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문학과지성 시인선 32
황지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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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경악의 순간이다. 우리의 삶은 한 순간도 빼놓지 않고 흐르고 있지만 인식은 삶을 따라붙지 못한다. 그래서 인식 속에서 삶은 스타카토 노래처럼, 어느 순간에만 점이 똑똑 찍혀, 그 순간만 빛이 나고, 대부분은 점차로 망각 속으로 뒷걸음질쳐 간다.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눈을 똑바로 뜨고 돌아보면 그것은 우리의 평소 인식과는 전혀 다른 모양으로 빚어져 있음을 깨닫게 된다. 전혀 논리적이지도 못하며, 어떤 계보가 있지도 않으며, 정말 그림으로 아무리 그려보아도 그릴 수 없는 것, 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시는 다른 곳에 점을 찍는다. 우리가 보통 애써 논리를 맞추려 한다면, 시는 논리가 맞추어지지 않는 곳에 점을 똑똑 찍어, 생을 노래한다. 그 논리에 맞지 않음을 빛나게 밝히고, 있다. 그것이 얼마나 당신을, 나를 놀래키는가, 시는 그 놀람의 순간에 쓰여진다.

황지우 선생님 시는 시가 세상에 대한 경악의 발화라는 사실을 확신시켜준다. 어떻게 인간이 인간에게 이런 일을, 이라는 경악, 어떻게 세상이 이렇게 돌아감에도, 우리는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경악, 이 여기저기 묻어난다. 「한국생명보험회사 송일환씨의 어느 날」이라는 시는 송일환씨의 몇 백 원 짜리로 구성된 하루와 신문에 나온 몇 천만 원 짜리 물질을 대비한다. 어떻게 한 인간은 몇 백 원으로 전전긍긍하는데 또 누구는 몇 천만 원을 아무렇지 않게 소비하는가. 내가 ‘손 한 번 못 대’도 ‘잘 가’버리는 세월에 대한 탄식(「活路를 찾아서」) 역시 성장이 주는 고통스러운 경악이 아니겠는가. 나의 꿈과도 내 마음과도 의도와도 다른, 삶이라는.

다시 이 시집을 읽으며, 과연 이 시집을 80년대라는 억압의 이미지를 지우고 읽는 게 가능할까라는 물음을 몇 번이고 갖는다. 아직도 삶은 우리를 억압하며 낯설기만 한데도, 나는 그런 물음을 갖은 채 답을 얻지는 못 했다.

시적인 게 뭐냐는 질문에 대한 선적인 것이 아닐까, 라는 황지우 선생님의 다른 시집에 실린 말을 몇 번이고 생각해본다. 시적인 순간, 시적인 지점, 시적인 것.

이미 너무 시와 멀어져버려서(변명일 테지만) 정확히 시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저 시적인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하고 읽는다면 내게는 요새 시보다는 덜 어렴풋하게 그림자가 보이는 것도 같았다고, 그런 말을 할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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