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리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권택영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평점 :
절판



너무 오래 이 소설을 잡고 있었다. 놓지도 못하고 깊이 빠져들지도 못한 채로. 빠져들기엔 험버트 험버트의 심리를 따라가기가 어지러웠고 놓기엔 아쉬운 점이 있었다. 그리고 거의 마지막 부분에 이런 문장이 놓여 있었다.




그녀는, 지금 벨벳 코트를 입고 자기 옆에 앉아 있는, 초연하고, 우아하고, 날씬한 사십 세의 병약자가, 자신의 사춘기 육체를 세포마다 땀구멍마다 알고 숭배했었다는 믿기지 않는 사실―그리고 조금은 지루하고, 혼란스럽고 불필요한 사실―을 내가 순간적으로 포착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이상스레 안경 쓴, 지친 잿빛 눈에서 우리들의 서툰 로맨스는 잠깐 떠올랐고 생각되었고, 그러고는 재미없는 파티처럼 치워졌다. 가장 지루하고 재미없는 비 오는 날의 소풍처럼, 지루한 운동처럼, 어린 시절 주무르던 한 조각의 마른 진흙덩어리처럼.




추문의 뒷 언저리를 서성거리고 있는 한 사십 대 남자의 처연한 고백 앞에서 나는 잠시간 그를 동정하였다. 어린 소녀의 강간자인 한 남자를 동정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위대한 면이 있는 것일 게다. 소설이란 도덕을 뛰어넘어 있다는 말을 실감하게 해주므로. 그러나, 사실 험버트 험버트(정말 이름을 잘 지었다, 이보다 더 적절한 이름은 없는 것 같다)의 장광설, 풍광 묘사, 심리 묘사에 모두 감응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사랑의 이기적 속성을 반성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자신으로 인해 어린 시절을 모두 잃은 돌로레스 헤이즈에게 돌이킬 수 없는 사과를 표하며. 그러나 그렇다하여도 그가 그녀를 사랑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사랑의 극단적인 속성-결국 자신과 타인 모두를 깊은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마는-으로 사람은 상처입는다. 사랑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 같은데, 인간은 고독하기 때문에 사랑을 하는가? 헌데 왜 그 방향은 종종 제멋대로인가? 롤리타는 험버트 험버트는 사랑하지 않았지만 퀼티는 사랑했었다. 대체 왜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는 그를 사랑할 수 있었으나 험버트 험버트는 사랑에 실패하고 결국 도취된 사냥꾼으로 머무르고 마는가? 아니, 사랑에 빠지는 순간 인간은 모두 ‘도취된 사냥꾼’이 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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