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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형에 관한 기록
단야 쿠카프카 지음, 최지운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11월
평점 :
나쁘기만 한 인간은 없다. 착하기만 한 인간도 없다. 우리는 그 사이의 회색 지대에서 모두 평등하게 산다.
제목에 쓰인 '기록'이라는 말처럼 이 이야기는 화자가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삶을 기록한 것 같다.
마치 다큐멘터리의 나레이션처럼 사형수인 연쇄살인범의 과거의 행적과 사형장으로 가는 길까지 그와 연결되었던 여자들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그래서 독자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다양한 인물에게 집중하며 이 상황들을 들여다볼 수 있다.
연쇄살인범으로 사형을 기다리는 사형수 안셀 패커는 여자 교도관을 꼬셔서 탈출을 계획한다.
사형 당일 그는 자신의 탈출을 꿈꾸며 사형장을 향해 나아간다.
그의 탈출은 성공할까?
그녀를 차로 끌고 가는 동안 당신은 누군가 볼까 봐 몸을 떨었다. 순전한 운이었다. 그런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은.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은 단 한 명의 여자에게서 위안을 받는다.
자신의 부인이었던 제니. 그는 제니를 알게 된 순간부터 살인을 멈춘다. 제니는 그를 품었다. 엄마처럼.
어릴 때부터 숲속에서 동물을 죽였던 아이는 십 대 때 이미 3명의 소녀를 죽인다.
그래서 소녀 살인마라 불렸다. 그러나 그는 잘 숨었다. 아무도 그의 행적을 알아내는 사람이 없었다.
비극에는 감촉이 있다. 당장이라도 풀어야 할 것 같은 매듭이 느껴진다.
헤이즐, 라벤더, 사피의 시점으로 이어지는 안셀의 이야기는 피해자이자 혈육이자 그를 감지한 최초의 형사의 입장에서 이야기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선택'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누구에게나 살면서 고통스럽고 숨쉬기 어려운 순간들이 있다.
그것을 견뎌내고 살아가기를 택하는 건 '선택'이다.
잘못된 길을 가다가도 옳은 길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기에 가해자의 변명과 과거는 그가 선택한 일에 대한 결과에 그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안셀은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랬다.
순간의 충동을 이기지 못한 것도 그 자신의 선택이다.
그가 자신의 이론으로 내어놓은 다중우주의 삶은 그저 그의 변명일 뿐이다.
다른 삶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면 다른 삶을 선택했어야 했으니까.
<어느 사형에 관한 기록> 의 제목이 '사형수에 과한 기록'이 아님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작가는 연쇄살인범에 열광하는 미디어와 사람들에게 조용히 얘기한다.
이 여자애들만으로는 이야기랄 게 없다. 어떤 집회도, 관심도 없을 것이다. 그들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안셀과 이 세상이 안셀과 같은 남자에게 보이는 열광 때문이다.
안셀의 사형이 집행되는 시간 그가 죽인 소녀들의 장례식이 열린다.
그들이 사라진지 29년 만에, 그들의 백골 사체를 발견한지 20년 만에...
그러나 사람들은 그녀들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안셀에게 집중할 뿐..
단야 쿠카프카의 이야기는 읽는 이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에 답을 찾으면서 나는 내가 무심하게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다시 집중하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소설 속에서 나를 흥분하게 만드는 것이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에 대해.
내가 응원했던 모든 주인공이 올바른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대해.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서 내가 쉽게 납득했던 가해자의 과거들 때문에 그들에게 약간의 면죄부를 주었다는 사실에 대해.
<어느 사형에 관한 기록>은 그것들에 대해 객관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2023년 에드거 최고 장편소설상을 수상한 이유를 알 거 같다.
사람들의 그릇된 관심이 그들을 키워내는 것이다.
올바른 방향으로 성공하기 힘든 이들에게 그릇된 방향의 관삼은 얼마나 쉬운가...
모든 것은 선택이다.
자기 자신의 선택.
불타버릴 걸 알면서도 불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사건 속으로 뛰어드는 선택.
안셀도 누군가에게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근본은 바꿀 수 없었다.
잠재된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 법이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에 귀 기울였으면 좋겠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지금 우리 현실에서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를 우리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