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
브램 스토커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4월
평점 :
절판


 

예전에 이 소설을 읽긴 했다. 5년쯤 전 인것 같다. 재밌게 읽었다고 기억하고 있지만, 세세한 내용은 거의 잊었다. 그저 용감하고 정의에 대한 강렬한 신념과 믿음으로 무장한 이들이 드라라큘라 백작과 맞서는 이야기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다. 의례 그렇듯 권선징악에 대한 이야기인가 싶은데 어째서 브램 스토커라는 이름은 이다지도 공포 문학에서 뚜렷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그러다 소설을 읽으며 다시금 그 이유를 확인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각각의 인물들의 기록과 몇몇 잡지, 전보 등을 발췌한 이 소설의 형식이 엄청난 흡입력으로 나를 문장 속으로 끌어들였다. 6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임에도 소설을 읽는 속도가 따라붙어 금세 페이지가 넘어갔다. 조너선 하커가 드라큘라 백작의 성에 갇히는 초반의 기록 뒤로 그들의 첫 번째 희생자 루시에 대한 이야기, 루시와 관계된 이들이 어떻게 이 사건과 관계를 맺게 되는가에서 개연성이 점점 분명해지며 각각의 인물들의 일기-특히 환자 랜필드에 대한 수어드 박사의 기록-는 그 관계망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켜 나갔다.

특히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프란시스 코폴라의 영화 <드라큘라>를 보고나자 이 소설의 형식이 얼마나 적합한가 다시금 감탄했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했음에도-어쩌면 더더욱 그래서인지도 모르지만, 원작에 매이다 보니- 영화는 사건 전개가 훨씬 시시하게 느껴지고 특히 10년 전 영화라 그런지 촌스러운 면이 있었다. 그러나 100년 전 소설임에도 이 소설은 별로 시시하거나 촌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독특함은 각각의 내면을 기록하는 일기 형식에서 기인하는 게 아닐까. 공포는 결국 개인적 영역에서 동심원을 그린다. 또한 많은 것이 변한다 해도 인간의 내면은 별로 변하지 않는 면이 있으므로. 공포를 느끼는 방식이라든지 공포에서 헤어나는 방식이라든지 하는 면에서 말이다. 물론 소설도 숭고미를 끌어들이며 주인공들이 이 사건에 접근하는 것이 좀 과하다 싶긴 했지만 이해가 아주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조너선 하커가 전반부 드라큘라 성에서 겪은 일들에서 헤어나오는 방식-그가 겁이 났으며 그 사건으로부터 퇴행을 겪은 것은 그 사건 자체의 괴기스러움 때문이라기 보다는 자신이 겪은 일을 스스로 현실인가 의심하는 데서 나타난다-이나 소설 후반부에서 그들이 그런 엄청난 일을 겪고 있음에도- 그들 중 한 명인 미나 하커는 드라큘라의 희생자가 될 위기에 처해 있으며, 그들 각각도 엄청난 피로를 느낄 것임에도- 하루가 지나자 그 일들을 꿈처럼 느낀다거나 하는 대목이 충분히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말하자면 사건을 느끼는 각각의 인물들의 내면의 밀도가 과장돼 있거나 작가의 억지나 강요가 아니다. 대단히 사실적이다. 물론 풍광에 대한 세세한 묘사도 빛난다. 마치 그 지역을 여행하는 듯한 묘사가 소설의 호흡을 일정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며 점점 사건 속으로 끌고 간다.

그래서 드라큘라는 무엇일까. 어떤 설명할 수 없는 힘, 생과 사라는 자연의 섭리를 넘어서는 생명에 대한 갈구? 이 소설뿐 아니라『뱀파이어 걸작선』에서도 꿈은 드라큘라와 희생자를 매개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꿈이라……. 억압된 것이 돌아오며, 끊임없이 못 이룬 것을 다른 방식으로 충족시키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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