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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 - 죽음의 땅 일본원전사고 20킬로미터 이내의 기록
오오타 야스스케 지음, 하상련 옮김 / 책공장더불어 / 2013년 3월
평점 :
기록한다는 것
사람이 아니더라도
사람의 주변부를 이루던 것들
어쩌면 중심이기도 했을 것들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우리에게 남겨준 문제들에 대해 내가 얼마나 인간 중심적이거나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지 서점에서 책 제목을 보자마자 깨달았다. 원전 사태가 뉴스의 중심에서 사라진 뒤 해산물 먹거리 문제나 일본으로 여행갈 때 느끼는 우려 등등을 주로 생각하거나 표현했다. 때로 일본 정부가 사태에 대해 무책임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에 대해 분노하는 정도로 국가 권력에 대한 불신을 표하거나 조금 더 시야를 넓게 갖는다면 앞으로 전세계적으로 원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나가야 하는가 등등을 미디어가 제시해주는 생각의 지표에 따라 떠올리거나 대화를 나누긴 했지만 대부분 피상적인 차원이었다.
그런 대화를 나누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동안에도 후쿠시마는 여전히 미해결된 문제가 산재한 곳이었다. 특히 그곳을 떠난 사람들과 그곳에 남겨진 무수한 생명을 이루고 있는 것들이야말로 그 문제의 직접적인 피해로 여전히 고통스러워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보며 생생히 깨달았다.
책의 저자인 오오타 야스스케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을 수 없었'기에 그곳에서 구조를 시작했고 고통을 기록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일어난 일이 전혀 없었던 일이 되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그의 우려 덕분에 현실을 볼 수 있었다. 이토록 직접적인 기록이 아니었다면 이 동물들에 대한 전언이 들려왔을 망정 아픔을 내 것으로 느낄 수 있었을까. 어떤 기록이 의미를 갖는 이유는 이때문일 것이다.
내 삶이 걱정으로 가득 차 있고, 자칫하다가는 내 삶이 흔들릴지도 모르기에 우리는 고통보다는 행복을 보고자 하고 거기서 에너지를 얻고자 한다. 자기 계발서 같은 도서를 통해 삶을 좀 더 단단하게 할 수 있는 데에 집중하는 현대 대한민국 사회에서 다른 고통을 돌아보자는, 사람의 고통뿐 아니라 사람의 주변부를 이루고 있던 것들, 사람과 마음을 교류하던 것들이 사람으로 인해 겪게 되는 고통을 돌아보자는 이야기는 몹시 현실 감각이 없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결국 그것이야말로 삶을 단단하게 하는 일이 아닐까. 사람들에게 종종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다.
지금 당신이 이루고 있는 삶이 충분히 소중하다는 것. 그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야말로 값어치있는 일이라는 것을 책은 사진과 담담한 기록을 통해 전한다. 자기 생명을 물어뜯기며 집을 지키는 곤타나 조용히 자신의 집에서 생을 마감하면서까지 반려인을 기다리는 그 한 마음과 더불어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게 해준다. 동시에 '원자력 발전'은 순식간에 평범하지만 지극히도 아름다운 삶을 무너뜨리게 할 위험 요소를 동반한 채 가동되고 있다는 것을 동시에 전한다.
나는 이 책을 볼 때마다 순식간에 울게 된다. 그 울음은 전혀 의도되지도 계산되지도 않았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마음들이 나를 울린다. 고통 속에서 고통의 원인도 모른 채 생명이 사라지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을 동물들이나 끝끝내 반려인을 기다리고 있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삶이라는 것은 무수한 디테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또한 우리가 노력하는 이유는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권력이나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디테일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타인의, 다른 생명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람이 사람인 조건일 것이다. 더 편리한 세계와 사회를 이루기 위해, 무릅써야 할 위험이 어디까지인가, '후쿠시마에 남겨진 동물들'은 묻는다. 마음이 하나인 동물에 비해 너무나도 겹겹의 마음을 가진 인간이지만, 때로 멈추기도 해야한다는 것. 그 어떤 논리적인 설명보다도 현실에 대한 생생한 기록은 가장 무겁게 '멈출 줄 아는 지혜'에 대한 책무를 깨치도록 해줬다.
2015년
9월 3일 목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