배경, 평범한 사건 사고. 색다른 자극을 원하는 독자에겐 아주 많이 심심할 수 있다. 이 작품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선 시선을 바꿔야 한다.



세밀하게 묘사된 중세 영국과 웨일스 지방의 풍경을 떠올리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이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지 상상하며 그들의 삶 깊숙이 들어가야 작품의 진가를 알 수 있다.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의 정세랑 작가와 『장미의 이름』 움베르토 작가가 왜 이 시리즈를 극찬했는지 느낄 수 있다. 




<묘하게 정이 가는 주인공>

이 시리즈의 주인공 ‘캐트펠 수사’는 명탐정 셜록홈즈나 에르퀼 포와로처럼 개성 넘치는 인물이 아니다. 60세를 바라보는 땅딸막한 키에 식물 좋아하는 인자한 어르신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젊은 시절 1차 십자군 원정에 참여했고, 이후에도 방랑 생활을 하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인물이다. 



이러한 경험 덕분인지 다른 등장인물을 대하는 태도에서 유쾌함과 인자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데,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얽히고 설킨 이야기를 그만의 방식으로 부드럽게 풀어내는 솜씨가 일품이다. 명탐정이 등장하여 단칼에 사건을 해결하는 맛과 달리 여운이 남는 결말이라 다음 편이 기다려진다.




현대 추리소설(그중에서도 일본의 특수설정 미스터리)이 프랜차이즈 치킨이라면, 역사 추리소설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은 다양한 채소와 함께 푹 끓여낸 치킨스튜다. 첫 입은 심심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진한 맛에 자꾸만 손이 가고 한 그릇을 다 비웠을 때 뿌듯함마저 느낄 수 있다. 2권 『시체 한 구가 더 있다』를 바로 찾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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