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수은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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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사 토머스 머튼은 말했다.

“영적인 삶은 사랑이다. 사람들은 타인을 보호하거나 도와주거나 선행을 베풀기 위해 사랑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그렇게 대한다면, 그건 그를 단순한 대상으로만 여기고 자기 자신을 대단히 현명하고 관대한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사랑과는 전혀 무관하다. 사랑한다는 것은 타인과 일치하는 것이고, 상대방 속에서 신의 불꽃을 발견하는 일이다.”


어쩌면 사랑은 주어진 시간이 다하기도 전에 우릴 늙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젊음이 이미 다했을 때 다시 젊게 하는 것인지도.


우리 삶에 주어진 매순간에는, 그렇게 할 수도 있었지만 결국 그렇게 하지 못한 것들이 있게 마련이다. 마법의 순간은 깨닫지 못한 채 지나가버리고, 순식간에 운명의 손길은 모든 것을 변화시켜버린다.


인간의 지혜라는 것이 신의 눈에는 광기일 뿐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우리의 영혼 속 아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우리의 눈은 좀더 밝아질 것입니다. 우리 영혼 속의 아이와 만나는 끈을 놓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생과의 만남도 놓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알고 있다. 사랑이 댐과 같다는 것을. 아무리 조그만 틈일지라도 방치하여 무이 새어나오게 내버려두면, 그 작은 틈이 곧 댐을 무너뜨리리라는 것을. 거센 물살의 힘을 막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댐이 무너지면, 사랑이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된다. 그리고 나면 무엇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내가 나의 연인을 내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없게 된다……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통제력을 상실하는 것이다.


사랑은 덫으로 가득하다. 사랑이 그 모습을 드러낼 때, 사랑은 오직 밝은 면만을 우리에게 보여줄 뿐, 그 빛이 만든 그림자는 볼 수 없게 한다.


“나누어진 왕국이 적들에 대항해 스스로를 방어하지 못하듯이, 나누어진 사람은 삶을 당당하게 마주하지 못하는 법이니까.”


“아직 때가 되지 않았는데 낙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자의 고통을 막기 위해서 내가 뭘 할 수 있겠소?”

“아무것도요, 신부님.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사실 전 가진 게 없어요.”

“아가씨에겐 아가씨의 삶이 있어요. 기나긴 삶이. 그걸 좀더 잘 간직하도록 해요.”


어떤 느낌을 붙잡을 수 없이, 너무 천천히 책을 읽었다. 그래서 중간쯤엔 지루할 뿐이었다. 투정인지 책의 내용때문인지 알 수 없으니, 불평은 피하자.


사랑이야기이다. 어느 날 여자와 남자가 만났더라.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이지만 다시 만나니 사랑이 샘솟더라는, 원래 물이 없는 곳에서는 샘이 있을 수 없으니, 그들 마음에도 오래전부터 사랑이 있었겠지. 그 샘이 어느 날 펑하고 터진 것이다.

그리고 기적, 종교, 신, 사랑,……

사랑은 언제나 자기 마음속에 있다고 한다. 해매임은 마음속의 길을 잃은 것이라고. 그럴지도, 아마도, 그렇겠지.

마음의 줄을 잘 붙들어야 겠다.

액션이라는 측면에서 파울료 코엘료의 소설은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추천하고 싶다. 이 소설은 어딘가 좀 빈 듯한 기분이 든다. 어딘가.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때문인지도. 추상은 모두와 맞닿지만 그만큼 멀어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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