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영성의 발견은 우리의 자아가 더 큰 신비의 작은 일부분해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내면화할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 이 신비는 우리 내면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밖에서, 우주 안에서, 자연 속에서, 타인들의 내면에서도 작용하는 신비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더 진지하고 용기 있는 질문을 던지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 P299
우리는 우리 세계의 거의 모든 것들에 존재하는 종교성을 보고, 그런 형태들이 영혼에 합당한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이 해방의 원리인 공명에 주목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만약 무엇인가가 우리 내면에서 공명한다면, 그것은 어쨌든 우리에 관한 것이고, 우리를 위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자아가 아무리 의지하고 전통이 아무리 뜨겁게 숭배한다고해도 결국 그것은 영혼을 배신하고 말 것이다. 성숙한 영성은 성숙한 개인을 요구한다. 성숙한 영성은 이미 우리 각자의 내면 안에, 그러니까 신비가 우리에게 다가올 때 그것을 신비로 받아들일 줄 알고 그 신비에 질문을 던지고 변화와 성장의 위험을 감수하고 살아 있는 한 우리 인생 여정을 재조명할 수 있는 우리 잠재력 안에 있다. 우리가 이 개인적 권위에 대한 책임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을 준비가 얼마나 되어 있는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 각자가 지켜야 할 약속이다. - P299
새로운 신화는 늘 그렇듯 우리 내면 깊은 곳에서 나오고, 부족을 환영하고, 개인들에게 자신을 축소하지 않고 확장할 수 있는 것에 이바지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새로운 신화, 즉 깊은 울림을 일으키는 에너지의 장은 이미 당신 내면 깊은 곳에서 탄생하고 있다. 당신의 소명은 당신에게 다가오고있는 것을 존경하고, 인류가 역사적으로 인격화하고 ‘신들‘로 받들어온 그 깊고 신비로운 에너지의 끊임없이 변화하는 형태를 새롭게받드는 것이다. 릴케가 이렇게 말했듯이.
신들, 우리는 대담한 이미지로 신을 먼저 투영하고 구속하는 운명이 그것들을 다시 우리에게서 파괴한다. 하지만 그들은 불멸의 존재이니 결국에는 우리의 소리를 들어줄 이들이다. - P300
삶은 최종적으로 해결해야 할 어떤 문제가 아니고, 우주와 끊임없이 교감하는 과정이다. 이 교감을 통해서 우리는 삶을 최대한 충실하게 살라는 부름을 듣는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삶을 충실하게 살면서 우리를 통해 존재하게 될 초월적 의미를 섬긴다. - P336
우리는 결코 삶을 매끈하게 살아내지 못한다. 삶은 남루하고, 진리는 그보다 더 남루하다. 자이는 편안해질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려 들 것이다. 그러나 영혼은 전일성에 관한 것이며, 이 사실은 자아를 더욱더 불편하게 만든다. 전일성은 안락이나 선함, 합의를 의미하지 않는다. 짧고 독특하며 깊이 뿌리내린 인생이라는 포도주를 그 찌꺼기까지 다 들이켜는 것을 의미한다. - P337
우리는 완벽해지라고 요구받지 않는다. 완벽은 신들의 영역이다. 그보다는 마음을 온전히 쏟고, 신성한 것과 관련 있는 분야에 감수성과 존경심, 겸손한 마음으로 접근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 P347
영혼이 자아에게 요구하는 것은 지배권을 누리겠다는 환상을 버리고 그 낙하에 붙들리는 것이다. - P367
헤르만 헤세 Hermann Hesse의 글처럼 말이다. "우리는집에 닿기 전에 온갖 지저분한 일과 거짓말에 걸려 넘어지곤 한다. 우리에겐 길을 안내해줄 사람이 하나도 없다. 우리의 유일한 안내자는 오로지 우리의 향수이다. " 이 영적 향수가 우리에게 인생의 여정을 제공하고, 이 여정은 우리에게 다시 한번 진정한 삶을 준다. - P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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