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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어머니입니까
루이 쉬첸회퍼 지음, 이수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어머니를 할당받을 때 다소간의 행운이나 불운이 따를 수 있다.
나에게 '어머니'라는 역할이 주어지지 않고, '자녀'만의 역할이 주어졌다면 이 책에 크게 호감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리버리 초보 엄마가 된 뒤론 내 어머니는 나에게 어떤 어머니였고, 현재의 난 나의 어린 자녀에게 어떤 어머니 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책의 초반에 이런 말이 나온다. 좋은 어머니를 만나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고, 어머니를 할당받을 때 다소간의 행운이나 불운이 따를 수 있다는 점도 받아들여야 한다. 즉, 우리 어머니는 왜 이럴까? 난 왜 이런 어머니 밑에서 자라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하기 보단 얼마간의 행운, 혹은 불운이 따를 수 있다는 점을 명시한채 이야기는 진행되어 가고 있다. 이 생각을 받아들이게 되면, 일반적인 어머니 신화에 어긋나는 어머니 상을 할당받은 사람일지라도 심각한 고민에는 빠지지 말 것을 권고하는 듯 하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권력형, 희생형, 자아도취형, 애정결핍형 4가지 어머니 유형은 다소 극단에 치우쳐 있는 어머니 상들을 말한다. 그래서 책을 읽고 있는 중간 중간 우리 어머니는 이 네가지를 조금식 짬뽕해논 형이네 하는 생각도 들게 될 것이다. 학원 강사시절 아이들 중에 너무도 주눅이 들어 자신의 의견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아이가 있었다. 이 아이의 엄마는 학원으로 전화도 자주 해서 '이래 달라. 저래 달라' 하면서 자기 주장이 강한 어머니였다. 즉 아이가 자기를 주장하는 능력 자체를 키우지 못하게 한 채 자신의 권위만 내세우는 권력형 어머니 상이었다.
자아도취형 어머니는 우리네 어머니들이 동창회 모임이나 계모임에서 자식 자랑을 할때 드러난다. 자아도취형 어머니의 자녀는 어머니의 삶에 영광을 주기 위한 존재로 태어났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자녀로만 존재한다. 자녀가 학생일 땐 오로지 학교 성적에 의해서만 평가받고. 남에게 보이기 위한 삶만이 존재한다. 자아도취형 어머니는 자녀가 내적인 만족이나 행복을 느끼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고, 오로지 외형만 중요시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한 부분은 이런 어머니 밑에서 자란 자녀들이 '불확실한 행복보다 익히 알고 있는 불행이 더 낫다는 생각'으로 잘못 된 길인 지를 알면서도 부적절한 선택을 하는 것이었다. 물론 문제 어머니의 모든 자녀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애정결핍형 어머니 챕터에서 역시 많은 생각에 빠졌다. 어린 아이였을 때 부모의 애정결핍으로 고통받았던 사람이 어머니나 아버지가 되면, 그는 자기 자신을 결핍으로 이끌었던 상황을 똑같이 재생산하는 경향을 보인다. 어린 시절에 체험한 어머니의 거부는 훗날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이런 주장들에 무조건 신뢰를 보일 수는 없지만, 그들의 자녀들이 그러한 행동 유형 외에 다른 것은 전혀 배우지 못했고, 그렇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그러한 행동 유형이 계속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그들의 자녀에게는 다른 행동을 보이겠다는 결연한 다짐을 하지만 자신이 어머니가 되었을 땐 무의식 중에 자신의 어머니의 비슷한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토록 닮고 싶지 않았던 어머니의 그늘에게 벗어나고 싶지만 또 다시 악순환 되는 이 고리... 아마도 많은 독자들에게 씁쓸한 느낌을 갖게 할 듯 싶다.
저자는 경험하지 못한 사랑도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어머니 때문에 현재의 내가 이렇다라고 단정지어서는 안된다. 단 충분한 사랑을 베푸는 어머니가 곁에 있었다면 유아기에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던 것을 나이가 들어서는 힘겨운 노력에 의해서만 얻을 수 있게 된다. 에릭 베르네의 이론에 나오는 '구조분석' 이라는 개념 역시 기억에 남는 부분이다. 그는 성인의 인격은 부모의 자아(도덕적인 감정과 규칙과 규범 담당), 성인의 자아(합리적인 사고와 주변 세게에 대한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이해를 담당), 아동의 자아(감정이 저장되어 있어 창조적이고 자발적인 행동을 담당)라는 세 가지 자아 상태로 이루어졌다고 가정한다. 인간은 이 세 가지 자아의 도움으로 현실을 규정하고, 정보를 다루고, 주변 세계에 반응하고 이 세가지 자아로 의사소통을 한다고 한다. 자녀와 함께 어울릴 때는 어머니의 '아동의 자아'가 자녀의 ' 아동의 자아'에 맞춰져야 한다. 또는 어머니의 '성인의 자아'가 발전단계에 있는 아이의 '성인의 자아'에 사물을 설명해주고, 가르치려 들거나 감독하지 않으면서 아이의 주장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역시 중요하다. 하지만 권력형 어머니의 경우에는 의사소통이 어머니의 '부모의 자아'에서 자녀의 '아동의 자아'로 일방적으로 이루어진다.
문제 어머니와 자녀 그 사이에는 어머니와 자녀의 관계에 진심으로 개입하지 않은 채 단편적인 배려와 친절함만을 보여주는 아버지가 있다. 그러나 자녀들은 어머니보다 아버지를 더 다정하게 느낀다. 나쁜 역할은 어머니가 다 맡고 뒷짐 진 아버지만 좋은 평가를 받는다. 뭔가 이상하다. 자녀 교육은 다 어머니 책임인가? 아버지의 양육태도는 자녀에게 크나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이어 고개를 든다.
이 책은 비교적 흥미롭게 읽힌다. 중간 중간 어린 시절도 생각나게 해 다소 씁쓸한 감도 있다. 극단적인 어머니 상들을 제시해 나는 이런 어머니가 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도 갖게 한다. 다만 평범한 어머니들은 어떻게 자녀들을 대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가 제시되어 있지 않아 '이렇게 아이들을 일일이 지시하지 말아야지, 아이에게 애정결핍을 느끼지 않게 해야지 하는 생각은 갖게 하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행동으로 보여줘야 하나?'하는 고민에도 빠지게 한다. 저자는 평범한 어머니-자녀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인터뷰를 했다고 하는데 그 기록은 없다. 책을 아무리 털어도 나오지 않는다.
이 책 2편이 나와 문제 어머니 형태를 더 세부적으로 나누고, 평범한 어머니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기술해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이미 어머니를 할당받은 내 자식이 '나는 어머니를 할당받을 때 다소간의 행운이 따랐다'고 말할 수 있길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