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년월일 창비시선 334
이장욱 지음 / 창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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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카페 주인은 전화번호를 생일기분으로 저장했다. 생일날 내가 언니네 이발관의 생일기분에 대해 친구에게 설파했기 때문이다. 그날 카페에 손님은 우리 뿐이었고 그래서 전화번호 옆에는 생일기분이라는 글자가 찍혀있다.

생일기분은 이런 노래다. 생일날 친구들과 그럭저럭 밥도 먹고 술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 그런데 이런 기분은 뭐지, 이런 기분 정말 싫어. 그런 노래다.

 

이장욱 시집의 해설을 읽다가 문득 나는 전화번호 옆에 찍혀있을 노래 제목을 떠올렸다. 아마 어느 겨울 무렵이었을 것이고, 그때 나는 츄리닝을 입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아직 학교에 다닐 무렵이었다면 그랬을 수도 있다. 츄리닝을 입은 생일날 친구에게 이런 기분 정말 싫어를 설파한 이유.

이장욱 시집을 읽다보면 잔혹한 동화가 떠오른다. 동화는 아름답고 완벽한 세계에 끼어든 마녀라든가 죽음이란든가 하는 것들을 파스텔톤으로 터치한다. 그렇다고 죽음이 죽음이 아니지도 않지만, 죽음이라는 실제적 사건의 무게는 바람이 빠진 풍선처럼 가벼워지고 질량도 무게도 없이 죽음이라는 하나의 사건으로 치환된다. 마치 헤피엔딩을 향한 통과의례마냥. (이제 광고에서도 차용할 만큼 다들 알다싶이) 해피엔딩이란 얼마나 순간적인 것인가. 그러니까 명동에서 사고 당장, 정말 순간적으로 잠깐 기쁜 것처럼.

그리고 옷은 옷장 속에서 다른 옷들과 같은 의미로 전락한다.

우리는 계속 살아야 하므로, 계속 먹고 싸고 입고 어딘가에서 비를 피하기 위해 은행과 거래하고 통신사와 거래하고 전자기기 회사와 거래하고 그들과 전화번호를 나누고 주소를 나누고 고객님이 되고 고객님을 불러야 하므로, 삶이란 동화 헤피엔딩에서 끝이 나지 않는다. 희한한 느낌, 희미하고 희박한 질문들, 희미하고 희박한 존재들에 비해 세상의 질서란 파란 불에서 빨간 불로 바뀌듯 명확하다. 자본주의적 질서라 해도 좋고 세계화의 질서라 해도 좋고. 아무리 비행기를 타고 나라 나라로 가봐도 변하지 않는 여러가지 것들. 횡단보도가 있고 인도가 있고 차도가 있는 때로 교통사고가 나고 사망자 수가 찍히고 뉴스가 나오는 익명의 세계. 세상의 질서는 무시무시한 동화 파스텔톤 터치. 풍선에서 바람이 빠질 때처럼 질문들이 세어나오는 이상한 세계. 바로 여기. 송곳니를 가진 육식주의자와 채식주의자 사이를 방황하는 이상한 , 인간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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