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과 망각의 책 문학사상 세계문학 13
밀란 쿤데라 지음 / 문학사상사 / 199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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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은 타인과의 소통을 원활하게 해준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우리 옛 속담이 얼마나 맞는가를 확인하게 되는 경우는 허다하다. 그러나 타인과의 소통이라는 것은 어느정도는 거짓이다. 어차피 자신조차도 자신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것이 인간일테지만, 인간들의 만남에는 타인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통해 우리는 서로 절충하고 상호보완한다. 맞는 부분까지 이야기하고 교감하고 다른 부분들은 자신의 것으로 하거나 갈등을 겪거나 한다.

갈등 뒤에 화해가 있다는 것은 그러나 오해일 수 있다. 교과서에서 배워온대로 아니 그보다 더 훨씬 단순하게 보면 아픔 뒤에는 성숙이 있고 갈등 뒤에는 화해가 있다고 믿고 싶지만, 결코 인생은 그리 순순하지 않다. 우리는 가끔 그 갈등 뒤에 남게 되는 앙금들을 제 속에 고스란히 간직한 채 타인과의 경계를 긋고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보존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소통에 전제되는 웃음은 망각이 없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말이다. 만일 한 인간이 어떤 타인과 갈등을 겪고 혹은 한 개인이 전체와, 사상과 갈등을 겪었을 때 그 데미지를 자신의 내부에 고스란히 기억한다면 그의 인생은 그대로 끝이난다. 그것이 죽음이라는 물질적 개체 변환이 아닐지라도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생에서 찾을 것이라고는 그에게는 없다. 이제 그는 그 데미지에서 헤어나올 수 없으며 모든 사물과 모든 인간에게 똑같은 환영을 보게 된다. 혹은 아무것도 보지 않게 된다.

따라서 망각은 거의 웃음이 전제조건이다. 어차피 인간은 상처 받지 않고 살 수 없는 동물이다. 왜냐하면 우리 사이에는 그 흔하디 흔할 말로 알 수 없는 경계가 있으며 그 경계는 오직 자신의 눈에만 가끔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타인과 타인의 접촉 속에서 경계는 언제나 존재하지만 확인할 수 없고 단지 잠정적으로 가늠할 뿐이다. 그 가늠이 낳는 숱한 오해들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굴러가고 있다.

만일 내가 이제부터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것도 보지 않으려 한다면 나는 살 수가 없다. 그냥 죽는 게 가장 편한 방법이다. 그런 삶의 방식을 택한다면 말이다. 우리가 유쾌한 듯 웃는 웃음 속에 들어있는 그 숱한 비화의 의미들은 매우 슬프지만 그것 또한 어느정도는 망각해주어야만 한다는 것이 바로 존재의 한계라니, 참으로 인생은 서글프다는 것을 그러면서 우습다는 것을 알려주는 책이다. 이 책이 변주곡 형식을 취했다는 것 역시 이토록 단순치 않은 생을 어찌 주욱 하나로 풀어내려 갈 수 있겠는가 하면 이해가 된다. 자꾸만 우리는 하나를 잊고 다른 곳으로 나가며 그 발전은 다시 다른 모습으로 이어진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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