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입이 없는 것들 문학과지성 시인선 275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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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모든 문제는 나와 저것 사이에 벌어진다. 아무리 내가 아니래도 나는 나이고 나라는 한계 속에 갇혀 저것을 바라본다. 나는 나인 채로 저것은 저것인 채로. 사랑이라는 이데올로기로 이 차이를 극복하려는 온갖 몸부림을 치는 일. 그게 삶인가.
이성복의 시집에서 이는 극명하다. 나와 저것, 그 사이의 사랑에 대해 자문하는 일.
'육체가 없었다면 없었을' 나. 입이 없어 사랑을 발화하지 않는 것들. 그러나…'살아가는 징역의 슬픔으로/ 가득한 것들'.

내게 이성복이란 시인은 아주 오래된 시인이다. 그는 치열하게 질문한 사람이었으므로 이제 답을 얻지 않았을까 하지만 답이란 애초에 없나? 그는 <75, 어째서 무엇이 이렇게>에서 질문한다. '어째서 오래 살았는데 자꾸만 유치해지는가' 사랑할 힘이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나와 저것 사이에서 무엇인가를 가늠하려 애쓸 여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계속 유치해진다는 것. 계속 반성한다는 것. 사랑을 흉내내지 않고 사랑의 관성 속에서 속지 않고 끝없이 애쓰고 몸부림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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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이 없는 것들

 

 

 

꽃들은 회음부로 앉아서

스치는 잿빛 새의 그림자에도

어두워진다

 

살아가는 징역의 슬픔으로

가득한 것들

 

나는 꽃나무 앞으로 조용히 걸어나간다

소금밭을 종종걸음 치는 갈매기 발이

이렇게 따가울 것이다

 

, 입이 없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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