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7
조지 오웰 지음, 김병익 옮김 / 문예출판사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번째로 읽는 1984. 2013년에 읽었고 2023년에 다시 읽었다. 장정일 작가가 '1984' 세계에 대해 써놓은 ( 편지는 제주도로 가는데, 저는 가는군요) 읽다 1984 세계는 내부당원, 외부당원에게는 가혹하지만 노동자들에게는 다른 법칙이 적용된다는 내용을 봤으나 내용이 기억나지 않았다.

 

오로지 소설을 읽은 뒤의 절망적인 기분만 남아있었다. 마지막 그가 대형을 사랑했다는 문장 속의 처절함 같은 말고 지워져버렸구나 싶어 다시 읽기로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 '1984' 다시 읽는 해인 셈이다.

 

진리성(예술), 평화성(전쟁), 애정성(법질서), 풍부성(경제)으로 이루어진 부처가 있는 1984년의 오세아니아. 세계는 3개의 국가로 나뉘어졌고 대부분 비슷한 시스템으로 굴러가고 있다. 권력을 위해 가난과 전쟁을 이용하는.(현대와 유사한) 구술기록기, 소설제작기 같은 시스템이 있어 글을 쓰지 않고 말로 해도 내용이 기록된다. 소설은 비슷한 패턴을 반복해 컴퓨터가 알아서 만들어낸다. 이를 보며 적당한 흥미를 느낄 있도록. 춘화나 포르노 역시 비슷한 이유로 국가적으로 제작된다. 언론은 언제라도 조작 가능하다.(지금 시대에서 하고 있는 것과 유사하나 훨씬 극적으로.) 텔레스크린에서는 하염없이 충성과 증오를 주문하고 화면은 감시도 가능하도록 시스템되어 있다. 2분간증오 프로그램은 증오를 부추겨 마음을 거기 끌어모아놓도록 한다. 다른 에너지가 없도록. 어디나 대형의 사진이 보인다. 감시와 주입을 위해. 당원들에게 자유시장 거래는 불가능하다. 역시, 감시와 주입을 위해. 이중사고라는 이념으로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는 것들이 가득하고 기록은 끊임없이 과거를 수정해낸다. 기록되지 않은 모든 현실은 기억 속에 존재하나 이를 증명할 있는 또한 기억뿐이다. 기억은 나만의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현실은 사라지고 남는 것은 침묵뿐이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 나온 문구다.)

이런 시대가 도래한 이유는 권력이 추구하는 것은 오로지 권력이라고 오브라이언은 이야기한다. 권력의 속성에 대한 가장 지독한 자백인 셈이다.

 

기록되지 않은 기억들이 얼마나 허약한지 그러나 얼마나 뿌리 깊은지 사이에서 갈등하는 윈스턴. 엄마에 대한 기억, 동생에 대한 희미한 기억을 안고 있는. 그러나 기억은 정말 진짜인지 확인할 없다. 어쩌면 꿈이거나 조작된 것일 수도 있다.

 

사랑은 권력을 물리칠 정도로 힘이 세기에 사랑을 금지한 세계에서 사랑을 해보지만 결국 사랑이란 또한 얼마나 허약한 것인가, 위험 앞에서 죽음 앞에서 얼마나 허약했던가, 내가 속여온 자신의 민낯을 보여주며 밑바닥을 헤매게 하고 거울 너를 보라고 결국 네가 꿨던 모든 꿈은 그냥 꿈이라고, 네가 살아온 기억들 또한 그렇게 허약하다고, 믿음도 신념도 되지 못한다고 오브라이언으로 대표되는 1984 세계는 이야기한다. 권력만이 남아있다고. 기록은 권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므로.

 

윈스턴이 빌린 체스터 씨의 앞에서 노래를 부르던 여인도, 윈스턴에게 모습을 드러내보인 카페 밤나무의 혁명가들도 마치 짜여진 편의 연극 같은 모두를 미리 설정해놓은 것은 오브라이언일까. 줄리아와 처음으로 밀회한 장소를 와본 듯한 기억은…  누가 연극일까. 윈스턴이 원했던 걸까. 정말 윈스턴의 초콜릿에 대한 어릴 기억은 사실일까. 자기 자신에 대한 극도의 미움이 그를 여기로 내몬 걸까. 이미 정해진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방향을 택할 수밖에 없는 생으로. 이미 '그대 침대를 비춰주는 촛불이 오네, 그대 목을 댕겅 자를 도끼가 오네'라며 노래로 예고했음에도 기어이 거기로 가는 이유는.

 

 

얼핏 보면 전체주의 시대 같으나 노동자들은 이런 시스템에 관심이 없다. 그들은 가난한 채로 살아가고 때로 흥분하고 금방 잊고 전쟁이 일어난다지만 일이 아니다가 공습이 닥치면 일이 된다.

 

소설이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소설이 아닌 이유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모르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 속의 하급관리 윈스턴이 목도한 비밀의 꺼풀들, 꺼풀들을 벗겨내자 남은 것은 구멍이고 구멍에 무엇이라도 채워야겠기에 윈스턴은 대형을 채운다. 주입한 사랑이 정말 사랑이 때까지, 그게 가능하다는 것을 오브라이언으로 대표되는 그들은 확인하며, 그때쯤 사형이 선고된다. 아니면 자살하게 되는 것일까. 더는 남은 없다는 것을 뼛속 깊이 확인했으므로. 자신이라는 것은 아예 없다는 것을. 침묵밖에 남지 않은 상태.

 

사람을 극한으로 밀어넣으면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심리적으로. 사람이 극한으로 밀리면 일어나는 일들. 권력의, 위협의 끝부분에서 만나게 되는 것들.

 

그래서 많이 힘들다. 하지만 누군가 이야기해야 하기에, 조지 오웰은 이야기한다. 정치소설을 예술화하겠다는 조지 오웰의   그대로다.

 

윈스턴의 성은 스미스. 매트릭스의 스미스가 문득 떠올랐다. 속을 제거한 윈스턴, 윈스턴이라는 이름으로 꾸었던 모든 꿈이 산산조각 (아서 밀러의 시련이 생각난다. 그건 이름이니까요. 그런 대사를 읽고 적이 있다. 이름이 완전히 산산조각난 이후에도 살아남은) 매트릭스의 스미스가 스미스인 이유는 이때문이 아니었을까.

 

(자본주의의 미명 아래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 동안 +직위로 불리는 우리들에게 사회가 바라는 역시 비슷하지 않을까. 개성도 없이, 자유도 없이, 그저 하나의 가치를 향해 뛰어라. 그러나 자유를 누릴 있을 정도의 부는 누릴 없도록 벽을 이미 세워둔 .)


그 혼자만 그러한 믿음을 갖고 있고 따라서 혼자이니까 미치광이다. 그러나 그의 미쳤다는 생각은 대단한 게 아니다. 무서운 것은 그렇게 생각하는 그 자신이 잘못 알고 있지 않았는가 회의하는 것이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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