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레아스와 멜리쟝드 20세기 프랑스 희곡선 12
모리스 마테를링크 지음, 유효숙 옮김 / 연극과인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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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레아스와 멜리장드』는 언뜻 보면 형의 아내를 탐하던 펠레아스, 잘못된 사랑에 빠진 멜리장드와 골로의 비극을 다루고 있는 희곡처럼 보인다. 그러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가 서로간에 말을 통해 사랑을 고백하긴 했지만 정말 그들이 죽임을 당할만큼 잘못된 관계를 맺고 있는가는 자세히 나타나지 않는다. 골로가 없을 때면 함께 시간을 보내는 펠레아스와 멜리장드가 무엇을 했는지는 명확히 나타나지 않는다. 빛을 보고, 어둠 때문에 울고, 문 때문에 울었다는 것이 골로의 아들 니올의 말을 통해 드러나지만, 무슨 뜻인지 명확히 알 수 없고 그래서 골로 역시 화를 낸다.

이 희곡에서 거인의 외모를 갖춘 어른인 골로(1막 1장 ‘당신은 거인이세요?’)와 어린애 같은 펠레아스, 멜리장드(3막 1장 ‘어린애들 같아! 어린애들!), 실제 어린애인 니올은 반대편에 서있는 인물들로 등장한다. 그러므로 어린애들의 세계와도 같은 멜리장드와 펠레아스의 세계를 골로는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없으며 그래서 괴로워한다.

이런 세 인물들의 대립은 멜리장드의 긴 머리카락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잘 드러난다. 펠레아스가 멜리장드의 머리카락을 갈대에 묶으며 장난을 치듯 사랑을 고백하는 것과 달리 골로는 그 머리카락을 잡고 휘두르며 힘을 행사하기 위한 도구로 만들어 나간다.

자신의 눈에 보이는 어떤 것, 손에 쥘 수 있는 진실을 원하는 골로는 깊은 심연으로 펠레아스를 데려가지만 펠레아스는 그 심연에서 단지 숨막혀 할 뿐이며, 그들이 원하는 행복 혹은 진실은 빛 속에 드러나는 어떤 것일 뿐이다. 골로는 결국 동생을 죽이고 아내마저 죽게 만든 채 결코 어린아이들이 보는 어떤 것을 볼 수 없는 남자로 남아 장님처럼 어둠 속에 남겨진다.

그러나 이 비극적 운명의 씨실을 엮어내는데 골로 역시 역할을 한다. 멜리장드가 반지를 잃어버렸다고 했을 때 골로는 펠레아스와 함께 찾아올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이 반지를 잃어버린 대목에서도 멜리장드의 어린애다운 이해할 수 없는 습성을 그대로 드러난다. 그녀는 반지를 가지고 연못 같은 데서 장난을 치다가 그만 물에 빠뜨린 뒤 골로에게는 다른 곳에서 잃어버렸다고 말한다. 마치 아이들이 장난을 치다가 실수한 뒤에는 이리저리 다른 핑계를 대듯. 또는 거추장스럽게 자신을 옭아매는 것을 버리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 자신도 모르게 행동으로 옮기고는 나중에는 딴청을 피우듯.

작품의 전체적 분위기는 어둡고 맑은 하늘이 오랫동안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또한 머리가 하얗게 센 거지나 바닷가에서 굶어죽은 농부, 외양간이 아닌 다른 곳을 가는 양들과 같은 대사 속에 드러나는 주변 상황을 통해 이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어 간다.

마지막까지 애처롭게 진실을 갈구하던 골로에게 할아버지 아르켈이 ‘침묵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며 작품은 끝난다. 마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침묵인지도 모른다는 듯이. 우리가 손에 쥐고자 하는 진실은 ‘다른 사람들처럼 신비로운 연약한 존재’인 우리들 앞에 머리카락까지 꼭꼭 숨기며 영영 숨바꼭질을 즐기는 심술궂은 녀석이므로.




대사: 이 애에게는 지금 침묵이 필요해… 자, 이리와… 끔찍한 일이야, 하지만 네 잘못이 아니야… 이 아이는 너무나 고요하고, 수줍어하고, 조용한 작은 존재였어… 다른 사람들처럼 신비로운 작고 연약한 존재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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