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에 대한 명상 민음 오늘의 시인 총서 22
장정일 지음 / 민음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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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은 왜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시도하는가, 는 장정일의 시를 이해하는데 좋은 질문이 된다. 시의 서두에서 그는 ‘옛날에 나는 금이나 꿈에 대하여 명상했다/ 아주 단단하거나 투명한 무엇들에 대하여/ 그러나 나는 이제 물렁물렁한 것들에 대하여도 명상하련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햄버거를 만드는 방법이 소개된다. 물론 중간중간 작가의 위트가 넘치는 문장이 삽입되어 있다. 그리고 시의 마지막 연은 ‘이 얼마나 유익한 명상인가?/ 까다롭고 주의 사항이 많은 명상 끝에/ 맛이 좋고 영양 많은 미국식 간식이 만들어졌다’이다.

이 마지막 연을 통해 우리는 장정일이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하게 된 까닭을 알 수 있다. 장정일 시는 문화적 맥락 속에서 읽힐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문학은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맥락 속에서 그 코드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지만, 특히 장정일 시의 문법은 꽤나 직설적이고 대담하게 현 문화를 비판한다. 「햄버거에 대한 명상」의 서두의 ‘물렁물렁한 것들’이란 이러한 문화적 코드를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그는 특정 상표라던가 특정 인물을 지칭해 그 비판의 강도를 높이는데 ‘엘비스, 리바이스, 캔트, 셀렘, 맥도날드’ 등등을 들 수 있다.(「,공기 가운에 들려 올려진 남자」, 「엘비스를 듣는 미국인」, 「낙인」, 「하숙」, 「신식 키친」, 「아빠」) 미국 문화에 종속된 우리의 문화와 그곳에서 노출되는 성적인 코드를 장정일은 그 특유의 재치로 이야기한다. 그의 어법은 다소 과격하고(‘영어를 못하는 무식한 제 3세계/ 젊은이들이여’, ‘양키들은 잔인하구나!’, ‘아빠 아빠 아무에게나 펠라티오를 시키는 버릇 없고 건방진 후레자식!’) 전면적으로 대상을 공격한다. 굳이 미국 문화가 아니더라도 자본주의는 장정일의 시에서 비판받아 마땅한 대상이다.(「백화점 왕국」, 「전파 나무 나무전파」, 「구매자」)

결국 각 개인에게 시적인 것은 모두 다른 것이 된다.(그렇기에 이 세상엔 그리도 많은 시인과 그리도 많은 시가 존재하는 것일 테지만) 어떤 것에 대해 예리한 촉수를 갖는가는 결국 개인의 문제로 국한될 수밖에 없다. 『햄버거에 대한 명상』의 앞부분 시들은 장정일의 촉수가 ‘단단하거나 투명한 무엇’에 반응한다.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석유를 사러」와 같은 시들을 읽으면 따뜻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인간의 ‘야윈 슬픔’에 주목하고 그 슬픔과 피로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존재하는 안식과 평화를 꿈꾼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시는 그의 시집의 주요 경향이 되지 않는다(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시가 더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촉수는 현실적인 것들에 발을 뻗는다.

현실적인 것, 바로 옆에서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 그러한 현상의 부조리함. 「아파트 묘지」에서 화자는 한 여자의 ‘희고 아름다운 다리’를 따라가게 되고 결국 그는 자신의 아파트로 가게 된다. 이와 같은 단절 현상은 옆집에 사는 여자와 나만의 것이 아니다. 「험프리 보가트에 빠진 남자」와 「실비아 플라스에 빠진 여자」 두 편의 시는 같이 살지만 결코 서로를 이해하지 못 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이다. 이들은 자신만의 문화에 빠져 인간과 인간으로 만나지 못 한다. 이러한 현상은 독자에게 쓰디쓴 웃음을 준다. 이 쓰디쓴 웃음은 장정일 시집을 읽는 동안 자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국립극장 초대권 하나 붙어있지 않’지만 어디서 이와 같은 웃음과 슬픔을 동시에 만날 수 있겠는가, 나는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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