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는 자살을 모른다 - 문학으로 읽는 죽음을 선택하는 마음
임민경 지음 / 들녘 / 2020년 3월
평점 :
다음 작품들의 공통점이 뭘까
안나 카레니나, 인간 실격,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그리고 다음 작가들의 공통점은 또 무엇일까
실비아 플라스, 버지니아 울프, 헤밍웨이
그렇다면 앞에서 예로 든 작품들과 작가들의 공통점이 뭐냐고 다시 물어본다면
알만한 사람은 다 알 것 같다
주인공이 자살한 작품들과 자살로 생을 마감한 작가들이다
이번에 살펴볼 책을 주목한 이유는 ‘문학으로 읽는 죽음을 선택하는 마음’이라는 책의 부제와 저자의 이력 때문이다. 저자는 학부에서 독문학과 심리학을 전공했고 현재는 임상심리 전문가로써 범죄 피해 트라우마 통합 지원 기관에서 내담자들을 만나고 있다
이 책의 장점은 문학 작품 속의 주인공과 작가에 대해 심리학적 지식과 자살학 이론으로 좀 더 깊고 폭넓은 이해를 할 수 있도록 한다
전문가가 쓴 책이니 일반인이 보기에 어려운 게 아니냐는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무심코 읽고 지나친 문학 작품 속 주인공의 언행이 의미하는 바를 임상심리 전문가는 놓치지 않고 설명해 준다
일례로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초반부 장면을 통해 안나의 친밀욕구를 설명하기도 하고
시인 실비아 플라스가 죽기 전 가명으로 발표한 유일한 소설 “벨 자”의 주인공을 통해 실비아 플라스의 감정 상태를 읽어내고 설명하기도 한다
솔직히 나는 “벨 자”를 읽고 별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 채 시인이 쓴 소설이라며 내심 폄하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다시 한번 꼼꼼히 읽어봐야 하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작품과 작가에 관심이 있고 좀 더 깊이 읽기를 하고 싶다면 이 책은 좋은 힌트가 될 것 같다
나는 아직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 가운데 제대로 읽은 게 하나도 없다
읽기도 전부터 의식의 흐름 기법이 어떠니 읽어도 무슨 소린지 모르겠더라는 카더라 통신도 읽기를 망설이게 하는 이유일 것이다
어쨌든 버지니아 울프를 읽게 된다면 첫 번째 작품으로 “댈러웨이 부인”을 꼽고 있었다
왜냐하면 마이클 커닝 햄의 소설이 영화화된 “디 아워스”를 아주 인상적으로 봤기 때문이다
어쨌든 책으로 돌아와서, 양극성 장애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조증 상태와 울증 상태를 오가는 증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기분장애. 조울증이라고도 한다
_108p
실제로 양극성 장애는 모든 정신장애를 통틀어 자살 위험성이 매우 높다고 손꼽히는 장애 중 하나라고 한다
버지니아 울프가 남긴 일기나 편지, 주변의 증언 등을 미루어봐서 버지니아 울프는 제1형 양극성 장애라고 추측되고 그녀가 자살을 시도한 것은 기록으로 확인되는 것만 세 번 이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저자가 버지니아 울프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이상심리학 수업에서 버지니아 울프의 이름이 언급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양극성 장애와 예술적 기질은 많은 연관을 보이는데 그 대표적인 예술가 중 한 명이 버지니아 울프라는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에게 처음 정서적 문제가 찾아온 것은 만 13살 때 어머니의 사망 때인 것으로 추정되고 두 번째로는 1904년 아버지의 사망 때인 것으로 추정 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첫 소설 “항해” 가운데 3부 정겨운 ‘블룸스버리’에는 다음과 같은 표현이 있다
“새들이 그리스어로 합창을 하고 있고, 에드워드 왕이 입에 담을 수 있는
가장 상스러운 욕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이것에 대해 저자는 새들이 그리스어로 노래하는 것은 전형적인 조증 삽화의 환청과는 양상이 많이 다르기는 하지만 버지니아 울프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중요한 증상이기 때문에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117~118p 참조)
임상심리학적 시각에서 작품을 볼 수 없는 일반적 독자인 내가 저 문장을 읽었다면 특별할 게 없는 수많은 문장 가운데 하나로 읽고 지나쳤을 것이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냐는 가벼운 의구심과 함께 말이다.
이제는 이 책의 저자가 설명해준 만큼은 준비라면 준비를 하고 읽을 수 있어 조금은 더 작품 이해의 폭이 넓어지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다만 이 책의 아쉬운 점이라면 200여 페이지의 한정된 지면 관계상 어쩔 수 없이 일부분에 관해 비교적 간략한 설명이란 것인데 대중서라는 걸 생각하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나로써는 벽돌책스럽더라도 누군가 좀 더 깊이 있는 분석을 한 책을 출간해주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댈러웨이 부인의 ‘더블’ 셉티머스
버지니아 울프는 평생 동안 여러 차례 힘든 시기를 견뎠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신경증과 정신증 그리고 다양한 증상을 경험했고, 일생을 정신장애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이 그렇듯이 정상과 비정상, 제정신과 광기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이러한 고민을 잘 반영하고 있는 인물이 “댈러웨이 부인”에 등장하는 ‘셉티머스’ 라는 퇴역 군인이라고 한다
소설 속의 중요 인물이라고는 하지만 댈러웨이 부인과 셉티머스는 단 한 번도 직접 만난적은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버지니아 울프는 이 두 사람을 ‘더블’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이 말은 뿌리가 하나인 두 이파리로 비유하고 있다. 버지니아 울프는 댈러웨이 부인이 자살하는 것으로 소설을 끝맺으려고 했지만 셉티머스가 죽는 것으로 결말을 바꾸었다고 한다.
소설 속에서 셉티머스는 다양한 정신 질환 증상을 겪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버지니아 본인의 경험을 반영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소설을 읽으며 우리는 한 인간으로써 버지니아 울프가 겪었던 증상을 간접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고 이 점이 “댈러웨이 부인” 이라는 작품이 가진 또 하나의 특이점이겠구나 싶었다
증상을 직접 겪은 사람만이 해낼 수 있는 것이고 그 사람이 버지니아 울프였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싶었다.
버지니아 울프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그가 남긴 유서를 한번 쯤은 접해봤을 것이다
저자는 그 유서 속 문장들을 자살학 이론들로 한번 유추해보길 바란다고 했는데 전문적인 지식이 아니라도 이 책에서 설명한 것만을 읽고도 유서의 문장이 의미하는 바를 짐작할 수 있었다
역시나 사람은 아는 만큼 볼 수 있다는 말을 다시 한번 실감한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