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버의 후회 수집
미키 브래머 지음, 김영옥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섯 살 때 처음으로 누군가의 죽음을 목격했다.

 

 

 

이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클로버의 후회 수집>은 따뜻함이 몰려오는 소설이었다.

 

내가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건 스무 살이었다.

할머니의 죽음을 앞에서 지켜보던 순간 나는 죽음이 그렇게 손쉽게 다가올 수 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방금 전까지 숨을 쉬고 있었던 할머니.

그 할머니의 머리와 턱을 두 손으로 감싸며 큰 아버지가 하신 말

"어머니, 눈 감으세요. 어머니, 입 다무세요."

몇 초의 시간이 흐르고 큰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어머니, 돌아가셨다..."

그 말을 시작으로 어른들의 곡소리가 울렸다.

 

병원에 계시다 큰집으로 모셔져 그곳에서 임종을 맞으신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내가 마주친 첫 죽음이었다.

방금 전까지 숨을 쉬었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도 믿을 수 없었고, 순간 큰아버지가 할머니를 돌아가시게 한 거라는 착각도 동시에 들었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죽음이 <클로버의 후회 수집>을 읽으며 되살아 났다.

 

클로버는 36살 임종 도우미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돌보며 그들이 홀로 죽지 않도록 그 곁을 지킨다.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 말들을 적어둔다.

 

<후회>, <조언>, <고백>으로 분류된 세 권의 노트는 클로버가 그들의 말은 담아 놓은 기록이었다.

 

 

나는 항상 약속을 지켰다. 죽어가는 이의 마지막 나날을 지킨다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다. 특히 그들이 의지할 데가 나밖에 없다면 더더욱.

 

나는 죽음을 앞두고 무슨 말을 남길까?

이 질문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 남았다.

누군가의 마지막 말을 기록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진실된 말의 기록이 아닐까?

 

한파가 몰아치는 이 겨울에 홀로 죽어갈 죽음들이 눈에 밟힌다.

클로버처럼 그 곁을 지켜줄 사람이 있다면 외롭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죽어가는 이들의 곁을 지키는 클로버 자신 곁에는 반려동물 외엔 아무도 없다.

할아버지가 물려준 집에 살면서 할아버지가 남긴 물건들 사이에 자기 물건을 놓고 살아가는 외로운 클로버.

그에게 죽은 이들을 위한 게 아닌 너의 삶을 살라는 이웃 리오의 말이 클로버가 들은 가장 친근한 사람의 가장 따뜻한 말이었다.

죽음과 가까운 클로버에게 생명에 가까운 일들이 생기게 될까?

 

한 해의 마지막 달은 언제나 흥분과 함께 왠지 모를 불안을 가지고 있다.

뜻밖의 일들을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 마음가짐도 필요하다.

이렇게 복잡할 때 <클로버의 후회 수집>을 읽게 되었다.

 

서배스천처럼 죽음 앞에서도 그 죽음을 금기시하는 가족들 틈에서 혼자 힘겨워 하는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앞에 둔 사람들에게

언제 훅 꺼질지 모를 성냥불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클로버가 전해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삶에 지침이 되기도 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게 되기도 하고, 새로운 삶을 꿈꾸게 하기도 한다.

 

차가운 마음에 온기가 스며드는 이야기였다.

 

후회, 조언, 고백.

내가 남긴 말은 이 중에 어떤 목록에 담기게 될까?

후회하는 말을 남기지 않도록 후회를 만들지 않으며 살고 싶어졌다.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인생 최고의 부분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아요." 클로디아가 마지막으로 윙크를 했다. "조심스럽게 무모해지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느 사형에 관한 기록
단야 쿠카프카 지음, 최지운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쁘기만 한 인간은 없다. 착하기만 한 인간도 없다. 우리는 그 사이의 회색 지대에서 모두 평등하게 산다.

 

 

제목에 쓰인 '기록'이라는 말처럼 이 이야기는 화자가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삶을 기록한 것 같다.

마치 다큐멘터리의 나레이션처럼 사형수인 연쇄살인범의 과거의 행적과 사형장으로 가는 길까지 그와 연결되었던 여자들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그래서 독자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다양한 인물에게 집중하며 이 상황들을 들여다볼 수 있다.

 

연쇄살인범으로 사형을 기다리는 사형수 안셀 패커는 여자 교도관을 꼬셔서 탈출을 계획한다.

사형 당일 그는 자신의 탈출을 꿈꾸며 사형장을 향해 나아간다.

그의 탈출은 성공할까?

 

 

그녀를 차로 끌고 가는 동안 당신은 누군가 볼까 봐 몸을 떨었다. 순전한 운이었다. 그런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은.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은 단 한 명의 여자에게서 위안을 받는다.

자신의 부인이었던 제니. 그는 제니를 알게 된 순간부터 살인을 멈춘다. 제니는 그를 품었다. 엄마처럼.

 

어릴 때부터 숲속에서 동물을 죽였던 아이는 십 대 때 이미 3명의 소녀를 죽인다.

그래서 소녀 살인마라 불렸다. 그러나 그는 잘 숨었다. 아무도 그의 행적을 알아내는 사람이 없었다.

비극에는 감촉이 있다. 당장이라도 풀어야 할 것 같은 매듭이 느껴진다.

헤이즐, 라벤더, 사피의 시점으로 이어지는 안셀의 이야기는 피해자이자 혈육이자 그를 감지한 최초의 형사의 입장에서 이야기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선택'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누구에게나 살면서 고통스럽고 숨쉬기 어려운 순간들이 있다.

그것을 견뎌내고 살아가기를 택하는 건 '선택'이다.

잘못된 길을 가다가도 옳은 길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기에 가해자의 변명과 과거는 그가 선택한 일에 대한 결과에 그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안셀은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랬다.

순간의 충동을 이기지 못한 것도 그 자신의 선택이다.

그가 자신의 이론으로 내어놓은 다중우주의 삶은 그저 그의 변명일 뿐이다.

다른 삶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면 다른 삶을 선택했어야 했으니까.

<어느 사형에 관한 기록> 의 제목이 '사형수에 과한 기록'이 아님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작가는 연쇄살인범에 열광하는 미디어와 사람들에게 조용히 얘기한다.

 

 

이 여자애들만으로는 이야기랄 게 없다. 어떤 집회도, 관심도 없을 것이다. 그들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안셀과 이 세상이 안셀과 같은 남자에게 보이는 열광 때문이다.

 

 

안셀의 사형이 집행되는 시간 그가 죽인 소녀들의 장례식이 열린다.

그들이 사라진지 29년 만에, 그들의 백골 사체를 발견한지 20년 만에...

그러나 사람들은 그녀들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안셀에게 집중할 뿐..

 

단야 쿠카프카의 이야기는 읽는 이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에 답을 찾으면서 나는 내가 무심하게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다시 집중하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소설 속에서 나를 흥분하게 만드는 것이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에 대해.

내가 응원했던 모든 주인공이 올바른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대해.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서 내가 쉽게 납득했던 가해자의 과거들 때문에 그들에게 약간의 면죄부를 주었다는 사실에 대해.

 

<어느 사형에 관한 기록>은 그것들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2023년 에드거 최고 장편소설상을 수상한 이유를 알 거 같다.

 

사람들의 그릇된 관심이 그들을 키워내는 것이다.

올바른 방향으로 성공하기 힘든 이들에게 그릇된 방향의 관삼은 얼마나 쉬운가...

 

모든 것은 선택이다.

자기 자신의 선택.

불타버릴 걸 알면서도 불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사건 속으로 뛰어드는 선택.

 

안셀도 누군가에게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근본은 바꿀 수 없었다.

잠재된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 법이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에 귀 기울였으면 좋겠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지금 우리 현실에서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를 우리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을비 이야기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비채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공포스러운데 공포스럽지 않게 다가와서 계속 생각나게 하는 공포를 심어두는 이야기~

 

 

기시 유스케의 책 <신세계에서>가 있지만 그를 처음 읽은 책은 바로 <가을비 이야기>였다.

4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단편집은 한꺼번에 읽지 못했다.

한 편을 읽고 쉬었다가 다음 편을 읽어야만 했다.

 

공포스러운 이야기를 공포스럽지 않게 전개하면서 나중에야 그 공포를 확장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작가였다.

특히 비가 자주 왔던 기간에 읽어서 그런지 그 으슬으슬 감기 기운처럼 퍼지는 공포스러움이라니~

 



<아귀의 논>

 

"지옥은 꼭 땅 밑에만 있는 게 아니야. 이 세상 어디에나 있고,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에게 각각 존재하고 있지."

 

 

사람의 사랑에 굶주린 아귀에 씐 남자.

그 남자의 업보가 안개처럼 그를 감싼다.

절대 그 누구도 그 남자를 사랑할 수 없다!

 

가을비처럼 처연해지는 이야기.

태어나가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다니...

당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그 안타까움이라니~

 



<푸가>

 

안 된다! 그 문을 열어서는 안 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찝찝하고 찜찜하고 엄청 공포스러웠던 이야기.

꼭 밤에 잘 때마다 생각나서 누워있지 못하게 하는 이야기~

 

자다가 순간이동을 하는 남자.

별짓을 다해도 순간이동하는 걸 막을 수 없었던 남자는 온 방안을 납시트로 도배를 한다.

순간이동을 차단하는 데 성공한 듯 보였던 남자는 어느 날 감쪽같이 사라지는데...

CCTV도 잡아내지 못한 그 남자의 순간이동의 끝은 어디??

 

이거 읽으면 밤에 잠 못 자요!!

 




<백조의 노래>

 

거룩하고 심오한 노랫소리였다. 그런데 그 안에는 악마적인 느낌을 주는, 벌의 날갯짓 같은 소리가 섞여 있었다. 본래의 목소리에 그림자처럼 딱 달라붙어 있는 배음이다. 한 사람이 동시에 내는 목소리일까?

 

 

백조는 죽기 직전에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는 죽기 전에 녹음된 100년 전 소프라노의 노래가 나온다.

그 소프라노에 대해 알기 위해 탐정을 고용한 사가.

그러나 탐정은 사가에게 자기가 알아 온 것을 듣는 걸 포기하라고 말한다.

알고 나면 후회할 거라면서.

그 소리 듣고 안 듣고 싶은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그래서 사가는 그 결과를 듣게 되는데....

 

너무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뭐든 적당히 아는 게 좋아.

다 알려고 들지 마라~

 



<고쿠리상>

 

 

"고쿠리상, 고쿠리상, 저희 무력한 자들의 간절한 소원을, 부디, 부디 들어주십시오."

 

 

이런 거 제발 하지 마세요~

제발 아무한테나 소원 빌지 마세요~

재미로도 하지 마세요~

 

결국 그때는 잘 피해 갔어도 과거는 되돌아와서 미래를 잡아갑니다...

 

무심하게 읽었다가 나중에서야 슬금슬금 느껴지는 공포.

짧은 이야기들 속에서 배우게 되는 삶의 반전들이 인상적인 작품들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부스
캐런 조이 파울러 지음, 서창렬 옮김 / 시공사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른 세 사람은 존의 열정과 맹렬한 확신이 예전의 그가 지니고 있던 다른 모든 모습을 지워버리고 있는 상황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그들은 존이 무슨 짓을 저지를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기보다는 그가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존이 아버지의 광기를 용서하게 해주는 아버지의 천재성 없이 그저 아버지의 광기만 닮아가고 있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존 윌크스 부스는 미국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을 암살한 사람이다.

그의 가문은 셰익스피어 배우로 잘 알려진 가문이었다.

아버지부터 형들과 자신도 무대에 섰다.

그리고 그 무대를 관람하러 온 대통령을 암살했다.

 

작가 캐런 조이 파울러는 존 윌크스 부스에게 서사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부스 가문의 형제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에피소드와 기억들을 통해 존 윌크스를 말한다.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영국에서 건너왔다.

그들은 열 명의 아이를 낳았고 여섯 명만 남았다.

남자아이들은 아버지의 이력을 따라 배우로 성장했지만 배우로 성공한 건 에드윈뿐이었다.

 

존은 가족의 성향과는 다는 성향을 지녔던 거 같다.

그것이 아버지의 부재에 의한 것이었는지 한참 예민한 시기에 아버지의 본처에 의해 자행된 악다구니로 인한 상처에 기인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약간의 폭력성과 반골 기질을 가졌던 거 같다.

 

로절리와 에드윈 그리고 에이시아의 시점을 통해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들을 통해 보이는 그 시대의 일들과 가족의 일들을 읽다 보면 존 윌크스가 저지른 일이 그들에게 끼치는 영향이 부당해 보인다.

아마도 작가가 노린 점이 그것이 아니었을까?

 

이 장면은 그날 저녁의 연극에서 가장 믿을 만한 웃음 유발 대사이고, 메리의 폭소는 모든 사람의 웃음소리보다 더 크게 들리는 것 같다. 메리가 이렇게 웃는 것을 듣는 것은 얼마나 굉장한 일인가! 그 대사가 주는 재미 이상의 즐거움 때문에 링컨 자신도 웃기 시작한다. 그때 그의 귀에 뭔가 다른 소리가 들리지만 그게 뭔지 이해할 시간이 없다.

 

 

부스가 대통령을 죽였다는 말이 들렸을 때도 그들은 그 부스가 자신들을 지칭한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사람들의 준을 목매달기 위해 몰려올 때 호텔 사람들이 그를 피신시키는 장면에서 <부스>가문에 대한 신뢰를 알 수 있다.

아마 그들이 잘못된 선택들만 했던 사람들이었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위로를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단순히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것으로 알려지기보다는 그 이상의 어떤 것으로 알려지고 싶어."

 

 

존은 자신의 말을 지켰다.

미국 역사에서 아버지 부스는 사라졌어도 존 윌크스 부스는 살아남을 것이다.

영원히...

 

사실에 기반을 둔 이야기이기에 허구는 없다.

진실과 허구 사이에서 진실을 찾으려 노력한 작가의 작업은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줬다.

범인이 남기고 간 가족들에게 부여한 서사는 그 일에 대해 객관성을 가지게 한다.

가족이라고 해서 그 속을 다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가족이라 품고 가야 하는 건 있다.

아버지 부스가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존에게 다른 영향을 줄 수도 있었을까?

책을 덮고 남은 질문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느 작가의 오후 - 피츠제럴드 후기 작품집 (무라카미 하루키 해설 및 후기 수록)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무라카미 하루키 엮음, 서창렬 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 시절은 짧고도 소중한 시간이다. 왜냐하면 몇 주 후, 또는 몇 달 후에 안개가 걷히고 나면 우리는 최고의 시간이 끝났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사랑한 피츠제럴드.

그가 발굴하고 번역한 글들을 모은 책 <어느 작가의 오후>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꽤 쓸쓸해졌다...

 

소설에서도 에세이에서도 씁쓸한 고뇌가 느껴졌다.

그가 지금 자신의 글들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어떤 파장을 주었는지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책 제목인 <어느 작가의 오후>의 시간이 피츠제럴드의 한때였다고 생각하니 뭉클하다.

진도가 나가지 않는 원고를 두고 오랜만에 집을 나선 작가의 모습.

집으로 돌아와서 잘 다녀왔냐는 하녀의 말에 그날 하루를 설명하는 거짓말.

그 모습이 너무 슬프다..

 





자신의 삶이 점점 더 세상에서 멀어지고, 이미 충분히 캐 먹은 과거에서 뭔가를 새롭게 캐낼 필요성이 증가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말이다. 그의 삶은 새로운 식림(植林)을 필요로 했고, 그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삶의 토양이 그 숲의 성장을 다시 한번 지탱할 수 있기를 그는 바랐다. 그의 토양은 최고의 토양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왜냐하면 그는 귀 기우이고 관찰하는 대신 과시하는 약점을 일찍부터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에세이가 좋았다.

그의 어조는 담담하면서도 관조적이다.

 

<나의 잃어버린 도시>에서는 뉴욕이 피츠제럴드에게 어떤 느낌이었는지를 보여준다.

다른 사람들이 열광했던 뉴욕은 피츠제럴드에게는 그리 열광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어쩜 뉴욕은 그의 기를 다 흡수해버린 도시 같았다.

그럼에도 그는 다시 뉴욕으로 돌아왔을 때의 자신을 그려본다.

 

망가져가는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고 되돌아보는 글들이 마치 노년의 작가가 자신의 젊음을 되돌아보는 느낌이다.

피츠제럴드가 44세에 사망했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이 작품집을 읽으면서 노작가의 회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암울한 시대에 암울한 인생을 맞았던 피츠제럴드의 글은 잔잔하고 은은하게 스민다.

이야기와 글 곳곳에서 성공이라는 걸 하고 있던 시절에 왜 좀 더 자신을 절재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느껴졌다.

 

피츠제럴드의 짧은 생은 미완으로 남았다...

 

나는 지금까지 피츠 제럴드를 <위대한 개츠비>로 기억했었다.

이제부터 피츠제럴드는 <어느 작가의 오후>로 기억될 거 같다.

 

<위대한 개츠비>로 기억되었던 피츠제럴드가 화려하고 성공한 작가였다면

<어느 작가의 오후>로 기억되는 피츠제럴드는 그저 서럽기만 하다...

 

 

사색하기 좋은 글들이었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았지만 그가 그려낸 1930년대의 미국의 분위기는 무너져가는 그의 삶과도 같아서 그 상황에서 어떻게든 버텨보려 했던 그의 모습이 지금 우리와 겹쳐 보인다.

우리의 앞날도 그때와 비슷할 거 같아서..

피츠제럴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쳐나가려 했던 삶.

나도 그럴 때마다 그의 글을 읽으며 버텨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