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전에 미국에 대한 일본의 무조건적인 항복으로 우리는 독립을 맞이한다. 자력이 아닌 독립이었으므로 남쪽엔 미군이 북쪽엔 소련군이 진주한다. 이념에 따라 나라는 둘로 나뉘었다. 김일성은 소련을 등에 업고 토지개혁을 시행했고 이승만은 남한 총선거를 주장했다. 김구는 하나의 나라를 위해 남북을 오갔으나 안두희에게 허망하게 암살당하고 만다. 결국 남과 북은 갈라져 1950년 6월 25일 소련의 암묵적 승인을 얻은 북한의 기습적 공격으로 한국전쟁의 아픔을 겪게 된다.

한국전쟁 3년은 거시적으로 볼때 이차세계대전 양대 승전국이었던 소련과 미국의 힘싸움이었다. 그 이념 다툼은 두 세력이 만나는 한반도에서 일어났다. 자력으로 독립을 얻지 못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전쟁의 결과는 혹독했다. 북한은 거의 모든 산업시설을 잃었고, 남한 역시 수많은 인력과 물자를 상실했다.

전쟁이 휴전으로 긴 휴식기를 가지는 동안 거저얻은 독립을 진정한 우리들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겪게된다. 반도의 남쪽에 한정되었지만 4.19 5.18 그리고 6월 항쟁을 통해 민주주의를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어가게된다. 수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다.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는 동시에 경제적인 독립이 진행되었다. 국민 소득이 증대되었고 국민총생산이 어느덧 10위권 국가로 발돋움하게 된다. 하지만 이 역시 댓가가 필요했다. 산업화를 일구기 위해 많은 노동자들이 저임금으로 혹사당하자 자신들의 권리를 보장받기위해 투쟁하였으며 수많은 이기 죽거나 다쳤다. 산업화와 조국근대화의 상징적 존재였던 박정희는 자신과 가장 가까웠던 심복 김재규에게 죽임을 당한다.

우리 전 세대의 엄청난 희생을 통해서 평화와 민주주의 그리고 풍족한 의식주 생활을 누리고 있다. 어쩌면 여전히 독립은 현재진행형일지도 모른다. 아직도 사람들은 정책보다는 정치인들의 이미지나 즉각적인 감정에 반응하며, 지역주의나 세대간 갈등은 심각한 수준이다. 또한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수직적 위계 문화는 더 높은 경제적 성취를 방해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광복 70년을 맞은 지금 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시야를 가져야한다. 우리가 그동안 성취한 것에 자부심을 가지되, 더 완성된 독립을 향해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해 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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