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를 외치던 수많은 사람들을 고문했던 남영동 대공분실의 설계자가 건축가 김수근이라고 한다. 경동교회나 공간사옥과 같이 아름다운 건축물을 빚어낸 한국 건축의 거장인 김수근 말이다. 이런 건물을 잘 모른다면 다른 예가 있다. 88올림픽 경기장과 세운상가.

  대한민국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건축가이고, 유걸, 승효상과 같은 오늘날 한국 건축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는 사람들을 키워낸 스승이었다. 그게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한국 현대 건축은 김수근의 존재를 빼놓고는 이야기 될 수가 없다. 김수근은 그런 사람이다.

 경동교회의 숭고함을 빚어낸 김수근이 그 설계를 담당했다는 것은 슬픈일이다. 그리고 김수근이라는 개인과 그가 가진 의식에 대해 큰 실망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이야기하고자하는 것은 개인의 가치판단을 넘어선 건축과 사회의 관한 문제이다.

 건축은 시대를 보여주는 자화상이다. 그래서 모든 나라는 그 수준에 맞는 건축물을 가진다. 우리가 쓰나미처럼 몰아치는 서울 신청사를 가지게 된 것도, 오리배만도 못하게 한강에 둥둥 떠있는 새빛둥둥섬을 가지게 된것도 이 시대의 결정권자들이 가진 가치 판단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그 결정권자들을 선출한건 다름아닌 바로 우리들이다.

  국민들을 박정희를 지도자로 뽑았고 - 물론 후에 독재를 했지만 - 그 시대와 수준을 보여준 상징적인 건물이 바로 남영동 대공분실이라는 것이다. 그 안에서 김수근이라는 개인이 그 상황을 피하려고 발버둥쳐 보았자 누군가는 그 건물을 설계했을 것이고 어떠한 방식으로든 지어졌을 것이다.

 김수근을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 설계로 분명히 그는 인생에 오점을 남겼다. 그러나 문제는 건축이라는 물리적 구조체를 형성하기 이전의 상위구조의 영향을 받는 다는 것이다. 건축은 그저 건축가가 상상속에서 만들어내는 허상이 아니라, 시대의 요구가 만들어내는 구체적인 그릇인 것이다. 사회가 건강해야 그 속에서 만들어지는 건축물이 건강해질 수 있다.

 건축가는 약자다. 누군가가 건축가의 손에 망나니의 칼을 쥐어주는, 그리고 자신의 의사와 관계 없이 그 칼을 휘둘러야하는 일이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다. 아름답고 숭고한 공간을 만들어내기에도 건축가의 일생은 너무나도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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